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대림절 제1주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12-01 16:48
조회
1219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렘 33:14-16
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15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16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응송 | 시 25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서신 | 살전 3:11-13
11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하시오며 12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13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복음 | 눅 21:34-36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렘 33:15을 묵상하십시오. 다윗에게서 난 한 공의로운 가지가 역사 속에 실현하실 가치로서 '정의와 공의'는 궁극적으로 무엇입니까?
② 살전 9:13을 묵상하십시오. 오실 주님, 도달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의 두 가지 자세로 바울은 각각 무엇을 말씀합니까?
③ 눅 21:34, 36을 묵상하십시오.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는 어떤 결과를 낳습니까? 그 날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는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중요한 것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절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정의와 공의를 실행하실 바로 '그 날'이 올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 날이 오면 유다는 구원을 받을 것이며, 예루살렘은 안전하게 될 것이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정의와 공의가 성취될 '그 날'이 온다는 예레미야의 이 예언은 유다 역사 속에서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유다의 구원과 예루살렘의 안전한 삶은 이후로도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나고 팔레스타인에 유다를 재건했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습니다. 유다는 다시 다른 제국에 의해서 계속해서 식민통치를 받았습니다. 나라는 없어졌습니다. 자기나라 말도 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예레미야의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던 것일까요? 예레미야의 이상은 끝내 비현실에 머물고 만 것일까요? 예레미야의 예언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실현되었습니다. 바벨론을 무너뜨리는 방식이 아니라 훨씬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방식으로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었습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15절에 따르면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이는 다윗에게서 온 '공의로운 가지'입니다. 다윗의 후손이라는 뜻입니다. 초기 기독교는 예레미야가 말하는 그 다윗의 후손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믿었습니다. 결국 예레미야의 예언은 그가 예언한 그대로 그리스도 왕국인 교회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고 그분의 몸인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맞이한 대림절은 우리에게 다시 기다림의 신앙을 일깨워서 주님을 우러러 보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우러러 마음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 시편은 다가오시는 그리스도를 향하여 마음을 드높이는 성도의 신앙을 노래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염려로 마음이 둔해져서 '그 날'을 망각하고 있지 않은가?
② 소망으로 '그 날'을 기다리며 주님을 우러러 살고 있는가?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렘 33:14-16
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15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16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응송 | 시 25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서신 | 살전 3:11-13
11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하시오며 12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13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복음 | 눅 21:34-36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렘 33:15을 묵상하십시오. 다윗에게서 난 한 공의로운 가지가 역사 속에 실현하실 가치로서 '정의와 공의'는 궁극적으로 무엇입니까?
② 살전 9:13을 묵상하십시오. 오실 주님, 도달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의 두 가지 자세로 바울은 각각 무엇을 말씀합니까?
③ 눅 21:34, 36을 묵상하십시오.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는 어떤 결과를 낳습니까? 그 날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는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오늘 성서일과는 우리 모두를 기다림에로 이끌어 갑니다. 구약성경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서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그 날'을 기다립니다.(렘 33:15)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면서 '그 날이 임할 때까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가 '믿음과 마음을 굳건하게' 지켜서 '거룩함에 흠이 없기를 원한다'(살전 3:13)고 했고, 복음서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덫과 같이 임할 그 날', 우리가 거룩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을 것을 요청합니다.(눅 21:34-36) 먼저 구약성경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당시 고대근동의 신흥제국이었던 바벨론은 BC 588년부터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항복을 요구했습니다. 유다는 이집트에 구조를 요청하면서 1년 동안 버텼지만 끝내 BC 587년 7월,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의 총공격으로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는 그 모든 과정을 직접 목격하며 울던 비운의 선지자였습니다. 이때 유대인들은 절망했습니다. 신앙적으로도 깊은 회의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자신들이 왜 이방 민족에게 패배와 수모를 당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자기 민족에게 전한 메시지가 바로 오늘 구약의 말씀입니다.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 렘 33:14, 15
예레미야는 여기에서 '그 날'을 강조합니다. 14절에서는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고 했고, 15절에서는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라고 했고, 16절에서는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그 날'은 어떤 날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날'을 가리킵니다. 예레미야는 자기 민족의 역사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들이 처한 운명을 현상으로 보지 않고,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 민족에게 어떻게 성취되는가 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조국 유다가 망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말씀의 성취'라는 새로운 희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 날'에 하나님께서 성취하실 일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렘 33:15) 여기에서 예레미야가 말하는 정의와 공의는 16절이 말씀하는 유다의 구원을 가리킵니다. 이어지는 17절과 18절도 비슷한 내용입니다. 다윗 왕조가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것이며, 성전의 제사 행위도 계속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 날' 이루실 일입니다. 이렇게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루실 '정의와 공의의 실현'을 철저하게 '유다 민족의 구원'에서 찾았습니다. 