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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 후 제3주 주님과 함께 꾸는 꿈 주님과 함께 일구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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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19-01-26 23:20
조회
1266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느 8:1-3, 5-6, 8-10
1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2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3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5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 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것을 마 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 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응송 | 시 19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서신 | 고전 12:12-14, 26-27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복음 | 눅 4:14-21
14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15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느 8:3을 묵상하십시오.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백성들의 내적 치유와 회복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② 눅 4:18-21을 묵상하십시오. 회당에서 읽으신 말씀에서 드러난 이사야 선지자와 예수님의 꿈은 무엇입니까?
③ 고전 12:26을 묵상하십시오. 우리 주변의 고통 받는 형제나 이웃과 공존하고 있는 나의 마음과 같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오늘 구약의 말씀에서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역사의 중심에 세워진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는 느헤미야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페르시아 왕의 사랑을 받는 고위관료였고, 출세와 안락한 미래가 보장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루살렘을 순례하고 온 그의 사촌 하나니가 찾아오면서부터 그의 운명이 송두리째 달라집니다. 하나니를 통해 동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황폐해진 예루살렘의 참상을 듣게 되었을 때, 그의 마음은 그만 눈물로 얼룩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눈물 때문에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되고, 이후로 모진 방해를 극복하고 소명에 응답합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가서 황폐해진 성벽을 재건하고 그 위에 잃어버린 조국을 다시 건설하고, 백성들의 행복을 되찾아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느헤미야가 무수한 난관들과 위협과 그에 따른 마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굴곡진 역사를 변혁시켜 낼 수 있었던 그 진정한 힘이 어디 있었는지를 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느헤미야는 자기들에게 임한 처절한 고난의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느 1:6b-7에서 그는 이렇게 회개합니다.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진정한 회복은 잘못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단호한 돌이킴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어떠한 상황에 놓여도 기도하는 시간만큼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느 1:4절 이하에 보면 사촌 하나니로부터 조국 예루살렘의 참상을 들은 느헤미야가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증언합니다. 그저 울고 주저앉아있지만 않았습니다. 그는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느 2:4에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말씀 앞에 서지 않는 까닭에 주님과 다른 꿈을 갖고 있지 않은가?
② 말씀 안에서 주님의 꿈을 읽고, 주님과 같은 꿈을 일구고 있는가?
■ 읽기|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느 8:1-3, 5-6, 8-10
1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2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3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5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 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것을 마 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 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응송 | 시 19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서신 | 고전 12:12-14, 26-27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복음 | 눅 4:14-21
14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15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느 8:3을 묵상하십시오.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백성들의 내적 치유와 회복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② 눅 4:18-21을 묵상하십시오. 회당에서 읽으신 말씀에서 드러난 이사야 선지자와 예수님의 꿈은 무엇입니까?
③ 고전 12:26을 묵상하십시오. 우리 주변의 고통 받는 형제나 이웃과 공존하고 있는 나의 마음과 같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주님과 함께 꾸는 꿈 주님과 함께 일구는 꿈
지난 화요일에 '1976 할란 카운티'라는 뮤지컬을 보았습니다. 미국 켄터키주에서 실제 일어난 탄광 파업을 소재로, 부산 청년이 직접 연출하고 제작, 출연까지 한 창작 뮤지컬이었습니다. 미국 노예제도가 폐지된 지 100년이 지난 1976년에도, 미국 남부 10개 주의 흑인들은 여전히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미국 중남부 켄터키 주의 작은 마을 할란카운티에서 광부들이 광산회사와 대립하게 됩니다. 당시 '이스트오버 광산회사'는 근 100년 이상 지속된 광산자원과 노동시장의 독점을 통해 거대광산자본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행사해온 일방적이고 불균형적인 고용관계에 맞서서 할란 카운티의 광부들은 전미광업노조에 가입을 결정합니다. 부당한 노동과 주거환경을 개선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려는 탄광 노동자들의 힘에 겨운 분투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무자비한 방해공작을 펼치는 광산회사 수뇌의 수싸움이 숨가쁘게 교차합니다. 뮤지컬엔 다양한 입장의 배우가 등장합니다. 광산회사의 사장인 토니보일이 등장하고, 회사의 법률 대리인 패터슨이 등장합니다. 할란카운티 광산회사의 노조위원장이었다가 불의한 총격에 희생당한 모리슨이 등장하고, 그의 딸인 엘레나가 등장합니다. 모리슨이 엘레나에게 마지막 남긴 말은 긴 여운을 남기기도 했습니다.광산에 들어갈 때는 각자 다른 얼굴이지만,
광산에서 나올 때는 모두 같은 얼굴이란다.
