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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 후 제2주 너를 '헵시바'라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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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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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9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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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사 62:1-4
1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 할 것인즉 2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3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4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응송 | 시36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서신 | 고전 12:1-3
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복음 | 요 2:1-11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 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 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사 62:1-4을 묵상하십시오. 선지자가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 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한 결과는 어떤 것들입니까?
② 요 2:11을 묵상하십시오. 주님이 행하신 '첫 표적'을 통해 나타난 두 가지 변화는 무엇입니까?
③ 고전 12:2, 3을 묵상하십시오. 우상에게 끌려 다닐 때와, 하나님의 영으로 말할 때의 질적 변화는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주님의 빛을 향해 서 있는 절기인 주현절을 지나면서 우리 역시 키프리안과 유사한 갈등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앙과 삶이 전혀 상반되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해야겠느냐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회심과 변화는 '키프리안'이 단행한 그런 회심과 변화일 것입니다. 오늘 성서일과는 일제히 우리에게 그러한 변화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향해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할 것"(사 62:4)이라며, 이스라엘의 새 이름을 제시합니다.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신분의 변화 즉 정체성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항아리 아귀까지 채운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요 2:7, 8)하십니다. 하인들은 말씀대로 순종하였고, 그 직후에 요한은,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요 2:10) 라고 칭찬한 것을 소개함으로서, 항아리의 물이 옮겨지는 중에 포도주로 변했음을 시사해줍니다. 가나혼인잔칫집에서의 예수님의 이 첫 표적은 단순한 기적이 아닌, 그리스 안에서 일어나는 성도의 질적 변화와 그로 인한 영광을 보여줍니다.(요 2:11)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이 이방인으로 있으면서 말 못하는 우상에게 끌려 다닐 때(고전 12:2)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주(主)시라' 고백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 때(고전 12:3)를 비교합니다.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큰 변화는 말 못하는 우상에게 덧없이 끌려 다니지 않고, 나의 '주(主)'이신 예수님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먼저 구약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총 66장으로 기록되어 있는 이사야서는 이사야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사람에 의해 기록된 책이 아닙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각각 다른 시대에 활동하던 세 명의 이사야에 의해 이 책이 쓰였습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보았던 이사야 43장은 제2 이사야에 의해 쓰인 책이고,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사야 62장은 제3 이사야에 의해 쓰인 책입니다. 제3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대는 바벨론포로 귀환 이후 20년 어간입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이 50년쯤 흐른 뒤인 BC 538년에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린 페르시아 황제 고레스가 유대인들로 하여금 고국으로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을 재건하라는 포고령을 내립니다. 꿈에 그리던 일이 현실로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재정도 부족하고, 예루살렘 주민들의 의견도 분분해서 20년 동안 지지부진하다 BC 520년에 다시 시작되는데, 그 의견 분분하고 지지부진한 20년이 제3 이사야의 역사적 배경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크게 세 종류의 주민들이 거주했습니다.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후에도 여전히 예루살렘에서 살던 사람들이 있었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사람들, 그리고 바벨론의 동화정책을 따라 예루살렘에 들어온 이방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 이해타산이 달랐고, 생각도 제각각이어서 서로 갈등을 겪으면서 20년 세월을 허비한 것입니다. 1945년 해방 이후의 한반도 상황을 생각해 보면 당시 예루살렘의 상황이 어땠을지 짐작이 갑니다. 일제 식민시대를 겪으며 속절없이 고통을 감내한 사람들과 동시대 친일 행각을 한 사람들의 입장이 같을 리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각자의 처지에 따라 역사 인식도 제각각인 상황에서 지금 예루살렘 사람들은 제3 이사야의 설교를 듣고 있는 겁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서의 말씀 직후에 벌어진 또 하나의 사건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월절 무렵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거기에서 소와 양,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어 주는 사람들을 목격하십니다. 예수님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서 양과 소와 함께 사람들을 내리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격정에 놀랍니다. 예수님을 격분하게 만든 것은 상인들과 결탁해서 자기 기득권을 챙기고 있는 종교 권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값싼 자비심보다 엄격한 채찍이 오히려 우리를 살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포도주가 끊어지지 않는 축제가 반드시 필요한 공동체이지만, 그러나 그 축제는 물이 포도주로 변하듯이 나의 악한 본성이 회개를 통해 새로워지는 단호한 변화가 있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바로 그 변화를 위해 주님은 채찍을 내리치는 것도 불사하십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것은 작은 변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본질적인 변화입니다. 물에서 포도주 맛이 난 것이 아니라, 물이 완전하게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서의 변화를 목격하면서 오래 전 이사야 선지자의 '쉬지 않는 기도' 그 '결사의 기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이 표적을 통해 주님은 '황무지'요 '버림받은 아내'였던 이스라엘이 그리스도 안에서 '헵시바'로 '쁄라'로 변화하고, 거기 생명의 축제가 벌어졌음을 보여주십니다. 그렇듯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도 존재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지금까지는 죄의 종이었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됩니다. 지금까지는 죽은 자로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산 자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나타났던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비치면, 우리는 그렇게 혼인잔칫집의 기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무엇이며 성도는 누구입니까? '변화'를 통해 생명을 얻는 곳입니다. 죄를 정결케 해 주던 물이 변하여 생명을 살리는 포도주가 되었듯이, 죽음의 그늘이 짙게 드리운 세상에서 생명의 축제를 이어가는 곳입니다. 서신서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그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설명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회심 없이 버림받은 자, 황무지로 살고 있지 않은가?
