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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8주 땅의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9-21 19:00
조회
125
성령강림 후 제18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잠 31:10-31
10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11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하지 아니하겠으며 12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13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14 상인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 오며 15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자기 집안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며 여종들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16 밭을 살펴보고 사며 자기의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일구며 17 힘 있게 허리를 묶으며 자기의 팔을 강하게 하며 18 자기의 장사가 잘 되는 줄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며 19 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으며 20 그는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 21 자기 집 사람들은 다 홍색 옷을 입었으므로 눈이 와도 그는 자기 집 사람들을 위하여 염려하지 아니하며 22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 23 그의 남편은 그 땅의 장로들과 함께 성문에 앉으며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24 그는 베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맡기며 25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 26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27 자기의 집안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28 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29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 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31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 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응송 | 시 1:1, 2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 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서신 | 약 3:13-4:3, 7-8a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 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 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복음 | 막 9:30-37
30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 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 고자 아니하시니 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3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 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36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 들에게 이르시되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막 9:32-34을 묵상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 한 제자들은 결국 어디에 관심을 두었습니까?
② 약 3:13-18을 묵상하십시오. 위로부터 난 지혜와 땅위의 지혜는 각 각 그 열매에 있어 어떻게 다릅니까?
③ 잠 31:10, 30을 묵상하십시오. 현숙한 여인의 현숙함은 30절에 따르 면 어디로부터 온 것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아버지, 아버지의 손에 저를 드립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제게 행하시옵소서. 어떻게 하시든 저는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수용할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제 안에서 아버지의 모든 피조세계에서 아버지의 뜻만이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기에 저를 드리며 아무 조건 없이 무한한 믿음으로 아버지의 손에 저를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나의 아버지시기에. 아멘.
그리고 그가 떠난 '안식의 여정'은, 푸코의 이 기도문대로 마쳐졌습니다. 1996년 5월 1일 그의 일기에는, 그가 40세에 쓴 기도문이 자신의 신앙의 흔적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인생이 절반에 이른 시점에서 저는 주님의 임재 속에 들어가서 자신을 주님께 재 헌신하고 싶습니다. 지난 40년간 주님은 저를 인도해 주셨고, 성숙한 믿음과 자신의 은사에 대한 새로운 확신 속에서 영적으로 장성한 자가 되도록 점차 이끌어 주셨습니다.(중략) 주님을 제 목자와 인도자로 맞아들입니다. 야망으로 가득 찬 세상 한 복판에서 겸손한 자가 되게 하소서. 권력에 집착하는 세상에서 연약하게 살게 하소서, 복수와 응징의 고통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게 하소서.(중략) 주님께서 제게 주신 은사를 믿게 하시고 위험도 마다하지 않고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주님, 제 인생과 제 소명과 주님께서 제 마음에 심어주신 이 소망을 인해 감사드립니다. 아멘.
그는 진지한 영적 사유(思惟)를 통해, 자기가 돌아갈 본향을 주목하며 하루의 삶에 성실했고, 1996년 9월 21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오늘 복음서인 막 9:30-37절은 예수님의 생애에서 중요한 내러티브로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걸은 공생애 '마지막 여정' 중에 '인자(人子)' 즉 '사람의 아들'이신 당신의 정체성을 제자들에게 점진적으로 계시하시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께서 세 번에 거쳐 당신께서 당하실 수난을 예고하시는데, 첫 번째 수난 예고는 지난주에 보신대로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은 후 주어졌고(막 8:31;마 16:21;눅 9:21-23), 두 번째 수난 예고는 변화산 사건이 있은 후 산에서 내려오던 중에 주어졌습니다(막 9:9;마 17:22, 23;눅 9:44). 그리고 세 번째 수난 예고는 예루살렘에 거의 도착할 즈음 주어졌습니다(막 10:32-34;마 20:17-19;눅 18:32-34). 주님은 이 여행 중에 집중적으로 당신께서 당하실 수난을 예고하심으로서, 그리스도로서 당신께서 감당해야 할 수난과 죽음을 분명히 하셨고, 동시에 제자들 역시 당신의 고난과 희생에 내포된 진리를 깨닫고 각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수난예고 때마다 제자들은 세 가지 특징적 패턴을 드러냅니다. ① 예수님은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시고(막 8:31, 9:31, 10:33-34), ②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막 8:32-33, 9:32, 10:35-41), ③ 예수님께서는 추가적 가르침을 주십니다(막 8:34-9:1, 9:33-50, 10:42-45). 그중 오늘 복음서에서 마가는 두 번째 수난 예고를 들었을 당시의 제자들의 반응을 이렇게 전해줍니다.
