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7주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 읽기 | Lectio
구약 | 삼하 5:3-5, 9-10
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 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4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5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9 다윗이 그 산성에 살면서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다윗이 밀로에서부 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응송 | 시 48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서신 | 고후 12:2-10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복음 | 막 6:7-10
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8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9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10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 묵상 | meditatio
① 고후 12:9을 묵상하십시오. 바울이 자신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삼하 5:10을 묵상하십시오.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갈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③ 막 6:7-9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며, 양식이 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을 가지지 말게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김현승의 시세계와 기독교적 상상력'이란 제목의 책에서 저자는 초기에서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김현승의 시세계 속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이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그는 1960년 김현승의 시세계가 '고독'이라는 주제를 통한 내면적 탐구의 시간이었다면, 1970년대는 인생의 마지막 시기와 맞물리면서 신앙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세계로 회귀하는 시간이라고 설명합니다. 김현승의 시에 보면 '고독'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것들이 많은데, 그것은 그가 '하나님과의 내적 분리' 문제를 자아의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매우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를테면 '절대고독'이라는 시에서는 "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하던 / 영원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시인이 말하는 '영원'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추구해 오던 '기독교신앙 안에서의 영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그 '신앙의 영원'을 떠나 '내가 생각하던 영원의 먼 끝'을 만지게 됩니다. 즉 전지전능하고 절대적이고 영원한 존재로서의 하나님과 다른 어떤 영원을 만지게 된 것입니다. 그는 "절대고독'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영원의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나는 내게로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뜻한 체온을 새로이 느낀다
당신의 핏자국에선
꽃이 되어 사라의 꽃 피어,
따 끝에서 따 끝까지
사랑의 열매들이 아름답게 열렸습니다.
당신의 못자욱은
우리를 더욱 당신에게 못 박을 뿐
더욱 얽매이게 할 뿐입니다.
당신은 지금 무덤 밖
온 천하에 계십니다. ...
당신은 지금 유대인의 수의를 벗고
모든 땅의 훈훈한 생명이 되셨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 고후 12:2-3
14년 전, 당시 그가 이끌려갔다는 셋째 하늘은 고대인들의 우주관에서 나온 말입니다. 고대인들은 하늘이 여러 층으로 되어 있다고 보았는데, 중요한 건, 사도 바울이 그 셋째 하늘을 낙원이라고 말하는 겁니다.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 고후 12:4
고대 유대인들에게 낙원은 죽었을 때, 구원받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었습니다. 사실 바울은 유대와 헬라의 신비 현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대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들이 신비 현상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김현승시인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 젊은 시절 절대고독 가운데서 방황했을 겁니다. '기독교신앙 안에서 체감되는 영원'과 '자기 손끝에서 만져진 영원'이 달랐습니다. '신앙의 영원'은 먼 끝에 존재했지만, '자기 손끝에서 만져진 영원'에서는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인지는 로마서를 읽어보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그런 바울이 이성과 논리의 껍질을 깨고 신비 세상을 경험한 것이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이 때 바울은 황홀경 속에서 일종의 초월을 경험했습니다.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는 똑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합니다. 그만큼 놀라웠고 신비했다는 뜻이겠습니다. 아마 이때 그는 모든 현실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빛을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그 소감을 바울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그렇지요. 하나님의 빛을 어떻게 언어로 표현해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어지는 고백을 보십시오.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 고후 12:5, 6
