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사순절 제3주 갈증에서 생명으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출 17:1-7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3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 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 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 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 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 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7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 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 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화답송(Responsorial Psalm), 시편 95편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 | 하-며
○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 | 거이 외치자
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 | 아가며
○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 노래하-자
3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 | 이시오
○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 때문이로다
4 땅의 깊은 곳이 그의 손 안에 | 있으며
○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 것이로-다
5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 | 드셨고
○ 육지도 그의 손이 | 지으셨도다
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 | 하-며
○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 무릎을 꿇자
◉ 영광이 | 성부와 ○ 성 | 자와 | 성령께 처음과 같이 | 지금도 ○ 그리고 영 | 원히 | 아-멘
서신서 | 롬 5:1-11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복음서 | 요 4:5-26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 묵상 | meditatio
① 출 17:5-6절 묵상하십시오. 물을 달라며 모세와 다투던 이스라엘 자손이 해갈을 얻은 것은 누구로 말미암은 것입니까?
② 요 4:10, 14절 묵상하십시오.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며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은 어디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까?
③ 롬 5:3, 4절 묵상하십시오. 우리가 겪는 환난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유익은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갈증에서 생명으로
생명은 항상 씨앗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작은 겨자씨 안에 아름드리 겨자나무가 숨겨있고, 작은 씨앗들 안에 울창한 숲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씨앗은 나무도 숲도 아닙니다. 씨앗은 자라야 합니다. 씨앗이 자라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자리입니다. 둘째는 시간입니다. 셋째는 물과 햇빛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씨앗은 처음부터 위로 자라지 않습니다. 먼저 아래로 뿌리를 내립니다. 땅 위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흙 속에서는 조용히 뿌리가 깊어집니다. 뿌리가 깊어질수록 나무는 더 높이 자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비는 우리의 영적 성장과도 고스란히 맞닿아 있습니다. 인간 존재 안에는 생명의 씨앗이 심겨 있습니다. 이 생명의 씨앗은 우리 삶의 ‘자리’에서, 그리고 기다림이라는 ‘시간’ 안에서 자랍니다. 하지만 내 힘으로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씨앗에 물과 햇빛이 필요하듯, 인간 존재에도 말씀의 샘물과 생명의 빛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으로 자라기 전에, 먼저 뿌리부터 깊이 내리게 하십니다. 우리가 겪는 기다림의 시간, 때로는 갇혀 있는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 존재의 뿌리를 그리스도 안으로 깊이 내리게 하십니다(골 2:7). 그런 다음 나무가 하늘을 향해 자라듯, 우리 역시 하늘을 향해 자라게 하십니다. 토머스 머튼은 이렇게 말합니다.참된 세상을 발견하는 일은 그저 우리의 외부 세계를 바라보고 관측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고유한 내적 토대를 발견하는 데 있다. 나의 가장 심오한 자아의 안, 그것은 내가 나 자신이 되게 하는 생생한 자기창조적 신비이며, 내가 나 자신이 되는 독특한 문이다.
