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주현 후 제7주 흙에 속한 삶, 하늘에 속한 삶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창 45:5-8
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응송 | 시 3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 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서신 | 고전 15:42-50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 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 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 령한 사람이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 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 의 형상을 입으리라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 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 하느니라
복음 | 눅 6:35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 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 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창 45:5을 묵상하십시오. 요셉은 자신이 애굽에 팔려온 까닭이 무엇 때문이라고 고백합니까?
② 눅 6:35을 묵상하십시오.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는 자'에게 예수님 께서 약속하시는 두 가지 복은 무엇입니까?
③ 고전 15:48을 묵상하십시오. '흙(아담)'에 속한 자는 어디에 속하고, 하늘(예수님)께 속한 자는 어디에 속한다고 말씀합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흙에 속한 삶, 하늘에 속한 삶
1993년, 서울에서만 관객 113만 명을 기록했던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영화에서 유봉은 송화의 소리를 완성하는데 집착한 나머지, 한(恨)을 심어줘서 득음(得音)을 하게 하려고 눈을 멀게 하는 약을 지어 송화에게 먹입니다. '서편제는 한이 쌓여서 나오는 소리'라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습니다. 이후 세월이 흘러 유봉은 죽고, 눈이 먼 송화는 시골마을을 떠돌며 소리를 팔아 생계를 이어갑니다. 비록 피는 안 섞였지만 그래도 남매인 동호는 송화를 찾아 온 남도를 떠돌다가 어떤 마을에 눈이 먼 소리꾼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갑니다. 두 사람은 통성명도 하지 않은 채, 송화는 동호의 북장단에 맞춰 밤새 소리를 합니다. 송화의 소리와 동호의 북이 만나 그간의 한을 풀어내는 장면은 영화 서편제가 보여주는 명장면 중의 명장면입니다. 한(恨)을 원망으로 풀어내지 않고 소리로 풀어내는 송화와 동호 남매는 우리 내면에 쌓아온 원망이나 분노의 감정을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오늘 구약의 말씀에 그런 사람이 등장합니다. 어린 시절 형들의 미움을 사서 무정하게 버림당하고 애굽으로 가던 이스마엘 상단에 은 20세겔에 팔려서 기막힌 세월을 산 요셉이라는 사람입니다. 이후로 애굽에서 살아낸 그의 스토리는 창세기 안에서 무려 12장에 걸쳐 전개됩니다. 39장에는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이 노예시장에서 요셉을 사는 장면이 나오고, 40장에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41장에는 어느덧 2년이 흐른 후, 바로 왕이 꿈을 꾸는데, 그 꿈의 해석을 위해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바로에게 추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셉은 이집트에 닥칠 7년간의 풍년과 연이은 7년간의 흉년을 예언함으로서 일약 애굽의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되고, 당시 '온(׃ןוֹ)' 즉 '헬리오폴리스' 제사장이던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과 결혼을 합니다. 42장에는 점점 고대근동 전역의 가뭄이 깊어가고 마침내 야곱의 아들들 즉 요셉을 팔아넘긴 형들이 곡식을 찾아 애굽으로 내려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요셉 앞에 서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셉은 자리에 무심히 앉아있지 못합니다. 자신의 북받치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급히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 혼자 웁니다.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상처는 세월이 흘러서도 아물지 않은 채로 가슴에 남아 그를 괴롭힙니다. 어쩌면 요셉이 낯선 타국에서 자기를 추슬러 그렇게 악착스럽게 살아남은 건, 자기를 없애려던 형들의 계획이 결코 성취되게 할 수는 없다는 오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오기에 걸맞게 과연 요셉은 낯선 땅에서 보란 듯이 살아남았습니다. 심지어 당대의 최강대국이던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막힌 건, 그럼에도 그의 가슴의 상처가 아물지 못한 채 서슬 퍼렇게 살아있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심리학자들이 이 상처를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나름의 치유를 위한 대안들을 내놓기도 합니다.
