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사순절 제5주 유다의 부질없는 탐닉과 마리아의 아름다운 헌신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사 43:18-20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응송 | 시 126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서신 | 빌 3:7-9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부터 난 의라
복음 | 요 12:1-7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 득하더라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 묵상 | meditatio
① 요 12:3-7을 묵상하십시오. 가룟 유다의 말에 담긴 의미와 마리아의 모습에서 비교되는 것은 무엇인가?
② 사 43:18, 19을 묵상하십시오.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라는 말씀을 보며 기대하게 되는 세상은 어떤 것인가?
③ 빌 3:7-9을 묵상하십시오. 바울이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알았을 때, 그는 어떠한 실천을 보이는가?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유다의 부질없는 탐닉과
마리아의 아름다운 헌신
사순절이 한층 더 깊어졌습니다. 사순절이 깊어갈수록 우리는 내 안에 똬리를 튼 탐닉들과 치열한 갈등을 겪게 되는데, 헨리 나우웬은 이 '탐닉' 을 '현대 사회의 저변에 깊숙이 흐르는 상실감을설명해주는 가장 적절한 단어'1)라고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이 세상에서 자기만족의 열쇠로 여겨 의지하는 '부와 권력의 축적, 지위와 명예의 획득, 색욕과 사랑의 구 분 없는 성적 만족 등을 향한 탐닉'은 우리로 하여금 끝이 없는 일련의 망 상들을 접하게 하고 먼 나라에서 부질없는 추구를 하게끔 만들지만, 그러 나 우리의 가장 깊은 곳의 갈망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까닭에 바로 그곳에 서부터 우리의 구원의 외침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 복음서에 등 장한 둘째아들이 그랬습니다. 둘째아들의 탐닉은 그로 하여금 아버지의 집 을 떠나 먼 나라에서의 '부질없는 추구'에 집착하게 했습니다. 참된 사랑이 있는 곳을 무시하고 다른 곳에서 채워지지 않는 만족을 찾으려고 한 것입 니다. 그러나 오히려 심각한 소외와 배고픔에 처해지면서 그는 가장 근원 적이며 본질적인 만족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망상으로 부터 돌아설 수 있었고, 아버지께 돌아가 '화목'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사순절은 이 '부질없는 추구'와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추구'가 가장 첨예하 게 충돌하는 절기인데, 사순절 제5주인 오늘 복음서 역시 이 두 가치관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하는 현장을 보여줍니다.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 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 다는일을하고나사로는예수와함께앉은자중에있더라| 요12:1-2
베다니에 있는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의 집에 예수님께서 방문을 하 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라는 말씀으로 미루어 아마도 이 자리는 죽은 오빠를 살려주신 주님을 초대해 감사를 표현하는 자리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음식 장만에 여념이 없었고 나사로는 예수 님과 함께 사람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장면은 당시 이스라엘 에서평범하게볼수있는잔칫집풍경입니다.그런데이평범한풍경에 파장이 일게 하는 예기치 않은 사건 하나가 벌어집니다.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 요 12:3-5
우리는 이 하나의 장면 안에서 두 개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것을 봅니 다.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두고 마리아가 보여준 모 습과 가룟 유다의 가치관이 충돌을 빚고 있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에 따르 면 이 향유의 가격은 '삼백 데나리온'입니다. 삼백 데나리온은 당시 군인이 나 일반 노동자의 1년 연봉입니다. 그러니까 유다에 따르면 왜 그 비싼 향 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을 돕는데 사용하지 않고 예수의 발에 허비하느 냐는 것입니다. 유다의 이 말은 오늘날 우리가 듣기에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예수님의 발에 부어지는 향유는 이내 사라질 것이지만, 그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면 그들로서는 생계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유다의 이 말 속에 담긴 음흉한 속내를 여지없이 밝혀버립니다.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 요 12:6
