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6주 낮은 자리에서 드리는 감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7-01 11:26
조회
1441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삼하 1:17-21
17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18 명령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19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20 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 어다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21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 바 됨이니라 곧 사울 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아니함 같이 됨이로다
응송 | 시 130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서신 | 고후 8:9
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복음 | 막 5:25-34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 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 묵상 | meditatio
① 삼하 1:21을 묵상하십시오. 사울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다윗의 마음 에서 느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② 막 5:34을 묵상하십시오. 당신의 옷에 손을 댄 여인에게서 주님께서 보아주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③ 고후 8:9을 묵상하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중 우리가 꼭 알고 감사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그 중 트루베츠코이의 아내 예까쩨리나 트루베츠까야의 이야기는 듣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그녀는 혹한 속에서 광산에 들어가 남편을 찾아 족쇄를 찬 남편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가 바로 이 데카브리스트들의 이야기인데, 그녀가 발에 입을 맞춘 트루베츠코이는 톨스토이의 외가쪽 친척이기도 했습니다. 30여년이 지나 트루베츠코이가 사면을 받았을 때, 그의 아내는 이미 죽은 뒤였습니다. 이르쿠츠크의 즈나멘스키 수녀원에, 바로 그녀 '트루베츠코이의 아내 예까쩨리나 트루베쯔까야'의 묘가 있습니다. 그녀의 무덤을 품고 있는 즈나멘스키 수녀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여성성으로 표현하고 있었는데, 여성으로 표현된 삼위일체 하나님 이콘이 예까쩨리나 트루베쯔까야의 애틋한 사랑과 잘 어울리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이렇듯 애틋한 사랑, 지고한 사랑은 극한의 상황에서 더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오늘 구약성경에서 두 주검 앞에서 슬퍼하는 다윗을 봅니다. 사울 왕과 요나단이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한 후(삼상 31:2-4), 다윗이 두 죽음을 애도하며 '조가(弔歌)'를 부르는 장면입니다.
"우리 조국의 하나님이여! 우리 조국의 하나님이여! 우리는 주의 거룩하고 거룩하신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하늘의 태양계들로 짜인 주의 왕관은 주의 천군, 시대가 만든 것이니이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나니, 천년은 그저 하루에 지나지 않나이다. 영원의 꽃은 떨리는 눈물을 머금고, 주를 찬양하며 죽어가나이다. 아이슬란드의 일천년이여! 아이슬란드의 일천년이여! 영원의 꽃은 떨리는 눈물을 머금고, 주를 찬양하며 죽어가나이다.
타오르고 타오르는 영혼을 바치오며, 아버지 하나님, 모든 세대의 주님께 지극히 경건한 기도를 올려드리나이다! 천년을 주께 기도하고 감사드림은 주만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심이고 떨리는 눈물로 주께 기도하고 감사드림은 주께서 우리의 운명을 주관하심이니이다. 아이슬란드의 일천년이여! 아이슬란드의 일천년이여! 우리의 어둡고 추운 아침, 우리가 흘린 눈물은,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따뜻해지나이다.
우리 조국의 하나님이여! 우리 조국의 하나님이여! 우리는 흔들리는, 흔들리는 지푸라기와 같으니 주께서 우리의 빛과 생명이 되셔서 흙먼지로부터 들어올리지 않으신다면 사라지리이다. 오, 매 아침에 행복이 되사, 환난의 시간에서 이끌어주소서. 악몽의 때에는 천국과 같은 피난처, 우리의 보호자 되사, 우리가 가는 길의 주인이 되어주소서. 아이슬란드의 일천년이여! 아이슬란드의 일천년이여! 우리나라는 마른 눈물과 함께 자라나며, 주의 길을 따라 나아가리이다."
한 나라의 '국가(國歌)'에 담긴 고백이 너무 절절하고 뜨겁지 않습니까? 길가의 풀섶에 뒹구는 녹슨 방패처럼, 열 두해를 혈루증으로 않던 여인처럼, 버려진 존재인 우리였는데, 그냥 버리지 않으시고, 천년을 하루 같이 오직 사랑만 하시면서 당신의 모든 걸 버리심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신 주님께 우리도 이런 고백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믿음도 감사도 없지 않은가?
②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신 주님께 전심으로 감사하고 있는가?
