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15주 장로들의 전통과 하나님 말씀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아가 2:8-13
8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 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9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 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응송 | 시 45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 님이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시도다
서신 | 약 1:17-27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 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복음 | 막 7:1-8, 14-15, 21-23
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2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4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 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 음이러라) 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 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 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14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막 7:6절 묵상하십시오. 예수님 제자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다며 따지는 이들에게 주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② 약 1:22-25절 묵상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약 1:22),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를 야고보 사도는 각각 어떻게 표현합니까?
③ 아 2:10절 묵상하십시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라는 연인의 초대에서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장로들의 전통과 하나님 말씀
그리스도교 영적 전통 안에 있는 영성가들 중에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을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꿈 이야기(창 28:10-22)를 근거로 사다리에 비유해 설명하신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시나이의 성 요한 클리마쿠스(John Climacus)는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The Ladder of Divine Ascent)에서 완덕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을 30단계로 된 사다리에 비유해 설명했고, 카르투시오의 9대 원장이었던 귀고(Guigo) 2세 역시 영적 여정을 지상에 있는 부족한 인간이 천상에 계신 하나님과 일치하기 위해 올라가야 할 4단계 영적 사다리로 설명했습니다. 첫째 독서(Lectio), 둘째 묵상(meditatio), 셋째 기도(Oratio), 넷째 관상(Contemplatio)이 바로 렉시오 디비나의 4단계 영적 사다리인데, 이 사다리는 네 단계 밖에 되지 않지만 그 길이는 엄청나게 깁니다. 사다리의 맨 아래 끝은 땅에 내려져 있고, 마지막 꼭대기는 구름을 뚫고 하늘에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영적 사다리를 오름으로써 하나님과의 깊은 일치에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귀고 2세에 따르면 말씀묵상을 통해 정신이 온전히 하나님께로 들어 올려지면 그때 영혼은 천상의 감미로움과 영적 환희를 맛보게 됩니다. 거룩한 독서의 처음 단계에서 영혼은 하나님 말씀을 읽음으로써 영적 사랑의 씨앗을 품게 되고, 묵상의 단계에서는 그 씨앗이 점점 꽃피어 나고, 기도의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불타오르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을 통해 전적으로 하나님께 사로잡힘으로써, 그리스도인은 온전히 존재를 하나님께 내맡기고, 더 이상 아무런 너울 없이 그 분을 지복직관(至福直觀 Beatific Vision)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오늘 응송에서 시인은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시도다"(시 45:2)라고 노래합니다. 여기에서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시인은 예수님께서 은혜를 입술에 머금었다고 노래합니다. 예수님 마음에 가득한 은혜가, 입술에 머금은 말씀을 통해 나타난다는 고백이 아름답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 입술에 머금으신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관상함으로써 은혜를 맛보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오늘 성서일과 역시 우리에게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아가서에서 연인은 산을 넘고 언덕을 넘어 달려와 창살 틈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엿봅니다(아 2:8, 9). 하지만 이 애틋한 사랑은 엿보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 2:10)라는 입술에 머금은 초대를 통해 마침내 결실을 이루게 됩니다. 술람미 여인은 그 초대에 사랑스럽게 응함으로서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들이 노래하는 봄 같은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아 2:12). 복음서에서 주님은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막 7:14) 라시며,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들음 없이,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은 '악한 생각일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막 7:15, 21-22). 그리고 서신서에서 사도 야고보는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또한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라"(약 1:19, 22)고 당부합니다. 복음서의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 막 7:5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바리새파 사람들이 먼저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겨냥해서 '저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는다'며 비난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장로들의 전통'이란 바벨론 포로생활 이후에 유명한 랍비들이 고대의 전승 자료들을 토대로 세세한 생활규칙들을 정비하고 집대성한 구전 율법을 말합니다. 구두로 전승되어 온 행위법 내지는 각종 판례법인데, 서기관들은 자기들의 가르침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이 구전 율법을 자주 인용했습니다. 그들은 출애굽 당시 모세가 시내산에서 '성문 율법(Torah)'만 받은 것이 아니라 '구전 율법(Oral Torah)'도 함께 받았다고 주장했고, 심지어 구전 율법이 성문 율법보다 더 중요해서 성문 율법이 물이라면 구전 율법은 포도주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의 이런 주장은 결과적으로 모세의 율법을 크게 왜곡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 1:22절에 보면 이미 오래 전부터 이사야 선지자는 "너의 포도주는 물이 섞여 싱거워졌구나"(공동번역) 라며, 그들이 하나님의 순수한 계명을 물 같은 전통과 섞어 왜곡시켜 버리는 행태에 대해 안타까워했었고, 예수님 역시 마 5:13절에서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라시며, 그들이 전통을 핑계 삼아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오늘 말씀 역시 같은 취지입니다.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 막 7:6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오래 전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빌어 하신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사 29:13절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입으로는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지만 그러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버린,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주님은 이렇게 진단하십니다.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 막 7:7-9
그들은 물과 포도주를 섞는 부정한 행위로 하나님 말씀의 근본취지를 왜곡해버렸고,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맞서 사람의 전통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꾸짖음입니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이사야서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예로 들어 말씀하시고, 바리새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예로 들어 자기들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작은 것이 아닙니다. 논어 위령공(衛靈公) 편에 보면 공자가 자공에게 이런 물음을 던집니다. "사(賜)야, 너는 내가 많이 배우고 그것을 기억하는 자라고 여기느냐?" 그러자 자공은 "그렇습니다. 아닙니까?" 하고 반문합니다. 그러자 스승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다. 나는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사물을 꿰뚫은 것(一以貫之)이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많은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치로 꿰뚫어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그 '하나의 이치'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도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응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을 '성도(聖徒)'라고 합니다. '거룩한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사람들'인 것은 도덕적으로 완전하거나 흠결(欠缺)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거룩한 사람들'인 것인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증거는 다름 아닌, 주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이치인 것에 있습니다. 참다운 거룩함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이치로 알아, 말씀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고, 말씀에 의해 내 자아마저 쇄신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들은 중요합니다.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 막 7:14
