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14주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8-26 11:00
조회
1364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왕상 8:22-30
22 솔로몬이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과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23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 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24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지키사 주의 입 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과 같으니이다 2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자기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것 같이 내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네게서 나서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 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허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26 그런즉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주는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 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28 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29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 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30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 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 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응송 | 시 8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서신 | 엡 6:10-20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복음 | 요 6:56-69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62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65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66○그때부터 그의 제자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 묵상 | meditatio
1 요 6:68-69을 묵상하십시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어렵다며 떠나갈 때, 베드로가 주님께 남긴 고백은 무엇입니까?
2 왕상 8:25을 묵상하십시오.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당부하신 말씀 중 에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3 엡 6:14-17을 묵상하십시오. 말씀을 영으로 듣고 살아가는 성도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떠합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나눔
주님은 군중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요 6:51) 문장이기도 하고 수사 이기도 한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은 '생명의 신비'를 가르치려 하신 것 같습 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냉정했습니다. 유대인들은 "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먹게 하겠느냐"(요 6:52)며 반감을 드러냅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다기보다는 아예 처음부터 들을 마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 유는 그들이 지금까지 보여 온 모습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가지 씩 말 씀을 하실 때마다 그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냉소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9)라고 하시 면, 그들은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 이까"(요 6:30)라고 받아쳤고, 예수님께서 당신을 가리켜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요 6:41) 하시면, 그들은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 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요 6:42)며 수군거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서의 말씀을 읽다보면 그런 상황 이 제자들 가운데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 대해 품어온 반감을 폭발시키고 유대인들은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제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물론 여기 등장하는 제자는 12 제자보다 더 확대된 그룹의 제자들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눅 10:1에 보면 칠십 인의 제자가 등장하는데, 본문 에 등장하는 제자는 그들 중 하나이거나, 본문 64절에 '자기를 팔 자'가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유다를 포함한 모든 제자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 튼 사람들은 자기 이성이나 경험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에 거부반응을 보 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이 말씀은 어렵도다"라며 거북스러 워합니다. 여기서 '어렵다'는 단어는 '스클레로스(σκληρός)'로 '딱딱하다', ' 거칠다', '접촉하기 어렵다'라는 뜻인데, '이해하기 어렵다'기보다는 '받아들 이기 어렵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받아들이는 마음 밭 에 따라 딱딱하고 거친 것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70인역(LXX)에 의 하면 창 21:11에서 하갈을 내쫓으라는 사라의 요구에 대한 아브라함의 마 음에 이 단어를 사용했고, 마 25:24에서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고, 행 26:14에서 예수의 제자들을 핍박하는 사울의 마음을 표현할 때, '스클레로스(σκληρός)' 즉 '딱딱한', '거친'이라는 단어 를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딱딱하고, 거칠게 들려와서 받아들일 수 없어 거부한 사람들, 그들은 유대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제 자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의 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 요 6:68
저는 베드로의 이 대답에 어떤 해석도 덧붙이고 싶지 않습니다. 이 대 답 그대로 우리 고백이 되어 믿음의 방패가 되고, 이 대답 그대로 우리 결 단이 되어 구원의 투구가 되고, 이 대답 그대로 우리 따름이 되어 성령의 칼을 손에 쥐고, 평화의 복음의 신을 신고 날마다 기쁨과 찬미 속에 주님 과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1. 말씀을 육으로 받아들인 까닭에 내게 걸림이 되고 있지 않은가?
2. 말씀을 영으로 받아들여 '하나님과 하나인 삶'을 살고 있는가?
■ 읽기 | Lectio
구약 | 왕상 8:22-30
22 솔로몬이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과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23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 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24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지키사 주의 입 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과 같으니이다 2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자기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것 같이 내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네게서 나서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 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허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26 그런즉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주는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 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28 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29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 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30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 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 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응송 | 시 8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서신 | 엡 6:10-20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복음 | 요 6:56-69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62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65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66○그때부터 그의 제자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 묵상 | meditatio
1 요 6:68-69을 묵상하십시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어렵다며 떠나갈 때, 베드로가 주님께 남긴 고백은 무엇입니까?
