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19주 복음의 중심으로 들어가라
■ 읽 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출 32:1-14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10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11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응송 | 시편 106
애굽에서 큰 일을 행하신 그의 구원자 하나님을 그들이 잊었나니 그는 함의 땅에서 기사와 홍해에서 놀랄 만한 일을 행하신 이시로다
서신 | 빌 4:1-9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복음 | 마 22:1-14
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 5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 묵 상 | meditatio
1. 마 22:14절을 묵상하십시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는 말씀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됩니까?
2. 출 32:1을 묵상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동기는 누구를 위해서였습니까?
3. 빌 4:8을 묵상하십시오. 바울이 말씀하는 성도가 입어야 할 예복은 어떤 것들입니까?
■ 기 도|Oratio |5-10분
■ 묵상 나눔
복음의 중심으로 들어가라
시인 윤동주는 25년 5개월을 살고 젊디젊은 나이에 사망했습니다. 윤동 주는 처음부터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복음의 중심 에 서있었던 사람입니다. 그의 시에는 예수님 뿐 아니라 릴케라든지 투르케 네프, 도스토예프스키가 등장하는데, 이 사람들은 모두 성경을 가까이 한 사람들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눅 4:18절을 기억하실 것입니 다. 예수님의 사명 선언문이 담긴 말씀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등장하는 사람 들이 누구입니까?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입니다. 그러니 까예수님의사명은정확하게가난한자,포로된자,눈먼자,눌린자를향 하셨다는 것이 누가공동체의 판단입니다. 윤동주는 그 사실을 정확하게 파 악하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면 윤동주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렇게 성 경의 깊은 지식을 얻었을까요? '하브루타(havruta, אָתּורְבַח)'라는 말이 있습 니다. 유대인의 전통적 학습방법인데, 각자가 분석하고 자신의 생각을 조직 화해서 상대방에게 설명하고, 상대방의 설명도 듣고, 질문도 하면서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는 학습법입니다. 예를 들어 단 1:7에 보면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 달아 알더라" 라는 말씀이 있 는데, 다니엘을 포함해 네 명 의 소년이 함께 성경을 읽으 며 지혜를 얻습니다. 이게 바 로 '하브루타' 식 성경공부인 데, 윤동주도 그렇게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성경학교 에서 학생들과 같이 성경공부 를 하면서 토론을 했는데, 1935년에 찍은 용정북부교회 하기성경학교 사진을 보면 그 중에는 문익환 목사도 있었습니다.
규암 김약연 목사(1868~1942)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윤동주 의 외삼촌입니다. 윤동주의 집안은 이 규암으로 인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윤동주는 이 분에게 한학을 배웠습니다. 김약연목사는 맹자 전문가이자 무 장독립투쟁가였습니다. 간도지방 독립운동의 배후조정자이기도 한 그가 감 옥에 갇히게 되는데, 거기에서 성경을 읽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됩 니다.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400년이나 노예생활을 했는데, 자신들의 정체 성을 잃지 않고 탈출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400년 동안 남의 나라에 있으 면서 어떻게 자기 민족을 잊지 않았는가?" 그게 충격이었습니다. 이후로 그 의 관심의 중심은 히브리였습니다. '히브리'와 '하비루'는 같은 말인데, 노예 계급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중심이 아닌 주변 사람들인데, 외삼촌인 규암이 그들에게 관심을 갖다 보니, 외삼촌에게 영향을 받은 윤동 주의 관심 역시 세상중심에서 밀려난 주변 사람들이었습니다. 윤동주에게는 그들이 바로 눅 4:18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먼자, 눌린 자였습니다. 윤동주가 쓴 첫 번째 시(詩)가 1934년 12월 24일에 쓴 '초 한 대'라는 시입니다
내 방에 품긴 향내를 맡는다. 광명(光明)의 제단(祭壇)이 무너지기 전
나는 깨끗한 제물(祭物)을 보았다.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그의 생명(生命)인 심지(心志)까지
백옥(白玉)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라 버린다.
