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21주 하나님만이 오직 최선이시다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암 5:6-7, 10-15
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7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10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 하는도다 11 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12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13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14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15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
응송 | 시 22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 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서신 | 히 4:12-16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 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복음 | 막 10:17-31
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 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9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0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 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 고 근심하며 가니라 23 ○예수께서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24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 는가 하니 27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8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 으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암 5:10-12, 6, 14을 묵상하십시오. 당시의 참상은 무엇이며, 아모스 선지자는 사람이 사는 길을 각각 무엇과 무엇으로 제시하였습니까?
② 막 10:22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이 슬픈 기색을 띠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③ 히 4:16을 묵상하십시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 는 언제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말씀합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하나님만이 오직 최선이시다
독일 신비주의의 아버지이며 사상가이자 교사이고 설교자요 저술가이기도 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약 1:17절의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라는 말씀에서 영감을 받아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주목하라! 당신들은 다음을 알아야 한다. 곧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고 모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의 의지만을 따르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베푸시는 것은 항상 최선이라는 것을, 또한 다음을 확신해야 한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방식은 필연적으로 최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더 나은 방식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어떤 다른 것이 여전히 더 나은 것으로 나에게 보일지라도, 그것은 당신에게 여전히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최선의 방식으로 사랑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 만약 당신이 항상 당신 자신의 어떤 것을 추구한다면, 결코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오로지 하나님만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이 말은 우리로 하여금 신앙에 있어 참된 자세가 무엇인지를 숙고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최선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만 바라보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최선의 사랑이 미덥지 못해, 어떤 다른 것, 혹은 자신의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
오늘 구약성경에서 아모스 선지자는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 5:6) 라고 단언합니다. 아모스가 왜 이렇게 설교하는지는 그 이전에 한 말씀들을 봐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로 앞에서 아모스는 이렇게 말씀했었습니다.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암 5:5). 벧엘이나 길갈이나 브엘세바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우상의 본거지'라는 점입니다. 그곳은 한 때 유서 깊은 신앙의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상을 섬기는 허무한 집이 되었으니, 살고자 한다면 여호와를 찾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서에서 마가는, 주님께 사랑스러운 시선을 받았지만 그러나 끝내 슬픈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돌아가 버린 한 사람을 보여줍니다(막 7 10:17-22). 