심오한 ‘나’는 인간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내적 법칙에 따라 행동하고 존재할 수밖에 없다. 내적 법칙들은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바람처럼 움직이는 성령의 법칙들이다. 로버트 인초스티/강창헌 옮김 「토마스 머턴의 씨앗」(생활성서) 29-30쪽
우리는 오늘 성서일과 안에서 그 성령의 법칙을 따라 행동하고 존재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먼저 구약성서는 우리에게 ‘목말라 죽게 되었다’고 불평하는 광야의 히브리 자손들을 보여줍니다. 씨앗의 예로 보면 그들은 이제 막 심겨진 씨앗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아직 아름드리 나무의 영광을 모릅니다. 하지만 씨앗의 과정을 거쳐 나무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뜨겁고 목마른 광야를 내적 토대가 익어가는 자리 즉 소명의 자리로 볼 수 있어야 했습니다. 복음서에는 사마리아, 수가라는 동네에 있는 야곱의 우물로 물을 길으러 나온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과 물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서서히 존재의 뿌리를 말씀 안으로 내리고, 영적으로 고양되어 갑니다. 여인에게는 야곱의 우물이 소명의 자리였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각각의 존재가 자라고 영성이 자라는 고유한 자리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우리)를 어디에 심어 놓으셨는가?” 바로 그 자리, 때로는 광야와도 같고, 때로는 우물가와도 같은 이 소명의 자리를 소중히 여기고, 각자의 자리에서 예배와 말씀과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 안으로 뿌리를 내리고, 시간을 통과하며 영적으로 성숙해갈 때, 우리도 하늘을 향해 자라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구약의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 출 17:1
이스라엘 자손들이 신 광야에서 떠나 돕가와 알루스를 거쳐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의 일입니다(민 33:12-14). 고단한 노정(路程) 끝에 장막을 친 ‘르비딤(םידיד 레피딤)’이라는 지명은 ‘원기회복’이란 뜻으로 시내 산에 이르는 마지막 장소로 보입니다. 혹자는 이곳을 오늘날의 ‘와디 페이란(Wadi Peiran)’으로 추정하는데, 이 지역은 본래 샘과 개울이 있어서 ‘시내 산의 진주’로 불릴 만큼 물이 넉넉했지만, 히브리들이 도착했을 때는 가뭄으로 인해 물이 말라있었던 것 같습니다. 출애굽기 저자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합니다.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이 상황은 이스라엘 자손이 처한 ‘집단적 갈증’을 보여줍니다. 모든 생명의 원천이 말라버린 모래사막을 끝도 없이 걸어오며 그들이 얼마나 목이 마르고 신경이 곤두섰을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끝내 모세를 향해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17:3)라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목말라 죽게 하느냐” 이 질문의 핵심은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 것이 맞는가?” 즉 물이 아니라 하나님 현존에 대한 의심입니다. 그들의 이 언사는 마라의 쓴 물 사건(출 15:22-26)에 이어, 물로 인한 두 번째 원망이었습니다. 광야의 목마름은 그들로 하여금 번번이 ‘하나님 현존’과 ‘하나님의 전능하심(ידשׁ לא 엘 샤다이)’을 믿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을 배제하고 모세를 향해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었다”고 항의합니다. 처절한 목마름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들의 두려움과 불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세도 그것을 알기에 그들과 다투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을 택합니다.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 출 17:4
혹자는 이 장면에서 히브리들이 본질적으로 문제를 삼은 것은 물이 아니라 출애굽 자체라고 보았습니다. 영성신학자인 ‘아르투로 파올리(Arturo Paoli)’는 고독 속의 비움을 배우기 위해 사막에 갔을 때, 사막생활 초기에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 그것은 불편한 환경 때문이 아니라 사막생활의 무익함 때문이었다고 회고하면서, 그 느낌은 내면의 가장 깊은 곳까지 침식(浸蝕)해가는 듯했다고 했습니다. 출애굽한 히브리들의 내면에는 그런 갈증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비록 노예였지만, 노동의 치열함과 생산의 보람을 잘 아는 그들입니다. 하지만 지금 처해진 사막은 지극히 수동적인 장소였고, 그 어느 것도 생산할 수 없는 환경에서 그들은 스스로 침식되고 있다고 느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 그들에게는 진정으로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고,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사막일기’에서 아르투로 파올리는 ‘베른하르트 벨테’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말합니다.이 세상의 여러 한계 상황에 직면했을 때, 생사의 기로에 섰을 때, 마치 텅 빔처럼 여겨질 수 있는 하나님의 부재와 침묵을 견디어낸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그런데 그런 한계 상황에서는, 예수께서 지니셨던 비전을 지닐 필요가 있다. 그분은 우리를 근심에 빠뜨리는 고통 저 너머에서 “이것을 믿어라. 너희는 행복하다.”라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신다. 아르투로 파올리/최현식 옮김 「사막일기」(보누스) 79쪽
