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탄 후 제 1 주 기다림의 신앙, 바라봄의 영성
■ 읽 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사 61:10-62:3
1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 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 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11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 께서 공의와 찬송을 모든 나라 앞에 솟아나게 하시리라 1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 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 할 것인즉 2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3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응송 | 시 148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그는 모든 성도 곧 그를 가까 이 하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받을 이시로다
서신 | 갈 4:4-7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 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 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 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복음 | 눅 2:22-40
22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 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 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도라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39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 묵 상 | meditatio
1. 눅 2:25-35을 묵상하십시오.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에게 성령께서 어떤 은총을 주십니까?
2. 사 61:10을 묵상하십시오. 여호와께서 입혀주실 구원의 옷, 공의의 겉옷은 우리의 무엇을 가려주는 것입니가?
3. 갈 4:4, 5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이 당신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에 게서 나게 하시고 또한 율법 아래 놓이게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 기 도 |Oratio |5-10분
■ 묵상 나눔
'기다림'의 신앙, '바라봄'의 영성
어느덧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맞았습니다. 언제인가부터 저도 한해씩 저 무는 것이 그렇게 예민하게 느껴질 수가 없습니다. 사실 저무는 것은 시간 만이 아닙니다. 시간과 함께 인생도 저물어 갑니다. 그러고 보면 시간이 저무는 것에 예민해 하듯이, 우리는 저무는 인생에 더 예민해야 할 듯합니 다. '아무도, 회사원 이후의 삶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 습니다. '서러운 직장인의 일기'라는 부제도 붙어 있었는데, 글의 내용에 정말 서러움이 묻어 있었습니다."중학생, 고등학생 때에는 수능이라는 끝을 보며 달렸다. 물론 누군가는 달리지 않았고, 그 레이스를 떠났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학에 입학하게 되고, 입학하고 나면 다시 취업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취업에 성공한다. 다소 마음에 들지 않거나, 아니면 그럭저럭 만족스럽거나, 혹은 꿈에 그리 던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 처음에는 일에 적응하고, 거지같은 사회생활을 접하고, 친구들끼리 동그랗게 모여 상사 내지 회사를 험담하고, 그리고 또 다시 지옥 같은 지하철에 올라 출근을 한다. 그렇게 사는 것만으로도 하루 가 벅차다. 그런데, 조금씩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면 마치 레일이 끊긴 것 처럼 막막한 내일이 훅 덮쳐온다. 수능이 끝나면 행복할거야. 종강하게 되 면 행복할거야. 취업을 하게 되면 행복할거야. 여기보다 좀 더 좋은 직장 에 가면 행복할거야. 이렇게 읊조리던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순간이 온다. 출근은 여전히 괴롭지만 회사는 다닐만해지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 던 사회생활도 욕을 삼켜가며 흘려보내게 되고, 8시간을 버텨낸 끝에, 그 렇게 기다리던 퇴근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상한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이제 더 이상 '무엇을 하면 행복할 지' 그 답을 찾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사회에서, 어떻게 우리 직장인들은 조금이나마 행복하게 생존할 수 있을까?"
혹시 이 글에 공감하십니까? 대부분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갑니다. "이 순간만버텨내면행복하게되겠지"하며 치열하게 생의 한순간을 버텨 가는데, 그러나 산 너머 산처럼 막막함은 끝이 없고, 어느 순간 기다림이 사 라져 버리는 거 말입니다. '김미경 TV'의 '김미경'씨는 '서촌 오후4시'라는 책에서 모두 '나이 들어 알게 된 사실'이라면서 "살아보니 정말 '그게 다'였 다. 과정이 그냥 인생이었다."고 했습니다. 종착역에 거창한 클라이맥스가 따로기다리는게아니라는거,지금이순간이바로인생이라는거,과정 속에 클라이맥스가 순간순간 숨어 있을 뿐이라는 겁니다. 참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지만, 그러나 그렇게 공감해 버리고 말기엔 분명 석연치 않은 허 전함이 있습니다. 이렇게 인생의 '과정'만을 클라이맥스로 여기고, 미래를 향한 기다림을 포기해 버린다면 그보다 허한 인생이 또 어디 있을까요? 오늘 복음서에 보면 인생의 전 과정을 소중히 살아내고, 미래를 향한 기다 림 역시 포기하지 않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시므온이라는 노 인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복음서는 이 사람을 일컬어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 라고 설명합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 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 눅 2:25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위로'라는 것은 구약성경의 흐름에서 핵심적인 요 소로서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회복을 가리킵니다. 