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사순절 제4주 참다운 시선, 영적 시선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삼상 16:1-13
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2 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5 이르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 9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10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응송 | 시편 23편
1 여호와는 나의 목자 | 시 – 니
○ 내게 부족함이 |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 | 이시며
○ 쉴 만한 물 가로 인도 | 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 위하여
○ 의의 길로 인도 | 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 지라도
○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 | 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 주시고
○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 | 르리니
○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 살리로-다
◉ 영광이 | 성부와 ○ 성 | 자와 | 성령께
◉ 처음과 같이 | 지금도 ○ 그리고 영 | 원히 | 아-멘
서신서 | 엡 5:8-14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복음서 | 요 9:1-41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8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2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13 ○그들이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15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16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17 이에 맹인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 18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19 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20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 함이러라 23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 보소서 하였더라 24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26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27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28 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29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30 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31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32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34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35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삼상 16:7절 묵상하십시오. 엘리압의 외모를 보고 '여호와의 기름 부 으실 자'라고 생각한 사무엘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② 요 9:36-38절 묵상하십시오. 육의 눈을 뜨게 된 맹인이 마침내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식했을 때, 그의 '봄'은 무엇으로 변합니까?
③ 엡 5:8, 9절 묵상하십시오. 빛의 자녀들이 맺는 빛의 열매는 궁극적으로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참다운 시선, 영적 시선
지난 2월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연합 공습으로 시작된 전쟁이 연일 격화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작전명을 ‘장엄한 분노(Epic Fury)’라 하고, 이스라엘은 ‘포효하는 사자(Roaring Lion)’라며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지만, 이미 2,000여 명에 육박하는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고, 그 중 어린이, 청소년 사망자만도 160여 명이고 보면, 이 전쟁의 배경과 목적이 무엇이든 속히 이 야만적인 행동이 멈춰져야 하겠습니다. 그 어떤 전쟁의 명분도 사람의 생명보다 우선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뉴스를 보며 묻습니다. “누가 옳은가?, 누가 더 강하고, 결국 누가 이길 것인가?”. 세상은 그렇게 힘과 승패의 기준으로 역사를 봅니다. 하지만 신앙인의 물음은 달라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보고 계시는가?” 이 질문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시선의 방향과, 우리 그리스도인의 시선이 일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은 표면을 보지만 하나님은 내면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전쟁을 일으킨 명분이나 승패보다도, 전쟁을 일으킨 인간의 속내를 달아 보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잔인한 속내에 동의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생명과 평화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참되고 본 된 그리스도교 영성이란 교회 안에서 예배하고 기도함으로서만 갖춰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나님 자녀의 아름다움을 실천하고, 창조 목적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에서 그 깊이와 넓이가 더해지는 것이겠습니다. 그러려면 우리 영적 감수성이 깊어져야 합니다. 포화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들과 울부짖는 가족을 보며 괴로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떡의 유혹과 권력의 음험한 유혹을 물리치고 십자가를 향해 걸으시던 주님의 모습을 관상하며, 힘의 세계, 자본의 세계가 아닌 고통 당하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두고 기도하며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평화의 영성에 눈뜰 때,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삶이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은 고대 이스라엘이 부족시대에서 왕정시대로 넘어오는 과도기 때 일어난 한 일화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대표한 인물은 사무엘이었는데, 어느 날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당시 라마에 있던 사무엘을 찾아가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삼상 8:5)라고 요구합니다. 사무엘은 기도하고 숙고(熟考)하던 끝에 사울을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 세웁니다. 당시 사울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이랬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삼상 9:2). 