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대림절 제4주 마리아 찬가에 담긴 신앙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미 5:2-5a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 에 있느니라 3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 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 까지 미치리라 5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응송 | 눅 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 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서신 | 히 10:5-10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 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복음 | 눅 1:39-45
39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40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41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42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 이도 복이 있도다 43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44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45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46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 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49 능하신 이가 큰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 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미 5:2-5절 묵상하십시오. 2절에 따르면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는 어디서 나오며 5절은 그 사람이 무엇이 될 것이라고 합니까?
② 눅 1:48-53절 묵상하십시오. 여종의 비천함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큰 일을 통해 복이 있는 여인으로 바꾸어 가신다고 하였습니까?
③ 히 10:10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마리아 찬가에 담긴 신앙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고대하며 기다리는 '대림待臨 Adventus)'의 시기가 어느덧 다 차서, 마치 산모의 산통이 시작되듯 말씀이 육신으로 탄생하시는 성탄을 실감하는 이때입니다. 지난주일 우리는 세례 요한의 광야의 외침을 통해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눅 3:9)라는 경고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세례 요한의 이 경고를 심판의 긴박성 안에서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애절한 심정으로 요한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눅 3:10). 그들의 이 긴박하고 애절한 물음은 성탄을 맞으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물음입니다. 이 물음에 대한 요한의 대답은 간명했습니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눅 3:11). 그리고 세리에게는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눅 3:13)고, 군인에게는 "남의 것을 강탈하거나 거짓고발 하지 말라"(눅 3:14)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삶은 관계이고 선물입니다. 삶이 관계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자연과의 관계나 인간과의 관계, 혹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관계들은 나 혼자 힘으로 맺혀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내리는 이슬처럼 우리에게 거저 주어진 선물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에의 부름에서 고백했듯이 오래 전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늘은 높은 곳에서 정의를 이슬처럼 내리고, 구름은 승리를 비처럼 뿌려라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사 45:8a). 이처럼 관계에서 중요한 것이 정의와 구원과 공의인 까닭에 세례 요한은 모든 관계들을 정의와 공의로서 이루어갈 것을 당부한 것입니다.그런데 이 모든 관계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아름답게 받아들인 역사상 가장 귀한 고백이 복음서에 있습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 마리아는 이 고백과 함께 하나님과의 가장 순수한 관계 안으로 들어감으로서 자신의 몸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오시도록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누가가 이 어린 마리아를 설명하는 표현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눅 1:45). 이것이 누가가 엘리사벳의 입을 통해 소개하는 마리아에 대한 설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바로 이 어린 처녀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통한 성탄은 단지 그녀의 고백과 결단만으로 불현듯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래 전 미가 선지자의 이런 예언이 있었습니다.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의 여러 족속 가운데서 작은 족속이지만,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다. 그의 기원은 아득한 옛날, 태초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미 5:2 표준 새 번역
지난 주일의 스바냐 선지자처럼 미가 선지자 역시 열두 소선지자에 속해있는 인물로서, 예수님 탄생 700여 년 전에 살았던 인물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와 동시대 인물인데, 미가서에서 그는 당시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매서운 질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정치종교 지도자들이 부도덕했을 뿐 아니라 가난한 자들에 대한 억압을 자행했고,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형식적인 예배만 드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은 침상에서 악을 꾀하며 음모를 꾸미고 날이 새자마자 자기들 손의 권력을 이용해 꾸민 음모대로 해치웠습니다(미 2:1). 그들은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차지했으며,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산업을 강탈했습니다(미 2:2). 정의를 아는 것이 그들의 본분이었음에도(미 3:1), 그들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백성의 가죽을 벗겨(미 3:2), 고기로 배를 채우듯 자신들의 배를 채웠습니다(미 3:3). 선지자들은 입에 먹을 것을 물려주면 평화를 외치고, 그렇지 않으면 전쟁을 벌일 준비를 했습니다(미 3:5). 그로 인해 미가 선지자는 그들 자신과 민족에게 닥칠 불행을 경고했었습니다.그러므로 너희가 밤을 만나리니 이상을 보지 못할 것이요 어둠을 만나리니 점치지 못하리라. 선지자 위에는 해가 져서 낮이 캄캄할 것이라 | 미 3:6