저는 야고보 사도의 이 말씀에 공감합니다. 땅 위의 지혜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는 새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이신 그 지혜가 아니고는 안 됩니다. 그래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을 가리켜 '위로부터 난다(born from above)'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응송에서 시인은 노래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Exercitatio
① 땅 위의 지혜로 시기와 다툼 속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② 위로부터 난 지혜로 화평하고 관용한 삶을 살고 있는가?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잠 31:10-31
10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11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하지 아니하겠으며 12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13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14 상인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 오며 15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자기 집안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며 여종들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16 밭을 살펴보고 사며 자기의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일구며 17 힘 있게 허리를 묶으며 자기의 팔을 강하게 하며 18 자기의 장사가 잘 되는 줄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며 19 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으며 20 그는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 21 자기 집 사람들은 다 홍색 옷을 입었으므로 눈이 와도 그는 자기 집 사람들을 위하여 염려하지 아니하며 22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 23 그의 남편은 그 땅의 장로들과 함께 성문에 앉으며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24 그는 베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맡기며 25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 26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27 자기의 집안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28 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29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 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31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 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응송 | 시 1:1, 2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 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서신 | 약 3:13-4:3, 7-8a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 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 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복음 | 막 9:30-37
30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 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 고자 아니하시니 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3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 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36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 들에게 이르시되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막 9:32-34을 묵상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 한 제자들은 결국 어디에 관심을 두었습니까?
② 약 3:13-18을 묵상하십시오. 위로부터 난 지혜와 땅위의 지혜는 각 각 그 열매에 있어 어떻게 다릅니까?
③ 잠 31:10, 30을 묵상하십시오. 현숙한 여인의 현숙함은 30절에 따르 면 어디로부터 온 것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땅의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
헨리 나우웬의 '안식의 여정'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1996년 9월 21일 세상을 떠났는데, '안식의 여정'에는 그가 죽기 전 마지막 한 해 동안 쓴 일기가 담겨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이 일기의 마지막 회를 마친 3주 후,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이 일기는 그의 유언과도 같은 것이고, 그가 걸어온 인생길의 결론과도 같은 것입니다. 1995년 9월 2일 안식년 첫 날, 그의 일기는 '샤를르 드 푸코(Charles de Foucauld)'의 기도 시로 시작합니다.아버지, 아버지의 손에 저를 드립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제게 행하시옵소서. 어떻게 하시든 저는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수용할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제 안에서 아버지의 모든 피조세계에서 아버지의 뜻만이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기에 저를 드리며 아무 조건 없이 무한한 믿음으로 아버지의 손에 저를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나의 아버지시기에. 아멘.
그리고 그가 떠난 '안식의 여정'은, 푸코의 이 기도문대로 마쳐졌습니다. 1996년 5월 1일 그의 일기에는, 그가 40세에 쓴 기도문이 자신의 신앙의 흔적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인생이 절반에 이른 시점에서 저는 주님의 임재 속에 들어가서 자신을 주님께 재 헌신하고 싶습니다. 지난 40년간 주님은 저를 인도해 주셨고, 성숙한 믿음과 자신의 은사에 대한 새로운 확신 속에서 영적으로 장성한 자가 되도록 점차 이끌어 주셨습니다.(중략) 주님을 제 목자와 인도자로 맞아들입니다. 야망으로 가득 찬 세상 한 복판에서 겸손한 자가 되게 하소서. 권력에 집착하는 세상에서 연약하게 살게 하소서, 복수와 응징의 고통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게 하소서.(중략) 주님께서 제게 주신 은사를 믿게 하시고 위험도 마다하지 않고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주님, 제 인생과 제 소명과 주님께서 제 마음에 심어주신 이 소망을 인해 감사드립니다. 아멘.
