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주현 후 마지막 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출 24:12-18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 판을 네게 주리라 13 모세가 그의 부하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모세가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14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라 아론과 훌이 너희와 함께 하리니 무릇 일이 있는 자는 그 들에게로 나아갈지니라 하고 15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16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 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17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같이 보였고 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응송 | 시 99
1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 것이요
○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 것이로 - 다
2 시온에 계시는 여호와는 위대 | 하시고
○모든 민족보다 | 높으시도다
3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 | 할지니
○그는 거룩 | 하심이로다
4 능력 있는 왕은 정의를 사랑하 | 느니라
○주께서 공의를 견고하게 세우시고 행 | 하시나이다
5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의 발등상 |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 | 하시도 - 다
6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 | 할지어 - 다
◉ 영광이 | 성부와 ○ 성 | 자와 | 성령께 처음과 같이 | 지금도
○ 그리고 영 | 원히 | 아-멘
서신 | 벧후 1:16-21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 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 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복음 | 마 17:1-8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 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 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 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 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 하지 말라 하시니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 더라
■ 묵상 | meditatio
① 출 24:12, 18절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곳과 하나 님의 영광이 맹렬한 불 같이 보인 곳은 어디입니까?
② 마 17:4, 5절 묵상하십시오. 베드로가 현상에만 취해 있을 때, 하나 님께서 구름 속에서 그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③ 벧후 1:16-18절 묵상하십시오. 베드로가 ‘친히 본 것’(16절)은 무엇 이고, ‘친히 들은 것’(18절)은 무엇이었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교회력으로 주현시기의 마지막 주일이면서 동시에 예수님의 산상변화주일이기도 한 오늘 성서일과는 우리를 산(山)으로 이끌어올립니다. 여기에서의 산은 도피의 장소가 아니라, 다시 삶의 자리로 내려오기 위해 하나님의 빛을 받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모세도, 예수님도 제자들도 산에 오릅니다. 구약성경은 모세가 시내산을 오르는 모습을(출 24:15-18),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시는 모습을(마 17:1-8) 보여줍니다. 희랍 교부들은 종종 안개가 낀 산에 오르는 것을 하나님 현존 앞에 서기 위한 구도자적 행동으로 묘사하곤 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오른 것도, 엘리야가 호렙산에 오른 것도 하나님 현존 앞에 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시 121:1) 라고 묻던 히브리 시인의 노래도 같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먼저 오늘 구약성경에서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서서, 십계명이 새겨진 돌 판을 받는 장면은, 산이라는 비일상적인 장소를 매개로 하나님과 인간이 만났다는 측면에서, 깊은 신앙적 의미를 부여해주고 있습니다.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 출 24:15, 16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머무르고”에서 ‘머무르고’를 뜻하는 히브리어 ‘샤칸(ןכשׁ)’은 ‘거주하다’, ‘정착하다’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분이 아닌, 당신의 백성을 떠나지 않고 ‘함께 머무르는 분’이심을 이 한 문장이 잘 보여주고 있다 하겠습니다. 그렇게 백성들의 시선 가운데 머물러 계시며 그들과 언약도 체결하신 하나님께서 어느 날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십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산 아래 남겨둔 채 여호수아만 데리고 시내산을 오르더니, 산의 어느 지점에서는 여호수아마저 남겨둔 채, 하나님 영광이 드리운 구름 속으로 들어갑니다. 백성에게서는 점점 멀어지지만 그러나 하나님께로 점점 가까이 가는, 모세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 보십시오.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 출 24:17, 18
여기 하나님의 현현(顯現)이 ‘여호와의 영광’이라는 표현으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광은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과 ‘구름’으로 형상화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목격한 시내산 정상에서 보이는 맹렬한 불은 산꼭대기를 거룩한 장소로 인식하도록 만들고, 구름이 그 산꼭대기를 가리는 것 역시 하나님 현현의 신비를 극대화해줍니다. 특별히 구약성경의 말씀 가운데 15-18절은 바벨론 포로시기에 제사장문서 즉 ‘P문서 계열’의 저자들이 삽입한 구절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현현 장면을 창세기의 천지창조 장면과 오버랩 시키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세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사십 일 사십 야를 홀로 지냈다는 사실입니다. 40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시험과 수련의 기간’을 상징합니다. 모세는 백성들과 완전히 격리된 40일 동안 맹렬한 불과 구름이 자신을 감싼 상태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돌 판에 기록된 계명과 율법의 의미를 상세하게 배웠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증언도 구약성서와 매우 비슷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 마 17:1, 2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전 생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 오르셔서,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고, 옷이 빛처럼 희어진 장면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십계명을 받고(출 24:8-18) 산에서 내려올 때, 그 얼굴에 광채가 났던 사실을 연상하게 합니다(출 34:29). 모스크바의 트레차코프 미술관에 있는 페오판 그릭의 ‘예수 변모’라는 이콘이 있습니다. 1403년의 작품입니다. 이 이콘은 예수님의 변모의 빛과, 그 빛 앞에서 무너지는 제자들을 한 화폭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세상의 네 방향을 가리키는 사각형 두 개가 포개어져서 있는 후광 속에 변모하신 주님이 서 계시고, 예수님의 양쪽 곁으로는 돌 판을 손에 든 모세와 엘리야가 서 있습니다. 