② 회심과 변화를 통해 새 이름, 새 존재로 살고 있는가?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사 62:1-4
1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 할 것인즉 2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3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4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응송 | 시36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서신 | 고전 12:1-3
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복음 | 요 2:1-11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 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 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사 62:1-4을 묵상하십시오. 선지자가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 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한 결과는 어떤 것들입니까?
② 요 2:11을 묵상하십시오. 주님이 행하신 '첫 표적'을 통해 나타난 두 가지 변화는 무엇입니까?
③ 고전 12:2, 3을 묵상하십시오. 우상에게 끌려 다닐 때와, 하나님의 영으로 말할 때의 질적 변화는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너를 '헵시바'라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초대교회에서 일어났던 '회심' 이야기 중에 '키프리안의 회심'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키프리안은 주후 200년 카르타고에서 태어나 늦은 나이인 46세에 '회심(悔心)'을 체험하고, 2년 후에는 카르타고의 감독직에 오른 사람입니다. 그는 터툴리안의 저서와 성경에 능통했고, 교회론에 대해 크게 공헌했을 뿐 아니라 뛰어난 수사학적 재능을 소유한 귀족 출신이었습니다. 어느 날 키프리안은 '캐실리아누스'라 불리는 존경받는 그리스도인과의 만남을 계기로 자기 삶의 방식을 돌아보게 됩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검소함과 평범함과 단순함이 일상이 되어 있던 것과 달리, 키프리안은 그리스도인임에도 호사스러운 연회를 즐겼고, 황금과 자색으로 빛나는 값비싼 의상만 입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편으로는 신앙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사치를 즐기는 자신에 대해, 키프리안은 '금으로 덧입힌 고통'이라고 불렀고, 귀족계급에 익숙해져 있는 그런 삶을 '어둠과 음울한 밤'이라고 불렀습니다. 키프리안은 그것에서 해방되고 싶었습니다. 그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고자 씨름했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왔던 삶을 살아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과거의 잘못된 삶'이 단순한 삶의 습관이 아닌 자신의 타락한 본성의 일부분임을 깨달았습니다. 키프리안은 세례를 삶의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삼았습니다. 변화가 불가능해보였던 키프리안의 감정 속으로 '새로운 출생의 물'과 '하늘의 숨결인성령의 도우심'이 스며들어왔습니다. 키프리안은 마침내 사치와 권력의 중독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후로 그는 검소하면서도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는 삶을 살았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자기 집을 개방하였습니다. 키프리안 행전에 의하면 AD 258년 그가 순교했을 때, 그는 외투 한 벌과 예복을 입고 있었지만, 자주색은 아니었다고 합니다.주님의 빛을 향해 서 있는 절기인 주현절을 지나면서 우리 역시 키프리안과 유사한 갈등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앙과 삶이 전혀 상반되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해야겠느냐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회심과 변화는 '키프리안'이 단행한 그런 회심과 변화일 것입니다. 오늘 성서일과는 일제히 우리에게 그러한 변화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향해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할 것"(사 62:4)이라며, 이스라엘의 새 이름을 제시합니다.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신분의 변화 즉 정체성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항아리 아귀까지 채운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요 2:7, 8)하십니다. 하인들은 말씀대로 순종하였고, 그 직후에 요한은,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요 2:10) 라고 칭찬한 것을 소개함으로서, 항아리의 물이 옮겨지는 중에 포도주로 변했음을 시사해줍니다. 가나혼인잔칫집에서의 예수님의 이 첫 표적은 단순한 기적이 아닌, 그리스 안에서 일어나는 성도의 질적 변화와 그로 인한 영광을 보여줍니다.(요 2:11)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이 이방인으로 있으면서 말 못하는 우상에게 끌려 다닐 때(고전 12:2)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주(主)시라' 고백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 때(고전 12:3)를 비교합니다.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큰 변화는 말 못하는 우상에게 덧없이 끌려 다니지 않고, 나의 '주(主)'이신 예수님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먼저 구약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총 66장으로 기록되어 있는 이사야서는 이사야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사람에 의해 기록된 책이 아닙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각각 다른 시대에 활동하던 세 명의 이사야에 의해 이 책이 쓰였습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보았던 이사야 43장은 제2 이사야에 의해 쓰인 책이고,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사야 62장은 제3 이사야에 의해 쓰인 책입니다. 제3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대는 바벨론포로 귀환 이후 20년 어간입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이 50년쯤 흐른 뒤인 BC 538년에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린 페르시아 황제 고레스가 유대인들로 하여금 고국으로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을 재건하라는 포고령을 내립니다. 