후대의 랍비들은 이 '이스 라엘의 위로'가 메시아의 도래를 통해 성취되는 구원을 의미하는 까닭에 메 시아를 '위로자'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당시의 유대 사회에 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것은 매우 보편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 들은 자기 나라를 구원할 메시야가 오시면 다윗 왕국이 재건될 것을 꿈꾸 고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다윗 혈통의 왕이 태어나서 지난날의 영광을 되 찾을 거라고 믿고, 현실 속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하며 로마로부터의 독립운 동에 나섰던 열심당원 같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땅의 침묵자'라고 불리 는 소수의 사람들은 기도와 말씀묵상에 전념하며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 리기도 했었습니다. 아마도 오늘 복음서에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로 소개 된 시므온은 후자에 속한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에 대한 부연설명이 그 사실을 보여줍니다. 누가는 시므온을 일컬어 "이 사람 은 의롭고 경건하여"라고 말할 뿐 아니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므온은 '영적인 사람'으로서 메시아의 도래 를 기다리고 있던 유다의 '남은 자(the believing remnent)' 가운데 한 사 람이었다고 누가는 본 것입니다. 사실 동시대에 '기다리는 자'는 비단 시므 온만이 아니었습니다. 막 15:43에 보면 아리마대 요셉에 대해 이렇게 증 언합니다.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 라" 또 요 1:47에서 주님은, 나다나엘이 걸어오는 것을 보시고 이렇게 말 씀하십니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하고 묻자 주님은 "네가 무 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요 1:48) 라고 대답해 주십니다. 당시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며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에 대한 시사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사실 이 기다림은 어제 오늘의 기다림이 아니었습니다. 시대를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간 이사야 시 대에도 이런 기다림은 있었습니다.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 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 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 음이라 | 사 61:10
이 말씀은 '여호와의 종에 대한 찬양'입니다. 즉 메시아의 도래와 그 분 의 사역을 내다보며 그 메시아를 보내시는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이사야가 말씀하는 이 '겉옷'이라는 것은 몸 전체를 가리는 망 토 같은 옷을 가리킵니다. 이 망토는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이사야가 말하는 '공의의 겉옷'으로서의 망토는 그 의미가 좀 다르다 하겠 습니다. 이 망토는 이스라엘의 자격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메시 아의 사역의 결과로 우리에게 입혀 죄를 가려주신 '구원의 겉옷'을 말씀하 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서 공 의와 찬송을 모든 나라 앞에 솟아나게 하시리라 | 사 61:11
땅이싹을낸다는표현은이미이사야선지자가여러번사용했던표 현입니다. 사 45:8에 보면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 께 움돋게 할지어다"라고 말하고, 사 55:10, 11에서도 "비와 눈이 하늘로 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나게하여"라고이사야는노래한바있습니다.사실이사야의이런 표현들은 깊은 신앙적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창세기 첫 장으로부터 시작 되는 창조와 타락의 이야기는 한 마디로 인간의 통합과 분열의 신학적 실 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통합되어 있었을 때, 그는 하와 와도 한 몸일 수 있었고, 땅과도 이웃이자 동료였고 친구였으며, 자기 자 신과도 아무런 갈등 없이 두루 원만하게 통합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서는 순간, 그는 어두운 그늘 이 되었고, 모든 것과 분열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과의 분리는 하와와의 분열로 이어졌고, 그것은 다시 자연과의 불화로 이어지고, 마침 내 자신과의 분열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아담은 하 나님과의 영적인 통합 가운데서, 영이 혼을 지배하고, 혼이 육체를 지배하 며, 육체는 물질을 지배하며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만 그 순서를 거 꾸로 뒤집어 놓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로 물질이 몸을 지배하고, 몸은 혼을 지배하고, 혼이 영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인간의 영은 혼수상태에 빠져 버렸습니다. 어두워진 영을 지니게 된 인간 실존은 스스로를 통합과 균형 과 조화의 존재로 경험하는 대신, 분열과 갈등과 충돌의 존재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은 생의 한 가운데서 비참하고 쓰라린 실존에 절망하거나, 아니면 시므온이나 이사야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하나 님과 통합되는 영적 회복과 위로를 기다리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가 선포하는 말씀에는 그 희망이 간절하게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 시오. 700년 전에 이 땅을 살다 죽은 한 선지자가 선포한 말씀을 700년이 지난 후까지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그리고 혹 그 말씀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세상이 바뀌어도 한참이나 바뀐 700년 후 에 이미 화석이나 마찬가지인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희망을 두고 살 아갈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여러분 같으면 그 말씀이 여러분의 현실적인 희망이 될 수 있겠습니까? 사실 그래서 믿음이 값진 것이기도 합니다. 수 천 년 지난 화석과 같은 말씀에서 오늘의 희망을 찾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남긴 그 말씀을 정말 붙 들고 기다린 사람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고, 나다나엘이고, 그리고 오늘 복음서의 시므온입니다. 누가는 시므 온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눅 2:25) 우리가 어떠한 상황 가 운데서도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릴 때, 그 때 우리 가운데 벌어지는 놀라운 일 하나가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의롭고 경건하다고 평가해 주시고, 성령은 바로 그런 사람 위에 머무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의 기다림은 결코 막연하지 않습니다. 오늘 서신 서의 말씀이 그 사실을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위로가 역사 가운데 마침내 이루어지던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소개합니다.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 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갈 4:4, 5