백성들은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둠에 휩싸이고, 선지자들 위에는 태양이 사라져 이상이 안 보이는 암흑의 세상이 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더 이상 희망을 꿈꿀 수 없는 완벽한 절망에 대한 예언인데, 그러면 이들은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요? 미가 선지자에 따르면 타락한 정치종교 권력자들에 의한 어둠은 "해산하는 여인이 아기를 낳을 때까지"(미 5:3) 지속될 것이었습니다.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 미 5:3, 4
이 말씀에서 미가 선지자는 여인이 해산한 아들이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어 정의와 평화로 자기 양떼를 이끌 것을 관조(觀照)합니다. 이 이상은 미가 선지자만 꿈꾼 것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이사야 선지자도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녀가 낳은 아들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며, 그가 자기 양떼를 먹일 것을 예언했었습니다(사 7:14).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처녀가 잉태하여 낳은 아들을 통해 당신의 양과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뿐 아니라(마 2:4-6) 그 뒤의 그리스도교 전통은 이 예언에 정확하게 메시아적 해석을 내렸습니다. 더욱이 미가 선지자는 독특하게도 메시아가탄생할 장소를 '베들레헴'이라고 지적합니다.베들레헴 에브라다야 | 미 5:2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700년 전에 벌써 선지자를 통해 이를 예고하신 하나님의 지혜에 경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애굽에서 임종하기 직전 침상에 누워 유다 지파 가운데서 메시아가 탄생하리라고 예고하셨고(창 49:10), 수백 년이 지난 어느 날에는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 메시아는 다윗의 가문에서 탄생할 것이고 그는 영원히 다스릴 것이라고 예고하신바 있습니다(삼하 7:12-16). 오늘 미가의 예언은 다윗이 죽은 지 250년이 지난 후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예언이 이루어지려면 앞으로도 700년이 더 흘러야 했지만 그러나 그 예언은 이루어졌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동정녀를 통해 태어나셨는데 다윗의 후손이셨습니다(눅 2:4-7).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그것도 유다 지파 가운데서 탄생하셨다는 사실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상징적인 메시지를 그 안에 담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가장 작은 지파이고, 다윗 일가는 그 작은 지파 중에서도 가장 작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가 탄생할 장소로 화려한 수도인 예루살렘을 택하시지 않고 작은 마을 베들레헴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인간의 강함이나 지혜를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인간의 눈에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 약하고 작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자신을 내어놓은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당시 헤롯은 새로 태어난 유대인의 왕을 묻는 동방박사들의 방문을 받고, 당황해서(마 2:3) 메시아 탄생의 장소를 알아내기 위해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을 소집했으며 온 예루살렘에 일대 소동을 일으켰습니다(마 2:4).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이루시는 것에 힘을 기울이셨고, 마리아라는 한 여인의 순종을 통하여 죄가 빚은 종살이와 사망의 악순환을 끝낼 메시아를 탄생시키십니다.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수태고지(受胎告知 눅 1:30, 31)를 들은 마리아는 서둘러 여행길을 떠나 엘리사벳에게로 달려갑니다(눅 1:39-40). 마리아가 살던 나사렛은 북쪽 갈릴리였고, 엘리사벳이 살던 헤브론은 남쪽에 있는 산지(山地)였습니다. 수백리가 넘는 힘든 여정이었기 때문에 틀림없이 일주일 이상 걸렸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로 달려갑니다. 왜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찾아 그 먼 산골까지 갔을까요? 수태고지를 들은 마리아가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 1:34)라고 반문했을 때,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6-37)라는 대답을 들어서였을까요?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간 이유가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신학적 과제입니다. "마리아가 하나님을 믿기 위해 확인이 필요했을까? 가브리엘의 고지(告知)만으로 충분하지 않았었나?" 등등 많은 신학자와 주석가들이 의문을 품기도 했는데, 존 칼빈(John Calvin)은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마리아가 확인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녀가 소명을 거부하려는 동기가 아니고 엘리사벳에게서 직접 확인함으로서 자신의 믿음을 확정하려고 한 것은 대단히 옳은 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런가하면 6세기 영국의 수도자인 성 베드(Saint Bede)는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축하와 격려를 주기 위해 헤브론으로 방문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녀가 엘리사벳의 집에 막 들어설 때, 기다렸다는 듯 신비한 현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빠르게 반응을 보인 것은 엘리사벳 태중의 아기였습니다.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 눅 1:41
이 아기가 누구입니까? 훗날 그는 '빈들의 소리' 즉 '광야의 선지자'가 됩니다. 도시와 문명을 거부하고, 사람들을 향해 맘몬의 유혹과 주술적 신앙으로부터 회개할 것을 촉구하게 될 그 아이가 지금 태중에서 메시아의 방문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만난 기쁨에 태중에서 뛰노는 아들의 기쁨은 어머니의 온몸과 마음과 영혼 전체로 울려 퍼졌습니다.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눅 1:41b) 큰 소리로 마리아를 축복합니다.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 눅 1:42, 43 공동번역