기독교 심리학자인 '게리 콜린스(Gary R. Collins)'는 한 그룹의 대학생들에게 행한 리서치를 소개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그대들을 가장 화나게 한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의 리서치였는데, 그 결과는 오늘 날 우리가 화나는 이유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야단을 맞았다든지, 비난을 받았다든지, 일을 다 마치지 못했다든지, 돈을 잃어버렸다든지, 원치 않는 시간에 누가 내 잠을 깨웠다 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걸 합쳐도 가족에게 버림받은 이 상처보다는 더 아프지 않을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받은 이 상처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요? 게리 콜린즈는 이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합니다. '상처를 인정하라(겸손)', '원인을 생각하라(분석)', '속 시원히 표출하라(카타르시스)' 등등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요셉에게서 조금 다른 모습을 봅니다. 우선 요셉은 형들의 마음을 확인합니다. 형들이 아직 옛날의 그 사람들인지, 형들이 자기를 판 일에 대해 후회하고 있는지, 늙으신 아버지와 어린 동생 베냐민을 향한 그들의 사랑이 진정인지를 확인하는 겁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막내 베냐민을 애굽에 억류한 채,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이었습니다.(창 44:17) 형들은 모두 야곱의 두 아내 중 '레아'가 낳았고, 요셉 자신과 베냐민은 '라헬'이 낳은 자녀입니다. 어찌 보면 형들 입장에서는 요셉의 이 제안이 그래서 가장 다행스러운 것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창 44:30-31을 읽어보면, 형제 중 유다가 베냐민을 지키기 위해 요셉을 향해 눈물겨운 탄원을 합니다.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그러면서 이렇게 제안합니다.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내가 어찌 아이와 함께 하지 아니하고 내 아비에게로 올라 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비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유다는 아버지 야곱과 동생 베냐민을 위해 자기가 대신 애굽에 남겠다고 합니다. 유다는 아버지와 동생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시킵니다. 이 장면에서 조금 더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유다가 과거 요셉에게 범했던 일을 범죄라 하면서(창 42:21a),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창 42:21b)라고 후회스러워하는 모습도 나옵니다. 유다의 이 진정성이 마침내 요셉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오늘 구약의 말씀으로 연결되는데, 형 유다가 진정으로 후회하고, 아버지와 동생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요셉은 더 이상 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만 통곡을 하고 맙니다.(창 45:1, 2)그의 통곡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바로의 궁에까지 들릴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이 통곡을 보면서 요셉이 비로소 가슴에 응어리 진 상처에서 자유를 얻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요셉의 상처가 치유를 받고 그가 자기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진짜 힘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비로소 요셉을 알아보고 얼어버린 형들에게 요셉이 울며 한 고백이 바로 그것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 창 45:5
저는 요셉이 이 사실을 이 시점에서 비로소 깨달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이전부터 요셉은 자기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부터 요셉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 시작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헤아림이 모든 일상에서 그의 삶을 이끌어 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오늘 형들에게 한 고백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뿐 아니라 아버지와 형제들까지 생명으로 이끌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이런 믿음의 안목이 생기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슴에 품은 자에게 하나님은 이 믿음의 안목을 주십니다. 그리고 이 '믿음의 안목'이 있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맡기십니다. 요셉의 이 고백은 빈 말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조금 후에 재차 이 말을 반복합니다.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 창 45:6-8
이것을 깨달은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 역시 이 깨달음이 있을 때, 비로소 상처와 분노에 빠져들지도 않을 것이고, 복수하는 일에 몰두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서편제의 송화와 동호 남매가 자기들의 한(恨)을 '원망'으로 풀어내지 않고 '소리'로서 풀어냈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내면에 쌓아온 원망이나 분노의 감정을 감정 그대로 풀어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그 헤아림으로서 풀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에서 주님은 당부하십니다.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 눅 6:35a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는 것' 그것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한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에 근거합니다. 따라서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는 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재조정을 위한 필수 조건임과 동시에, 용서해야 할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재설정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용서해야 할 사람이 나와 더불어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에 들어갈 때라야 그 용서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 애초부터 용서도 불가능하거니와, 용서를 통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형제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새로워질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이렇게 약속하십니다.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 눅 6:35, 36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됩니다. 부디 요셉처럼 하나님의 뜻을 헤아림으로 우리가 용서해야 할 사람을 선대함으로서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로 들어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지난 주 서신서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우리 믿음을 진단한 바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9) 바울에 따르면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인 인생'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면서도,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불행한 진단입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내가 신앙인의 이름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마음이 교만하여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뿐 아니라 하나님과 형제의 관계도 망칠 수 있습니다. '비인부전(非人不傳))'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 중국 동진(東晋)의 서예가 왕희지가 제자에게 이른 말인데, 재능은 있으나 인격적으로 부족한 사람에게는 도(道), 예(禮), 기(技)를 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격이 결여된 이들은 깊은 경지에 이르지도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 도(道)를 왜곡시켜 해악을 끼칠 가능성이 많음으로 그것을 걱정해서 이른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눈을 감아버리면 우리 자신의 신앙도 경지에 이르지 못할 뿐 아니라 신앙의 형제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이어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간곡하게 당부합니다.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 고전 15:45-50
창세기에 등장하는 첫 사람 아담 이야기의 본질은 '순종과 불순종'의 문제 즉 '자기 의지의 고집'과 '자기 의지의 포기'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 따르면 첫 사람 아담은 '자기 의지와 고집'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서, 영영 흙에 속한 자로 살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셔서 '자기 의지와 고집'을 포기하심으로서, 영원히 하늘에 속하신 분이 되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은 이런 겁니다. 끝내 '자기 의지와 고집'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지금도 여전히 '흙에 속한 자' 즉 '아담에 속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는 하늘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습니다. 반면 '자기 의지와 고집'을 포기하는 사람은 '하늘에 속한 자' 즉 '예수님께 속한 자'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바로 그런 사람의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 따르면 그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부활이 무엇입니까? '흙에 속한 나'를 심고, '하늘에 속한 나'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즉 '썩을 나'를 심고, '썩지 아니할 나'로 다시 사는 것이며, '욕된 나'를 심고 '영광스러운 나'로 사는 것이며, '약한 나'를 심어 '강한 나'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그는 오늘 구약의 말씀을 따르면 요셉 같은 사람이고, 복음서의 말씀을 따르면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함으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사람입니다. 부디 요셉처럼 하늘을 향한 마음을 간직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형제를 선대함으로서, 우리 자신도 하나님과 통합된 존재로 살고, 형제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회복시켜 주는 하늘에 속한 사람 곧 예수님께 속해 부활을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자기 의지에 매여 '흙' 즉 '아담에 속한 자'로 살고 있지 않은가?
②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예수님께 속한 자'로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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