꿈에 그리던 일이 현실로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재정도 부족하고, 예루살렘 주민들의 의견도 분분해서 20년 동안 지지부진하다 BC 520년에 다시 시작되는데, 그 의견 분분하고 지지부진한 20년이 제3 이사야의 역사적 배경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크게 세 종류의 주민들이 거주했습니다.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후에도 여전히 예루살렘에서 살던 사람들이 있었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사람들, 그리고 바벨론의 동화정책을 따라 예루살렘에 들어온 이방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 이해타산이 달랐고, 생각도 제각각이어서 서로 갈등을 겪으면서 20년 세월을 허비한 것입니다. 1945년 해방 이후의 한반도 상황을 생각해 보면 당시 예루살렘의 상황이 어땠을지 짐작이 갑니다. 일제 식민시대를 겪으며 속절없이 고통을 감내한 사람들과 동시대 친일 행각을 한 사람들의 입장이 같을 리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각자의 처지에 따라 역사 인식도 제각각인 상황에서 지금 예루살렘 사람들은 제3 이사야의 설교를 듣고 있는 겁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 사 62:1
이 말씀을 표준 새 번역 성경으로 읽으면 이렇습니다. "시온의 의가 빛처럼 드러나고,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처럼 나타날 때까지, 시온을 격려해야 하므로, 내가 잠잠하지 않겠고, 예루살렘이 구원받기까지 내가 쉬지 않겠다" 여기에서 중요한 표현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시온의 의가 빛처럼 드러날 '때까지'이고,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를 '때까지'입니다. 예루살렘은 유대인 모두의 정신적인 고향이고 시온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다른 단어입니다. 시온, 또는 예루살렘의 의가 빛처럼 드러난다는 것은 유대가 전 세계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뜻이고,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른다는 것은 유대가 전 세계에서 자랑스러운 민족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구체적인 사실을 이어지는 말씀에서 풀어서 설명합니다.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 사 62:2-4
여기 이사야 선지자가 보여주는 유대의 미래는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이방 모든 나라들이 유대의 공의를 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왕들이 유대의 영광을 볼 것이다. 유대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릴 것이고, 하나님 손에 들린 아름다운 왕관이 될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버림받은 자로 불리지 않고, 아무도 네 땅을 황무지로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얻을 새 이름이 공개되는데, 그들의 새 이름은 '헵시바'와 '쁄라'입니다. 헵시바는 '나의 기쁨이 그녀 안에' 라는 뜻으로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쁄라는 '결혼한 부인'이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로워진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나의 기쁨이 너희 안에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는 내 신부이기 때문에!" 이 말씀이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버림받은 자'였고, 유대 땅은 '황무지'요 '버림받은 아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새 이름을 주셔서, 하나님의 기쁨이 그들 안에서 빛처럼, 횃불처럼 뜨겁게 타오를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영감을 듬뿍 받아 희망으로 부풀어 오른 가슴을 끌어안고 이스라엘의 아름다운 미래를 노래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선지자의 기도를 통해 가능할 것입니다. 1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결단했습니다.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잠잠하지 않겠다"와 "쉬지 않겠다"는 히브리어 동사 원형인데 같은 뜻입니다. 즉 "기도를 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자기 일생을 내걸겠다고 말합니다. 역사는 이런 기도의 사람을 통해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사야 선지자의 기도는 이루어 졌을까요? 그의 결사의 기도를 통해 과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신부가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이스라엘 안에 있게 되었을까요? 지금까지 '황무지'요 '버림받은 아내'였던 이스라엘이 이제부터는 '헵시바'요 '쁄라'라는 새 이름을 부여받아 하나님의 기쁨이 그들 안에서 빛처럼, 횃불처럼 뜨겁게 타오게 되었을까요? 오늘 복음서의 말씀을 읽어보면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칫집에서 의미 있는 사건 하나가 벌어집니다.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 요 2:1-3a
유대인들은 결혼에 이르기까지 매우 복잡한 절차를 거칩니다. 신랑 신부가 결혼을 하기로 계약이 성립되면 남자는 포도주를 따라 여자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당신을 나의 아내로 맞고 싶습니다. 이 포도주를 당신에게 따라 줌으로써 나는 당신을 위해 나의 생명을 바칠 것을 다짐합니다. 당신도 이 잔을 받아 마심으로 나의 아내가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그런 후 신랑은 집으로 돌아가 아내를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난 후, 신랑은 집으로 아내를 데려 옵니다. 결혼하는 날, 두 사람은 과거의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다는 뜻으로 금식을 합니다. 그래서 결혼식 날을 유대인들은 '개인의 대속죄일(private Yom Kippur)'이라고 부릅니다. 결혼식 절차를 다 마친 후 신랑과 신부는 '하나'가 되는 의식을 치르기 위해 준비된 신방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의식이 끝나면 신랑은 문을 열고 나와 그 사실을 알립니다. 그때부터 결혼식 잔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이제 두 사람이 서로의 신분이 변화된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시작을 혼인 잔칫집에서 하신 것은 참 적절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주님은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습니다.(요 2:3b) 주님은 잠시 동안 망설이지만 곧 일꾼들에게 항아리마다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시고, 이어 그것을 떠다 연회장에게 주라고 말씀하십니다.(요 2:7, 8) 난감해하던 연회장은 갑자기 등장한 포도주에 놀랐고 또 그 맛이 너무 좋아 놀랐습니다.(요 2:9, 10) 그 후의 소식이 궁금한 독자들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요한은 이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 짓습니다.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 요 2:11