그는 진지한 영적 사유(思惟)를 통해, 자기가 돌아갈 본향을 주목하며 하루의 삶에 성실했고, 1996년 9월 21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오늘 복음서인 막 9:30-37절은 예수님의 생애에서 중요한 내러티브로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걸은 공생애 '마지막 여정' 중에 '인자(人子)' 즉 '사람의 아들'이신 당신의 정체성을 제자들에게 점진적으로 계시하시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께서 세 번에 거쳐 당신께서 당하실 수난을 예고하시는데, 첫 번째 수난 예고는 지난주에 보신대로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은 후 주어졌고(막 8:31;마 16:21;눅 9:21-23), 두 번째 수난 예고는 변화산 사건이 있은 후 산에서 내려오던 중에 주어졌습니다(막 9:9;마 17:22, 23;눅 9:44). 그리고 세 번째 수난 예고는 예루살렘에 거의 도착할 즈음 주어졌습니다(막 10:32-34;마 20:17-19;눅 18:32-34). 주님은 이 여행 중에 집중적으로 당신께서 당하실 수난을 예고하심으로서, 그리스도로서 당신께서 감당해야 할 수난과 죽음을 분명히 하셨고, 동시에 제자들 역시 당신의 고난과 희생에 내포된 진리를 깨닫고 각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수난예고 때마다 제자들은 세 가지 특징적 패턴을 드러냅니다. ① 예수님은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시고(막 8:31, 9:31, 10:33-34), ②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막 8:32-33, 9:32, 10:35-41), ③ 예수님께서는 추가적 가르침을 주십니다(막 8:34-9:1, 9:33-50, 10:42-45). 그중 오늘 복음서에서 마가는 두 번째 수난 예고를 들었을 당시의 제자들의 반응을 이렇게 전해줍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 막 9:32
제자들의 이 마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수님 말씀이 어려워서 그들이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자신들의 기대와 욕망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부하는 것이고, 묻기조차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주님과 제자들은 가버나움의 한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한 가지 물음을 던지십니다.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 막 9:33
제자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아니 차마 입을 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번째 수난 예고를 하는 순간에도 자기들은 철없이 서열 문제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제자들을 보면서 새삼 하나님의 길과 인간의 길이 참 다르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의 제자라는 옷만 바꾸어 입었을 뿐, 세속적 지위와 권력에 대한 욕망은 그대로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두 차례나 당신께서 예루살렘에 가시는 것이 영광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수난을 당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기에 받아들이지 않는 겁니다. 한 번 명예에 정조준 된 마음은 주님의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타이르십니다.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 막 9:35
이 말씀은 주님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주님의 삶은 바로 이 말씀의 성육신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 말씀에 진정으로 공감하십니까? 우리가 이 말씀에 진정으로 공감한다면 앞으로 우리 기도가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저와 제 자녀가 섬김을 받는 사람이 되기보다 섬기는 사람이 되게 하여주십시오. 섬김을 받는 위치에 서려고 노력하기보다 섬기는 자리를 소중히 여기게 해주십시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는 이렇게 기도가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고 예수님께서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물으실 때, 수치와 후회 속에서 침묵하지 않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는데, 자신들은 서열문제를 놓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초라하고 못난 제자들입니까?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첫째가 되는 사람'으로 가장 어울리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다른 사람을 나보다 지혜롭고 선하게 여겨 겸손히 받들어 섬기는 사람입니다. 만일 자신을 남보다 낫게 여겨서 첫 자리를 차지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그 자체로 무자격자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첫 자리에 앉는다는 의미는 형제를 위해 가장 먼저 자신을 십자가에 매어단다는 순교적인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첫 자리를 복음적으로 지켜내셨습니다. 실제 예수님께서는 35절에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훗날에는 자신의 십자가와 연관 지어 막 10:43-45에서 다시 한 번 글자 그대로 반복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리고 예수님은 요한복음 13장에서 말씀대로 종의 모습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데, 당신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행동을 죄를 씻어주시는 것과 연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요 13:7, 8). 그러니까 '겸손'은 인격의 열매가 아니라 복음적 결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교회가 예수님의 이 마음을 모른다면 끝내 그 천박성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 말씀만으로 제자들을 깨닫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신 뒤에, 시각적으로 그 아이를 보게 하시며 다시 한 번 말씀하십니다.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 막 9:37
비잔틴 교부들이 사용했던 표현을 빌리자면 주님은 부정(否定)의 언어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어린이는 나이가 어리다는 사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이는 당시의 상황에서 볼 때, 삶의 변두리로 밀려난 존재(marginal man)였습니다. 주님은 그런 이들을 마음을 다해 돌보는 것을 당신을 영접하는 행위로 여긴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요일 4:20, 21에서 주님의 마음을 더 선명한 언어로 드러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이 마음이 있어야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벗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자녀들을 위한 우리 기도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머리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보다는 '어떤 위치에 있던지 소명감으로 자기 자리를 지키고 나보다 약한 형제를 배려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오늘 서신서의 말씀에서 사도 야고보는 우리에게 묻습니다,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 약 3:13a