■ 읽기 | Lectio
구약 | 삼하 1:17-21
17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18 명령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19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20 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 어다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21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 바 됨이니라 곧 사울 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아니함 같이 됨이로다
응송 | 시 130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서신 | 고후 8:9
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복음 | 막 5:25-34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 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 묵상 | meditatio
① 삼하 1:21을 묵상하십시오. 사울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다윗의 마음 에서 느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② 막 5:34을 묵상하십시오. 당신의 옷에 손을 댄 여인에게서 주님께서 보아주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③ 고후 8:9을 묵상하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중 우리가 꼭 알고 감사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낮은 자리에서 드리는 감사
지금 한창 2018 월드컵의 열기로 뜨거운 러시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상념에 젖게 해주는 나라입니다. 바이칼호수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 이르쿠츠크는 풍경의 아름다움이나 로맨틱함과 어울리지 않게 역사적으로는 '유형의 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시내 중심에 있는 레닌거리는 우리나라 항일 독립 운동가들의 얼이 스며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1910년대 이범석, 이범윤 등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항일 독립 운동가들이 유배되었던 곳이기도 하고, 1920년대에는 항일 독립 운동가들뿐 아니라 외국 혁명가들이 자주 모임을 갖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자유세계를 찾아 방황하던 춘원 이광수의 소설 '유정(有情)'의 무대 역시 이르쿠츠크였습니다. 그런데 이 '이르쿠츠크' 하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데카브리스트'들입니다. '데카브리'는 러시아어로 '12월'이란 뜻이고, '데카브리스트'는 12월의 혁명 당원을 뜻합니다.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 때, 나폴레옹의 군대에 대항하며 서유럽에 진출했던 러시아군의 청년 장교들과 귀족들이, 프랑스혁명과 인권사상에 큰 감동을 받게 되는데, 바로 그들이 1825년 12월, 니콜라이 1세의 황제 즉위식에 맞춰 당시의 수도였던 뻬제르부르그의 원로원 광장에서 혁명을 일으킵니다. 사실상 노예와 다름없던 당시 농민들의 편에 서서 농노제 폐지와 '짜르(러시아 황제)'의 전제 정치를 타도하기 위해 일어선 것인데, 안타깝게도 그들은 이내 진압되어서 주모자 5명은 처형되고, 120명은 유배를 당하는데, 그들이 끌려갔던 유배지가 바로 이르쿠츠크입니다. 그들은 6000km가 넘는 길을 걸어 그곳에 끌려가 20kg이 넘는 족쇄를 차고 중노동에 내몰렸습니다. 그들이 시베리아로 유배당했을 때, 젊은 아내들과 약혼자 중 일부가 연인을 따라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눈보라 속에서 객사했고, 몇 명의 여인은 기어이 연인을 만나서 허드렛일로 연명하며 함께 살았습니다.그 중 트루베츠코이의 아내 예까쩨리나 트루베츠까야의 이야기는 듣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그녀는 혹한 속에서 광산에 들어가 남편을 찾아 족쇄를 찬 남편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가 바로 이 데카브리스트들의 이야기인데, 그녀가 발에 입을 맞춘 트루베츠코이는 톨스토이의 외가쪽 친척이기도 했습니다. 30여년이 지나 트루베츠코이가 사면을 받았을 때, 그의 아내는 이미 죽은 뒤였습니다. 이르쿠츠크의 즈나멘스키 수녀원에, 바로 그녀 '트루베츠코이의 아내 예까쩨리나 트루베쯔까야'의 묘가 있습니다. 그녀의 무덤을 품고 있는 즈나멘스키 수녀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여성성으로 표현하고 있었는데, 여성으로 표현된 삼위일체 하나님 이콘이 예까쩨리나 트루베쯔까야의 애틋한 사랑과 잘 어울리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이렇듯 애틋한 사랑, 지고한 사랑은 극한의 상황에서 더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오늘 구약성경에서 두 주검 앞에서 슬퍼하는 다윗을 봅니다. 사울 왕과 요나단이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한 후(삼상 31:2-4), 다윗이 두 죽음을 애도하며 '조가(弔歌)'를 부르는 장면입니다.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 삼하 1:17
여기에서 '슬픈 노래'란 히브리어로 '키나(הניק)'인데, 다윗이 아브넬의 죽음 앞에서(삼하 3:33), 예레미야가 요시야의 죽음 앞에서(대하 35:25) 지은 시(詩)들이 모두 이 '키나(הניק)'입니다. 이 '키나'의 한 부분을 들어보십시오.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 삼하 1:21a
여기에서 다윗은 길보아 산까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 앞에서 함께 애도할 것을 요청합니다.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그의 이 말은 "네가 메말라 박토(薄土)가 됨으로서" 사울 왕과 요나단의 죽음을 애도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자연조차도 슬픔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다윗의 이 애도를 보면서, 사실 우리는 한편으로는 공감이 가지만, 한편으로는 공감이 어렵습니다. 자신의 친구인 요나단의 주검 앞에서의 다윗의 슬픔은 이해도 공감도 갑니다. 그러나 끈질기고 집요하게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사울왕의 죽음마저 슬퍼하는 다윗의 마음은 사실은 이해도 공감도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보았다 하시던 다윗의 '중심'이 바로 이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바 됨이니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아니함 같이 됨이로다 | 삼하 1:21b