그리고도 책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 암흑(暗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나의 방에 품긴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12월 24일이면 성탄절 전날입니다. 그러니까 이 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며 쓴 것입니다. 첫 구절에 등장하는 '내 방에 품긴 향내'가 마지막에 가서는 ' 위대한 향내'로 바뀝니다. 빼앗긴 조국을 자신의 '방'으로 여기고, 그 방에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삶이, 예수님처럼 갈비뼈를 불살라 '위대한 향내'로 풍겨질 것을 다짐하는 시인 것입니다. 스물다섯 청년인 윤동주가 통한의 민 족사 속에서 그렇도록 복음의 중심에 깊이 들어가 살았었다는 사실에서 우 리는 감동을 느낍니다. 우리는 그렇지 못할 때가 참 많습니다. 우리가 살아 가는 삶 속에 복음을 담고, 주변사람들을 보듬으며 살아가기보다는 오히려 복음에 있어 주변사람이 되어서 아무 향내도 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겁니 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이 바로 그런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주님께서 혼인잔 치에 초대된 사람들 이야기를 하십니다. 이 비유의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자 면 그들은 복음의 중심으로 초대를 받았음에도 그 초대에 걸맞지 않은 사람 들이 되고 맙니다. 아들의 결혼을 준비하는 한 임금이 종들을 보내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에 여러 사람을 초청합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 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 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 에 오소서 하라 | 마 22:2-4
왕자의 혼인은 나라의 대사였기 때문에 임금의 초대는 매우 정중했을 것 입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초대받은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비유가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임을 상기할 필요 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는 자주 '잔치'로 묘사되곤 했 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 25:6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잔칫날을 모든 사람의 몸에서 '수의(壽衣)'를 벗기시는 날로, 사람들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 아주시는 날로, 자기 백성을 수치에서 해방시켜주시는 날로 묘사합니다. 사 도 요한은 계 19:9에서 역사의 완성을 '어린 양의 혼인잔치'로 묘사하고 있습 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서 사람들이 운명처럼 걸치고 있던 '수의'가 벗겨 지고,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서 사람들의 눈물이 닦아지고, 수치가 사라집니 다. 거기서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고, 불화하던 이들이 형제자 매의 사랑을 회복하고, 사람들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회복합니다. 바로 그 잔 치자리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초청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대받은 ' 우리'가 가기를 거절합니다. 거절당한 하나님의 비애가 얼마나 컸을까요? "모 든 것을 갖추었다"는 말씀이오히려 더 슬프게 느껴지는 까닭입니다.
오늘 복음서는 우리가 지난주와 지지난 주에 보았던 두 개의 비유 즉 두 아들의 비유(마 21:28-32)와 또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마 21:28-32)와 그 흐름에서 긴밀히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서도 이렇게 시작되 는 겁니다.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마 22:1) 늦게나마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나서 다시 포도원으로 발길을 돌렸던 둘째 아들의 이 야기를 들려주시며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 어가리라"(마 21:31) 하신 말씀과, 하나님이 보내신 종들과 아들을 돌로 치 고 죽인 자들로 자기들을 지목하신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를 들은 후에 그 들의 반응을 마태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 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나"(마 21:45) 예수님은 그들이 두 개의 비유를 듣고 회개하기를 원하셨지만, 그러 나 끝내 회개하기를 거절하고 오히려 당신을 붙잡아 죽이려드는 모습을 보 며 오늘 복음서의 비유를 말씀하시게 된 것입니다. 너희가 바로 임금의 초 대를 거절한 그 무례한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왜 임금의 초대를 거절했을까요? 3절에서 주님은 그들이 "오기를 싫어했다"고 평이하게 말씀 하셨지만, 5절에서는 그들이 임금의 초대를 "돌아보지도 않았다"고 격앙되게 말씀하십니다. 애초부터 마음이 없었던 겁니다. 그들 마음엔 순종할 마음도 없었지만, 임금의 초대에 응할 마음도 없습니다. 그냥 마음만 없었던 게 아 닙니다. 심지어 어떤 자들은 임금의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는 행동까지 불사합니다. 임금은 그만 분노하고 맙니다. 임금은 군대를 보내 살인자들을 진멸하고, 그들의 동네를 불살라 버립니다.(마 22:7) 심판을 단행한 것입니 다. 임금의 독백에서 실망과 분노가 가득 배어나옵니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 마 22:8
처음에 초청받은 이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초청받 은 선민(選民)인 이스라엘과 유대교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초청장 은 무효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초청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 라, 그들의 마음이 초청에 합당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초청에 합당 치않은이런모습은사실그들에게어제오늘의모습이아니었습니다.오 늘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히브리 자손들은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경험한 사 람들입니다. 400년 동안 남의 나라에서 노예로 살면서도 끝내 히브리 자손 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살다가,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 있는 처음 난 것을 치실 때, 그들은 유월절 양의 피로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홍해를 건너 게 하신 은총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끝까지 하나님 안에 굳게 서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 을 보고 그들은 아론에게 이렇게 소리칩니다.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 출 32:1