대개 초기의 이콘들은 예수님의 발이 공중에 떠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후대에 와서는 바위 위에 서 계신 모습으로 주로 그려집니다. 산허리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이끌고 산을 오르고 계시고, 그 반대편에는 그 제자들과 하산하시면서 산 위에서 본 것을 다른 이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계십니다. 중앙 하단에는 베드로가 초막을 짓겠다고 말하고 있고, 야고보와 요한은 겁에 질려 넘어져 있습니다. 장긍선 「이콘-신비의 미」(기쁜소식) 168쪽 참고우리의 상황은 예수님을 따라 나선 제자들의 영적 여정과 같습니다. 이 여정은 달력의 날짜로도 셀 수 없고 시계의 시간으로도 측정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여정은 시간을 초월한 영원 안에서의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변모(變貌)는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는 시간 안에서의 영원의 순간들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 순간이 제자들에게는 오히려 위기일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선과 제자들의 시선이 다르고, 예수님의 지향과 제자들의 지향이 다르고, 예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메시아상과 제자들이 기대하는 메시아상이 다른 한, 이 따름은 그저 갈등과 번민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이끌고 오르신 높은 산을 두고 헤르몬산이라거나, 타볼산, 혹은 에벨 에르묵 등등 여러 추측들이 있지만, 어느 산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높은 산은 ‘장소’로서의 산 보다도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선 상태’에 대한 은유(隱喩)로 쓰일 때가 더 많습니다. 제자들은 산에 올라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서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비로소 목격한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산 위에서 깊은 침묵 속에 계셨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문득 제자들의 시선에 뜨인 예수님의 얼굴이 해와 같이 빛이 났고 옷은 빛과 같이 눈부셨습니다. 마태의 기록을 꼼꼼히 읽어보면 이 상황은 제자들을 위해 준비된 것일 수 있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그들 앞에서’ 변형되셨다는 것은 제자들이 체험을 통해 확신을 갖도록 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준비하신 계시적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앞 장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렀을 때, 있었던 일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고백해서 주님께 큰 칭찬을 들었던 베드로가, 그 칭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마 16:23a)라고 모진 꾸중을 들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마 16:23b).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그 베드로가 여전히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있음을 모세와 엘리야의 출현에 대한 그의 반응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 마 17:3
모세와 엘리야의 출현에 대해서 성 요한 크리소스톰은 ‘이들은 예수님의 감추어진 비밀을 계시 받은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 감추어진 비밀이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었습니다. 누가의 증언에 의하면 이때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나눈 대화는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에 대한 것이었습니다(눅 9:31). 모두 아시듯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예언을 대표하는 선지자입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님의 별세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절정이 된다는 것이고, 따라서 예수님은 모세와 예언자들이 고대한 메시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구약 성경을 대표하는 분들이 만나 그 중대한 대화를 나누던 순간, 베드로가 하는 말이 이랬습니다.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 마 17:4
베드로의 이 말에 대해 히에로니무스는 마태복음 주해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베드로여, 그대는 다른 복음사가가 증언하듯 길을 잃었군요. 그대는 그대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있소. 초막 셋을 짓겠다는 생각을 거두시오. 율법과 예언서의 말씀을 두루 담을 복음의 초막만을 추구하시오. 만리오 시모네티 엮음/노성기 옮김 「교부들의 성경주해 신약성경 I」 (분도출판사) 125쪽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로 이해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 산 위에서의 베드로의 체험이 그의 예수 이해의 변곡점이 되어야 하겠기에 예수님은 그를 데리고 산을 오르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황홀한 ‘현상’ 안에 머무르고 싶어 했지만, 주님은 그가 ‘말씀’이라는 본질적 가치에 집중하기를 요청하십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 마 17:5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을 때, 오늘과 비슷한 현상이 있었습니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그 때는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예수님 위에 임하셨는데, 오늘은 성령이 아닌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들려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하늘로부터 들려온 ‘말씀’은 그 때나 오늘이나 놀랍게도 똑같습니다.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 마 3:17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 마 17:5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변모하신 후 들려온 하늘의 소리에는 한 마디가 더 추가되었습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입니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을 겪으면서 복음서 기자들이 내리게 되는 결론은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 그 진실에 대한 인식과 경험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왜 그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인식하게 해줍니다. 오늘 산 위에서의 변모 사건은 그 동안 등경 아래 감추어져 있던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빛이, 등경 위로 떠올라 얼굴과 옷에서 비친 사건이었습니다. 안에서부터 밖으로 새어 나오는 빛, 하나님이신 존재로부터 방사되는 빛, 그 빛은 태초에 어둠을 가르던 바로 그 빛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산상 변화주일은 6세기 이후로 시작되었는데, 해마다 변화주일이 오면 교부들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하나님이신 그리스도여, 주는 산에서 변모하시어 제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영광을 나타내셨도다. 우리 죄인들에게도 영원한 빛을 비추시는 이여, 주께 영화로다. 예수님 변화주일 ‘아뽈리띠끼온(Apolytikion)’ 중 ☞아뽈리띠끼온, 비잔틴 성가의 마감기도 혹은 파견 축복송
그 동안 감추어져 있던 빛이 마침내 드러난 주님의 변모 사건은 노자의 도덕경 56장과도 잘 어울립니다.
