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사순절 제1주 부활절이 목적지인 영적 여행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창 2:15-17, 3:1-7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 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 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응송 | 시 32
1 복되어라, 거역한 죄 용서받고 죄허물 벗겨 | 진-자,
○ 주님께서 잘못을 묻지 않고 마음에 거 | 짓이 | 없는 자.
2 나 아뢰옵지 않으렸더니 온종일 신음 속에 뼈만 녹 | 아나고
○ 당신 손이 나를 짓눌러 진액이 다 마르고 | 말았습니다.
3 그리하여 당신께 내 죄를 고백하 | 였더니,
○ 내 잘못 내 죄를 용서 | 하셨습니다.
4 당신을 굳게 믿는 자 어려울 때에 기도하 | 리이다.
○ 고난이 물결처럼 밀어 닥쳐도, 그에게는 미치지 | 못하 | 리이다.
5 당신은 나에게 은신처, 내가 곤경에 빠 | 졌을 때
○ 건져 주시어 구원의 노래 속에 묻히게 | 하셨습니다.
6 나는 너를 가르쳐 네 갈길을 배우 | 게 하고
○ 너를 눈여겨 보며 이 | 끌어주리라.
◉ 영광이 | 성부와 ○ 성 | 자와 | 성령께 처음과 같이 | 지금도
○ 그리고 영 | 원히 | 아-멘
서신 | 롬 5:12-19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 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노릇 하 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복음 | 마 4:1-11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 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 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 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 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창 2:5, 6절 묵상하십시오. 마귀의 유혹을 받고 동산중앙의 나무를 다시 보았을 때, 그 나무가 어떻게 보였습니까?
② 마 4:4, 7, 10절 묵상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어떤 표현을 반복하고 계시며 그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③ 롬 5:19절 묵상하십시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과,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나타난 결과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부활절이 목적지인 영적 여행
지난 성회수요일 재의 예식을 치르며 40일 사순절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한 해의 교회력에 있어서 이 사순절은 매우 중요하고 의미 깊은 시기입니다. 그 이유는 사순절이 우리의 내면을 성찰하며 영적 투쟁을 벌이는 시기여서 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 시기가 부활을 향해 가는 생명의 순례인 까닭입니다. 전례학자인 알렉산더 슈메만은 사순절에 대해 ‘부활절이 목적지인 영적 여행’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절이 목적지인 이 영적여행을 하면서 예수적 삶으로의 ‘건너감’을 이룰 뿐 아니라, 자기 영혼의 참된 파스카를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사순절은 나를 괴롭게 하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부활로 데려가는 ‘기쁨의 시간’입니다.많은 사람이 자기 행복을 위해 탐닉(耽溺)을 선택합니다. 부와 권력을 탐닉하고, 지위와 명예를 탐닉하고, 산더미 같은 음식과 성적 만족 등을 탐닉합니다. 그러나 이런 탐닉들은 기대감을 만들어 내지만, 대개는 만족이 아닌 갈망에 그쳐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인간의 그칠 줄 모르는 탐닉은 오히려 현대사회 저변에 흐르는 부질없음과 상실감을 설명해 주는 가장 적절한 단어일 것입니다. 행복이란 우리가 그리스도의 상태 즉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신 예수님을 따라 예수적 삶을 살 때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러한 삶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우리 감각과 욕망이 정화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감각의 억압’이 아닌 ‘질서의 회복’입니다. 감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분 삶을 따르고 있을 때,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해 눈으로 보는 탐닉을 줄이고, 귀로 듣는 탐닉을 줄이고, 코로 맡는 탐닉을 줄이고, 혀로 맛보고 먹는 탐닉을 줄이고, 손으로 만지는 촉감의 탐닉을 줄이고, 느낌에 매달리는 탐닉을 줄일 수 있을 때, 그렇게 여섯 가지 감각과 욕망들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스릴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들끓는 자아를 진정시키고 내면의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생각처럼 쉽다면 우리에게 무슨 고민이 있겠습니까? 토머스 머튼이 쓴 ‘칠층산’을 읽다 보면 케임브리지 시절 자신의 과오를 회고합니다. 그는 쾌락과 향락에 탐닉하며, 자신을 채운답시고 한 일이 오히려 자신을 텅 비게 했고, 사물을 움켜잡는다는 것이 만사를 잃게 했다고 했습니다. 토머스 머튼/정진석 「칠층산」(바오로 딸) 351쪽
다행히 그는 자신에 대해 절망할 수록 인간 본성은 그 자체로는 자신의 가장 중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가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에 갈등 중에 한 말이 그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성인들은 자기 죄악이 회상될 경우, 그 죄악을 기억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비를 기억한다. 따라서 과거에 범한 죄악까지 현재 기쁨의 원인으로 변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데 이바지한다. 위의 책 605쪽