바울은 자기 자랑을 멈추겠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자랑이 불러올 위험성 때문일 것입니다. 이 편지를 받아볼 사람들이 바울을 과대 포장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자랑은 그만 둔다고 했습니다. 대신 그는 자신의 '약함'에 대해 말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질병에 대한 것이었습니다.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 고후 12:7
바울의 말은 이런 뜻입니다. 14년 전에 경험한 신비 경험을 포함해 그동안 자신이 받은 계시가 너무 커서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자기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주석가들은 바울에게 있었던 이 가시를 말라리아, 간질, 언어 장애나 안질 등 육체적 장애로 보기도 하고, 조울증, 편집증 혹은 성적으로 불순한 생각 등 정신적 장애로 보기도 합니다. 그것이 어찌나 고통스러웠던지 바울에게는 가시로 찌르는 것처럼 느껴졌고, 사탄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이 고통이 자신에게서 떠나가기를 주님께 세 번이나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 고후 12:9a
이것은 거절이었습니다. 왜 주님은 바울의 간정을 외면하고 가시를 제거해주지 않으셨을까요? 그것은 인간이 약점 즉 존재적 연약성 안에서 주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주님의 이 거절을 "매우 친절한 거절"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거절을 수용합니다. 심지어 그는 이런 놀라운 고백을 남깁니다.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 고후 12:9b-10
주님의 거절 속에서 그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진정한 강함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기울여야 할 노력은 스스로를 강하게 하는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는 '영적(靈的)' 노력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팔복을 말씀하시면서 가난한 자, 우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저 종교적인 값싼 위로가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은 스스로 쌓은 강함과 능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머물 때, 있는 것임을 말씀하신 겁니다. 그게 십자가의 신비입니다. 주님은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실패요 연약함이요 절망인 십자가에서 당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의 가장 화려한 승리인 부활로서 예수님께 화답해 주십니다. 바울이 본 것이 바로 그 신비입니다. 오늘 구약성경에 의미심장한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 삼하 5:10
'왕위에 오른 다윗'을 두고 하는 말씀인데, 그가 마침내 이스라엘 전역을 장악하고 명실상부한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그 화려한 성취에 대해 사무엘서 기자는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라고 단정합니다. 이 말은 듣기에 따라 다윗에게는 거슬리는 평가일 수도 있습니다. 다윗이 왕으로서 강성하게 된 것이 그가 지혜롭거나 용맹해서가 아니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그가 점점 강성하여 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과거' 말입니다. 사무엘이 왕을 세우기 위해 자기 집을 찾아 왔을 때, 그때 그는 아버지 이새에게마저 배제된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스라엘 왕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약함을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외모로 보는 시선으로부터 보호하셨고, 장남위주로 형성된 가족질서로부터도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가장 초라할 때, 그를 불러 첫 번째 기름을 부으셨습니다.(삼상 16:13) 하나님은 그가 가장 위태로울 때, 사람들을 보내 두 번째 기름을 부으셨습니다.(삼하 2:4)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게 힘이 필요할 때, 사람들을 보내 세 번째 기름을 부으셨습니다.(삼하 5:3) 그러니까 다윗 역시 자신이 가장 약할 때, 하나님의 강함으로 살아난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둘씩 둘씩 짝지어 파견하시며 주신 말씀입니다.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 막 6:7-10
이 말씀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도 주님께서 주신 권능만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옷 두 벌 쯤은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조차 가져가지 말라는 건 오로지 주님의 권능만을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모든 노력은 무가치한 것일까요? 우리는 그저 하나님만 보고 있어야 하는 걸까요? 바울은 노력으로 자신을 증명한 사람입니다. 다윗도 노력으로 자신을 증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노력 가운데서도 자신의 약함을 자랑했더니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에게 머물렀다는 사실입니다. 김현승은 자신의 손끝으로 영원을 만지고, 따뜻한 체온으로 그 영원을 경험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대고독에 빠지고 맙니다. 정말 다행히도 거의 죽을 뻔한 상황을 지나면서 그는 비로소 하나님을 절실하게 보기 시작합니다. 그는 주님의 핏자국에서 꽃을 보고, 주님의 못자욱에서 사랑을 봅니다. 그래서 자신을 주님께 못 박았더니 주님은 무덤 밖 온 천하에 계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이제부터는 저도 여러분도 이 고백으로 미래를 열어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나의 강함과 지혜로움을 자랑하며 내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② 나의 약함을 자랑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머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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