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8주 지금 내 마음을 채우고 있는 그것
■ 읽기 | Lectio
구약 | 삼하 6:12-16, 20-21
12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13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14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15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16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20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21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응송 | 시 24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서신 | 엡 1:3-6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복음 | 막 6:17-26
17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18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19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20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21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22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23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 라도 주리라 하거늘 24 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25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26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 묵상 | meditatio
① 삼하 6:21을 묵상하십시오.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라는 표현을 두 번 사용한 것을 통해 다윗의 어떤 변화를 볼 수 있습니까?
③ 엡 1:3-4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 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③ 막 6:22-25을 묵상하십시오. 헤롯이 헤로디아의 딸에게 "네가 원하 는 것을 내게 구하라" 했을 때 그녀가 구한 것은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지금 내 마음을 채우고 있는 '그것'
'그대 만난 뒤 삶에 눈 떴네' 라는 책이 있습니다. 레이첼 나오미 레멘 교수가 쓰고, 류해욱 신부가 옮긴 책입니다. 한 번은 팔순 생신을 앞두고 있는 어머니께 생신날 무엇을 하고 싶으신지 여쭈어보았더니 "자유의 여신상에 올라가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거기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말하면서 "엘리베이터로 올라가겠다는 말씀이지요?" 하고 물었더니 "아니다. 나는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고 싶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그녀의 어머니는 협심증을 앓고 계셔서 약을 복용하고 계시던 중이었는데, 자유의 여신상 꼭대기까지는 높은 계단이 무려 342개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모녀는 용감하게 도전을 했습니다. 서너 개의 계단을 올라가서 쉬고 다시 서너 개 씩 올라가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약과 물을 준비한다면 하루 종일 걸리더라도 결국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말씀드리자 어머니가 무척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여섯 시간 동안 자유의 여신상 계단을 올라가면서 몇 번이나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가"하는 후회를 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어머니가 원하시던 일을 해내면서 "나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후회 없이 살았는지" 반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낡은 방식을 버리고 자유롭게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스타일이나 자기 기대나 남들의 시선에 매이지 않은 것이 정말 중요하다. 비록 한 번에 서너 계단씩밖에 오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진실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삶이 우리에게 주는 참 은총이다."(어머니의 선택)각각의 사람들이 각각의 모습으로 각각의 시간들을 채워가고 있는데, 지금 나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그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삶이 참 행복한 삶이라면, 나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그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바람'과 일치될 때, 거기에 보다 본질적이고 진정한 행복이 있겠습니다. 우리는 오늘 성서일과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서 각각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의 차이를 봅니다. 먼저 구약성경을 보면 다윗에게 있어 그의 마음을 온통 채우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궤'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으로 메어오며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왕으로서의 체통을 버리고 알몸을 드러낸 채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삼하 6:14, 20) 그런데 복음서의 말씀을 보면 다윗과 사뭇 다른 헤롯의 모습이 보입니다. 다윗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궤'였다면, 헤롯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건 욕정과 탐욕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이복동생인 헤롯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로 그 마음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서신서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의 마음을 온통 채우고 있는 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었습니다. 물론 이 '신령한 복'은 바울의 소망이기 이전에 "우리로 사랑 안에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주고 싶어 하신 것이었습니다. 먼저 구약의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난 주 말씀에서 다윗이 세 번에 걸친 기름부음을 통해 마침내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우뚝 섰을 때, 그 때의 성경의 결론이 무엇이었습니까?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삼하 5:10) 다윗은 그저 자신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그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그러나 성경은 그 역사의 전 과정에서 '그의 일이 곧 하나님의 일'이었음을 넌지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다윗이 강성해 가는 과정에 발생한 한 가지 의미 있는 사건을 보게 됩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 삼하 6:1, 2
왕위에 오른 다윗은 당시 천혜의 요새이던 시온 산성을 빼앗아서 '다윗성(the city of David)'이라고 이름을 바꿉니다.(삼하 5:7) 그는 그 성에 살면서 성벽을 쌓아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자기를 위해 집을 지었을 뿐 아니라, 혼인 정책을 통해 예루살렘 호족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이스라엘과 오랫동안 적대 관계를 맺어온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둠으로써 자신이 하나님께 택함 받은 왕임을 온 백성들에게 각인시켰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아직 사울의 권력 기반이었던 팔레스타인 북부 지방 사람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뭔가 백성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는 분명하고도 강렬한 대안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하나님의 궤'를 생각해 냅니다. 당시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습니다. 히 9:4에 의하면 그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 돌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에 모셔두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백성을 통치한다면 다윗 정권에 대한 '정통성' 시비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다윗은 마침내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는 일을 서두릅니다. 그리고 그 행사를 최대한 화려하고 멋있게 치르는 것에 심혈을 기울입니다.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가고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 삼하 6:4, 5