사실 당시의 바벨론과 유다는 비교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바벨론은 근동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제국이었고, 유다는 여러 나라의 눈치를 보면서 생존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작은 나라였습니다. 도저히 경쟁할 수 없는 국력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유다는 바벨론이 주도하고 있는 고대근동의 억압적인 상황을 헤쳐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런 상황, 즉 바벨론이라는 제국이 주도하는 이 세상을 불의하다고 보았습니다. 군사력과 경제력이 절대적인 힘으로 지배하고 있는 그런 질서는 정의롭지 못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당시의 국가 간 현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어야만 유다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중요한 것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절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정의와 공의를 실행하실 바로 '그 날'이 올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 날이 오면 유다는 구원을 받을 것이며, 예루살렘은 안전하게 될 것이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정의와 공의가 성취될 '그 날'이 온다는 예레미야의 이 예언은 유다 역사 속에서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유다의 구원과 예루살렘의 안전한 삶은 이후로도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나고 팔레스타인에 유다를 재건했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습니다. 유다는 다시 다른 제국에 의해서 계속해서 식민통치를 받았습니다. 나라는 없어졌습니다. 자기나라 말도 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예레미야의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던 것일까요? 예레미야의 이상은 끝내 비현실에 머물고 만 것일까요? 예레미야의 예언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실현되었습니다. 바벨론을 무너뜨리는 방식이 아니라 훨씬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방식으로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었습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15절에 따르면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이는 다윗에게서 온 '공의로운 가지'입니다. 다윗의 후손이라는 뜻입니다. 초기 기독교는 예레미야가 말하는 그 다윗의 후손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믿었습니다. 결국 예레미야의 예언은 그가 예언한 그대로 그리스도 왕국인 교회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고 그분의 몸인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맞이한 대림절은 우리에게 다시 기다림의 신앙을 일깨워서 주님을 우러러 보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우러러 마음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 시편은 다가오시는 그리스도를 향하여 마음을 드높이는 성도의 신앙을 노래합니다.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 시 25:1-4
주를 우러러 본다는 것은 주님을 향해 순일하게 마음을 고정한다는 뜻입니다. 서신서에서 바울은 기도합니다.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 살전 3:12-13a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주님을 우러러 산다는 것은, 첫째, 마음을 굳건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이 기도는 두 가지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믿음'을 굳게 해 달라는 기도이고, 하나는 '인격'을 성숙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또 기도합니다.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 살전 3:13b
바울이 말씀하는 주님을 우러러 산다는 것의 또 다른 의미는,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으로 주님 앞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전후맥락 없이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라는 표현이 여기에서 중요합니다.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바울 신학의 중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살전 2:19절에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그러니까 지금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메시지의 핵심이 무엇인 것 같습니까? 내가 고대하고 기다리는 분이 강림하셨을 때, 내 모습이 부끄럽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오실 주님을 향한 고대(苦待)와 기다림이 우리 내면을 그토록 가꾸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 눅 21:34, 35
여기 기다림을 포기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열거되고 있습니다.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는 것'입니다. 더 이상 하늘을 바라보지 않으니 자연히 시선이 땅을 향하게 되고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생활의 염려로 그만 마음마저 둔해져버린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 눅 21:36
사도 바울이 '그 날'을 기다리는 자의 자세로 '마음을 굳건하게 하는 것'과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강조했다면, 주님은 '그 날'을 기다리는 자의 자세로 '기도'와 '깨어 있음'을 강조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마음을 굳건하게 하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살고 있으며, 깨어있어 기도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는 주님을 우러러 살고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과 같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는 십자가에서 이루어졌고, 부활 생명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 날'은 옵니다. 응송에서의 시인의 고백처럼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하며 이 대림절을 걸어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염려로 마음이 둔해져서 '그 날'을 망각하고 있지 않은가?
② 소망으로 '그 날'을 기다리며 주님을 우러러 살고 있는가?
전체 0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하세요.
번호 | 다운로드 | 제목 | Language | 작성일 |
412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6주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
KOR | 2024.11.17 |
411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5주 나를 넘어 하나님께로
|
KOR | 2024.11.10 |
410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4주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
KOR | 2024.11.02 |
409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3주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
KOR | 2024.10.26 |
408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2주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
|
KOR | 2024.10.19 |
407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1주 하나님만이 오직 최선이시다
|
KOR | 2024.10.12 |
406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0주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
KOR | 2024.10.05 |
405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8주 땅의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
|
KOR | 2024.09.21 |
404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7주 내 언어의 원천(源泉) 마음
|
KOR | 2024.09.14 |
403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6주 복 있는 눈, 복 있는 귀
|
KOR | 2024.09.07 |
402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5주 장로들의 전통과 하나님 말씀
|
KOR | 2024.09.01 |
401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4주 제2의 본성을 쇄신하라
|
KOR | 2024.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