물론 사울은 외모만 준수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한때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새 마음의 소유자였고(삼상 10:9), 하나님의 영이 크게 임하여 예언도 했었습니다(삼상 10:10).하지만 그는 새 마음을 끝까지 지키지 못합니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았고(삼상 15:19), 여호와께서는 그를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습니다(삼상 15:35). 마침내 사울은 폐위되고 마는데, 그것이 오늘 구약의 말씀이 있게 된 배경입니다. 사울이 폐위된 후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불러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가라시며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다”(삼상 16:1)고 하십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새의 집으로 가서 그의 아들들을 제사에 초청해 장남부터 차례대로 자기 앞에 서게 합니다(삼상 16:5). 엘리압이 가장 먼저 사무엘 앞에 섰습니다. 이때 사무엘은 마음속으로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시려는 사람이 정말 주님 앞에 나와 섰구나”(삼상 16:6)라며 흥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너는 그의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내가 세운 사람이 아니다.”(삼상 16:7a 새번역)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람의 무엇을 보신다는 걸까요?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 삼상 16:7b
사람은 드러난 용모와 출신과 배경을 보지만 하나님은 감춰진 내면을 보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 차이를 깨달아야 하고, 이 차이를 좁힐 수 있어야 합니다. 이새가 데리고 온 일곱 명의 아들들을 다 보았지만 여호와께서는 그 중 아무도 선택하시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아들이 없느냐고 묻자 이새가 이렇게 대답합니다.막내가 남아 있기는 합니다만, 지금 양 떼를 치러 나가고 없습니다. | 삼상 16:11a 새번역
사무엘이 사람을 보내 그를 데려오라고 합니다(삼상 16:11b). 그리고 마침내 다윗이 오는데,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바로 이 사람이다. 어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 | 삼상 16:12 새번역
양을 지키다 왔으니 목동의 복장 그대로였겠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러한 다윗을 마음에 두시고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라고 하신 것으로 볼 때, 다윗은 그 중심이 곧은 신앙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윗과 형들 사이에 있었던 중심의 차이, 그 차이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하여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 삼상 16:13
“이 날 이후로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되었다”는 것은 그가 걸어간 ‘평생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후의 다윗의 삶이 평생 동안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자로서 살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인생의 한 순간 그는 권력다툼에 치중한 자로 살고, 인생의 어느 한 순간은 정욕으로 쓰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은 끝까지 그와 함께 하시며 일평생을 통해 그를 변화시켜 내십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이 은총을 신뢰하고, 우리 또한 평생을 통해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 변화는 내면의 변화입니다. 내면이 완고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섬세하며 부드러워지고 맑으며 깊어져야 합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요한은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이웃들(요 9:8) 혹은 바리새파 사람들의 시선(요 9:40, 41)과, ‘육신(肉身)의 눈’만이 아닌 ‘영(靈)의 안목’을 떠가는 맹인의 시선(요 9:7, 29-38)을 비교해서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던 중 시각장애를 가진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 요 9:2
제자들의 질문은 당시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의 통념상 맹인이나 문둥병에 걸리는 것은 그 질병에 걸린 자신 혹은 부모의 죄 때문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당시 유대인들의 세계관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런 생각은 출 20:5, 34:7, 민 14:18절 등 구약성경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랍비들도 대부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전혀 다른 해석을 내려주십니다.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 요 9:3
사실 주님의 이런 해석도 우리에게 흔쾌하게 받아들여지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맹인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서 지금껏 억울하게 고통을 당해왔다는 말씀일까요? 성 요한 크리소스톰에 따르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 맹인처럼 갖가지 장애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데, 하나님께서 그 중 이 맹인을 통해 당신 일을 나타내셨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시선의 차이입니다. 맹인을 바라보는 제자들의 시선(요 9:2)과 이웃들의 시선(요 9:8)은 유대교의 통념과 세계관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낡은 통념에 갇혀있었습니다. 그래서 맹인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도, 그의 존재에 깃든 존귀함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달랐습니다. 주님의 시선은 통념에 갇히지 않았고, 따라서 영혼도 갇히지 않았습니다. 성 테오그노스토스는 이렇게 교훈합니다.만일 당신이 영적으로 거룩한 것을 보기 원한다면, 먼저 평온하고 고요한 생활을 하며, 자신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정념 때문에 요동하지 않는 영혼의 순수한 상태를 획득하면, 당신의 지성은 그 무엇의 방해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감지할 것이며, 구원의 복된 소식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성산의 성 니코도모스·고린도의 성 마카리오스/엄성옥 옮김 「필로칼리아 2」(은성출판사) 596-597쪽
예수님의 시선과 영혼이 그러했습니다. 고요한 곳을 찾아 기도하신 예수님, 하나님의 뜻에 시선을 두신 예수님, 그러하신 예수님이셨기에 맹인을 만나셨을 때, 그를 향하고 계신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을 볼 수 있었고, 회복의 복된 말씀을 주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맹인에게 다가가셔서 땅에 침을 뱉어서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발라주십니다(요 9:6). 그리고 말씀하십니다.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어라 | 요 9:7
