주일설교PDF
부활절 제5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5-19 09:22
조회
1133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신약 | 행 11:1-18
1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3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4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5 이르되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어 내 앞에까지 드리워지거늘 6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7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8 내가 이르되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 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9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더라 10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11 마침 세 사람이 내가 유숙한 집 앞에 서 있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 로 보낸 사람이라 12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13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14 그가 너와 네 온 집이 구원 받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15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16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1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응송 | 시 148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그는 모든 성도 곧 그를 가까이 하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받을 이시로다
서신 | 계 21:1-6a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복음 | 요 13:31-35
31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32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33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묵상 | meditatio
① 요 13:34, 35을 묵상하십시오. 서로 사랑을 새 계명으로 주신 주님께서 제시하신 사랑의 표준은 누구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까?
② 행 11:5-18을 묵상하십시오. 이방인 선교에 대한 베드로의 설명을 들은 유대인들은 무엇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까?
③ 계 21:1을 묵상하십시오. 사랑의 계명과 하나님의 영광이 완성된 세계를 보고 사도 요한은 무엇을 보았다고 했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지난 5월10일 서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에서 프랑스군 특수부대가 무장조직과의 교전 끝에 인질 4명을 구출해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구출해 놓고 보니 인질 네 명 중에 한 명이 한국인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인질들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프랑스 특수부대원 2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로 인해 네 명의 인질은 세간의 비난을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이번에 그들이 여행한 지역은 한국 외교부에서 정한 2단계 여행 자제 국가여서 한국인 여성에게는 더더욱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논란 중에 제 마음이 아팠던 건 한국인 여성의 귀국비용 문제였습니다. 발표 직후 온라인상에서는 긴급구조상황인 이 여인의 항공료 등에 대한 정부지원여부에 대해 일대논란이 벌어졌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가족들이 항공료를 보내서 무사히 귀국할 수가 있었지만, 여론은 차갑기 그지없었습니다. 물론 이번 사건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저는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관점은 어떠해야할까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지방에 가셨을 때,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님을 만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무덤 사이에 거처하고 있었고, 고랑과 쇠사슬에 매여 있었습니다. 존엄한 인간이지만 비인간화 되어 있던 그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귀신을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허락하셨을 때,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돼지 떼가 바다로 내리달아 몰사했습니다. 이때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이 마을 주민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마을에서 떠나달라고 요구합니다.(막 5:17) 이들과 예수님과의 관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한 사람의 '생명'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그들은 돼지 떼의 '경제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관점이 예수님과 같은 사람 아니겠습니까? 가치관과 가치관이 부딪힐 때, 우리의 그리스도인 됨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헤아려 말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하겠습니다. 왜 우리가 낸 세금으로 그녀의 귀국비용을 대느냐고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차갑게 말하고 냉소할 지라도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한 소중한 생명이 무사히 돌아온 것에 감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부활절 다섯째 주일을 맞은 오늘 성서일과의 말씀들은 '우리가 사랑함으로써 얻는 감격스러운 결과들'을 보여줍니다. 복음서에서 주님은 사랑의 계명을 주시며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는 '사랑함으로써만'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증명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은 주님의 사랑이 이방인들에게로 확대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행 11:1)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성령이 선물로 주어졌듯이,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며 제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행 11:17, 18) 서신서에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이 궁극적으로 완성된 세계를 바라보면서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다"(계 21:1)고 고백합니다. 