이 장면을 그려보십시오. 뭔가 필요이상으로 과시하고자 하는 다윗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화려한 복장을 한 삼만 명의 군대가 행진을 하고, 군악대가 화려한 악기를 연주하며 행진하는데, 거기엔 다윗의 정치적 속내가 담겨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기치 않았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법궤 행렬이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소들이 날뛰기 시작하는데, 웃사란 사람이 손으로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죽고 맙니다.(삼하 6:6-8) 이 사고는 다윗을 당황스럽게 했습니다. 자기 통치기반을 다지기 위해 '하나님의 궤'를 모셔 가는데, 하나님의 궤로 인해 사람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벌어졌고, 이로 인해 다윗은 오히려 백성의 원성을 사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너무 두려운 나머지 애초의 계획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궤를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모셔둡니다.(삼하 6:9-10) 그런데 석 달쯤 지났을 때, 다윗은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소식을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주셨다는 것이었습니다.(삼하 6:11, 12) 소식을 들은 다윗은 직감적으로 하나님의 궤가 그에게 복이 되었다고 느낍니다. 그렇다면 처음 하나님의 궤를 모셔갈 때는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방법상의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출 25:14-15, 민 3:30-31 등에 의하면 법궤 운반은 반드시 레위인들 중 고핫 자손들만이 '어깨에 메고' 운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명령을 어기고 수례에 실어 운반한 것에 우선 문제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다시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모셔올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다윗이 확실히 전과는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 새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 삼하 6:12b-14
가장 눈에 뜨이는 변화는 하나님의 궤를 처음과 달리 어깨에 메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삼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갔던 처음과 다르게 이번에는 조촐한 행렬로 '하나님의 궤'를 모시러 갑니다. 뿐만 아니라 위풍당당한 왕복을 벗고, 베로 만든 에봇을 입습니다. 그가 왕복을 벗고 에봇을 입었다는 건, 왕이 아닌 종으로서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 앞에 엎드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 앞에서 춤을 춥니다. 성경은 그가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다고 말합니다. 왕으로서 품격을 갖춘 춤이 아닙니다. 백성에게 보여주려는 추는 춤이 아닙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또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기뻐서 춤을 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때,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겼다고 기록했습니다.(삼하 6:16) 자기 남편의 진심을 보지 못하고, 그의 행동만을 경멸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미갈이 다윗에게 "임금으로서의 체통이 참 볼만하더군요. 방탕한 자들처럼 신복의 계집종들이 보는 앞에서 자기 몸을 드러내시다니"(삼하 6:20) 라며 비난할 때, 다윗이 한 말이 참 감동적입니다.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 삼하 6:21, 22
우리는 다윗의 이 말을 통해, 그의 변화가 단순한 겉모습과 행동만의 변화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앞에서'입니다.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지금까지 그에게 중요한 것이 왕권이었다면, 지금부터 그에게 중요한 것은 '여호와 앞에서'였습니다. 오늘부터 저와 여러분도 다윗처럼 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처럼 꿈에도 탐(貪)하던 것을 놓아버리고, 하나님 때문에 춤추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장면을 신약시대로 옮겨서 헤롯 안티파스 이야기를 계속해 보겠습니다. 왕이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 결혼한 것에 대해 당시 백성들은 분개했지만 그러나 왕의 일이라 아무도 그 일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헤롯에게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은 옳지 않다"(막 6:18)고 직언합니다. 이 때 헤롯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우선 그는 요한을 체포해서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 막 6:19, 20
그래도 헤롯은 비록 동생에게 못할 짓을 하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장가들기는 했지만, 의롭고 거룩한 사람에 대한 일말의 마음의 두려움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씀을 들을 때, 번민 중에도 달갑게 듣는 일말의 믿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는 거룩한 사람을 대하는 일말의 두려움도, 말씀을 들을 때 달갑게 듣는 일말의 믿음도,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으로 그리고 마음의 기대를 변화시키는 믿음으로 발전시켜 나가지를 못합니다.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을 보십시오.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 새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 막 6:21-23
헤롯의 생일이 되었습니다. 궁중 내외 신하들과 장군들과 갈릴리의 귀인들이 다 모였고, 헤롯이 잔치를 베풀었는데, 한창 잔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헤로디아의 딸이 나비처럼 나풀거리며 무대 중앙에 등장해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본디 이 아이는 헤롯의 딸이 아닌 조카였는데, 그가 헤로디아와 재혼한 뒤 딸이 된 것입니다. 공주가 나와서 춤은 춘다는 것은 당시 예법에 맞지 않았지만, 아마 헤로디아가 어떤 계략을 품고 딸을 그 자리에 내보낸 것 같습니다. 공주의 춤이라는 파격 앞에서 신하와 장군들과 귀족들이 크게 즐거워했고, 흥에 겨운 헤롯은 소녀에게 무엇이든지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하라고 합니다. 헤롯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기껏해야 로마에서 만든 최고급 가죽신이나 인형, 혹은 아프리카에서 잡아온 아기 원숭이를 원하겠지." 그러나 상황은 그의 생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습니다.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 막 6:24-26
결국 헤롯은 마음에 가득 찬 정욕과 정치적 야망에 스스로 삼켜짐으로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를 죽이고 맙니다.(막 6:27-29) 다윗의 삶의 결말과 헤롯의 삶의 결말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과연 우리의 마음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으며, 우리 삶의 결말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 엡 1:3
여기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신령한 복'은 무엇을 말씀합니까? 이어지는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단언합니다.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 엡 1:4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 바로 이것이 '내가 진실로 살고 싶은 삶'이고 '지금 나의 가슴을 채우고 있는 그 일'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가 쓴 '에바그리우스의 기도와 묵상'에 보면 에바그리우스가 자신의 스승인 알렉산드리아의 마카리우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라헬을 얻고 싶었던 당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레아를 얻었습니다.(창 29:15-30). 그러나 당신은 라헬을 얻기 위하여 또다시 7년을 더 일하고, 지금 라헬을 얻으려고 합니다." 여기에서 '레아는 덕행의 실천'을 상징하고, '라헬은 관상'을 상징합니다. '덕행'이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아름다운 삶이고, '관상'이란 하나님을 유심히 바라보는 삶입니다. 야곱이 라헬을 마음 가득 품었더니 라헬과 레아 모두 얻게 된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 가득 품고 있으면, 우리는 예수님을 얻게 될 것이고,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은 궁극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앎(인식)'을 통한 참 행복으로 우리 모두를 안내할 것입니다. 바로 그 행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나의 마음은 음욕과 탐심과 교만 등으로 채워져 있지 않은가?
② 나의 마음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채워져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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