그는 쾌락을 움켜잡았지만 결국 자신을 잃어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그리고 자신에 대해 절망할수록 하나님의 자비에 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거룩한 사부인 시리아의 성 에프렘도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주여, 먼지 속에 누워 있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주소서. 나는 일어나고 싶사오나, 그럴 수가 없나이다. 무거운 죄 짐이 나를 내리 누르고, 악습의 사슬이 나를 땅에 묶어 버렸으니, 나는 반신불수와 같이 되었나이다. 내 길을 바꾸겠다고 맹세하지만, 금세 모든 것은 제 자리로 돌아가나이다. 입술로는 주님을 열렬히 찬양하지만, 행동으로는 당신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하나이다. 죄에 대한 애착을 버릴 마음이 없으면서도 얼마나 뻔뻔하게 나는 지난 죄를 용서해 달라고 청하나이까? 죄의 매력에 대한 욕망을 끊지 않고서 어떻게 옛 사람을 벗어버리오리까? 오, 인간을 사랑하시는 분이여 나를 울게 하소서. 성 에프렘/박효섭 옮김 「성 에프렘의 시편기도」(카리스마타 코이노니아) 119쪽
우리가 사순절을 맞아 하나님 앞에 앉아 자신의 내면을 냉철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에 있습니다. 때를 불문하고 나를 유혹하는 죄의 매력들,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것들을 따라 요동하는 우리 마음과 감각과 탐닉을 직시하며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서일과는 예외 없이 우리에게 유혹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아담과 하와를 찾아온 유혹을 보여주고,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직면했던 유혹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서신서에서 바울은 그 유혹들의 결과를 분석해서 보여줍니다. 먼저 구약성경이 들려주는 유혹의 이야기는 태초의 인간이 직면했던 유혹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 창 3:1-7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숨을 불어넣으셨다”(창 2:7) 그리고 “그를 에덴동산에 두셨다”(창 2:8)는 말씀을 곰곰이 묵상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애틋하게 느껴집니다. 사람의 몸에 숨결로 당신 생명을 불어넣으시고, 동산에서 열매 맺는 나무들과(창 1:29) 동물들과 푸른 풀을 가꾸며(창 1:30) 행복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애틋한 사랑은 사람에 의해 무질러졌고, 땅은 황폐해졌으며, 이후로 세상에는 많은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질병과 죽음의 고통이 찾아왔고, 경제적 불평등의 고통이 찾아왔고, 생각과 지식과 감각이 다변화하며 분노와 우울증 등 심리적 병증을 앓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우리는 이 무간지옥(無間地獄)이 인류가 하나님에게서 너무 멀리 이탈해 버린 표지임을 깨닫습니다. 고통의 시작은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이었습니다. 그 단 한 번의 불순종이 그만 고통과 죽음이 세상에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준 것입니다. 그들을 불순종에 빠지게 한 뱀의 유혹은 사실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라며 뱀은 단지 말씀을 의심하게 하는 작은 틈새를 만들어줬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이 동산에 있는 나무열매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따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열매만은 따먹지 마라”(창 2:16, 17 공동번역)였습니다. 사람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위해 동산 안에 준비해두신 사랑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깊이 신뢰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나무열매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그 점에 대해 사탄과 토론을 벌였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율리아누스 반박’에서 사탄이 “너희가 신들처럼 될 것이다”(창 3:5) 라고 했을 때, 그들의 영혼이 반항하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처럼 선과 악의 기준을 판단하는 주체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지 사람의 일이 아니라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 담긴 뜻입니다. 말씀에 대한 불순종은 그들에게 그들이 탐닉한 것을 가져다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신(神)이 되기를 꿈꾸었지만, 그러나 그 교만은 자신들뿐 아니라 후손까지 고통으로 이끌고 말았습니다. 눈은 밝아졌지만 마음은 어두워졌습니다. 수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외 없이 그들처럼 죄를 짓습니다. 그럼으로써 자신 뿐 아니라 인류의 고통을 가중시킵니다. 아담과 하와의 어리석음을 책망하면서도 정작 그들의 어리석음을 내가 되풀이하며 자신을 책망하는 것은 잊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에 보면 그 사탄이 이번에는 두 번째 아담인 예수님을 찾아갑니다.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 마 4:1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광야로 가신 이유를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였다고 전해줍니다. 예수님을 마귀에게로 이끄신 분은 놀랍게도 성령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을 때, 비둘기같이 예수님 위에 임하셨던(마 3:16) 성령께서, 바로 이어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게 하셨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우리는 성령께서 예수님을 시험의 장소로 이끄신 그 진의(眞意)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죄는 사람을 발가벗기고 무력하게 해서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죄는 하나님을 볼 수 없게 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사람은 죄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힘을 잃은 채 홀로 남겨져 죄의 구렁텅이로 더 깊게 빠져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극단적인 소외(疏外)에 처해진 사람을 그 구렁텅이에서 끌어내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스스로 시험의 장소로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겉모습만으로 시험을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사탄 역시 겉모습으로 예수님을 시험한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받은 시험은 아버지의 계획에 맞서라는 것이었습니다.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 마 4:2, 3