먼저 복음서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김지하 시인이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을 생각할 때면 맨 먼저 떠오르는 말씀 한 마디가 있는데, '밑으로 기어라' 라고 합니다. 장일순 선생의 원주 봉산동 자택에서 시내 중심가 까지는 걸어서 이십 분 정도로 족한 거리인데, 선생은 보통 두 시간씩 걸리기가 다반사였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밑으로 기어라' 때문이었습니다. 길가의 좌판 장수, 기계 부속품 가게 주인, 리어카 채소장수, 식당 주인, 아니면 농부들,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과 끊임없이 벌이얘기, 아이들 소식, 농사 얘기, 살림살이며 시절 이야기를 나누는 데 보통 두 시간 이상씩 걸렸다는 겁니다. 김지하 시인은 그 진풍경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아하! 이것이 '밑으로 기어라'로구나" 라고 깨달았다는 거지요. 그에게 있어서 '밑으로 기어라'는 막연한 겸손이 아닌 '생명과 평화'를 일구기 위한 신앙적인 노력이었습니다. '구원에 이르도록' 사랑하는 '성사적 사랑' 만이 '참되게' 사랑하고 '올바르게' 사랑하는 것이듯이 '생명과 평화를 목표로 한 겸손함', 그것만이 '참된' 겸손이고 '올바른' 겸손임을 배운 것입니다. 장일순 선생이 '중립화 평화통일론'으로 인해 3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나왔을 때, 자신을 찾아온 김지하 시인에게 장일순 선생은 "민중은 삶을 원하지 이론을 원하지 않는다." 라며 이제부터는 정당이나 정치보다 간디나 비노바 바베의 실천을 배워 영혼 내부의 깊은 자성의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3년간의 옥고를 치르면서 그는 더욱 자신을 그리스도께로 밀착시켰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형제를 사랑하는 기준이 내 판단에 한정되어 있지 않은가?
②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나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알아보는가?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신약 | 행 11:1-18
1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3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4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5 이르되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어 내 앞에까지 드리워지거늘 6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7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8 내가 이르되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 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9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더라 10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11 마침 세 사람이 내가 유숙한 집 앞에 서 있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 로 보낸 사람이라 12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13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14 그가 너와 네 온 집이 구원 받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15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16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1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응송 | 시 148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그는 모든 성도 곧 그를 가까이 하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받을 이시로다
서신 | 계 21:1-6a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복음 | 요 13:31-35
31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32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33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묵상 | meditatio
① 요 13:34, 35을 묵상하십시오. 서로 사랑을 새 계명으로 주신 주님께서 제시하신 사랑의 표준은 누구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까?
② 행 11:5-18을 묵상하십시오. 이방인 선교에 대한 베드로의 설명을 들은 유대인들은 무엇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까?
③ 계 21:1을 묵상하십시오. 사랑의 계명과 하나님의 영광이 완성된 세계를 보고 사도 요한은 무엇을 보았다고 했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지난 5월10일 서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에서 프랑스군 특수부대가 무장조직과의 교전 끝에 인질 4명을 구출해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구출해 놓고 보니 인질 네 명 중에 한 명이 한국인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인질들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프랑스 특수부대원 2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로 인해 네 명의 인질은 세간의 비난을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이번에 그들이 여행한 지역은 한국 외교부에서 정한 2단계 여행 자제 국가여서 한국인 여성에게는 더더욱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논란 중에 제 마음이 아팠던 건 한국인 여성의 귀국비용 문제였습니다. 발표 직후 온라인상에서는 긴급구조상황인 이 여인의 항공료 등에 대한 정부지원여부에 대해 일대논란이 벌어졌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가족들이 항공료를 보내서 무사히 귀국할 수가 있었지만, 여론은 차갑기 그지없었습니다. 물론 이번 사건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저는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관점은 어떠해야할까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지방에 가셨을 때,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님을 만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무덤 사이에 거처하고 있었고, 고랑과 쇠사슬에 매여 있었습니다. 존엄한 인간이지만 비인간화 되어 있던 그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귀신을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허락하셨을 때,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돼지 떼가 바다로 내리달아 몰사했습니다. 이때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이 마을 주민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마을에서 떠나달라고 요구합니다.(막 5:17) 이들과 예수님과의 관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한 사람의 '생명'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그들은 돼지 떼의 '경제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관점이 예수님과 같은 사람 아니겠습니까? 