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17주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 읽 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출17:1-2,7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7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응송 | 시편 78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그들의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서신 | 빌2:6-8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복음 | 마21:23-32
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2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 2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27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9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31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 묵 상 | meditatio
1. 출 17:7을 묵상하십시오.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를 시험한 물음은 무엇입니까?
2. 마 21:28-31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 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3. 빌 2:8을 묵상하십시오. 맏아들이나 둘째 아들과도 구별되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예수님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기 도|Oratio |5-10분
■ 묵상 나눔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우리는 대개 예수님을 생각할 때, 모든 사람들과 잘 어울리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 아니십니까? 그런데복음서를읽다보면예상밖으로그렇지못한이야기들이종종나옵 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과 갈등과 충돌을 빚고 계신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바로 그런 갈등과 충돌의 극단적인 결과입니다. 예 수님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사람들과, 특히 당시 유대교 고위층과 충돌했을 까요? 오늘 복음서의 말씀에도 예수님께서 당시 사람들과 충돌을 빚는 모습 이 나옵니다.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 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 마 21:23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주류 세력입니다. 그들 은 뜨내기에 불과한 나사렛 사람 예수가 자신들의 성전전통과 다른 이야기 를 하는게마음에들지않았던것같습니다.예수님께서성전에서하신일 과 가르침이 바로 앞 구절인 마 21:12 이하에 나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과 환전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면서 사 56:7절을 인용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도다" 그리고 성전으로 예수님을 찾 아온 맹인과 저는 자들을 고쳐주시는데,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는 이런 일들이 모두 '이상한 일'(마 21:15)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 에서 아이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마 21:15b) 라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대목에서는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마 21:16a)며 화를 냅니다. 이들이 화를 내는 이유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매매하 는 사람들과 환전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신 것 때문에 화를 냈지만, 뒤이어 불구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오고, 또 그들을 치유해주심으로서 사람들이 예수 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게 되고, 심지어 아이들까지 성전에서 큰소리로 "호산 나 다윗의 자손이여"라며 찬양하자 그들의 화가 점점 고양됩니다. 그런데 예 수님께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마 21:16b) 하시며 맞서자 이들은 점점 참지 못할 지경으로 빠져듭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서에서마침내예수를찾아와"네가무슨권위로이런일을하느냐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며 다그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직접적인 대 답을 하지 않으시고, 대신 세례 요한 이야기로 대화를 풀어 가십니다.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 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 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 마 21:24, 25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의 고민이 그들의 대화에서 고스란히 묻어납 니다. 25절 하반절과 26절에서 그들은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며 겁을 냅니다. 결국 대답이 궁색해 진 그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마 21:27a)며 한 발 물러납니다. 측은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진리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의 시선을겁낼뿐아니라논리의궁색함에빠져들고맙니다.진리보다더강 력한 논리는 없습니다. 그래서 진리만이 우리를 당당하게 해 줍니다. 예수님 께서는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마 21:27)b)고 말씀하시며, 대신 참된 신앙인의 자세는 어떤 것인지를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 말씀해 주십니다.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 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 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 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 마 21:28-31a
예수님께서 왜 이 비유를 들려주셨을까요? 여기 맏아들을 보라는 것입니 다. 입으로는 "아버지 가겠나이다" 했지만, 정작 행동으로는 옮기지 않은 맏 아들의 이 위선이 너희 위선을 얼마나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느냐는 것입 니다.차라리처음에는싫다고했지만나중에뉘우치고일하러간둘째아 들이오히려훨씬더아버지의뜻에순종한것아니냐는것입니다.바로그 둘째아들이,비록죄를지었지만그러나훗날뉘우치고회개한저세리와 창녀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대제사장과 장 로들에게 참으로 모욕적인 한 마디를 남겨주십니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 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 지 아니하였도다 | 마 21:31b-32