그녀의 이 축복은 구세주의 어머니로서의 마리아의 역할을 확인해주는 축복입니다. 엘리사벳의 이 축복은 훗날 교회가 그리스도론을 확정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신학적 근거를 제공해 주고,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성탄의 참 의미를 성찰하게 해줍니다. 훗날 교회는 AD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그리스도론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시라는고백의 증거로 마리아에게 '데오토코스' 즉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신학적 위치를 부여합니다. 엘리사벳의 축복을 들은 마리아는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그 찬가가 바로 오늘날 예배 음악에서 매우 중요한 '마니피캇(magnificat)' 즉 '마리아 찬가(讚歌)'입니다.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 도다 | 눅 1:46b-50
이 찬가에 담긴 마리아의 기쁨은 하나님께서 '당신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다는 것입니다. '여종의 비천함'을 운명처럼 지닌 자신에게서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가 탄생하신다는 것, 그녀의 기쁨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보잘것없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참된 아름다움에 눈뜬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의 목표와 가치를 깨닫고 있는 것이고,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드리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사건인지를 깨닫고 있었습니다. 사실 마리아 같은 비천한 몸을 빌려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셨다는 것은 이미 그 사실만으로도 당시의 엄격한 신분 질서를 전복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 행위는 영적인 영역을 넘어 인간의 정치사회적 토대까지도 하나님의 공의로서 변혁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러한 사실은 이어지는 마리아 찬가를 통해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 눅 1:51-55
우리는 이 마리아의 찬가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행동에는 사회경제적 요소까지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요소는 마리아 찬가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삿 5:1-31절의 드보라의 노래에서도, 그리고 출 15:21절의 미리암의 노래에서도 드러납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이러한 구약의 여인들의 찬가가 마리아의 찬가를 통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찬가들을 통해 우리가 깨닫는 진리는 남을 짓밟고 올라서 출세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마리아 찬가를 통해 보이는 대림절의 진리는 교만한 제왕들을 그들이 만든 권좌에서 끌어내립니다. 대림절의 진리는 사회의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진리이고, 비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고, 그 말씀에 자기의 미래를 순종시킨 마리아처럼 "주께서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 나라가 이루리라" 믿고, 우리의 희망을 그 나라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몸으로 잉태하고 낳아 기른 마리아라는 한 여인에 대한 묵상은 우리를 자연스럽게 크리스천 신앙의 전형인 삼위일체 신비에로 이끌어 갑니다. 요 14: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여기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날'은 바로 성령께서 강림하시는 '그 날'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가장 잘 드러내 주는 말씀인데, 이러한 삼위일체신비를 가장 탁월하게 체험한 인물이 바로 마리아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을 성령으로 잉태해서 자기 몸 안에 모시고 있었던 그녀보다 누가 더 하나님을 가까이 모셔보았겠습니까? 다시 말하면 마리아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본 받아야 하는 신앙과 순종의 전형이라는 말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수태할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뜻임을 알고 순종했습니다. 마리아는 지금 막 자기에게 일어나려는 일이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사랑하며 기다리는 마음' 바로 그 마음으로 인해 우리의 구원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모름지기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처럼 자신의 몸과 마음과 영 안에 성령의 힘으로 예수를 잉태하고, 성령의 힘으로 예수를 해산하고, 성령의 힘으로 예수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는 오늘의 우리여야 합니다. 오늘 서신서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마리아의 순종이 맺은 결실을 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미 오신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고백합니다.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 히 10:9, 10
첫째 것 즉 율법을 폐하시고, 둘째 것 즉 복음을 세우시려고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는데, 하나님의 그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다는 고백입니다. 한 여인의 믿음과 순종과 희생이 우리에게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총을 선물로 준 것입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눅 1:45) 마리아처럼, 우리도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는 믿음과 우리를 희생해서 마음과 몸을 내어드리는 헌신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쓰임받기를 소망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Exercitatio
① 말씀 아닌 힘과 권력으로 이루어진 질서를 숭배하지 않는가?
②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고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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