2 왕상 8:25을 묵상하십시오.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당부하신 말씀 중 에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3 엡 6:14-17을 묵상하십시오. 말씀을 영으로 듣고 살아가는 성도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떠합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나눔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인문학의 연금술사'라고 불리는 김용규 선생이 '생각의 시대'라는 책에 서 기원전 8세기 에게해 부근에 살았던 그리스인들이 '생각의 도구'로서 개발해 부지런히 갈고 닦았던 '메타포라(metaphora)', '아르케(archȇ)', '로 고스(logos)', '아리스모스(arithmos)', '레토리케(thȇtorikȇ)'에 관한 이야 기를 재미있게 정리해 놓은 것을 어렵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메타포라'는 '은유'이고, '아르케'는 '원리'이고, '로고스'는 '문장'이고, '아리스모스'는 '수 (數)'이고, '레토리케'는 '수사입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개발한 이 '생각의 도구'들은 고대 그리스에 합리적인 지식과 창조적인 예술을 일 구었고, 민주적인 사회제도를 생산해내었을 뿐 아니라 이후로는 헬레니즘 이라는 이름으로 로마에 들어가 로마를 번성케 했고, 마침내 서양 문명을 구축해서 근대 이후 인류의 보편 문명이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는 '로고스(logos)'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의 성서연구의 결실로 '로고스' 하면 '말씀'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 러나 서양철학에서의 '로고스'는 '문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생각이 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최소한의 단위가 이 '문장'입니다. 이 문장의 끝에는 반드시 마침표나 물음표, 혹은 느낌표가 붙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철수는 학생이다.", "철수는 학생이니?", "철수는 참 똑똑하구나!" 등 입니다. 그런데 이 '문장'은 의미는 전달할 수 있지만 사람을 설득하거나 감동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레토리케(thȇtorikȇ)' 즉 '수 사(修辭)'인데, 실제로 이 '수사'는 사람을 설득하고 감동을 주기위한 생각 의 도구로 개발이 되었습니다. 기원전 1세기에 활동한 로마의 정치인인 키 케로는 수사학이 가진 실용적 미덕을 이렇게 예찬했습니다. "정신과 귀에 이해하기 쉬운 생각과 효과적인 표현으로 꾸며지고 다듬어진 연설만큼 아 늑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격분한 민중, 양심적인 재판관, 또 품위 있는 원로원이 한 사람의 연설로 조정될 수 있는 것보다 더 강력하고 웅장한 것이어디있을까?"1) 저는이책을읽은이후에예수님의말씀을볼때마 다 '문장'과 '수사'를 구분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예수님 역시 당신의 생 각을 전달하실 때, 때로는 건조하게 '문장'으로 말씀하실 때가 있고, 때로 는 '수사'를 동원해 설득하실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난주 보 았던 말씀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주님은 군중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요 6:51) 문장이기도 하고 수사 이기도 한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은 '생명의 신비'를 가르치려 하신 것 같습 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냉정했습니다. 유대인들은 "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먹게 하겠느냐"(요 6:52)며 반감을 드러냅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다기보다는 아예 처음부터 들을 마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 유는 그들이 지금까지 보여 온 모습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가지 씩 말 씀을 하실 때마다 그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냉소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9)라고 하시 면, 그들은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 이까"(요 6:30)라고 받아쳤고, 예수님께서 당신을 가리켜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요 6:41) 하시면, 그들은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 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요 6:42)며 수군거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서의 말씀을 읽다보면 그런 상황 이 제자들 가운데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 대해 품어온 반감을 폭발시키고 유대인들은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제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 요 6:60
