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대림절 제2주 너희 내면을 보라
■읽기 |Lectio |읽기는듣기입니다.
구약 | 사 40:1-11
1 너희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 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 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응송 | 시 85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 에 머무르리이다
서신 | 벧후 3:8-15a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 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 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 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 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 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복음 | 막 1:1-8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6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7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 묵상 | meditatio
1.사 40:6-8을 묵상하십시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는 말씀은 신자 들에게 궁극적으로 무엇을 요청하고 있습니까?
2.막 1:3-5을 묵상하십시오.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는 말씀에 대한 세례 요한의 화답은 무엇이었습니까?
3.벧후 3:11b-12a을 묵상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땅한 자세는 무엇입니까?
■기 도 |Oratio |5-10분
■ 묵상 나눔
너희 내면을 보라
대림절 초에 두 번째 불을 밝혔습니다. 이 촛불이 단지 주변만을 밝히는 촛불이 아니라 우리 내면을 밝혀 마음에 도사린 어둠을 물리치는 촛불이 되 었으면 좋겠습니다.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이 한 말 중에 제 마음에 남아있는 말이 있습니다. "밖을 보는 자는 꿈을 꾸고, 안을 보는 자는 깨어있다." 지난 주 복음서의 말씀에서 예수님께 서도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신 끝에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막 13:33) 고 말씀하신 바 있는데, 칼 구스타프 융은 이 깨어남의 의미를 독자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에 의하면 깨어남이란 '안을 보는 것', '영혼을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꿈을 주시하는 자, 꿈속에서 자기 영혼의 본질을 주시하 는자는내면을향하고있는자이며, 그는마음의울림에조용히귀를기울 입니다. 우리는 종종 말하기를 내면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꿈에 빠져서 현 실세계와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융이 말하는 '내면을 보는 자' 란 단지 세상을 피해 내면으로 숨어들은 사람이 아니라, 치열한 현실세계를 살고 있으면서 동시에 내면을 깨어있게 할 용기를 지닌 사람입니다. 한 해 의 끝에 맞이한 대림절을 지나면서, 나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스 스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전히 세상 언저리를 맴돌고 있는지, 아 니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봄으로서, 조심하고 깨어있는 사람인지, 자기 내 면의 남루함을 알아차린 사람은 어떻게든 그 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할 수밖 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구약성경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의 하나님을 보 라"(사 40:9)고 촉구하며, 꼭 그래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보라 주 여호와께서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 실 것이라보라 상급이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 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 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사 40:10-11
이 말씀의 역사적 배경은 기원전 587년 바벨론 포로기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고, 유대지역은 바벨론의 식민 지배를받고 있었는데, 이미 그런 세월이 50년이나 되어서 포로생활이 서서히 끝나가 고 있었습니다. 제2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노역의 때가 끝났다는 사실을 외쳐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새벽이 가까우면 어둠이 더 짙은 것처럼, 사람들 눈에는 바벨론으로부터의 해방보다 현실의 고통이 더욱 크게만 느껴 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 선지자는 마음의 동요함 없이 포로민 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시킵니다. 여기, 그의 표현을 보십시오.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하라 | 사 40:3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는 것, '사막에서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 하게 하는 것, 이사야 선지자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바로 '고국으로 돌아갈 준비'였습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실제로 광야를 횡단해야 합 니다. 광야는 거친 길입니다. 거기엔 골짜기도 많습니다. 거기에 길을 내려 면 낮은 곳을 높이고, 높은 곳을 깎아내서 평탄하게 해야 하는데, 당시에 이 런 대대적인 토목공사는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고국에 돌아갈 때 한 번 사용하자고 이런 공사를 벌일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실제로 그런 토목공사를 벌이라는 것이 아니라, 포로상태에서 해 방되어 고국으로 돌아갈 사람들의 영적 상태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 학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포로에서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 가는 것이 무턱대고 기뻐할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일단 뜨거운 광야와 사막 을 통과해야 했는데, 그 길을 무사히 통과하리라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또 예루살렘에 도착했다고 해서 만사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칫하면 바벨론에서 50년 동안 살면서 닦은 삶의 터전만 잃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습 니다. 이런 경우는 훨씬 오래 전, 고대 히브리들이 애굽을 탈출할 때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신학적으로 보면 출(出)애굽과 탈(脫)바벨론은 같은 의미의 사건입니다. 