여기에서 바울이 말씀하는 '때'라는 것은 '하나님이 작정하신 때'를 말 씀하는 것이고, 그 '때가 찼다'는 것은 하나님이 작정하신 때가 마침내 도 래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그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하나님이 당신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또한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 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아들이신 예수를 율법 아래 놓이게 하신 것은, 율 법의 지배 아래 사는 사람을 구원해 내시고, '아들의 명분' 즉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을 얻게 되었을 때, 그 때 일어나는 일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 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 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 갈 4:6, 7
시므온은 바로 이 위로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위 로를 기다렸습니다. 그는 오로지 이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대개의 사람 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야심을 따라, 혹은 경제적 야심을 따라, 아니면 가족과 연관된 대소사를 따라, 거기서 성 취되는 것들을 기다림의 목표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다른 것 을 기다렸습니다. 시므온은 오로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만을 바라 보며 기다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 고, 성령이 그 위에 계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다림의 결과 는 어땠습니까? 누가는 그 결과를 감동적으로 보여줍니다.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 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내눈이주의구원을보았사오니이는만민앞에예비하신것 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 눅 2:26-32
그는 마침내 이스라엘의 위로를 만납니다. 어느 날 성령의 지시를 받아 성전에 들어갔을 때, 그는 마침내 부모 품에 안겨있는 아기 예수님을 만난 겁니다. 부모의 품에 안겨 있는 아기 예수님, 이 아이는 아직 십자가를 지 지도 않았고, 더구나 부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시므온은 이 아이 에게서 주의 구원을 보았다고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이 젖먹이 예 수 안에 은폐되어있다는 말씀입니다. 중세기 때의 서양 그림에는 이런 것 들이 적지 않습니다.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아이를 그리면서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을 겹쳐서 그린 화가도 있었습니다. 이 위로를 볼 수 있는 영적인 시각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이 영적 시각을 갖추시길 바랍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을 깊이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해야 주님이 바라봐집니다. 만약 중세시대의 화가들이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그저 표면적인 예수만 화폭에 담고 말았을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해서 주님만 내 눈에 보일 때, 마침내 주님의 십자 가가 나를 위한 것이요, 주님의 부활도 나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 니다. 지금 여러분의 시선은 무엇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지금 우리는 진 정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것일까요? 사랑한다면서 바라보지 않는다면, 그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을 마음 모아 바라봄으로서 비로소 하 나님과의 진정한 통합을 이루고, 그럼으로써 이웃이나, 창조질서와도 통합 을 이루고, 자기 자신과도 갈등 없이 통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꽃이 없어서 이것으로 대신합니다'라는 책을 쓴 유선경 작가에 의하면 사람의 얼 굴이 45센티미터 이하 거리로 들어오면 더는 바라볼 필요가 없다고 합니 다. 상대의 눈동자에 내가 들어있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운데, 무얼 더 바라볼 게 있느냐는 겁니다. 주님을 사랑해서 주님만 바라보다가, 어느 덧 주님과 내가 너무 가까워져서 '주님께서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음 으로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림도 바라봄도 필요 없는 완벽한 신앙의 신비가 이루어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관 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 천 | Praxio
1. 행복과 위로를 현실과 세속에서만 찾고 있지 않은가?
2. 그리스도 안에 있는 궁극의 위로를 바라보고 있는가?
번호 | 다운로드 | 제목 | Language | 작성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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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6주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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