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16주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9-09 12:53
조회
2203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잠 22:1-2, 9
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2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9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응송 | 시 125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서신 | 약 2:1-5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 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복음 | 막 7:31-37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36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 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막 7:34을 묵상하십시오. '에바다'는 '열리라'는 뜻입니다. 참된 열림 은 무엇으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② 약 2:1-4을 묵상하십시오. 오늘 성서일과 안에서 볼 때, 서로 차별 하고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디에서 비롯된 행동입니까?
③ 잠 22:9을 묵상하십시오.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가져다주는 사람의 시선을 잠언 기자는 어떠한 '눈'이라고 표현했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주님은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려왔을 때(막 7:32),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에바다"라고 외치십니다.(막 7:33, 34) '에바다'는 아람어로 '엡파타(eppattah)' 즉 '열려라' 라는 뜻인데, 단지 육신의 혀가 열리라는 뜻이기보다는 인간 전체가 매인데서 해방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한 병자를 대하시는 예수님의 시선이 매우 따뜻했고, 다정스러웠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난 주 복음서의 말씀에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서기관들이, 사람이 만든 전통과 '구전율'을 근거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부정한 자로 몰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짧지만 매우 단호했습니다.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막 7:14) 주님은 그들의 겉으로 보이는 불순한 모습들이 단순히 성격이나 기질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인격의 가장 심층부인 '마음'까지 거슬러 내려가 그들의 마음이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하심으로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이르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변화는 바로 '들음'과 '깨달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건 치유해 주신 다음의 예수님의 행동입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말씀에 귀를 닫은 까닭에 신앙의 시선도 닫혀 있지 않은가?
② 말씀을 경청함으로 신앙의 시선, 선한 눈을 갖게 되었는가?
■ 읽기 | Lectio
구약 | 잠 22:1-2, 9
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2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9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응송 | 시 125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서신 | 약 2:1-5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 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복음 | 막 7:31-37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36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 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막 7:34을 묵상하십시오. '에바다'는 '열리라'는 뜻입니다. 참된 열림 은 무엇으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② 약 2:1-4을 묵상하십시오. 오늘 성서일과 안에서 볼 때, 서로 차별 하고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디에서 비롯된 행동입니까?
③ 잠 22:9을 묵상하십시오.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가져다주는 사람의 시선을 잠언 기자는 어떠한 '눈'이라고 표현했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오늘 성서일과는 우리에게 진리를 바라보는 시선에 있어서도,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어서도 참된 안목을 위한 움직임을 가질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잠언 기자는 재물보다 명예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그리고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택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질 것을 권면합니다(잠 22:1-2).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시선에 있어서는 '선한 눈'을 가질 것을 요청합니다.(잠 22:9) 서신서에서 사도 야고보 역시 사람을 보는 시선에 있어서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약 2:1)며 외모가 아닌 사람의 중심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질 것을 권유합니다.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거나 남루한 옷을입은 가난한사람이 들어올 때에(약 2:2-3), 차별하지 말고 주님과 같은 시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복음서의 말씀도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주님은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려왔을 때(막 7:32),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에바다"라고 외치십니다.(막 7:33, 34) '에바다'는 아람어로 '엡파타(eppattah)' 즉 '열려라' 라는 뜻인데, 단지 육신의 혀가 열리라는 뜻이기보다는 인간 전체가 매인데서 해방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한 병자를 대하시는 예수님의 시선이 매우 따뜻했고, 다정스러웠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 막 7:31, 32
예수님이 긴 여행 끝에 갈릴리 호수 근방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언어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고, 각색 병든 이들을 고치시는 주님의 능력은 갈릴리 호수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님의 능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십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그 가련한 사람의 치유를 세인의 구경거리로 만들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 막 7:33, 34
예수님은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으셨습니다. 그리고 침을 뱉어서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이 평소 같지 않습니다. 왜 예수님은 평소처럼 말씀으로 이 사람을 고치시지 않은 걸까요? 지금 이 사람은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셔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환자의 귀에 손가락을 넣으심으로서 '내가 지금 너의 귀를 열고자 한다'는 뜻을 전달하셨고, 침을 그의 메마른 혀에 바르심으로서 '내가 지금 너의 입을 열고자 한다'는 뜻을 전달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그와의 감각기관을 통한 소통에 나서신 것이고, 그의 닫힌 정신세계 안으로 뛰어드신 것입니다. 한 존재를 최선을 다해 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의 인생 여정을 모두 따라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귀 먹고 말 더듬는 그의 상황 하나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험하고 상처 깊은 인생을 살아왔을지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를 보며 신음소리를 토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을 가리키는 헬라어가 '모길랄로스(μογιλάλος)'인데, 그러니까 말을 전혀 못하는 사람이 아니고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마음의 상처들까지 헤아리시며 가슴에 저며 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의 손길을 통해 깊은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양 귀와 혀에 닿는 예수님의 손길에서 환자는 자기의 영혼 깊은 곳의 상처를 어루만지시는 사랑의 마음을 느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셨습니다. 여기서 '탄식'이란 마음에서 우러나온 신음소리입니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그의 처지를 보며 주님은 탄식과 신음소리를 토해내신 것입니다. 주님의 이 탄식소리는 하나님께 바치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정말 마음 아파하고, 그의 처지가 가슴으로 느껴져서 탄식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기도로 들어주십니다. 탄식이란 그런 겁니다. 이 탄식은 우리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 탄식의 출발점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롬 8:26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깊은 탄식 후에 주님은 '에바다(εφφαθα)' 즉 '열리라' 하고 외치셨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에바다'는 아람어로 '엡파타(eppattah)'인데, '해방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페타(petah)'에서 온 동사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이 불쌍한 사람의 실존이 모든 매임으로부터 해방되기를 간절하게 원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 막 7:35