스스로 공인된 하나님의 맏아들을 자처하며 정작 행동으로는 하나님께 불순종한 너희보다, 사회적으로 전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최 소한의 뉘우침과 회개로 살아가는 저 세리와 창녀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먼 저 들어가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맏아들은 왜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 하는 듯하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아버지의 말씀을 무시하게 되었을까요? 당 시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은 지도자로서의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었습니 다. 그들은 권위만큼 생활도 보장받고 있었고, 백성들의 존경도 한 몸에 받 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자신들의 신분이 보장되는 것에 집착하 고 그것을 계속 누리기 위해 처신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위에 집착 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잊으면서 부터 그들은 번잡스런 사족에 골몰하기 시작했습니다. 율법의 조항을 만들 어내기에 열을 올렸고, 그 율법을 사람들에게 강요하며 자신들이 행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이란 게 무엇이겠습니까? 자기 기준으로 살고 싶다가도 둘째 아들처럼 말씀이 생각나서 돌아오는 삶 아니겠습니까? 우리 가 예배에 참여하고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스스로를 내어주고 피를 쏟으신 예수님의 삶에 우리를 참여시키는 행동입니다. 자기의 길을 가다가도 아버 지의 말씀이 생각나 다시 포도원으로 발길을 돌리는 둘째 아들처럼, 지금 내가 어디쯤 가고 있는가를 헤아려 주께서 가라하시는 곳으로 돌아서야 합 니다. 참된 신앙인은 자기 세계를 완고하게 구축하고 스스로 왕이 되어 살 아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리나 창녀처럼, 회개하 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올 때, 멈칫할 줄 아는 사람이요, 마침내 멈추는 사 람이요, 회개하고 돌아설 줄 아는 사람입니다. 천국은 의인들이 들어가는 ' 의인들의 나라'가 아니라, 회개한 죄인들이 들어가는 '회개한 사람들의 나라' 입니다. 마치 회개할 것 없는 것처럼 경거망동하는 자칭 의인들이 그 나라 의 주인공이 아니고, 헤아릴 수 없는 죄를 가슴아파하며 뉘우치는 세리와 창녀들이 바로 그 나라의 주인공들입니다. 반대로 지옥은 죄인들이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은 자칭 의인들이 가는 곳입니다. 그러나 우리 가신앙생활을하면서느끼는것은'진정한회개'가말만큼쉽지않다는것 입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인간본성의 저항이 변화의 열망보다 크다는 반증 이겠습니다. 오늘 구약성경에 나오는 출애굽한 히브리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지난주말씀에서그들은단지모세와아론을찾아가원망만했었는데,오 늘 말씀에는 모세와 다툼을 벌이고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며 무례하게 행동합니다.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 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 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 출 17:1, 2
어떻게 보면 이들의 불평은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사막에서 목마 름에 처한 사람들이 날카로워지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당연한 행동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평에 대해 매우 진노하시는 태도를 보이십니다. 그것은 아무리 당연한 불평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 는 것에는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까닭일 것입니다. 몇몇 주석가들은 당시 이 스라엘에게는 물이 충분히 공급되고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갈증에 대한 불평은 사실은 모세를 트집 잡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했다 는 것입니다. 또 어떤 주석가들은 이들의 불평이 그저 단순한 불평이 아닌, 사실은 '불신앙'이었고, 그들의 불신앙이 가장 드라마틱하게 드러난 것이 바 로 오늘 말씀의 '므리바 사건'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런 해석을 뒷받침해 주 는 것이 바로 7절의 말씀입니다.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 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 출 17:7
이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게 뭡니까? 원망과 불평은 '불신앙의 증 거'라는 겁니다. 사실 불평은 잠재적입니다. 잠재적인 문제들이 표면으로 드 러날 때, 불평으로 드러납니다. 불평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궁 극적으로 무가치하고 허무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신앙 생활의 가장 큰 위험은 불평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영성생활의 가장 큰 위험은 불평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불평의 본질은 '자기중심성'입니다. 자 기가 자기의 중심이 될 때,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모든 상황들이 불편 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나에게서 감사가 사라지고, 나의 내면에 기쁨이 사라지는 것은, 내가 속한 환경에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사실은 내 중심에 내가 서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그들은 광야에서 수 없이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왜 그랬다고 생각 하십니까? 광야가 자기들의 바람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대개 우리도 불평에 빠져드는 것은 내 이익이나 바람과 일치되지 않을 때입니다. 서신서의 말씀 에서 사도 바울은, 맏아들의 태도와도 대조를 이루고, 둘째 아들의 태도와도 대조를 이루고, 광야의 히브리들과도 대조를 이루는 '예수님의 태도'에 관해 말씀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자기 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빌 2:6-8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서, 교회 안에서의 어떤 일이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겸손과 복종으로 감당하 라고 당부합니다. 언제까지입니까? 죽기까지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겸손 히 자기를 낮추시고 아버지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로버트 인초 스티가 쓴 '토마스 머턴의 씨앗'이라는 책에서 토마스 머턴은 "가식을 버리 고 자신을 낮추며 진솔해지지 않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의 영 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 일한다"고 단언합니다. 주님께서 피를 흘 려 사신 교회를 위협하는 것이 교만과 다툼이라면, 교회를 살리는 것은 겸 손과 복종입니다. 어떻게 겸손한 마음으로 살을 것입니까? 어떻게 예수님처 럼 복종할 수 있습니까? 말씀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붙들고 기도 하시기 바랍니다. 그 때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 하셔서 말씀이 둘째 아 들을 돌아서게 했듯이, 말씀이 우리를 돌아서게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모 두에게 중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대해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뜻이 담긴 말씀 때문에 돌아서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가 누구이든 '자기 열정'으로만 살고자 하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자기만의 열정'에서 나오 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자기 열정의 조화'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 런 측면에서 말씀 때문에 돌아선 둘째 아들은 인생최고의 쾌거를 이룬 것입 니다. 우리 고유의 명절 추석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마다의 교통수 단을 이용해서 가족의 품을 향해 돌아오는데, 우리가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할 품은 '하나님께로'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와 말씀을 경청하며 '하나님의 뜻' 을 향해 나아갈 때, 우리는 모든 삶의 여정을 통해 진정한 쾌거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전환기가 되는 한가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1. 내가 내 인생의 중심이 되어 살고 있지 않은가?
2.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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