여기서 우리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이 사건이 예수님이 행하신 첫 표적이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표적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드러내주는 상징입니다. 첫 번째라고 번역된 단어 '아르케'는 '시작'이라는 뜻도 있지만 '기원' 혹은 '근본'이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가나의 이적은, 첫 번째 이적이기도 하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 분이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를 보여주는 '기원'으로서의 사건이라는 뜻도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시며, 그 분은 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켜주셨듯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회개시키고 변화시키셔서 우리가 세상에 속한 존재가 아닌 하나님께 속한 존재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우리는 오늘 복음서의 말씀 직후에 벌어진 또 하나의 사건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월절 무렵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거기에서 소와 양,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어 주는 사람들을 목격하십니다. 예수님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서 양과 소와 함께 사람들을 내리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격정에 놀랍니다. 예수님을 격분하게 만든 것은 상인들과 결탁해서 자기 기득권을 챙기고 있는 종교 권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값싼 자비심보다 엄격한 채찍이 오히려 우리를 살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포도주가 끊어지지 않는 축제가 반드시 필요한 공동체이지만, 그러나 그 축제는 물이 포도주로 변하듯이 나의 악한 본성이 회개를 통해 새로워지는 단호한 변화가 있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바로 그 변화를 위해 주님은 채찍을 내리치는 것도 불사하십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것은 작은 변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본질적인 변화입니다. 물에서 포도주 맛이 난 것이 아니라, 물이 완전하게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서의 변화를 목격하면서 오래 전 이사야 선지자의 '쉬지 않는 기도' 그 '결사의 기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이 표적을 통해 주님은 '황무지'요 '버림받은 아내'였던 이스라엘이 그리스도 안에서 '헵시바'로 '쁄라'로 변화하고, 거기 생명의 축제가 벌어졌음을 보여주십니다. 그렇듯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도 존재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지금까지는 죄의 종이었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됩니다. 지금까지는 죽은 자로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산 자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나타났던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비치면, 우리는 그렇게 혼인잔칫집의 기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무엇이며 성도는 누구입니까? '변화'를 통해 생명을 얻는 곳입니다. 죄를 정결케 해 주던 물이 변하여 생명을 살리는 포도주가 되었듯이, 죽음의 그늘이 짙게 드리운 세상에서 생명의 축제를 이어가는 곳입니다. 서신서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그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설명합니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 고전 12:1, 2
이것이 바로 변화되기 이전의 저와 여러분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변했습니까?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 고전 12:3
성령의 임재 가운데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살아가는 사람, 그것이 바로 변화된 우리 모습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다는 건 단순히 호칭의 변화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모든 생각과 신념을 주님께 일치시켜 철저하게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변화입니다. 결혼의 본질은 신랑과 신부가 한 몸을 이루어 또 다른 한 생명을 잉태하는 것에 있습니다. 따라서 신부인 우리는 신랑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먼저 질적 변화를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이 기적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일으키실 근본적인 '변화'의 서곡이 되고 있습니다. 주님은 지속적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 우리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내면으로부터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주님을 향한 찬미와 기쁨이 끊어지지 않는 축제적인 날들이 지속되시길 축복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회심 없이 버림받은 자, 황무지로 살고 있지 않은가?
② 회심과 변화를 통해 새 이름, 새 존재로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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