오늘 구약의 말씀에서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역사의 중심에 세워진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는 느헤미야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페르시아 왕의 사랑을 받는 고위관료였고, 출세와 안락한 미래가 보장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루살렘을 순례하고 온 그의 사촌 하나니가 찾아오면서부터 그의 운명이 송두리째 달라집니다. 하나니를 통해 동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황폐해진 예루살렘의 참상을 듣게 되었을 때, 그의 마음은 그만 눈물로 얼룩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눈물 때문에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되고, 이후로 모진 방해를 극복하고 소명에 응답합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가서 황폐해진 성벽을 재건하고 그 위에 잃어버린 조국을 다시 건설하고, 백성들의 행복을 되찾아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느헤미야가 무수한 난관들과 위협과 그에 따른 마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굴곡진 역사를 변혁시켜 낼 수 있었던 그 진정한 힘이 어디 있었는지를 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느헤미야는 자기들에게 임한 처절한 고난의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느 1:6b-7에서 그는 이렇게 회개합니다.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진정한 회복은 잘못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단호한 돌이킴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어떠한 상황에 놓여도 기도하는 시간만큼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느 1:4절 이하에 보면 사촌 하나니로부터 조국 예루살렘의 참상을 들은 느헤미야가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증언합니다. 그저 울고 주저앉아있지만 않았습니다. 그는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느 2:4에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 느 2:4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느헤미야에게 왕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하고 물어봅니다. 느헤미야의 입장에서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는 바로 "예, 예루살렘 성을 재건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짧은 순간 느헤미야가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했다고 증언합니다. 마음속으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이건 정말 기도의 사람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모습입니다. 그러면 느헤미야는 기도만 하는 사람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균형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냉철하게 자신이 해야 할일을 분석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시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왕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에 몇 일간 머물 것인지, 또 언제 돌아올 것인지를 정확하게 말하고(느 2:6), 자신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데 있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치밀하게 파악해서 왕에게 협조를 요청합니다.(느 2:7) 그리고 이후로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백성들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벽 재건공사를 할 때,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 일당이 얼마나 집요하게 조롱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훼방을 하는지 모릅니다.(느 4:1-12) 뿐만 아니라, 유다 사람들은 "흙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느 4:10) 하며 낙망해 합니다. 이때도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늦추지 않습니다.(느 4:9) 뿐만 아니라 한 손으로 일을 하고, 한 손에는 병기를 잡게 하는 이성적인 냉철함도 균형있게 유지합니다.(느 4:17)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느 4:20) 라며 낙망해 하는 동족들을 격려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오늘 말씀이 이어지는데, 오늘 말씀은 정말 감격적입니다. 무너진 성벽을 모두 재건하고 난 다음 느헤미야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제는 무너진 동족들의 영적 정체성을 회복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성벽을 세우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느헤미야가 어떤 일을 기획하기도 전에 백성들이 먼저 '길'을 찾아낸 것입니다.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 느 8:1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기도와 눈물과 희생으로 이루어낸 백성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언약 백성이었던 것입니다. 그 가슴 벅찬 깨달음이 그들로 하여금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습니다. 남자와 여자,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이들은 수문 앞 광장으로 몰려와서, 학사 에스라에게 율법책을 가져와서 읽어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들은 에스라가 율법 두루마리를 펼치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느 8:5) 그리고 에스라가 낭독해 주는 율법의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에스라가 위대하신 여호와를 송축하면, 백성들은 두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면서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했습니다.(느 8:6) 레위 지파 사람들은 아람어 밖에는 모르는 이들을 위해 히브리어로 낭독되는 말씀을 아람어로 통역해주었고(느 8:7), 백성들은 모두 그 말씀을 듣고 울었습니다.(느 8:8, 9) 그 눈물은 어떤 눈물입니까?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망각한 채 욕심에 이끌려 살아온 지난 삶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모여 말씀을 경청하고, 진정으로 자기의 죄를 슬퍼할 때 무너졌던 그들 내면이 다시 곧추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안일한 생활에 젖어있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불편할 때가 많습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기존 질서와는 다른 새로운 질서의 세계를 열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그 불편함에 기꺼이 직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몸 둘 바를 몰라 하염없이 울고만 있는 백성들에게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에스라와 레위 사람들이 타이릅니다.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 느 8:9b