'우리를 위하여!' 정말 가슴 아픈 표현 아닙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초청 에 얼마나 합당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는지가 이 표현 하나에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애굽에서 해방시키셨는데, 그들은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자유를 팽개치고 그들은 '자기들을 위해' 우상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시대는 변해도 사람은 똑같습니다. 먼 훗날 하나님께서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사람들을 죄와 죽음에서 이끌어내셨을 때도 사람들은 '자기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죽 이고 맙니다. 그것이 처음 초청받은 사람들의 비극이었습니다. 임금은 다시 종들에게 명령합니다.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 대 종들 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 마 22:9, 10
처음초대때,임금이마음에두고있던사람들에게미리종들을보내 예를 갖춰 모셔왔던 것과는 사뭇 비교가 되는 장면입니다. 임금은 자기 종 들을 '네거리 길'로 보내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라고 말합니 다. '네거리 길'이란 성읍 경계로부터 지방으로 통하는 길이 시작되는 광장 을 말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고, 왕래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처음에 초청받았던 사람들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눅 14:21에 의하면 이들은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입니다. 윤동주가 끝까지 관심을 가졌 던 눅 4:18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악한 자'도 포함되어 있었습니 다. 그들은 먼저 초청받은 사람들 즉 유대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혐오하던 죄인들이었습니다. 스스로 임금의 잔치에 초대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들로 인해서 오히려 잔치자리가 가득 채워졌습니다. 마침내 잔치가 열리 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벌어집니다.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 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 마 22:11, 12
손님들을 보러 잔치자리에 들어온 임금이 그만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 람을 봅니다. 임금은 그에게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고 묻습니다. 성경은 그가 아무 말도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가 아무 말도 못 했다는 것은 자신도 잘못을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 상 황을 피하기 위해 왕이 이미 잔치자리 입구에 손님이 입을 예복을 준비해놓 았다고 합니다. 자리에 걸 맞는 예복을 갖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 런데 그는 예복을 갖춰 입지 않았습니다. 남들은 모두 왕이 주는 예복을 입 었음에도, 혼자만 자기 옷을 고집했다는 것은 그가 왕이 주는 구원 방법을 따르지 않고 자기 지식과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스스로 자만했다는 증 거입니다. 그들은 가라지이고(마 13:24-30), 염소들이며(마 25:41-46) "주 여 주여" 하면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마 7:21-23)입니다. 예복은 하나님 나 라에 합당한 옷으로 주님께서 입혀주시는 것입니다. 이 예복은 바로 회개의 옷이고, 믿음의 옷이고, 거듭남의 옷입니다. 그리고 우리 내면이 입어야 할 옷 즉 겸손함과 온유함의 옷입니다. 그러니까 이 예복으로 갈아입는다는 의 미는 지금까지 입고 있던 '자아(自我)'의 옷을 벗고, 주님께서 주시는 새 옷 즉 회개와 믿음과 거듭남 그리고 겸손과 온유함의 옷을 입는다는 뜻입니다. 예복을 갖춰 입은 사람만이 잔치의 중심에 설 수 있듯이, 믿음과 거듭남과 겸손함과온유함의옷을입은사람만이복음의중심으로들어갈수있는것 입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당부합니다.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 빌 4:1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읽어보면 "주 안에서"(빌 4:2, 4)와 "예수 안에 서"(빌 4:7)가 거듭거듭 강조됩니다. 그렇게 흔들림 없이 '주 안에' 굳게 선 자들에게 주어지는 약속은 다음과 같습니다.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빌 4:7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예복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에 의해 번번이 거절되고 있습니다. 사실 혼인잔치 자리에서 쫓겨난 사람은 쫓겨난 게 아니라 스스로 나가버린 겁니다. 그는 혼인잔치 집에 어울리는 자도 아니었고 함께 어울려 기뻐할 마음도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일까요? 주님께서 주신 예복을 갖추어 입고 복음의 중심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요? 아니면 주님께서 주신 예복을 거절하고 내 옷을 고집하며, 내 생각대로 살며 복음의 주변만 서성이는 사람일까요? 그렇게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 면 끝까지 그렇게 살아도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산 사람들의 결말에 대해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 리라 | 마 22:13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곰곰이 묵상해보십시오. 그리고 선택은 여러분 이 하십시오.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 마 22:14
저와 여러분은 분명히 처음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네거리 길'에서 부르심에 응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잔치자리에 왔다는 사 실에만 만족하면 안 됩니다. 초대받은 자로서의 예복을 갖추어 입어야 합니 다. 바울 사도는 성경 곳곳에서 우리를 향해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 들'이 되라고 말씀합니다.(갈 3:27, 롬 13:14, 엡 4:24) 그리스도의 마음으 로 사람을 대하고,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복음의 중심에 선 사람'이 입어야 할 예복입니다. 스물다섯 윤동주가 눅 4:18을 이 해하고, 예수님처럼 자기도 갈비뼈를 불살라 '위대한 향내'로 풍겨질 것을 다짐했듯이,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라고 다짐하며 복음 의 중심에 깊이 들어가 살았듯이, 우리도 예복을 갖추어 입고 복음의 중심 으로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의 잔치는 시작되고, 주님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됩니다.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이 벌이는 잔 치가 올 가을 우리교회에서 회복되기를 축복합니다.■ 관 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 천 | Praxio
1. 초청에는 응했지만 여전히 내 옷을 고집하고 있지 않은가?
2. 그리스도로 새 옷을 입고 복음의 중심으로 들어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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