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7주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호 1:2-10
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3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4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5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6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7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8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10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응송 | 시 85
7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 8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 하실 것이라 9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 10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11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 보도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아멘
서신 | 골 2:6-15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복음 | 눅 11:1-13
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5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6 내 벗이 여행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7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눅 11:2-4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기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② 골 2:6-7을 묵상하십시오. 기도하는 사람의 믿음은 어디에 뿌리를 박은 믿음이어야 합니까?
③ 호 1:2-3을 묵상하십시오. 사리에 맞지 않아 보이는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호세아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한 구도자가 스승에게 질문했습니다.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벧전 2:5) 그러자 스승이 이렇게 대답해주었습니다.자신이 이웃에게 어떤 식으로든 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면, 내 기도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고 확신해도 좋습니다(출 20:16-17, 마 19:19). 그렇지만 자신이 육체적으로든 영적으로든 이웃에게 해를 끼쳤다면, 그 기도는 혐오스러운 것이며,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해를 입은 사람의 울부짖음은 그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팀 비비안(Tim Vivian)이 ‘사막 교부들의 일일 독서집’을 편집해서 ‘Becoming Fire(불이 되다)’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는데, 거기 나오는 ‘기도에 관한 금언’입니다. ‘사막 교부(Desert Father)’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완전히 사로잡힌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 마음속에서 불타오르면, 그들은 그 불꽃을 꺼뜨리지 않으려고 사막으로 나아갔습니다. 사막은 그들에게 기도의 성소(聖所)였고, 그들은 사막의 불꽃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기도란 끊임없이 내면으로 들어가는 여행이요, 자신을 자신의 근원이고 목적인 하나님께 맡기면서 자신의 존재를 참된 자기로 돌아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교부들인 만큼 타인에게 못할 짓을 한다거나 영적으로든 육적으로든 해를 끼치는 것은 자신의 기도를 혐오스럽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상달될 수 없는 기도를 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비단 사막 교부들 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쇄신(刷新)하고 영적 성숙을 이루어 갑니다. 그런 면에서 기도는 선한 노력의 절정이요 자기 존재와 영혼에 대한 귀한 업적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에너지와의 교제와 내적 연합을 경험하고, 지성과 이성이 하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그러한 까닭에 독수도사인 에바그리오스 폰티쿠스는 기도는 ‘지성과 하나님의 교제’라고 했고, 더 나아가 노염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하는 ‘온유함의 꽃’이며 ‘기쁨과 감사의 열매’이고 ‘우울과 낙담의 치료제’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많은 신자들에게 기도가 단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구하고 응답을 받는 수단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기도가 기복신앙을 넘어 무속이나 주술을 닮아간다고 염려하는 분들이 많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도는 단지 하나님께 무언가를 구하고, 받은 응답에 감사하는, 그 이상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배워야' 진정한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는 우리들 모두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한 곳에서 기도를 마치고 막 일어나실 때, 한 제자가 다가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 눅 11:1
예수님은 이 제자의 요청을 소중히 여겨서 세 가지로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첫째로, 2-4절의 말씀을 통해서는 ‘기도의 내용’에 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둘째로, 5-8절의 말씀을 통해서는 ‘기도의 태도’에 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9-13절의 말씀을 통해서는 ‘기도의 본질적 가치’에 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 눅 11:2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시며 시작된 첫 번째 기도문이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그 동안 사람들은 야훼(YHWH יְהוָה)의 이름을 거룩하고 두려운 이름으로 여겨, 망령되게 부를 수 없어서 직접 부르지 않고 ‘묵음(黙音)’으로 대체하거나 ‘나의 주님’이란 뜻의 ‘아도나이(Adonai אֲדֹנָי)’라고 불러왔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늘 초월적 존재였고, 타자성 안에서 인식되어 왔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십니다. 구약전통에 익숙해 있던 제자들로서는 매우 낯설거나 혹은 신선하게 여겨졌을 것입니다. 더구나 당시 사람들이 아버지를 ‘아브(ab)’라고 불렀던 것보다 더 친근한 표현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빠(abba)’라고 부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존중하는 마음에다 친근함이 더해진 호칭입니다. 지난 주 복음서에서 주님 발아래 앉아있던 마리아에게서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경직된 표정을 짓고 종처럼 앉아있는 마리아입니까? 사랑스럽고 정겹게 딸처럼 앉아있는 마리아입니까? 저는 두 번째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한 호칭을 바꾸어주심으로써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벽을 허물어버리셨습니다. 그러면 아빠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먼저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눅 11:2b
히브리인들의 사고에서 이름은 호칭 이상으로 그 존재의 인격 전체를 가리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 존재에 대한 표현입니다. 즉 하나님의 이름 속에는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 자신이 나타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특별히 여기서 동사 ‘거룩히 여김 받다'(,ἁγιαθήτω 하기아스데토)가 수동형 명령법으로 되어 있는 것은 ’기도하는 자가 하나님을 거룩히 여기며 경배 드리오니 받아 달라는 의미‘입니다. 이 기도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층적인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이름이 존중받기를 염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경우에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지 못하게 될까요? ‘실천적 행동주의’ 혹은 ‘실천적 물질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4세기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에는 그런 경향을 ‘펠라지우스주의(Pelagianism)’라고 불렀는데, ‘영혼이 구원받는 데 있어 인간의 노력이 우선한다’는 이 ‘펠라지우스주의’를 아우구스티누스는 경계했습니다. 나의 거짓 자아(自我)를 버려야 하나님께 무릎을 꿇게 되는데, 자신의 행동을 과신하고, 물질을 숭배하다보니 사람들은 갈수록 마음으로부터 주님의 이름을 밀어내게 되고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된 자기(ego)’를 만들어내고 ‘기도하지 않는 자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이 자기숭배에 빠지면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지 않게 됩니다. 자기숭배에서 돌아서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기심을 받게 하라는 것, 그것이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첫째 ‘기도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주님의 기도를 보십시오.나라가 임하시오며 | 눅 11:2c