유다는 자기가 하는 비판의 근거를 대기 위해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 을 끌어들이고 있지만, 그러나 그는 지금껏 예수님 일행의 돈을 훔쳐간 자 로서 삼백 데나리온을 훔칠 기회가 사라진 것에 대해 그저 분통을 터뜨리 고 있을 뿐이라는 분석입니다. 그러니까 요한의 분석에 따르면 그는 '부질 없는 추구'에 매몰된 사람입니다. 결국 그는 그 '부질없는 추구'를 어찌하 지 못해 급기야는 스승 예수를 팔아버리기에 이릅니다. 그러면 우리는 마 리아의 태도에 대해서는 어떤 판단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요? 그녀는 단지 예수님을 사랑해서 그의 발에 지극히 비싼 향유를 낭비해버린 것일까요? 아니면 오라버니 나사로를 살려준 것이 고마워서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음으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한 것일까요? 아니면 베다니에 사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죄를 지은 여자'(눅 7:37)로서, 자신을 받아준 예수님께 대한 고마움의 표현일까요? 그런데 주님은 마리아의 이 행동에서 단지 사 랑하는 마음이나 고마움과는 비교될 수 없는 그녀의 헌신의 가장 거룩한 동기를 발굴해 내십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 요 12:7
이 말씀을 표준 새 번역 성경으로 보면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대로 두어라.그는나의장사날에쓰려고간직한것을쓴것이다"그러니까주 님의 말씀에 따르면, 마리아는 주님의 장례를 위해 향유를 간직해 왔으며, 이제마침내때가되어그향유를예수님의발에부었다는것입니다.즉 주님께서 보신 바로는 마리아의 행동은 '제의적 행위'였습니다. 이것은 놀 라운 사실입니다. 실제로 이 마리아의 헌신이 있고 나서 예수님의 구원행 위가 궤도에 오릅니다. 요한복음 13-21장은 일명 '영광의 책'으로 불립니 다. 왜냐하면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 부분, 즉 '고난, 죽음, 부활, 보혜사 성령'의 사건이 13장-21장에 집약되어 있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구원의 사건이 완성되며, 이로서 예수님이 영화롭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마리아의 헌신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여는 '서막'으로서 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유다가 보인 '부질없는 탐닉'과 비교되는 마리아 의 '아름다운 헌신' 여러분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으십니까? 더욱이 지금 이곳은 '베다니'입니다. 베다니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관 련해서 매우 상징적인 곳입니다. 먼저 이곳은 예수님께 적대적인 고장입니 다. 오늘 말씀 직전의 상황을 전하는 요 11:50-53에 따르면 이곳의 바리 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이 의회를 소집해서 본격적으로 예수를 죽일 계획을 모의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살해할 계획을 모의한 장소인 이 베다니에 서 마리아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제의적 행위를 보인 것입니다. 이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또 이 베다니는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곳입니다. 베다니는 예수님의 죽음이 준비되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예수님 의부활을암시한장소인것입니다.이런전제를가지고오늘예수님의말 씀을 들으면 우리 가슴에 다가오는 울림의 깊이가 다릅니다. "그대로 두어 라.그는나의장사날에쓰려고간직한것을쓴것이다"(요12:7표준새 번역) 여기서 마리아의 지향이 돋보입니다. 그녀는 주님의 죽음으로 완성 되어가는하나님나라를보며그나라를위해자기의소중한것을드리 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요청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마음과 시선입니다.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 사 43:18
여기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기억하지 말라는 과거는 하나님께서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을 건너게 하셨던 그 과거입니다.(사 43:16, 17) 그런데 하 나님은 왜 이 벅찼던 역사를 기억하지 말라는 것일까요? 이어지는 말씀에 해답이 있습니다.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 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 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 사 43:19-23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새 일을 행하시는 미래의 하 나님이십니다. 