이 물음 앞에 잠시 머물러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중에 지혜가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우리 중에 총명이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주님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세태를 보며 탄식하셨는데(렘 5:21, 막 8:18), 우리는 과연 시선을 어디에 두고 살고 있는 것이며, 귀를 어디에 열고 살고 있는 것일까요? '大學'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대학지도(大學之道)는 재명명덕(在明明德)하며, 재친민(在親民)하며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이니라" "큰 배움의 길은 하늘이 내린 맑은 마음을 이지러짐이 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고, 그 마음으로 사람들을 가까이 하여 그들을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감화시키는 것이고, 지극히 선한 자리에 머무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서신서에서 사도 야고보 역시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고 물은 후에 이렇게 간곡히 당부합니다.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 약 3:13b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는 '큰 배움을 얻은 사람답게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착한 생활을 함으로써 지혜의 증거를 보여주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시인 윤동주는 파랗게 녹이 낀 구리거울 속의 자기 모습을 부끄러워하다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고 다짐합니다.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라도 닦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절박함, 이게 시인을 깨어 있게 만듭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욕심껏 살면서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이게 타락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게 낭패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자기를 지나치게 과신해서 자기 지혜와 의지로 해결하려고 하면 반드시 낭패를 보도록 되어 있습니다. 낭(狼)과 패(狽)는 '이리 과(科)' 짐승인데 꼬리가 길어서 들판을 내달리다가 제 꼬리를 밟고 넘어진다고 합니다. 낭패란 그런 것입니다. 자기 지혜와 자기 힘을 의지하다가 제 꼬리를 밟고 넘어지는 것입니다. 사도 야고보에 따르면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독한 시기와 다툼(약 3:14a)이고,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는 것(약 3:14b)입니다. 그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고, 정욕의 것이고, 귀신의 것(약 3:15)입니다. 이렇듯 땅 위의 지혜, 정욕적이며 귀신의 것인 지혜로 살다가 넘어지는 것이 낭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지혜가 아닌 '위로부터 난 지혜'를 얻어 그 지혜로 살아야만 합니다. 그 '위로부터 난 지혜'를 사도 야고보는 이렇게 말씀합니다.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 약 3:17
저는 야고보 사도의 이 말씀에 공감합니다. 땅 위의 지혜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는 새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이신 그 지혜가 아니고는 안 됩니다. 그래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을 가리켜 '위로부터 난다(born from above)'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응송에서 시인은 노래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 시 1:1, 2
시인의 고백에 의하면 '복 있는 사람'은 땅의 지혜로 사는 사람이 아니고 위로부터 난 지혜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가리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그리스도인' 된 사람들이 주목해서 보아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는 이유입니다. 그 이유를 사도 야고보는 이렇게 말씀합니다.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 약 3:18
위로부터 난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평화의 열매, 의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따라서 위로부터 난 지혜를 얻은 성도는 평화의 열매를 맺으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평화를 심어가는 것은 위로부터 난 지혜를 구하고, 그 지혜를 따라 살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은 현숙한 여인을 통해 일구어져 가는 평화로운 가정의 모습을 보여줍니다.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 잠 31:10
여기에서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현숙한 여인'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대략 두 가지 견해로 나뉩니다. 첫째는 실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 사람들은 룻기에 등장하는 '룻'이라는 여인을 꼽습니다. 실제 룻 3:11에 보면 보아스가 그녀를 향해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실제로 그녀는 현숙한 여인으로서 가정을 살려가는 여인으로 묘사됩니다. 둘째는 '의인화 된 지혜'라는 것입니다. 만일 현숙한 여인이 지혜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지혜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겠습니다. 여자들은 현숙한 여인이 되어야 할 것이고, 남자들은 현숙한 여인과 결혼해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여인의 현숙함이, 다른 것이 아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 잠 31:30
결국 오늘 성서일과의 말씀들이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땅의 가치관이 아닌 위로부터 난 가치관, 땅의 지혜가 아닌 위로부터 난 지혜로 살라는 것입니다. 땅의 지혜는 힘과 계략으로 욕망의 첫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난 지혜는 형제를 위해 십자가를 짐으로서 겸손의 첫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땅의 지혜는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합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여인의 현숙함은 바로 이 '위로부터 난 지혜'로 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는 다 길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른 방향으로, 바른 길을 걷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이 '안식의 여정' 끝에서 "아버지, 아버지의 손에 저를 드립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제게 행하시옵소서."라며 기도했듯이,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여정' 끝에서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라며 기도하셨듯이, 우리 모두 "땅의 지혜가 아닌 위로부터 난 지혜로 살게 하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Exercitatio
① 땅 위의 지혜로 시기와 다툼 속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② 위로부터 난 지혜로 화평하고 관용한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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