화기광(和其光) 하여, 동기진(同其塵) 하니, 시위현동(是謂玄同)이라. 즉 참다운 지혜자는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고, 엉킴을 풀며, 빛이 튀지 않도록 하여 티끌과 하나가 되니, 이를 ‘현동(玄同)’ 즉 ‘그윽한 하나 됨’이라 한다. 도올 김용옥 「노자가 옳았다」(통나무) 386-387쪽
‘빛을 감춘 빛’이라는 도덕경의 이 역설적인 한 문장에서 우리는 ‘복음의 그림자’를 봅니다. 훗날 사도 바울은, 자신의 빛을 감추고 티끌인 사람들과 하나 되신 예수님의 ‘현동(玄同)’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절). 제자들은 산 위에 올라서야 비로소 그 동안 감추어져 있던 예수님의 빛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와서 자기 빛을 감추고 속세의 티끌과 함께 하신 생명의 빛이셨고, 참 빛(요 1:9)이셨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산 위에서, 그리고 산 아래에 내려와서도 그의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감격스럽게도 산 위에서 그 빛을 본 베드로가 훗날 자신이 쓴 편지에 기막힌 고백을 남깁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알려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강림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꾸며낸 신화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를 우리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분은 분명히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영예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것은 최고의 영광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그분을 가리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고 말씀하시는 음성이 들려왔을 때의 일입니다. 우리는 그 거룩한 산에서 그분과 함께 있었으므로 하늘에서 들려오는 그 음성을 직접 들었습니다. | 벧후 1:16-18 공동번역
자신이 산 위에서 목격한 진실을, 때로는 추억을 더듬듯, 때로는 여전한 황홀함 속에서,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며 증언하는 베드로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베드로는 왜 그 날, 자기와 다른 제자들이 보았던 장면을 이렇듯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증언을 하려는 것일까요? 모세가 산(山)에 올라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서고, 예수님이 산에 올라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서고, 자신들도 예수님을 따라 산에 올라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섰을 때, 그 때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과 그 분 음성을 들을 수 있었듯이, 자신의 증언을 듣는 모든 사람도 신앙과 수련의 산에 올라 주님의 영광을 보아야만 비로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산에서 목격한 예수님의 변모는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들이 꿈꾸어야 할 우리 신앙생활의 목적이어야 합니다. 티끌에서 와 티끌로 돌아가야 할 인간이 주님 안에서 빛나는 존재로 변화할 것을 주님은 우리에게 황홀하게 보여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는 그 거룩한 산 위에서 주님과 함께 있을 때,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에 대해 이야기 한 다음 이렇게 당부합니다.여러분의 마음 속에 동이 트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는 어둠 속을 밝혀 주는 등불을 바라보듯이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 벧후 1:19 공동번역
여기서 ‘샛별’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합니다(계 22:16). 그리고 “마음 속에 동이 트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오실 때까지”란 의미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는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인 ‘말씀’에 온 마음을 집중해 살라는 것입니다. 체험보다 더 확실한 것이 바로 ‘말씀’이고, 체험보다 더 오래 가는 것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둠 속에서 등불을 바라보듯 빛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주현시기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빛이 드러나는 계절인 주현시기의 끝날, 높은 산에 올라 빛의 절정인 주님의 변모를 보았다면, 이번 주 성회수요일 예배로 부터 시작되는 사순시기는 그 빛을 안고 산 아래로 내려가는 여정이라 하겠습니다. 변화산의 빛은 산 위에 초막 셋을 짓고 황홀경에 취해서 머무는 빛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향해 내려가는 빛입니다.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지신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나누신 대화의 주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장차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눅 9:31)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는 성찬은 산 위에서 빛나던 예수님의 빛이 산 아래로 내려와 떡과 잔에 드리운 것입니다. 우리는 성찬에 드리운 주님의 희생을 먹고 마심으로 그리스도의 빛이 내 안의 어둠을 밝게 변화시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사순절 순례를 떠나려 하는 지금 어둠을 밝혀주는 등불을 바라보듯, 주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초막을 짓지 말고, 말씀을 들으십시오. 산 위의 빛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그 빛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산 위의 황홀함이 아니라, 산 아래의 순종입니다. 부디 사순시기 말씀묵상의 여정을 지나며 우리 내면이 그리스도의 빛으로 채워지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여러분을 위해 들려오기를 축복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Exercitatio
① 신앙의 성숙을 위한 산에 오르지 않은 채 게을러져 있지 않은가?
② 말씀을 경청하고 묵상하며 예수님의 빛이 마음을 채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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