과거에 홍해를 갈라 조상들을 구원하신 사건도 매우 귀하고 중요한 사건이지만, 하나님께서 장차 이루어 가실 새 구원역사는 더 귀하 고 중요한 역사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그 '새 일'이 무엇입니까? 포로로 끌려온 유다 백성들에게 절망의 상징인 바벨론과 조국 사이에 가로 놓인 광야와 사막을 희망의 상징으로 바꾸어 놓겠다는 것입니다.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하나님께서는 이 이상(異 象)을 이사야 한 사람에게만 보여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겔 47:1-12에서 에스겔 선지자에게도 보다 명료한 이상을 보여주신바 있습니 다. 성전(聖殿) 문지방 밑에서 솟아난 물줄기가 제단 동쪽으로 흐르다가 제 단을한바퀴돈다음에다시성전제단의남쪽으로흐르기시작해서넓고 메마른 아라바 사막을 적셔 나가는데, 그 물이 발목까지 불어나더니(겔 47:3) 무릎까지 불어나더니(겔 47:4a) 허리까지 불어나더니(겔 47:4b)마침 내사람이건너지못할강물이되어사해로흘러들어죽은바다를살리기 시작하는데, 이 물줄기가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고(겔 47:9), 고기 떼가 되살아나고(겔 47:10), 과실나무가 자라나는(겔 47:12) 이상(異象)입 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생명의 이상을 믿고 그 이 상에내희망과삶을두는것입니다.마리아가가졌던신앙이바로이런 것이었습니다.그녀는오빠가살아난것보다더큰사건이주님의죽음너 머에 준비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마리아는 똑같은 사건 속에서 하나님께 서열어가시는'생명'을본것입니다.그리고그녀는이미그'생명'에자 신을 헌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향유를 부어 주님의 장사를 준비합니다. 바로 그 신앙을 주님은 기뻐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마리아를 칭찬하신 것 은 향유를 부어드린 행동 자체가 아닙니다. 마리아의 믿음입니다. 설사 유 다의 휴머니즘이 진심이었다 하더라도 생명을 위해 자기 소중한 것을 헌신 하는 마리아의 마음보다 더 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극단의 상황에서 마리아는 생명을 보았고, 생명의 주님을 새롭게 만났습니다. 그 러니 마리아가 향유를 부어 예수님의 생명을 노래한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서신서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의 고백을 봅니 다.어느날 그리스도의빛이 비추어 왔을 때,그는 자기 존재에대한 새로운 성찰에 직면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또한모든것을해로여김은내주그리스도예수를아는지식 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 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 빌 3:7-9
바울의 이 고백이 우리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대개 우리는 그 반대입니다. 바울이 배설물처럼 여기고 버린 것들을 우리는 오물통에서 다시 찾아 두릅니다. 헨리 나우웬에 따르면 현대 사회의 저변에 깊숙이 흐 르는 상실감은 바로 이 '부질없는 추구'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어떻게 살기 를 원합니까? 내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그 소중 한 것 때문에 내 향유를 깰 수 있는 사람, 주님은 우리에게서 그것을 기대 하시지 않겠습니까? '침묵 속에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에 보면 영국의 트 라피스트 수도자였던 '리스의 성(聖) 에일레드'가 이런 말을 합니다."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국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 침묵과 관상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될 수 있 는 대로 마음을 일으켜 육신의 감각을 떠나야 하며, 순명의 빛나는 갑옷을 입어야 한다. 우리의 순명은 사심이 전혀 없는 순수한 사랑에서 우러나야 하며, 우리의 모든 행위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는 것이어야 한 다."2)
사순절이 깊어 어느덧 부활의 고동소리가 지면 전체를 채워가고 있는 지금,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어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전부인 향유를 부어드린 마리아처럼, 지금까지 유익하게 여기던 것들을 배설물과 '해(害)'로 여기고 오로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를 소망한 바울처럼, 우리가 살고 간 흔적의 곳곳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름다운 생명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지금 나의 소중한 것들을 포 기한 흔적들이 보석처럼 남아있기를 축복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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