마귀는 예수님께 아버지가 정해놓으신 방법과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구원하라고 부추깁니다. 이 유혹은 아담과 하와가 받은 유혹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유혹은 오늘날에도 계속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마다 마귀는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따르기보다 우리 방식대로 하라고 꼬드깁니다. 그 ‘우리 방식’이란 다름 아닌, 세상이 다 알고, 세상 사람들이 다 사용하는 ‘쉬운 방식’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말씀보다 하나님의 뜻보다 세상의 방법을 선호합니다. 기도하고 인내하며 정도를 걷기보다, 모색하고 타협하며 쉬운 길로 갑니다. 하지만 그것은 주님과 다른 길입니다. 40일 동안 금식하셔서 주리신 분께 돌들을 떡으로 만들라는 유혹보다 더 먹음직도 보암직도 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 마 4:4
예수님은 마귀에게 다른 기준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떡'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 고백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합니다. 돌을 떡으로 바꾸는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말씀으로 살아가는 신실함이라는 것입니다. 마귀의 두 번째 유혹이 이어집니다.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 마 4:5, 6
마귀는 마치 율법과 선지자들을 내려다보게 하듯, 예수님을 거룩한 성전의 꼭대기에 서게 하십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인 시 91:11, 12절을 들어 네가 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릴 때,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시켜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고 말합니다. 그는 성경 말씀의 본 뜻을 왜곡하고 사람들에게 흔한 영웅심리를 부추겨 예수님의 마음을 유혹했습니다. 예수님은 즉시 신 6:16절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신 말씀도 성경에 있다고 일러주십니다. 왜 예수님은 마귀의 의도를 알고 계시면서 마귀의 요구를 따라 행동하시는 것일까요? 우리에게 ‘기적’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시험을 이겨야 함을 가르쳐주시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마귀는 예수님께 화려한 세상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말합니다.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 마 4:9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자기를 강화하고 남을 지배하고 싶어 하는 권력에의 의지를 인간의 기본적 충동이라고 보았습니다. 즉 니체의 관점에서 보면 마귀는 마지막으로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권력에의 의지를 자극해 예수를 자기에게 속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실제 권력을 얻기 위해 더 큰 권력에 절하는 이들을 볼 때, 권력이 마귀의 질서에 속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보면 마귀와 제휴한 권력은 반드시 국민을 억압했었습니다. 마지막 유혹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물리치셨는지 이미 여러분은 다 알고 계십니다.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 마 4:10
예수님의 세 가지 대답의 특징을 보십시오. 첫 번째 대답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이고, 두 번째 대답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것이고, 세 번째 대답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대답이 40일 동안 이어진 광야의 금식 끝에 나온 것임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마귀는 길을 바꾸라고 유혹했지만, 예수님은 아버지의 길을 지키셨습니다. 에덴에서 아담은 말씀을 의심했지만, 광야에서 예수님은 말씀을 붙드셨습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과 대비되는 예수님의 그 순종에 대해 이렇게 증언합니다.아담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왕노릇 하게 되었다면,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합니다 | 롬 5:17 새 번역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판정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판정을 받을 것입니다 | 롬 5:19 새 번역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이 증언을 통해 에덴에서 실패한 인간상을 완벽하게 극복하고 광야에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봅니다. 에덴에서 아담은 탐닉에 빠져 불순종을 범했고, 광야에서 예수님은 말씀으로 탐닉의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유혹을 물리치신 이 광야가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서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에덴을 잃어버린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을 들고 유혹을 물리치셨던 광야를 나의 신앙을 숙성시킬 수련장으로 여겨야 합니다. 