이것은 값싼 위로가 아닙니다. 슬픔을 넘어 더 근원적인 기쁨을 바라보라는 초대입니다. 이런 기쁨은 진정성 있게 슬픔을 감내할 때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기쁨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어둠을 보는 자는 진정으로 슬퍼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와 사회 안에 드리운 어둠을 보는 자도 진정으로 슬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정직한 슬픔을 끝내 외면하면 우리 영혼은 천박해지고, 우리는 스스로를 기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인의 기쁨은 슬픔을 피하고 얻는 기쁨이 아니라, 슬픔을 통과해서 얻는 기쁨입니다. 마땅한 길에서 돌아서 헛된 것에 집착하고, 사소한 이익에 시선을 빼앗긴 가련한 우리, 그런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찾아오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자만이 누리는 기쁨입니다. 바로 그 기쁨을 느헤미야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그 기쁨이 너희의 힘이라"(느 8:10b)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그 힘은 외적인 힘이 아니라 내적인 힘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바로 기쁨과 내적 힘을 주기 위해 고향 사람들에게 이사야의 말씀을 읽어주십니다. 40일간의 금식 기도를 마치고 마귀에게 받은 세 가지 유혹을 물리치신 예수님은 광야생활을 접고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마침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당시 회당예배의 전통대로 성경을 읽기 위해 일어섰고, 회당 책임자가 이사야의 글이 기록된 양피지를 건네주자 펼쳐서 사 61:1절 이하의 말씀을 읽어 내려가셨습니다.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 눅 8:18, 19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이사야의 글을 다 읽으신 후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십니다. 누가는 이때,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눅 4:20)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예수님께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말씀을 하십니다.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 눅 4:21
공동번역 성경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서 '이 성서의 말씀'이란 세상 변혁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소명이자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구약의 역사에 등장했던 수많은 선지자들의 꿈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찾아 읽으시는 것을 보면 예수님의 꿈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 꿈은 무엇입니까?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포로 된 자에게 자유가 선포되는 것입니다. 눈 먼 자가 다시 볼 수 있게 되고, 눌린 자가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주의 은혜의 해가 선포되는 것입니다. '주의 은혜의 해'라는 것은 희년(year of jubilee)을 가리킵니다. 희년은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다음해 즉 50년째 되는 해입니다. 희년에는 그동안 인간사회에서 벌어졌던 모든 왜곡된 구조와 질서가 제자리를 잡습니다. 희년에는 팔린 땅도 제 주인에게 돌려줍니다. 쌓인 빚을 갚기 위해서 땅을 판 사람도 희년이 밝아오면 땅을 되돌려 받게 됩니다. 희년이 오면 노예를 해방시켜야 합니다. 가난을 대물림하다 어쩔 수 없어 노예가 된 사람도 희년이 밝아오면 해방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 꿈이 지금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시는 겁니다.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들은 사람은 그 자리에서 온 몸에 소름이 돋고 전율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성경의 말씀이, 우리가 그토록 갈망해왔던 성경의 말씀이, 바로 그 갈망 때문에 마리아는 자기 태를 내어줬고, 바로 그 갈망 때문에 사가랴는 자기 자식을 내어줬고, 바로 그 갈망 때문에 시므온은 자기 평생을 바쳤는데, 그 예언의 말씀이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놀라운 선언입니다. 느헤미야 8장의 율법 낭독이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백성들의 회복의 시작이라면, 누가복음 4장에서의 예언서 낭독은 죄의 포로에서 풀려난 성도들의 회복의 시작입니다. 다시 우리의 삶의 자리를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세상은 정말 주님께서 꿈꾸시고 선포하신 세상일까요? "광산에 들어갈 때는 각자 다른 얼굴이지만, 광산에서 나올 때는 모두 같은 얼굴이란다." 1976년에 한 광산 노동자가 꿈꾸었던 이 평등한 세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 안에서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의 선지자들과 주님과 같은 꿈을 가슴에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2천 년 전 나사렛 사람들처럼 주목해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신 예수님 말씀에 아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말씀이 우리 귀에 들려오는 것, 성경의 말씀이 내 가슴에 응해지는 것, 모든 희망은 거기에서 시작됩니다. "왜 세상을 당신이 바꾸려고 해!"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들려올 때 '아멘' 할 수 있고, 들려온 말씀에 순명하는 살을 살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웃음을 회복하고, 주님이 꿈꾼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사도 바울은 오늘 서신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 고전 12:26
이 말씀은 교회 안의 형제들과 더불어 이루어 가야 하는 삶에 관한 말씀이지만, 동시에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들과 이루어 가야할 삶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나 아닌 다른 지체가 고통을 받을 때, 같은 통증을 느끼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나 아닌 다른 이웃이 고통을 받을 때, 같은 통증을 느끼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꿈꾸신 세상이고,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꿈꾼 세상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오늘 우리는 주님과 같은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 꿈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말씀 앞에 서지 않는 까닭에 주님과 다른 꿈을 갖고 있지 않은가?
② 말씀 안에서 주님의 꿈을 읽고, 주님과 같은 꿈을 일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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