가치관과 가치관이 부딪힐 때, 우리의 그리스도인 됨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헤아려 말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하겠습니다. 왜 우리가 낸 세금으로 그녀의 귀국비용을 대느냐고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차갑게 말하고 냉소할 지라도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한 소중한 생명이 무사히 돌아온 것에 감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부활절 다섯째 주일을 맞은 오늘 성서일과의 말씀들은 '우리가 사랑함으로써 얻는 감격스러운 결과들'을 보여줍니다. 복음서에서 주님은 사랑의 계명을 주시며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는 '사랑함으로써만'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증명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은 주님의 사랑이 이방인들에게로 확대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행 11:1)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성령이 선물로 주어졌듯이,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며 제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행 11:17, 18) 서신서에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이 궁극적으로 완성된 세계를 바라보면서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다"(계 21:1)고 고백합니다. 먼저 복음서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요 13:34
우리가 이 말씀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려면, 이 말씀이 어떤 상황에서 주어졌는지를 먼저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이 있기 전, 그러니까 같은 요한복음 13장 안에서 1절 말씀을 읽어보면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말씀 하나가 있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마침내 다가온 당신의 죽음을 앞두고 주님이 선택하신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지는 말씀에 보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라고 요한은 당시 민감했던 또 하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4-1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후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주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 15)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을 뿐 아니라,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를 몸소 실천해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 보면 가룟 유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심령이 괴로워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요 13:21) 그러고 나서 오늘 복음서의 말씀이 이어지고, 그 다음에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요 13:38) 예수를 팔아넘기는 일에는 유다가, 예수를 부인하는 일에는 베드로가 거명되고 있지만, 사실은 나머지 제자들의 마음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마음'도, "서로 사랑하라"고 간곡하게 당부하신 '말씀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가 아닌, 누군가 종이 되어 발을 씻겨줘야 하는데 그 누구도 선뜻 종이 되려 하지 않는 제자들의 이기심이 표출된 가운데서, 혹은 예수님을 팔아넘기거나 부인함으로서 공동체가 해체될지도 모를 위기 가운데서 주어진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듯이 사랑이란 결코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반드시 어떤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변증법적인 결단과 함께 요청되는 것입니다.김지하 시인이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을 생각할 때면 맨 먼저 떠오르는 말씀 한 마디가 있는데, '밑으로 기어라' 라고 합니다. 장일순 선생의 원주 봉산동 자택에서 시내 중심가 까지는 걸어서 이십 분 정도로 족한 거리인데, 선생은 보통 두 시간씩 걸리기가 다반사였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밑으로 기어라' 때문이었습니다. 길가의 좌판 장수, 기계 부속품 가게 주인, 리어카 채소장수, 식당 주인, 아니면 농부들,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과 끊임없이 벌이얘기, 아이들 소식, 농사 얘기, 살림살이며 시절 이야기를 나누는 데 보통 두 시간 이상씩 걸렸다는 겁니다. 김지하 시인은 그 진풍경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아하! 이것이 '밑으로 기어라'로구나" 라고 깨달았다는 거지요. 그에게 있어서 '밑으로 기어라'는 막연한 겸손이 아닌 '생명과 평화'를 일구기 위한 신앙적인 노력이었습니다. '구원에 이르도록' 사랑하는 '성사적 사랑' 만이 '참되게' 사랑하고 '올바르게' 사랑하는 것이듯이 '생명과 평화를 목표로 한 겸손함', 그것만이 '참된' 겸손이고 '올바른' 겸손임을 배운 것입니다. 장일순 선생이 '중립화 평화통일론'으로 인해 3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나왔을 때, 자신을 찾아온 김지하 시인에게 장일순 선생은 "민중은 삶을 원하지 이론을 원하지 않는다." 라며 이제부터는 정당이나 정치보다 간디나 비노바 바베의 실천을 배워 영혼 내부의 깊은 자성의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3년간의 옥고를 치르면서 그는 더욱 자신을 그리스도께로 밀착시켰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보여줍니다. 첫 째는 예수께서 사랑에의 명령을 '새 계명'으로서 주셨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사랑의 표본으로서 당신 자신을 보여주신 사실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 요 13:34a
계명은 다른 모든 것들보다 우선하는 것이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모든 말씀의 총체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그 외에 다른 계명은 사실은 필요치 않습니다. 실제로 서로 사랑한다면 그것 외에 다른 무슨 구구한 계명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래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되게 사랑하라. 그러고서 네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나 해도 좋다." 왜 그럴까요? 참된 사랑은 우리가 악을 행할 위험을 뛰어넘게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결코 어떠한 죄도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천국에 죄가 있을까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완전한 사랑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만일 지구에서 사랑이 없어진다면, 수천가지 계명이 있을지라도 인간을 악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 '서로 사랑하는 것'은 '새로운 계명' 즉 새로운 창조였습니다. 주님은 이 새로운 계명인 '서로 사랑'의 표본으로 당신 자신을 보여주셨습니다.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요 13:34b