‘텅 빔’의 자리이고 ‘하나님의 부재와 침묵’의 자리로 여겨졌던 사막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같은 비전을 지닐 수 있다면, 사막은 더 이상 어두운 심연(深淵)이 아니라 영성 발현의 장소이자 소명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라고 하십니다(출 17:5). 그리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십니다(출 17:6). 이들은 반석에서 솟아난 물을 마시면서 다시 한 번 생명의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이 반석은 신약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상징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라”(고전 10:4). 하나님은 그들이 해갈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단지 육신의 해갈만이 아닌 영적 해갈을 경험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자라는 과정에 차원이 있듯, 영적으로 자라가는 과정에도 차원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즉 ‘영적 자람’이란 하나님을 아는 차원의 성장과 성숙을 이루는 것입니다. 히브리 노예들이 처음 자유인이 되어 광야로 나올 때는 애굽 땅에서 자기들을 호령하던 지배자들처럼, 자기들도 어서 강대한 제국을 이루어 많은 노예를 거느리고 호령하고 싶은 속된 갈망을 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참으로 원하신 것은 그런 갈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40년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 들어갈 즈음 성숙하게 변화되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마 4:4)임을 온 천하에 증명하는 민족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갈망을 아십니다. 그리고 그 갈망을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갈망이 삶을 성실과 행동으로 이끄는 에너지임을 하나님께서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처음 갈망은 속되고 육체적입니다.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거기에 멈추어있지 않는 것입니다. 방향을 하나님께 두고 예배와 말씀과 기도를 통해 반석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며 점차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속된 갈망의 껍질들이 하나씩 벗겨지며 마침내 그리스도인의 완전에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서에 나오는 여인을 보십시오.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 요 4:6-8
예수님과 수가(Sychar) 성의 여인이 야곱의 샘에서 대화를 나눕니다. 이 대화의 흐름을 주목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우물의 물을 달라고 하시며 대화가 시작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예수님의 이 요청에 대해 여자의 믿음에 목마르셨기 때문이라고 했고, 토리노의 막시무스는 예수님께서 물을 청하신 것은 온 세상의 구원에 목마르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놀랍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요 4:9a)라며 퉁명스럽게 쏘아부칩니다. 요한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에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았기 때문에(요 4:9b), 예수님을 향한 여인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개의치 않고 계속 대화를 이어가십니다.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 요 4:10
예수님께서는 대화의 주제를 계속 ‘물’에 두시면서도 대화의 방향을 ‘그’ 즉 ‘당신’에게로 이끌어가십니다. 예수님은 여인 안에 있는 갈증을 보셨습니다. 그녀의 갈증은 깊었고, 야곱의 우물만으로는 해갈할 수 없는 존재의 공허에 닿아 있었습니다. 그 공허를 해결하려고 다섯 남자와 결혼했지만 번번이 관계는 깨졌고, 지금은 사회적 고립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 요 4:11-15
여인은 좀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채 팽팽하게 평행선을 이룹니다. 예수께서 ‘영(靈)의 음료로서의 생수’를 말씀하시면, 여인은 ‘육(肉)의 음료로서의 우물물’로 대답하고, 예수께서 “내가 너에게 샘물을 주겠다”고 말씀하시면 여인은 “당신은 두레박도 없지 않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런데 이 대화에서 결정적인 반전이 일어나는 시점을 주목해야 합니다.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 요 4:16-17
저 옛날 광야에서 부르짖던 히브리들의 집단적 갈증과, 해소되지 않는 목마름으로 남자들의 품을 떠돌던 여인의 개인적 갈증은, 그것을 육신의 갈증으로만 여겼다는 점, 그리고 우물물만으로는 해갈할 수 없다는 점에서 본질상 같은 것이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광야에 있던 히브리들의 갈증이 생존의 갈증이었다면, 우물가에 있던 여인의 갈증은 존재의 갈증이었습니다. 히브리들은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갈증 속에 있었고, 여인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갈증 속에 있었습니다. 결국 인간의 모든 갈증은 하나님을 향한 갈증입니다. 그리고 그 갈증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해갈됩니다. 광야 히브리들의 갈증은 표면적으로는 ‘물의 갈증’이었지만, 실제 질문은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의 갈증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표면적으로는 ‘물’을 문제 삼았지만, 내면 깊은 곳에 존재의 갈증‘이 타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문제를 ‘살아가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모른다’는 것에서 찾습니다. 