1) 김용규 '생각의 시대' (살림) 2014 p380물론 여기 등장하는 제자는 12 제자보다 더 확대된 그룹의 제자들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눅 10:1에 보면 칠십 인의 제자가 등장하는데, 본문 에 등장하는 제자는 그들 중 하나이거나, 본문 64절에 '자기를 팔 자'가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유다를 포함한 모든 제자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 튼 사람들은 자기 이성이나 경험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에 거부반응을 보 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이 말씀은 어렵도다"라며 거북스러 워합니다. 여기서 '어렵다'는 단어는 '스클레로스(σκληρός)'로 '딱딱하다', ' 거칠다', '접촉하기 어렵다'라는 뜻인데, '이해하기 어렵다'기보다는 '받아들 이기 어렵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받아들이는 마음 밭 에 따라 딱딱하고 거친 것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70인역(LXX)에 의 하면 창 21:11에서 하갈을 내쫓으라는 사라의 요구에 대한 아브라함의 마 음에 이 단어를 사용했고, 마 25:24에서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고, 행 26:14에서 예수의 제자들을 핍박하는 사울의 마음을 표현할 때, '스클레로스(σκληρός)' 즉 '딱딱한', '거친'이라는 단어 를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딱딱하고, 거칠게 들려와서 받아들일 수 없어 거부한 사람들, 그들은 유대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제 자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의 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 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 요 6:61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이 말씀을 그리스어 원문대로 해석 하면 "투토 휘마스 스칸달리제이(τοῡτο ὑμᾱς σκανδαίζει;)" 즉 "이것이 너 희를 걸려 넘어지게 하느냐?"란 의미인데, 영문성경에서는 이 말씀을 "does this offend you?", "이것이 너희를 화나게 하느냐?"로 번역했습니 다. 이게 참 슬픈 질문입니다. 진리가 이렇게 인간 이성에 거칠게 느껴지 고, 그래서 걸려 넘어지고, 화가 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진리로 살지 못하 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산다면 결코 진리가 '걸림'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영의 세계에는 항상 육의 것들이 걸림이 됩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한계와 죄성(罪性)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 우심과 사랑을 이해하기엔 인간의 마음에 죄와 불의와 미움이 너무 가득 합니다. 미움은 사랑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불의는 정의를 이해하지 못합 니다. 죄는 거룩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미움과 불의와 죄에 묻혀 사는 사람에게 사랑과 정의와 거룩을 요구하면 사람들은 그만 걸려 넘어 지거나 화를 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독일의 루터교 신학자인 '루돌프 불트만(Rudolf Karl Bultmann)'은 유대인과 제자들이 보인 이 걸림 현상 에 대해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 씀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참혹한 십자가의 사건을 자신들에게 연관 지어, 그들 자신도 순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결단의 요구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이야기의 결론을 단지 그들의 반 발을 누그러뜨리는 방향이 아닌, 그들이 '하나님께서 보시는 바로 그 눈'을 뜨고, 말씀을 믿을 수 있도록 대화를 이끌어 가십니다.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 요 6:62
저는 주님의 이 말씀을 읽으면서 주님의 섬세하고 따뜻한 마음을 봅니 다. 주님은 강압적으로 제자들을 믿게 하려고만 하시지 않고, 제자들이 영 적 통찰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그들의 가장 기본적인 시선에 호소하십니 다. "만약 너희가 내가 승천하는 것을 본다면 그래도 여전히 내 말에 걸려 넘어지고, 지금처럼 분을 내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수 난은 자기 비하이고,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은 자기 영광입니다. 주님은 가 장 핵심적인 이 메시아 사건을 통해 제자들이 진리를 깨닫도록 하고 싶으 신 겁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서 주님은 한 걸음 더 본질적인 이야기 로 제자들을 이끌고 가십니다.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 명이라 | 요 6:63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이유가 당신께서 하신 말씀이 '육(肉)적인 언어'가 아니기 때문임을 알고 계셨습니 다. 즉 당신의 말씀이 그들에게 익숙한 '육의 말'이 아니고 '영의 말씀'이기 때문에, 인간의 관점에서는 절대로 당신 말씀을 이해하고 깨달을 수 없다 는 말씀입니다. '육은 무익하다'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인간의 육신이 필요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인간의 이성과 본능으로 영의 말씀을 해석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마저 이성으로 받아들 이려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 말씀을 육으로 듣고 이해하려고 하 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육으로 해석되지 않습니다. 요 3:5 을 보면, 의회 의원이자 종교 지도자인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 '거듭나 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당대의 최고 지성인인 그가 예수님의 말 씀을 이해하지 못한 채 엉뚱하게 답변합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요 3:4)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말씀을 육으로 이해하려 한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이 니고데모에게 걸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 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 3:6, 7) 이 말씀은 대단히 중요합니 다. 