이 표현 역시 다윗의 비통한 마음을 그의 눈이 머무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지금 다윗의 시선은 길보아 산 곳곳에 흩어져 있는 사울 왕과 요나단의 흔적들을 뒤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땅에 버려져 뒹구는 두 용사의 녹슨 방패를 바라보며, 사랑했던 만큼 슬퍼하는 다윗의 마음이 그의 애가를 통해 신음처럼 터져 나옵니다. 옛날에는 적의 무기가 미끄러져 빗나가도록 방패에 기름을 바르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사 21:5) 그런데 버려져 있는 사울의 방패를 보니 기름칠이 다 벗겨져 있습니다. 사울은 전사하고, 그의 방패는 피 묻은 채 나뒹구는 장면에서 다윗이 슬퍼하는 것은 비단 그의 죽음만이 아닙니다. 한 때는 여호와의 영광이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영광마저 빼앗기고, 길가 풀섶에 버려져 뒹구는 그 흔적이 다윗에게는 가슴 아픈 것입니다. 시베리아의 혹한(酷寒)을 무릅쓰고 광산까지 들어가 족쇄를 찬 남편의 발에 입을 맞추던 아내의 심정이 바로 이런 심정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성경은 온통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이런 심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 복음서에 보면 열 두해나 혈루증을 앓는 한 여인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심정이 보입니다.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 막 5:25-28
이 장면을 통해 마가가 보여주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아무도 차별하지 않으시고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그 마음이 저는 고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를 막론하고 병든 자이며, 고통 가운데 있는 자이고, 죽은 자입니다. 지금 성한 것은 임시 그런 것이지, 언제나 그러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늘에 구름이 끊임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것처럼, 나라는 이 존재에게 육신의 병과 마음의 고통은 사는 날까지 쉬지 않고 오고 가며 드나듭니다. 그러다가 늙어 병들어 죽을 터이니, 이 죽음에서 제외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결국 몇 십 년 후에는 죽어 없어질 존재가 지금 모두 임시로 살아 있는 셈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희망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우리 모두의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 막 5:29
중요한 것은 이 다음부터입니다. 예수님은 살며시 다가와 당신의 옷을 만진 이 여인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 막 5:34
예수님은 여인의 행동에서 믿음의 가치를 발굴해 칭찬해 주십니다. "평안히 가라" 얼마나 따뜻한 말씀입니까? 저에게나 여러분에게나 오직 우리의 희망은 예수님의 이 따뜻하신 마음과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늘 맥추감사절을 맞아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 역시, 예수님의 이 따뜻하신 마음과 말씀입니다. 서신서에서 바울은 말씀합니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 고후 8:9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우리는 압니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셨습니다. 주님의 가난해지심은 우리를 살리시려는 따뜻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 한 채, 차디 찬 죄악과 사망의 벌판에 유배되어 천형의 사슬에 매여 살던 우리들, 주님은 그 거칠고 터진 발에 입맞추어주셨습니다. 저는 이번 월드컵 아르헨티나와 아이슬란드의 경기에서 본 아이슬란드 국가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우리 조국의 하나님이여! 우리 조국의 하나님이여! 우리는 주의 거룩하고 거룩하신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하늘의 태양계들로 짜인 주의 왕관은 주의 천군, 시대가 만든 것이니이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나니, 천년은 그저 하루에 지나지 않나이다. 영원의 꽃은 떨리는 눈물을 머금고, 주를 찬양하며 죽어가나이다. 아이슬란드의 일천년이여! 아이슬란드의 일천년이여! 영원의 꽃은 떨리는 눈물을 머금고, 주를 찬양하며 죽어가나이다.
타오르고 타오르는 영혼을 바치오며, 아버지 하나님, 모든 세대의 주님께 지극히 경건한 기도를 올려드리나이다! 천년을 주께 기도하고 감사드림은 주만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심이고 떨리는 눈물로 주께 기도하고 감사드림은 주께서 우리의 운명을 주관하심이니이다. 아이슬란드의 일천년이여! 아이슬란드의 일천년이여! 우리의 어둡고 추운 아침, 우리가 흘린 눈물은,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따뜻해지나이다.
우리 조국의 하나님이여! 우리 조국의 하나님이여! 우리는 흔들리는, 흔들리는 지푸라기와 같으니 주께서 우리의 빛과 생명이 되셔서 흙먼지로부터 들어올리지 않으신다면 사라지리이다. 오, 매 아침에 행복이 되사, 환난의 시간에서 이끌어주소서. 악몽의 때에는 천국과 같은 피난처, 우리의 보호자 되사, 우리가 가는 길의 주인이 되어주소서. 아이슬란드의 일천년이여! 아이슬란드의 일천년이여! 우리나라는 마른 눈물과 함께 자라나며, 주의 길을 따라 나아가리이다."
한 나라의 '국가(國歌)'에 담긴 고백이 너무 절절하고 뜨겁지 않습니까? 길가의 풀섶에 뒹구는 녹슨 방패처럼, 열 두해를 혈루증으로 않던 여인처럼, 버려진 존재인 우리였는데, 그냥 버리지 않으시고, 천년을 하루 같이 오직 사랑만 하시면서 당신의 모든 걸 버리심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신 주님께 우리도 이런 고백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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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믿음도 감사도 없지 않은가?
②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신 주님께 전심으로 감사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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