남다른 물음을 끌어안고 '찾아 나선' 사람이고,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막 10:17) 라며 자기 삶의 궁극적인 질문도 던질 줄 아는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이미 마음이 '많은 재물'(막 10:22), 맘모니즘의 우상에 정복되어 있었기에, 주님을 따라나설 용기를 내지 못하고, 그만 슬픈 기색을 띤 채 돌아가고 맙니다. 주님은 그 일로 인해 당황스러워하는 제자들에게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막 10:27)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께만 최선이 있음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서신서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라며(히 4:15), 그분의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라고 당부합니다. 우리의 혼과 영을 꿰뚫어 아시고,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주님만이, 살아 있고 활력이 있으며 좌우에 날선 검보다도 예리한 당신 말씀으로 우리를 깨우치시고(히 4:12),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우리를 보살펴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 암 5:6
"들으라" 라는 예언자적 명령으로 시작된 아모스의 설교가 3장1절부터 시작되어 5장에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본디 아모스(무거운 짐을 진 자) 선지자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6km 떨어진 드고아(테코아)라는 고지대 마을에서 양을 치던 목자였습니다. 선지자가 아닌 양 치는 목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묵시가 임하고 선지자로 부름 받은 것은 매우 이레적인 사건이었고, 그런 흔치 않은 경우를 통해 우리는 당시 사회가 매우 어두웠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모스가 전하는 말씀은 일관되게 심판에 관한 메시지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바로 앞에 있는 암 5:5에서 아모스 선지자는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보듯이 벧엘과 길갈과 브엘세바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속에서 매우 유서 깊은 신앙의 명소(名所)였습니다. 벧엘은 옛적에 야곱이 여호와를 만났던 곳(창 28:10-15)이고, 길갈은 가나안 정복 때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요단을 건넌 것을 기념하는 열두 돌이 세워져 있는 곳이며(수 4:20-22), 브엘세바는 아브라함이 에셀 나무를 심고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곳(창 21:33)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신성한 성지(聖地)를 향한 아모스의 예언은 너무 비관적입니다. "길갈 주민은 끝내 잡혀가고 베델은 빈터만 남으리라"(암 5:5b 공동번역) 과거 그들의 조상이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이고, 하나님을 기념하고 경배하는 거룩한 땅인 이곳이 그만 종교 혼합주의의 온상으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자행된 우상숭배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과 분리되는 결과를 자초하고 말았습니다.뿐만 아닙니다.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암 5:7) 이라든지,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한다'(암 5:10)라든지,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암 5:12a)라든지,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암 5:12b)라는 표현들도 당시 사회의 어두웠던 단면을 잘 보여줍니다. 이 표현들을 좀 더 심층적으로 보겠습니다.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 암 5:7
여기서 선지자가 말하는 '쓴 쑥'은 '라아나'라고 하는 매우 쓴 맛을 지닌 팔레스티나의 식물 이름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암 6:12에서도 "너희는 정의를 쓸개로 바꾸며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꾸며" 라고 질타합니다. 법정에서 자행되는 일들을 말하는 것인데, 법을 집행하는 법관들이 정의를 팽개치고, 마치 쓰디 쓴 식물을 먹이고 쓸개즙을 먹이듯이 백성에게 고통을 가하는 현실을 반영한 것입니다. 진실하고 공의로운 판결은 달콤하지만, 부패한 판결은 쓰디 쓸 뿐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또 이렇게 한탄합니다.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 도다 | 암 5:10
당시 사회에서 '성문'은 장이 열리는 장터이기도 했고, 정보를 교류하며 경제활동을 하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오늘 아모스가 언급하는 성문은 법률 소송 절차가 수행되던 법정(法廷)으로서의 성문이었습니다(암 5:12b, 15;신 21:19). 그런데 아모스 당시에는 법이 정당하게 실현될 수 있는 구조가 깨어지고 말았기 때문에, 법정에서 그릇된 판결을 지적하고 책망한다든지,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배척했습니다. 법을 다루는 자들이 법을 이용해서 사적 이익을 도모하면 그런 사회는 필연적으로 쓰디 쓴 맛을 낼 수밖에 없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또 이렇게 폭로합니다.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 암 5:12