양쪽 모두 억압적인 제국으로부터의 해방을 결행한 사건이었다 는 공통점이 있습니다.출애굽 당시에 모세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해서 히브리들을 미디안 광야로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의 보도에 따르면 이들의 광야생활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먹을 것, 마실 것들이 떨어질 때마다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최소한 의식주 문제만큼은 어려움이 없었던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런 주장들이 때로는 조직화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내전의 조짐까지 보였습니다. 그랬듯이 바벨론 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자는 이사야의 외침도 이스라엘 백성들 에게 마냥 호응만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치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반대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 씀을 전하는 선지자였다지만, 다수의 주장에 영향 받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의 새로운 소리를 듣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 니 이르되모든 육체는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들의 꽃과 같으니 풀 은 마르고꽃이 시듦은여호와의기운이그 위에 붊이라이 백성은실로 풀 이로다 | 사 40:6-8
들려온 소리의 내용은 '외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놀라 서 묻습니다. "무엇이라고 외쳐야 합니까?"그러니까 백성들 뿐 아니라, 이 사야 선지자의 입장에서도 들려온 소리는 곤혹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마틴 루터는 외치라는 명령을 '설교하라(predigen)'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니까 루 터의 번역에 따르면 6절 말씀은 이렇습니다. "한 소리가 말한다. 설교하라! 내가 물었다. 무엇을 설교해야 합니까?"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들려왔습니 다."모든인생은한낱풀포기,그영화는들에핀꽃과같다!풀은시들고 꽃은 진다, 스쳐 가는 야훼의 입김에. 백성이란 실로 풀과 같은 존재이다. 풀은 시들고 꽃은 지지만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사 40:6-8 공동번역) 인생은 풀이나 꽃처럼 시들고 만다는 표현은 상투적으로 들리지만, 사실은 우리의 존재를 돌아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두 대상을 향한 것입니다. 하나는 바벨론 제국입니다. 당시 바벨론은 고대근동 을 지배하던 초강대국이었습니다. 당시 바벨론 제국의 서슬 앞에서 모든 민 족이 몸을 낮추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나라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나라를 떠나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가 들은말씀이무엇입니까?저바벨론제국의권력자들은곧시들고말풀이 나 꽃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러니 저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그 사실을 외침으로써 탈 바벨론 앞에서 주저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인생 은 한낱 풀포기이고,그 영화는 들에 핀 꽃과 같다"는 말씀은 다른 한편으로 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롯한 모든 인간을 향한 말씀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흙으로 지음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시 90편은 그것을 적나라하게 묘사했습 니다.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 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시 90:5, 6
옳은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개인적으로 아무리 뛰어나도 풀이나 꽃보다 나을 게 없습니다. 세상 권력도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식간에 마르는 풀 이나 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의 선언에 따르면 '하나님의 말씀 은 영원히 설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사야 선지자에게 들려온 소리는 사람들 로 하여금 자기 실존을 적나라하게 깨닫게 하고,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 앞에 서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사야는 계속해서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 을 예루살렘에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말고 소리 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 사 40:9
이 외침에서의 포인트는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입니다. 이 말씀의 흐름 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사야에게 들려온 소리는 '외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가 당혹감 속에서"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묻습니다. 이때 들려온 말씀의 결론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보라"고 외치라는 것입니다. 이두명령은인간의실존이무엇인지,그리고그것을초월하는힘이무엇 인지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실존은 위로를 받아야 한다는 사 실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위로가 사람에게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풀이고 꽃입니다. 사람이나 풀이나 꽃이나 피조물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따라서 사람은 누군가를 위로할 주제가 되지 못합니 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피조물인 우리의 실존을 넘어서 는 동시에 그 실존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참된 위로를 얻고자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보는' 현실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오늘날 '하나 님을 믿는다' 하는 우리 기독교인들 중에서 이 사실을 한편으로는 모르고, 다른 한편으로는 외면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보려는 것이 아 니라 자꾸만 사람을 보려고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신앙의 모든 관심들이 사 람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배가 그렇고, 설교가 그렇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아닌 신자들의 편의에 맞추어졌고, 설교는 '대중주의' 즉 '포퓰리즘' 에 맞추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다시 하나님께로 돌 아서야 합니다. 