쉐렌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는 인간을 ‘자기 자신이 되려고 애쓰지만,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는 존재’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늘 결핍과 갈증 속에 있고, 절망이라는 깊은 병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결핍과 갈증의 원인을 ‘존재의 근원에서 멀어진 것’에서 찾습니다. 사람은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돈이나 성공이나 사랑을 붙잡으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인간의 깊은 갈증을 완전히 채워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마치 물을 마셔도 다시 목마른 사람처럼 끊임없는 갈망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결핍과 갈증의 자리에서 모든 인간은 어떤 사건을 통해 자기 자신을 깨닫는 순간을 경험하는데, 그것을 실존주의 철학은 ‘실존적 각성’, ‘존재의 깨어남’이라고 부르고, 실존주의 신학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궁극적인 관심사(Ultimate Concern)’인 ‘존재자체(being-itself)’인 신(神)과의 만남에서 찾았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존재의 깨어남을 경험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이 한 마디가 여인의 숨겨진 존재를 드러나게 했습니다. 여인은 그때 처음으로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봅니다. 지금껏 다섯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사막보다 더한 갈증이 자신을 타들어가게 했었습니다. 그 혼란의 정곡(正鵠)을 직시하게 하신 예수님께 여인은 경외감을 느끼며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껏 그토록 길어올려도 갈증만 더하게 했던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뛰어가 마을 사람들에게 외칩니다.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 요 4:29
이 여인이 갈증의 자리에서 더 높은 차원의 깨달음을 향해 자라가는 과정을 보십시오. 처음에 여인은 예수님을, 율법을 어기고 사마리아 여자인 자기에게 말을 걸어오는 타락한 유대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생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까지도 그녀는 우물물 이상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갈증은 그녀를 대화에 몰입하게 했고, 주님 말씀이 그녀 안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되었을 때(요 4:14), 그녀를 해갈(解渴)의 감격을 넘어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야곱의 우물가에 떨어진 씨앗이었고, 점차 말씀에 뿌리를 내리면서 예수님을 선지자로, 그리고 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요 4:29). 사람의 눈을 피해 고립된 삶을 살던 여인이 사람들을 향해 달려가며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갈증과,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마음, 혹은 때때로 겪는 고난과 힘겨움을 우리는, 나의 내면에 영적 씨앗이 심어지는 자리, 주님께서 나를 찾아와 부르시는 소명의 자리로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시간을 통과하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롬 5:3, 4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공허함으로 사방에서 벽을 느끼고, 해결되지 않는 환난과 고난이 때때로 우리를 괴롭히지만, 그러나 매일 겪는 갈증이나 때때로 겪는 환난은 오히려 우리 삶의 에너지가 되고, 인내와 연단과 소망이 되어 우리를 차근차근 자라게 합니다. 광야의 갈증도, 우물가의 갈증도, 인간 존재의 갈증도 결국 하나님을 향한 갈증이며, 그 갈증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성찬은 그리스도의 샘물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성만찬 식탁에서 우리는 갈증의 종결을 경험합니다. 출애굽한 히브리들의 목마름은, 모세가 반석을 쳤을 때, 터져나온 물(출 17:6)로 해갈되었습니다. 수가성 여인의 목마름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해갈되었습니다. 주님과의 대화를 통해 그녀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요 4:14)을 맛보게 됩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옆구리가 열렸을 때, 피와 물이 흘러나왔습니다. 교부들은 말했습니다. ‘그 물과 피는 교회의 성례’라고. 그래서 우리는 오늘 성찬의 자리에서 광야의 물보다 깊은 물, 우물의 물보다 생명 깊은 물을 마십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우리는 빵과 잔을 받으며 다시 한 번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의 목마름은 주님 안에서만 해갈됩니다.” 나무가 자기 자리에서, 시간을 통과하며 뿌리를 땅속으로 내리고 하늘을 향해 자라가듯, 우리 역시 사순절 광야에서, 말씀의 우물에서, 성찬의 식탁에서 뜨겁게 예수님을 만나고, 예배와 말씀묵상과 기도를 통해 아름드리 신앙의 나무로 자라가기를 소망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Exercitatio
① 그리스도 밖에서 해갈을 얻으려 몸부림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② 예배와 말씀과 기도 안에 머물며 참된 해갈을 경험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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