여기서 선지자가 말하는 뇌물(코페르)은,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혹은 범죄를 무마하기 위해 건네는 불의한 재물을 의미합니다. 율법은 이러한 불의를 엄하게 금하고 있지만(민 35:31), 그러나 사람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뇌물을 건넴으로써 약자들은 늘 억울한 일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당대의 지혜자들이 정의롭게 목소리를 내며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모스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 암 5:13
소위 지혜자라는 자들이 지혜를 명분으로 불의 앞에서 비겁하게 침묵하며 가난한 자들을 더욱 더 쓰디 쓴 현실로 내몰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당시 북이스라엘은 서서히 죽음의 길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일개 양치는 목자였던 아모스를 일으켜 그 부패한 사회를 경고하셔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소명에 응한 아모스는 선지자로서 부패한 관료들과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신랄한 규탄과 심판을 말해야 했습니다. 아모스는 그들이 살 길을 이렇게 가르쳐줍니다.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 암 5:6
그러면 선민인 그들이 그동안은 여호와를 찾지 않았단 말일까요? 당시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나름대로 벧엘과 길갈과 브엘세바를 찾아다니며 번제물과 곡식단을 바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지역들은 이미 우상이 점령하고 있었고, 그들은 하나님 아닌 우상에게 제사하고 있었습니다. 순일하게 하나님을 향하고 있어야 할 마음이 우상과 우상이 주는 축복에 점령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하나님 자리를 우상으로 대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시대 종교 지도자들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당시 벧엘의 제사장이었던 아마샤 같은 자들은 백성들을 영적 무지와 타락으로 이끌며 자신은 왕에게 기생하여 부를 누리고 있었습니다(암 7:10).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느 한 사회에서 벌어지는 부패의 이면에는 반드시 부패한 종교와 종교인들이 있습니다. 성직자들이 부패한 세력과 결탁하고 있거나, 성직자들이 부패한 세력에 잠잠하고 있으면 그 사회는 필연적으로 쓰디 쓴 사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라고 일갈한 것은, 우상숭배에로 몰려가는 발길을 돌이켜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호소인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로우심 앞에 무릎 꿇고 무엇보다 자신의 영적 상태부터 쇄신하라는 의미입니다.당시 북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여로보암 1세는 야곱이 돌기둥을 세우고 하나님께 예배했던 벧엘, 요단강을 건넌 후 기념비를 세우고 제단을 쌓은 길갈, 아브라함이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브엘세바에 금송아지를 세워두고, 그 우상이 바로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낸 여호와라고 선전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그들대로 풍요와 다산이라는 탐심을 채워줄 우상 앞에 영혼을 바쳤습니다. 아모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호세아 선지자는 백성들의 그런 변질된 영적현상을 목도하며 '하나님의 집'이라는 의미의 '벧엘을 '벧아웬'이라고 바꾸어서 불렀습니다. '허무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신앙을 주술로 만들어버리면 교회는 허무한 집이 되고 맙니다. 교회는 허무한 집이 되면 안 되고, 예배와 기도는 주술이 되면 안 됩니다. 예배는 우리의 탐심을 채워주는 도구가 아닙니다. 예배는 나를 버리고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부패한 예배가 부패한 백성을 만들고, 부패한 백성이 부패한 사회를 만듭니다. 그리고 부패한 사회는 허무를 좇는 사회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렇게 당부합니다.
살고 싶으냐?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여라. 너희의 말대로 만군의 하나님 야훼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 암 5:14
이 말씀의 흐름을 잘 보십시오. 4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또 6절에서 아모스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리고 14절에서 아모스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살고 싶으냐?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여라." 바로 이 말씀의 흐름 안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사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부단히 하나님을 찾는 것이고, 하나님의 최고의 선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노르치아(Norcia)의 성 베네딕도가 쓴 '수도규칙' 제7장 '겸손에 대하여'에 보면, 겸손한 삶의 12단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중 겸손의 첫 단계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겸손의 첫째 단계는,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늘 눈앞에 두어 잠시도 잊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매 시간 죄와 악습에서, 즉 생각과 혀와 손과 발과 자기의 뜻과 육체의 욕망에서 자기를 지킬 것이다. 하나님께서 천상으로부터 매시간 자신을 내려다보시고, 자신의 행동을 어디서나 살펴보시며, 또 천사들이 매시간 보고 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것이다."