그는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맹인이 눈을 뜨게 된 사건을 두고 마을에는 일대 소란이 벌어집니다.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요 9:8)라며 놀라워하며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를 고쳐주신 예수님을 향해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다”(요 9:16)라고 냉소적으로 말하는 바리새인도 있었습니다. 갇힌 시선은 사람을 보지 못합니다. 시선이 율법에 갇히고 어두워지니, 결국 사람의 고통에도 무감각해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서는 이날 이후로 매일매일 새로운 시선을 떠가며, 영혼이 깊고 맑고 섬세해져가는 맹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죄인으로 몰아가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고, 부모와 맹인을 차례로 불러 이렇게 요구합니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라. 우리가 알기로, 그 사람은 죄인이다.”(요 9:24 새번역). 하지만 맹인은 자기가 알게 된 한 가지 사실만으로 답변합니다.나는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 내가 아는 것은, 내가 눈이 멀었다가, 지금은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요 9:25 새번역
바리새인들이 재차 “그가 네 눈을 어떻게 뜨게 하였느냐”(요 9:26)라고 묻자 그는 천진난만하게 이렇게 대답합니다.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말하였는데, 여러분은 곧이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어찌하여 다시 들으려고 합니까? 여러분도 그분의 제자가 되려고 합니까? | 요 9:26 표준 새 번역
사람들은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너는 그 사람의 제자이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요 9:28, 29)라고 하자, 맹인은 또 이렇게 대답합니다.그분이 내 눈을 뜨게 해주셨는데도,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니, 참 이상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은 듣지 않으시지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의 뜻을 행하는 사람의 말은 들어주시는 줄을, 우리는 압니다.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의 눈을 누가 뜨게 하였다는 말은, 창세로부터 이제까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 아니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 요 9:30-33 표준 새 번역
마침내 사람들은 “죄 가운데 태어난 네가 우리를 가르치려 드느냐”(요 9:34)라며 그를 쫓아내고 맙니다. 헨리 나우웬은 단절된 인간상의 특징을 ‘마비’로 보았습니다. 가슴이 마비된 사람들은 실존적 인간들이 자아내는 불안이나 기쁨이 아닌 무관심과 권태로 가슴을 채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이봉우 역 「상처 입은 치유자」(분도출판사) 20쪽평생 맹인으로 살아온 사람이 눈을 떠 보게 되었는데, 그가 보게 된 기쁨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율법적인 옳고 그름만 따지는 이들에게 도대체 신앙이란 어떤 의미인 걸까요? 그렇게 그들은 사람을 향하는 시선이 망가져 있었던 겁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은 서서히 눈이 밝아져 가고, 정상이었던 사람들은 서서히 눈이 어두워지는 놀라운 광경을 우리가 봅니다. 영혼이 어두워지니 시선이 어두워지고, 시선이 어두워지니 행동이 어두워지는 가련한 사람들의 모습과, 시선이 밝아지니 영혼도 밝아지고, 영혼이 밝아지니 믿음이 살아나는 행복한 사람의 모습이 교차합니다. 사람들이 그를 쫓아냈다는 말을 들으신 주님께서 그를 찾아오셔서 물으십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요 9:35) 이때 그의 대답을 보십시오.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요 9:36)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이다 | 요 9:37
그리고 그는 마침내 “피스튜오 퀴리에(πιστεύω κύριε)”, 즉 “주여 내가 믿나이다”(요 9:38)라며 땅에 엎드립니다. ‘피스튜오 퀴리에(πιστεύω κύριε)’라는 표현은 완전한 신앙고백인 동시에 예배의 언어입니다. 여기에서 그의 시선은 완전해집니다. 그리고 그의 존재마저 완전해집니다. 그는 육체적인 시력을 얻었을 뿐 아니라, 영광의 주님을 알아볼 수 있는 영(靈)의 눈도 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변에 있는 바리새인들을 둘러보시며 의미 있는 말씀을 하십니다.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 요 9:39
주님의 이 말씀은 단순한 책망이 아니라 심판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택함 받은 이후 오히려 영적 맹인의 삶을 살고 만 비극적인 사람들을 향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주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스스로 본다고 착각하고 살아가던 우리가 나의 소경됨을 겸손히 인정하고 주님 앞에 엎드리는 절기입니다. 육(肉)의 눈을 감으면 영(靈)의 눈이 뜨입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은 소위 ‘본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찼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의 빛 앞에서 소경이 되었을 때, 그 날 이후로 바울은 '영의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 은총을 체험한 사도 바울이 서신서에서 이렇게 촉구합니다.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 엡 5:8, 9
전에 그들이 ‘어둠’이었다는 것은, 내면이 어두웠다는 의미이고, 그 내면의 어둠으로 인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어두웠다는 의미입니다. 자기 내면의 어두움을 본 사람만이 빛을 향해 설 것이고, 성령의 감동으로 빛의 자녀가 된 사람만이 빛의 열매로서의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삶을 살아낼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보를 ‘보며’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이 보는 것과 참으로 보는 것은 다르고, 많이 아는 것과 참으로 아는 것은 다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참으로 보고, 참으로 알게 하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그 예가 오늘 복음서의 맹인입니다. 그는 육체의 눈만 뜬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보는 영적 눈을 뜨고, “주여, 내가 믿나이다.”라는 바른 고백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시선의 탄생이고, 새로운 앎의 탄생입니다. 사순절은 보지 못하던 우리가 보게 되는 시간입니다.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의 식탁으로 나아가는데, 성찬은 우리의 눈이 열리는 식탁입니다. 엠마오의 두 제자가, 주님이 떡을 떼실 때 주님을 알아보았듯이, 우리도 이 식탁에서 그리스도를 새롭게 알아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십자가는 실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십자가는 구원의 빛입니다. 따라서 이 식탁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어가야 하겠습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Exercitatio
① 바리새인처럼 ‘본다’ 하는 교만 속에서 완고해지고 있지 않은가?
② 신앙의 시선이 맑고 깊어지며, 영혼 역시 맑고 깊어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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