그래서 오늘 서신서의 말씀인 엡 6:12에서 사도 바울도 "우리의 씨름 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며,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이는악한날에너희가능히대적하고모든일을행한후에서기 위함이라"(엡 6:13)고 말씀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전신 갑주' 즉 '파노플 리아(πανοπλία)'는 싸움에 나가는 군인이 공격과 방어를 위해 완전무장한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전신 갑주' 앞에 '투 데우 (τοῦ θεοῦ)' 즉 '하나님의'라는 소유격을 붙임으로서, 하나님에 의해 제공 된 전신갑주를 입어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에 의해 제공된 성령으로 우리 온 존재를 무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영(靈)의 말씀'들이 내게 들려 올 때, 그 말씀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의 교리들을 머리로, 이성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도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얕 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게 임재하셔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씀이 깨달아질 때, 우리는 깊은 믿음의 소유자가 됩니다. 깊은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깊은 믿음을 소유하면 깊은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말씀은 어렵도다" 하며 예수님을 떠납니다. 이 들은 지금껏 표면적 제자로 산 것입니다. 저들의 내면은 세상 사람과 똑같 았습니다. 육으로 영을 보려니 보이지 않았고, 육으로 영을 따르자니 어려 웠습니다. 결국 그들은 믿지 못했고, 믿지 못했기에 따르지도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내십니다.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 요 6:64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 요 6:66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모두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 다. 이렇게 언젠가 주님 곁을 떠날 사람도 있습니다. 오래 교회에 다닌 것 을 자랑하지 마시고,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주님의 말씀 이 들려올 때 경청하며, 주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구 약의 말씀에 중요한 대목이 있습니다.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시 기를네자손이자기길을삼가서네가내앞에서행한것같이내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네게서 나서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 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허하신 말씀을 지키 시옵소서 | 왕상 8:25
솔로몬의 이 기도는 왕상 2:4에서 자기의 아버지 다윗이 자신에게 남 긴 마지막 유언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이 유언은 삼하 7:8-16에서 하나님과 체결한 언약에 근거한 유언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근거해서 아들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너 자신의 길'을 삼가라는 것입니다. '삼가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샤마르' 인데, '주의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가 걷는 길을 면밀히 주의 해서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에서나 신약 에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삼가 주의해서 '너 자신의 길'이 아닌, '하나님과 하나인 길'을 걷는 것입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이 그토록 당부하는 말 씀도 그것입니다.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 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 님의 말씀을 가지라 | 엡 6:14-17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나 자신의 길'을 가지 않고, 삼가 주의해 서 '하나님과 하나인 길'을 가기 위해입니다. 우리는 대개 '내 마음이 원하 는 삶'을 살고, '내 판단이 시키는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 도인의 삶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머리에는 구원의 투구를 쓰고, 가 슴에는 의의 흉패를 붙이고, 허리에는 진리로 띠를 띠고, 발에는 평화의 복음의 신을 신고, 손에는 믿음의 방패를 들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칼을 쥐고, 하나님의 동지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에 보면 베드로가 사이다와 같은 청량한 한 마디를 남깁니다.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주님을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않을 때"(요 6:66), 그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요 6:67)고 물으십니다. 그때 베 드로가 한 대답이 이것입니다.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 요 6:68
저는 베드로의 이 대답에 어떤 해석도 덧붙이고 싶지 않습니다. 이 대 답 그대로 우리 고백이 되어 믿음의 방패가 되고, 이 대답 그대로 우리 결 단이 되어 구원의 투구가 되고, 이 대답 그대로 우리 따름이 되어 성령의 칼을 손에 쥐고, 평화의 복음의 신을 신고 날마다 기쁨과 찬미 속에 주님 과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1. 말씀을 육으로 받아들인 까닭에 내게 걸림이 되고 있지 않은가?
2. 말씀을 영으로 받아들여 '하나님과 하나인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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