복음서에 보면 어느 날 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는 그 부유함으로 인해 세인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살아왔을 것이지만, 그러나 정작 그에게는 남모르는 결핍이 있었습니다. 그의 질문에서 '참으로 사는 것'에 대한 그의 깊은 고민이 처절하게 묻어납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 막 10:17
이 결핍감과 고민과 질문이 이 사람만의 것일까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이 생명의 허무에 시달립니다. 그 생명의 허무를 감지하셔서인지 주님은 찾아온 이 사람을 진지하게 대해주십니다. 먼저 주님은 그가 간과하고 있는 것 한 가지를 수정해 주십니다.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 막 10:18
주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마저도 선함에서 제외하시는 듯 보여서 얼핏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이어지는 전개를 보면 말씀의 뜻을 알 것도 같습니다.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 막 10:19, 20
어려서부터 계명을 지켰다는 것은 베네딕도의 표현을 빌자면, 매 시간 죄와 악습에서, 즉 생각과 혀와 손과 발과 자기의 뜻과 육체의 욕망에서 자기를 지켰다는 뜻이겠습니다. 그것은 정말 칭찬할 만한 삶이었고, 그래서 예수님도 이 사람을 매우 사랑스럽게 바라보셨습니다(막 10:21). 그러나 자신이 어려서부터 계명을 잘 지켰다는 그 사실로 인해 이 사람은 '자기 선(善)'에 대한 교만에 빠질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마저 선에서 제외하시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 마 10:21
이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청년은 어려서부터 계명을 잘 지켜왔습니다. 어려서부터 반듯하게 자신을 지켜온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한 가지가 부족하다고 하십니다. 어쩌면 그 한 가지 부족이 그의 존재 전체를 결핍으로 몰아갔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곁에 있는 가난한 자를 보지 않았습니다. 자기 세계 안에 있을 때는 반듯한 청년인데, 그의 반듯함에 이웃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한 가지 부족으로 말씀하셨지만, 어쩌면 그 한 가지 부족이 영생의 길을 모색하는 청년에게는 절대적 결핍일 수도 있었겠습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기자회견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하고 날마다 시신이 실려 나오고 있는데, 잔치를 벌이는 것처럼 기자회견을 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참된 반듯함이란 이런 것 아닐까 싶습니다. 전 세계가 축하할 수상을 했으면서도 고난 중에 있는 이웃이 마음에 걸려서 마음껏 기뻐할 수 없는 반듯함, 예수님께서 청년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면서도, 그러나 그 한 가지 부족에 대해서는 아쉬워하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부자는 주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 마 10:22
가슴 아픈 장면입니다. 이 사람의 슬픈 기색은 신앙인으로서의 우리의 자신감을 꺾어놓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심지어 제자들도 놀랐다는 말씀이 두 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번은 예수님께서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막 10:24)라고 말씀하셨을 때이고, 또 한 번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막 10:25)라고 말씀하셨을 때입니다. 제자들마저 이 말씀 앞에서 놀랐다면, 우리 또한 이 말씀은 부담스러운 말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해주십니다.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 막 10:27
오늘 서신서에서 히브리서 저자 역시 주님과 같은 말씀을 들려줍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히 4:15, 16
이 말씀은 우리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고 동정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때를 따라 도우신다고 약속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소개한 책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에서 저자인 게르하르트 베어는 "피조물이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었다고 생각할 때, 피조물에 달라붙는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인해 에크하르트는 자신의 중심주제인 하나님께로 돌아섰다"면서 에크하르트의 고백을 소개했습니다.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영원한 인식 가운데서 낳는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신의 고유한 본성대로 아들을 자신과 같은 영적 존재로 낳는다."(156-157쪽)
'피조물인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 바로 이 깨달음이 우리로 하여금 '나의 중심이신' 아버지께로 돌아서게 해줍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고유한 당신 본성이 그러하시듯 우리 또한 당신 안에서 영적 존재가 되게 하십니다. 진정으로 사는 길은 그렇게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지 않고, 나의 중심이신 하나님 안에서 영적 존재로 사는 것입니다. 그 길이 너무 멀고 불가능하게 보여 때때로 우리는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이미 우리와 같은 연약함을 겪으신 예수님께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우리를 도우신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해 졌습니다. 날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 그리고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나의 하나님을 찾는 것, 그리고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생에 이르는 삶, 진정으로 사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최선이십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Exercitatio
① 세상의 질서를 따라 힘없는 자를 밟고 서려 하지는 않았는가?
②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선(善)을 구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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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1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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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2주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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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10.19 |
407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1주 하나님만이 오직 최선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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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10.12 |
406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0주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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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10.05 |
405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8주 땅의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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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21 |
404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7주 내 언어의 원천(源泉)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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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14 |
403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6주 복 있는 눈, 복 있는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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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07 |
402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5주 장로들의 전통과 하나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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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01 |
401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4주 제2의 본성을 쇄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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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