사람들은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 사랑을 상상하는 것 외에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정확하게 보여주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심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랑을 상상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번엔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레 19:18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일까? 이번에도 예수님께서 표본이 되어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 15)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으로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이웃사랑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사실 이 말씀은 레위기에서 말씀하신 '네 자신과 같이'를 넘어선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이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 자신보다 더'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형제를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오늘 주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을 향한 강력한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웃 사랑을 말할 때, 착하게 살고, 양심적으로 사는 윤리적 노력에 무게를 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과 일치하려는 영적 노력에 더 무게를 두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교 영성생활입니다. 니체는 그리스도교 영성생활을 자학적인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교 영성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자학적인 행동'이 아니라 '그리스도적 행동'입니다. 이때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 있습니다. 주님은 그 현상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요 13:35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할 때, 세상은 비로소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로 알아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바로 그 때, 우리에게 비춰오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사랑이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 행 11:18
어느 날 유대인들에게, 이방인 고넬료와 그의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고넬료에게 세례를 준 사람이 베드로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이방인에게 간 것도, 그들의 집에 들어간 것도, 그들과 함께 식사한 것도, 유대인의 법을 어긴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일제히 베드로를 비난했고, 베드로는 그 일에 대해 설명해야만 했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욥바에서 자신이 본 환상을 소개하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베드로가 욥바에서 기도를 하다가 환상을 보았는데,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부정한 짐승들인데 "베드로야, 잡아먹어라" 하는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자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일이 세 번 있고 나서 세 사람이 베드로를 찾아왔는데, 그들은 베드로를 초청해서 세례를 받기위해 고넬료가 심부름을 보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때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의심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고넬료의 집에 가서, 그와 가족들에게 세례를 주었더니 성령이 처음 제자들에게 내리시던 그대로 그들에게도 내리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비난하던 유대인들은 이 말을 듣고 잠잠해졌다가 마침내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이 마침내 이방 세계에로까지 확대된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신비가 보이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사랑하셨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어질 위대한 결과들을 보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셨습니다. 사랑이란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님의 그 사랑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사랑을 이방 세계에까지 주었고, 하나님의 영광은 이방인들 위에서도 마침내 빛났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처음 제자들에게 그랬듯이 이방인들 위에도 임재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신비이고,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비춰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이루어진 세계,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세계를 사도 요한은 이렇게 노래합니다.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 계 21:1-5a
여전히 세상은 생명보다 경제가 더 중요하고, 경제적 가치고 나머지를 재단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은 주님의 마음과 같아야 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주님의 이 한 마디가 우리의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세상을 거슬러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세상을 거슬러 사는 삶'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로 알아본다면 그것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형제를 사랑하는 기준이 내 판단에 한정되어 있지 않은가?
②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나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알아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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