오늘 복음서의 키워드(keyword)는 바로 이 '열림'입니다. 이 사람은 오랫동안 듣지 못하고, 따라서 말도 어눌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토록 오랜 세월을 귀도 입도 닫힌 채 살아가던 이 사람이 자기 영혼 깊은 곳의 상처를 어루만지시는 예수님의 손길을 경험하고, 자기 처지에 공감하고 탄식을 토해내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체감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께서 '말씀'으로 '에바다(εφφαθα)!' 하셨을 때,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분명하게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사람에게 일어난 일을 보고 놀라워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일을 행하신 예수님께 놀란 것입니다. 예수님에게서 메시아를 본 것입니다. "빛이 있으라" 하심으로 빛을 창조하신 것처럼, 예수님도 '말씀으로' 새 인생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메시아적 사건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사 35:5, 6입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사람들은 이 사람이 치유되는 과정을 보며 바로 그 말씀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사람들이 놀란 이유는 장애인이 치유된 것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행하신 예수님에게서 메시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관점은 분명히 다릅니다. 기적 자체에 호기심을 보이고 놀라워하는 것과, 예수님을 놀라워하고 찬양하는 것은 다릅니다. 이 말씀을 통해 마가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오로지 예수님에게서 나타난 메시아적 사역입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메시아적 구원 사건을 통해 숱한 마음의 귀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부디 주님과의 깊은 만남을 통해 여러분 마음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바랍니다.지난 주 복음서의 말씀에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서기관들이, 사람이 만든 전통과 '구전율'을 근거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부정한 자로 몰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짧지만 매우 단호했습니다.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막 7:14) 주님은 그들의 겉으로 보이는 불순한 모습들이 단순히 성격이나 기질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인격의 가장 심층부인 '마음'까지 거슬러 내려가 그들의 마음이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하심으로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이르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변화는 바로 '들음'과 '깨달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건 치유해 주신 다음의 예수님의 행동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 막 7:36
여기에서 '그들'이란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그 이적을 목격한 모든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왜 이러시는 것일까요? 주님은 그들이 기적 자체에 시선을 빼앗겨 진리를 보지 못하는 오류에 빠질 것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시선이란 게 그렇습니다. 대개 우리 시선은 '보이는 현실'에 매여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눈을 뜨고 본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現象)과 물상(物象)들 너머에 고요하고 밝은 '영원'이 있음을 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육안에 매이고, 물상(物象)에 시선을 빼앗겨서 환영(幻影)을 실재인 줄로 알고, 현세(現世)를 실재인 줄로 알고, 거기에 반응하며 희로애락을 다해버리고 만다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요 9:41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보지 못하면서 본다 하니 죄가 그냥 남아 있는 것"이요, 계 3:18에서 말씀한 것처럼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하신 경고의 말씀을 들어야 할 자입니다. 지금 우리가 육신의 눈을 뜨고 보는 세상은 우리가 영원히 거할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꿰뚫어 알아보는 것이 참으로 '본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구약성경에서 잠언 기자는 말씀합니다.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 잠 22:1
우리가 시선을 두고 살아가야 할 우선순위를 분명히 정리해 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이렇게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이 생기면 사람을 대하는 시선도 함께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 잠 22:2
진정한 시선이란 그런 겁니다. 가난한 자를 보거나 부한 자를 보거나, 건강한자를 보거나 병든 자를 보거나 그들의 현실을 보며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그들 모두를 지으신 하나님을 보기에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됩니다. 잠언 기자는 그런 시선을 '선한 눈'이라고 말합니다.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 잠 22:9
'선한 시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선한 시선'은 예수님과 같은 시선을 갖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들려오는 주님 말씀에 대한 경청이 있을 때,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시선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요한 시간에, 고요한 독방에 앉아서 주님 말씀을 경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서신서의 말씀에서 야고보가 말씀하는 공동체는 눈멀고 귀 먹은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신앙에서 떠나 있었습니다.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 약 2:3, 4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들음'이 없는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은 자기들의 생각이 반영된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다음 절에서 이렇게 당부합니다.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 약 2:5
여기에서 '들음'에 대한 권고가 더 절박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을 때, 참되고 본 된 마음은 거기에서 회복되는 것입니다. 여전히 어둠속을 헤맬 때가 많습니다. 여전히 듣지 못하면서 말하고, '들음'이 결여된 내 말 때문에 공동체 안에 숱한 상처들이 피어납니다.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더듬더듬이라도 주님의 말씀으로 말하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에바다!", "열려라!" 예수님을 향해 열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향해 열려야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시선을 열고, 예수님을 향해 귀를 열어야 합니다. 그 진정한 열림을 통해 여러분의 생명이 영원으로 잇대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말씀에 귀를 닫은 까닭에 신앙의 시선도 닫혀 있지 않은가?
② 말씀을 경청함으로 신앙의 시선, 선한 눈을 갖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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