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2주 시대와 공감하는 그리스도인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신 5:14-15
14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 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응송 | 시 81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서신 | 고후 4:6-7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복음 | 막 2:23-3:6
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24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6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 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 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 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신 5:13-15을 묵상하십시오. 애굽 땅에서 종이었던 기억을 되살려 남종과 여종과 가축과 객까지 쉬게 하라는 하나님 뜻은 무엇입니까?
② 막 2:27을 묵상하십시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 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③ 고후 4:6, 7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마음에 간직한 '질그롯'으로서 시대 속에서 우리 삶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시대와 공감하는 그리스도인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선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율법을 통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정치적, 종교적으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람들은 그 율법을 자기 권력유지의 도구로 악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 의해 힘이 없는 사람들은 끝없는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는데, 오늘 성서일과가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이 시대정신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그 현상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런가 하면 복음서의 말씀은 율법이 본래 정신을 상실하고 말았을 때, 그것이 사람들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고 절망으로 몰아넣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런가 하면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라는 표현과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는 표현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저마다의 시대 속에서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담아주신 진리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먼저 구약의 말씀을 보겠습니다.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 신 5:12-1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시는 장면인데,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은 계약법전과 신명기법전, 정결법전, 제사법전 등이었고, 이 모든 율법의 종지(宗旨) 즉 율법의 근본정신으로서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성경에는 이 십계명의 버전이 출 34:17-26, 신 27:15-26, 레 19:1-4 등 많지만, 그 중에서 출 20:1-17과 오늘 구약의 말씀이 포함된 신 5:1-21이 십계명의 전승을 대표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런데 출애굽기와 신명기의 두 기록은 거의 동일한데 딱 한 군데가 다릅니다. 바로 제4 계명인 '안식일에 관한 계명'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 차이가 있습니다. 출 20:11에는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이 말씀에서는 안식일의 제의적인 의미가 매우 강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마치시고 쉬신 날이고, 하나님께서 복되고 거룩하게 하신 날이기 때문에 너희도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말씀이 오늘 구약의 말씀인 신 5:15에는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이 말씀에는 안식일의 제의적인 의미보다 사람에 대한 배려가 더 강조되어 있습니다. 애굽 땅에서 종이었던 너희를 위해 만든 날이니 안식일에는 마음 놓고 쉬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출애굽 직후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의 해석과, 출애굽한 지 40년이 지난 후 십계명의 해석이 이렇게 달랐다는 것입니다. 즉 십계명의 법정신이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재해석된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계약은 시대와 문화의 변화에 따라 일정량 재해석이라는 변화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본디 재해석이라는 것은, 그 율법이 선포되던 당시 율법의 본래 법정신이 무엇이었던가를 잘 이해하고, 그 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 종교지도자들이 기득권을 차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들은 율법의 본래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자기들의 기득권을 견고하게 다져가는 도구로 전락시키고 만 것입니다. 그 폐해가 어느 한 시대 속에서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오늘 복음서의 말씀입니다.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 막 2:23-28
우리가 이 말씀을 보다 명료하게 이해하려면 마가복음 2장 전체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2장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예수님과 율법과의 충돌'입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율법 준수'에 관한 문제로 예수님과 충돌을 빚어가던 예민한 시기에 하필이면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은 사건이 일어난 겁니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라는 바리새인들의 트집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막 2:27)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인간의 존엄성이 법보다 우선하는 것임을 천명하십니다. 주님은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서 주렸을 때,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었던 일(삼상 21:1-6, 막 2:25, 26)을 예로 드시면서, 법은 소중한 것이지만, 그러나 그 법보다 더 절박한 상황이 있음을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가는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서 이 안식일 논쟁을 좀 더 확대해 나갑니다.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 막 3:1-6
아직 안식일이 지나지 않은 시간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곳에 한쪽 손이 말라 오그라 들어버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방금 예수님과 안식일 논쟁을 벌였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임에도' 그 사람을 고쳐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남의 허물을 찾기 위해 몰래 지켜보는 이들의 시선을 머리에 그려보십시오. 지금 그들의 눈에는 병자가 겪고 있는 고통이나 그들의 사회적인 불편 따위는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그들의 시선을 모르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개의치 않고 그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하신 말씀 그대로, 주님은 법보다 사람을 더 귀하게 여기셔서 그것이 함정임에도 불구하고 고쳐주는 일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고 묻는 예수님과, 이미 옳고 그름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어떻게 하면 예수를 죽일까?"에만 온통 마음이 몰두되어 있는 사람들을 보며 '참된 율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성찰해 보게 됩니다.오늘 말씀을 좀 더 심층적으로 묵상해보면 지금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대한 선입견에 근본적으로 도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대개 안식일은 '아무 것도 안하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지금 주님은 안식일에 대해 '일 안 하는 날'이라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통념에 대해, 오히려 안식일은 적극적으로 '일하는 날'임을 역설하시는 겁니다. 이건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율법의 통념 대한 본질적인 문제제기입니다. '일 안 함으로써 얻어지는 안식'이 아니라, '일 함으로써 얻는 안식'이 보다 하나님의 뜻에 가깝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일을 하느냐 안 하느냐'는 형식적인 차원에서의 안식일 준수가 아닙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근원적인 물음, 즉 '그 일이 어떤 일이냐'는 물음입니다. 지금 주님의 말씀은 만약 그 일이 악한 일이고 생명을 죽이는 일이라면, 안식일이 아니라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 일이 선한 일이고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면 아무리 안식일이라 해도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평온한 얼굴로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셨다"고 마가는 당시의 분위기를 전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완악했다는 것은, 그들이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지 않았음에도 그러나 마음이 완악해서 안식일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외면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감각적이요 외면적인 가치에 탐닉해 눈이 멀고, 귀가 멀고, 입맛마저 고약해지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고, 그러다 보면 더 완악해져갈 수도 있겠습니다. 안식일을 안식일로 지키지 않으면 아버지를 볼 수 없듯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읽지 못하면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주님은 손 마른 사람을 한 가운데에 일어서게(막 3:3) 하신 후 "네 손을 내밀라"(막 3:5)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고침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선 당신께서 하신 물음에 대해서 안식일에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심으로 스스로 대답을 주신 것입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 고후 4:6, 7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신 그 하나님, 그 빛으로 혼돈과 공허를 물리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그 빛'을 '질그릇' 즉 '나의 마음에 담은' 사람들이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입니다. 똑같이 마음에 담긴 것으로 어떤 사람은 세상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세상에 배신감과 우울함을 줍니다.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내가 아는 하나님 말씀은 한 시대 속에서 나를 어떤 모습으로 살게 하고 있습니까? 나는 예수님의 분노를 사는 사람입니까? 나는 예수님의 칭찬을 사는 사람입니까? 나는 예수님의 연민을 사는 사람입니까? 내가 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는 세상 속에서 어떤 사람입니까?■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하나님의 말씀을 내 이기적인 의도에 따라 왜곡하고 있지 않은가?
②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대로 시대 속에서 실천하며 살고 있는가?
번호 | 다운로드 | 제목 | Language | 작성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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