예배도 설교도 하나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부디 길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 구원이 어디 로부터 시작하느냐'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이 어디서 구원받느냐' 하는 질문은 곧 '인간이 어디서 위로받느냐' 하는 질문과 같습니다. 오늘 이사야는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을 보라" 그렇습니 다. 구원을 받고자 한다면, 위로를 받고자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 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구약시대에 국한된 해답이 아닙니다. 오고오는 모든 세대에 똑같이 적용되는 해답입니다. 우리를 그 사실을 오늘 복음서의 말씀을 읽으면서도 깨닫습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이끄는 장면을 마가는 이렇게 소개합니다.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것과 같이 세례요한이광야에이르러죄 사함 을 받게 하는 회개의세례를전파하니| 막 1:3, 4
지금 광야에서 요한이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세례를 주는 장면에 대한 마가의 해석이 이렇습니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 어이르되너희는주의길을준비하라그의오실길을곧게하라"고사 40:3에서 기록되어 있는 대로,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서 "죄 용서를 받 는 회개의 세례를 받으라“고 외쳤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면 서결국이사야선지자도,세례요한도구원과위로를받는길은오로지하 나님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라는 공통의 결론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을 보라" 고 외친 것처럼, 요한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외쳤습니다. 바벨론 포 로상태에서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들이, 바벨론의 영화도 들 에핀꽃과같고,자기들인생도한낱풀포기임을깨달을뿐아니라,풀은 시들고꽃은지지만우리하나님의말씀은영원히서있음을깨달아서이제 는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 그것이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요, 사막에서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는 것이듯, 죄에 빠진 사람들 이회개하고세례를받는것,그것만이주의길을준비하는것이요,그의오 실 길을 곧게 하는 것임을 요한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회개'를 의미하는 희랍어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는 전인적이고 본질적인 '마음의 돌이킴'을 나타냅니 다. 이 돌이킴에 대해 테일러(Taylor)는 '신중한 전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지 금 요한이 주는 세례는 사람으로 하여금 전인적이고 본질적인 '마음의 돌이킴' 즉 ' 신중한 전환'에 이르게 하는 세례입니다. 누구를 향한 돌이킴이며, 누구를 향한 전 환입니까? 세례 요한의 말을 들어보십시오.나보다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풀기 도 감당하지못하겠노라| 막 1:7
세례 요한보다 능력 많으신 이, 즉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돌이킴입니다. 요한은 자기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보며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 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고 소개했을 뿐 아니라, "그 분은 나보다 능력 이 많으시고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제2 이사야 선지자가 '보라'던 그 하나님이 바로 지금 요한이 소개하고 있는 예 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따라서 대림절 둘째 주를 지나고 있는 우리 역시 이 사야처럼, 세례 요한처럼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보라", "예수 그 리스도를 보라" 그 분은 역사에서 강한 자로 임하실 분이시고, 어린 양을 그 팔로 품에 안으시는 분이십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베드로는 그 분을 보는 자로서 우리 자세가 어떠해야 할지를 이렇게 일러줍니다.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간절히 사모하라| 벧후 3:11b-12a
이 말씀은 참된 종말 신앙에 대한 가르침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사 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변화된 신분을 분명히 인식할 것과 그에 합당한삶을살것을요청하는데,그합당한삶은바로'거룩한행실'과'경 건함'입니다. '거룩한 행실'이란 악한 세상과 구별되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 을 본받아 사는 것이고, '경건함'이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주관하심을 믿으 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하나 님의 날' 즉 '여호와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사막처럼 물기 없이 메마르고 황량해진 마음, 패 이고꺼진골짜기처럼상처입은마음,높은산과언덕같이거만해진마음, 비탈길같이 편협하고 옹졸해진 마음을 메우고, 깎아 내리고, 넓혀서 주님께 서오실길을내야하는데,사도바울의말씀에의하면그구체적인방법은 이렇습니다.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날을 기다리는 겁니 다. 신적 근저성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가장 심층적인 기관 을 뜻하는데, 사막의 수도자들은 그곳이 '마음'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 음이 있는 것은 심장이라고 했고, 그래서 심장을 '마음의 집'이라고 불렀습 니다."밖을보는자는꿈을꾸고 안을보는자는깨어있다."안은본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 즉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인데, 사막의 수도자들에 의하면 마음이 바로 하나님과 만나는 곳이고, 인간의 영성을 꽃피우는 '성전' 입니다.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날을 기다리는 성도는, 자기 마음을 냉철하게 들여다보며 매일 영혼을 다듬어 가는 사람입니다. 그는 세 상을 피해 내면으로 숨어들은 사람이 아니라, 치열한 현실세계를 살면서 동 시에내면을볼용기를지닌사람입니다.성탄이다가오며거리는온통화 려한 빛들로 상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아야 할 빛은 예수 그리 스도안에있는빛입니다.그빛이우리내면을밝혀낮은곳을높이고,높 은 곳을 깎아내서, 주님 오실 길이 닦여지고, 그곳으로 주님께서 찾아오시는 그러한 대림절 기간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1. 시선이 밖을 배회하며 허황된 기대로 채워가고 있지 않은가?
2. 마음과 시선이 하나님을 향해 신중한 전환을 이루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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