본래 원문대로 옮기면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입니다. 교회가 거짓자아의 우상숭배로부터 돌아섬으로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기심을 받게 될 때, 비로소 거기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마다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간청했습니다. 회당예배의 설교 마지막에 하는 카디쉬 기도의 두 번째 구절은 이렇습니다. “너희가 사는 동안, 너희의 날에, 이스라엘의 모든 집이 살아있는 가까운 시간에, 그가 그의 나라를 다스리게 하소서.” 물론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카디쉬 기도와는 다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국가적, 정치적 의미를 벗어나 모든 민족을 향한 보편성을 띠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의 거룩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도를 보십시오.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 눅 11:3-4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를 한 다음에, 주님은 ‘세 가지 필수적인 필요’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십니다. ‘일용할 양식’과 ‘용서’ 그리고 ‘시험’ 즉 ‘유혹’을 경계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러면 이 기도는 어떠한 태도로 해야 할까요? 주님은 이어서 ‘기도하는 사람의 태도‘에 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 눅 11:5-8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기도하는 태도’는 열정과 끈기와 집중력이라 하겠습니다. 기도는 끊임없는 집중과 마음 모으기입니다. 주님은 기도에는 때가 따로 없다는 것을 ‘간청하는 친구의 비유’를 통해 말씀해주십니다. 때가 따로 없다는 뜻은 ‘모든 때가 기도의 때’라는 뜻이고, ‘참으로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기도 시간이 아닌 시간’이란 없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기도의 본질적 가치’에 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 눅 11:11-13
기도의 본질적 가치는, 기도를 통해 성령께서 내 안에 임재하시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올바른 내용’으로 또 ‘올바른 태도’로 기도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데, 그 ‘좋은 것’이란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이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이유는 우리는 우리의 실존을 부분적으로 이해할 뿐이지만, 성령은 우리를 전체적으로 이해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선은 언제나 ‘입장’이라는 주관성에 제한되지만 성령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전체적인 안목으로 우리가 직면한 모든 ‘상황(context)’을 판단하시고 ‘말씀(Text)’에 합당하게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따라서 가장 완벽한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예수님의 가르침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라’시는 기도는 하지 않고, ‘하지 말라’시는 기도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기를 열망하며 기도하지 않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기보다는 평생을 먹고 남을 양식을 위해 기도합니다, 입만 열면 성령 충만하기를 기도하지만 내가 기대하는 성령 충만과 주님께서 주시려는 성령 충만에는 거리가 있는 듯합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 골 2:6-7
우리 기도는 성서적이어야 합니다. 성서적 기도는 내 마음의 표현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을 내 속에 지니고, 예수님의 바람을 구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믿음도 내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예수님의 믿음을 간직하고 그 믿음을 기도로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우리의 행함도 우리의 기도도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에 뿌리를 박고 거기에서부터 다시 세워져야 합니다. 심지어 내 바람과 전혀 반대되는 사안일지라도 우리는 주님의 바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조지 A. 말로니가 ‘현대인의 영성’에서 한 말이 기도에 대한 우리 생각을 바꾸어 놓습니다.
마음이란 신체의 일부분이 아니라, 인간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 대전에서, 하나님을 응시하며 “예” 라고 대답하는 인간의 전 존재이다. 이 전 존재에 대한 기도가 오늘날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이다. 나의 전 존재인 ‘마음’이, 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응시하며 “예” 라고 대답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기도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 끝에 조지 말로니는 호수를 예로 듭니다. 호수는 몇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표면부분, 암석부분, 식물이 군생하는 부분, 진흙부분 등이 호수의 각 부분을 구성하지만, 그러나 그런 것들이 호수가 호수임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생명을 넘치게 해서 호수 속으로 보내는 ‘샘’이 그 호수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듯이 인간에게도 감각, 감정, 심정 등 여러 가지 층이 있고, 그 층들은 유전이나 교육, 사회 환경에 의해 정해지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부분이지 진정한 인간이 아니라는 겁니다. 생명을 인간에게로 흘려보내는 샘, 즉 인간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알 때 비로소 우리는 ‘참 인간’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예” 해야만 하는 것이고, 그 “예”가 바로 기도이고, “예” 하는 기도를 통해 우리는 내 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왕래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호세아를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 호 1:2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음란하다고 해서 호세아에게 창녀를 아내로 맞아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 이야기냐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보세요.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 호 1:3
놀랍게도 호세아 선지자는 “왜”냐고 묻지 않습니다. 자기 존재의 근원이신 여호와께 “예”로서 순종합니다. 그리고 이 순종 하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그 땅에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호세아처럼 할 수 있을까요? 기도는 영적투쟁에서 으뜸으로 중요한 것이고, 기도는 행동이며,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 요한 클리마코스는 ‘수덕교본’에서 ‘이 세계의 바탕은 기도’라 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우리는 오늘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앞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에 “예” 하며 실천할 기도의 원형으로 여겨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이 드러나야 하고, 우리 기도를 통해 아버지의 나라가 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이 기도를 복음서의 ‘간청하는 친구’처럼 드려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실 것입니다. 그 성령의 임재하심 속에서 우리의 모든 기도가 응답을 받아, 우리의 내면에 하나님의 거룩이 이루어지고, 우리의 내면에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기를, 그리고 우리 내면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열방을 향해 확장되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Exercitatio
① 주님의 뜻과 무관한 나의 바람을 기도로 하고 있지 않은가?
② 성서적인 기도의 내용과 태도와 가치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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