지난 성회수요일에 우리는, 이마에 재를 바르며 ‘사람은 흙으로부터 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며 사순절 광야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흙으로부터 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나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자신의 삶의 끝을 직시하는 오래된 훈련입니다. 다시 광야에 선 존재인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일까요? 첫 사람 아담처럼 탐심과 교만과 불순종의 길을 걷는 사람일까요?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님처럼 말씀을 따라 겸손과 생명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일까요? 메멘토 모리는 궁극적인 의미로 보면, 죽음만을 기억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죽음 앞에 선 존재로서 살아내야 할 참되고 본 된 삶을 성찰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사순절은 우리 죽음을 직시하며 영적 투쟁을 벌이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부활을 향해 가는 생명의 순례’ 즉 ‘부활절이 목적지인 영적여행’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이 서 계시던 광야에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것은 매우 감격스러운 일입니다.광야에서 마귀는 돌을 떡으로 만들라 했지만, 예수님은 돌을 떡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당신 몸을 떡으로 내어주심으로 ‘찰나의 생명을 위한 떡’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위한 떡’을 먹게 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시험을 이겨낸 그 순종이 성찬의 떡이 되었고, 주님은 당신의 살과 피를 받을 때마다 당신을 기념하라 하셨기에 우리가 주일마다 함께 나누는 성찬은 순종과 생명의 식탁입니다. 오늘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한 사람의 순종’은 성찬의 식탁에서 오늘의 사건으로 재현되고 있으며, 우리는 성찬을 통해 둘째 아담의 순종에 참여합니다. 그 순종을 통해 무질서한 감각과 욕망이 질서를 되찾는데, 사순절은 그 훈련이 이어지는 광야의 여정이라 하겠습니다. 이 광야의 여정은 내가 나를 구할 수 없음을 조용히 인정하는 여정이고, 죄책감이 아닌 순종을 배우는 여정입니다. 이 광야의 시간은 욕망을 미워하는 시간이 아니라 질서를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내 눈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내 귀가 무엇을 듣고 있는지, 내 마음이 무엇을 붙들고 있는지 조용히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생명의 길 위에 서 있습니다. 광야는 끝이 아닙니다. 광야는 부활로 가는 길입니다. 부디 부활이 목적지인 이 영적여행을 하는 동안 우리 내면이 정화되고 질서를 회복할 뿐 아니라, 예수적 삶으로의 ‘건너감’을 통해 자기영혼의 참된 파스카를 꼭 이루기를 소망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Exercitatio
① 탐닉에 빠져 부질없음과 상실감으로 살아가지 않는가?
② 말씀에 순종하며 부활을 향한 영적여행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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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후제1주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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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5.1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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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제4주 굳게 믿지 아니하면 굳게 서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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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5.1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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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제3주 믿음이 있는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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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5.1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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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제2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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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5.1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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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제1주 대림절의 영성,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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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5.12.0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