주님은 당신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당신 말씀을 '경청(敬聽)하라'는 당부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입니다.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 막 7:15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 막7:21-23
지금 바리새인들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예수의 제자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떡을 먹었다는 것은 밖에서 사람에게 들어간 것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사람 밖에 있는 어떤 것'도 사람을 더럽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들, 즉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장로들의 전통이 그들 속의 악한 마음과 결합되고, 전통을 말씀보다 우위에 두려고 시도하는, 주님은 그것이 더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으로 돌아와 말씀으로 마음을 쇄신하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악한 생각이 계속 마음에서 기어 나와 우리의 생각을 더럽히고 행동을 더럽히기 때문입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야고보는 말씀합니다.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 약 1:19
여기서 '속히'라는 헬라어는 '타퀴스(ταχύς)'로 '신속한', '재빠른'이란 의미이기도 하지만, 은유적으로는 '준비된'이란 뜻도 있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준비된' 상태여야 한다는 교훈입니다.말하기는 더디 하며 | 약 1:19b
'더디하며'로 번역된 헬라어 '브라뒤스(βραδύς)'는 '서서히', '서두르지 않는'이란 의미로 성급하게 자기 의견만을 주장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잠 10:19절에서 솔로몬은 왜 그래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유대인의 탈무드를 보면 '말의 절제'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 전에 세 황금 문을 지나게 하라고 했습니다. 첫째 문은 '이 말은 꼭 필요한 말인가?'입니다. 둘째 문은 '이 말은 진실한 말인가?'입니다. 셋째 문은 '이 말은 친절한 말인가?'입니다.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 약 2:19c-20
분노, 증오로부터 마음을 보존하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감정의 격분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을 때는 하나님의 의(義)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 약 1:21
여기서 사도가 말씀하는 온유함은 헬라어 '프라우테티(πραϋτητι)'인데, '줏대 없는 연약함'이 아니라 '순종하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성품만이 하나님의 진리를 올바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 약 1:22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만 머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한낱 종교적 지식이고 교양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 약 1:23-25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 사람을 가리켜 야고보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고 곧 그 모양을 잊어버리는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말씀을 들을 때는 마음에 찔림을 받기도 하고, 새로운 삶을 다짐도 하지만, 그러나 교회 문을 나서기 무섭게 그 말씀을 잊어버립니다. 말씀의 거울에 자기 실상을 비추어 보고, 일그러진 자기의 삶을 교정해 나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은 우리를 손꼽아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 아 2:8-13
아가서는 남녀 간 사랑을 노래하는 내용이고 신의 이름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까닭에 정경(正經, canon)에 포함될 때 논란이 있었던 책입니다. 하지만 고대 유대인들은 남녀 간의 사랑이 하나님의 인간 사랑에 기반 한다고 보아서 아가서를 정경에 포함시켰습니다. 지금도 우리 기독교인들은 대개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 사랑으로 거룩하고 고귀한 사랑이며, 남녀의 사랑은 에로스 사랑으로 저속한 사랑으로 이해하지만 폴 틸리히(Paul Tillich)나 칼 라너(Karl Rahner) 같은 현대 신학자들은 남녀 간의 에로스 사랑도 하나님 사랑에 기초하고 있다고 고백해 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아가서에서 표현되고 있는 연인 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그대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 사랑을 보여줍니다. 아가서에서 솔로몬은 산을 넘고 언덕을 넘어 달려와 창살 틈으로 사랑하는 술람미 여인을 엿봅니다(아 2:8, 9). 그리고 이 사랑은 엿보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 2:10)라는 구체적인 표현을 통해 마침내 결실을 향해 나아갑니다. 초대를 받은 여인은 그 입술의 표현에 응답함으로서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들이 노래하는 봄 같은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아 2:12). 하나님 역시 지나간 시간들 속에서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라시며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애틋하게 불러 모으셨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우리의 태도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하나님 말씀에 내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따라 나설 때, 우리는 모두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들이 노래하는 봄 같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바로 그 소망 때문에 '들음'에 전념하는 사람들이고, '들음'을 통해 소명에로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의 부드러운 내면에 뿌리 내린 말씀에서 그러한 행복이 무르익어 가기를 축복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Exercitatio
① 전통이나 신화가 내 행동의 동기가 되고 있지 않은가?
② 말씀을 '들음'이 내 모든 '행함'의 동기가 되고 있는가?
번호 | 다운로드 | 제목 | Language | 작성일 |
412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6주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
KOR | 2024.11.17 |
411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5주 나를 넘어 하나님께로
|
KOR | 2024.11.10 |
410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4주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
KOR | 2024.11.02 |
409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3주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
KOR | 2024.10.26 |
408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2주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
|
KOR | 2024.10.19 |
407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1주 하나님만이 오직 최선이시다
|
KOR | 2024.10.12 |
406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0주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
KOR | 2024.10.05 |
405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8주 땅의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
|
KOR | 2024.09.21 |
404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7주 내 언어의 원천(源泉) 마음
|
KOR | 2024.09.14 |
403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6주 복 있는 눈, 복 있는 귀
|
KOR | 2024.09.07 |
402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5주 장로들의 전통과 하나님 말씀
|
KOR | 2024.09.01 |
401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4주 제2의 본성을 쇄신하라
|
KOR | 2024.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