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6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삼하 1:17-27
17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18 명령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19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20 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 어다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 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21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 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바 됨이니라 곧 사울 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아니함 같이 됨이로다 22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23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 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24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그가 붉은 옷으로 너 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25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네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26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 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27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무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
응송 | 시 130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서신 | 고후 8:7-15
7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8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 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 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이 일에 관하여 나의 뜻을 알리노니 이 일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11 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 12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 시리라 13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14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15 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복음 | 막 5:21-43
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 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아래 엎드리어 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 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 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 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 을 보시고 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 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삼하 1:21을 묵상하십시오. 사울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다윗의 마음 에서 느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② 막 5:34을 묵상하십시오. 당신의 옷에 손을 댄 여인에게서 주님께서 보아주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③ 고후 8:9을 묵상하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중 우리가 꼭 알고 감사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2012년에 개봉한 '신과 인간(Of Gods and Men)'이라는 '그자비에 보부아' 감독의 프랑스 영화가 있습니다. 알제리 산골의 수도원에서 7명의 수도사와 1명의 의사가 가난한 마을 사람들의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중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한 내전사태가 심화되면서 평화롭던 생활은 위기에 빠지고 끝내 살해당하고 만 사실을 극화한 영화입니다. 그들은 '신과 인간 사이에서' 종교를 뛰어넘는 신념으로 믿음에서 우러난 하나님 사랑을 몸소 실천하려 하지만, 그만 또 다른 종교적 신념에 의해 살해당하고 만 것입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수도원 담장에 엄습해오던 때, 수도사들은 신을 따르기 위해 수도원에 남아야 할지 안전을 위해 떠나야 할지, 삶과 신념을 사이에 둔 중대한 분별의 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들 역시 인간이었기에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신(神)과 인간 사이에서, 신념과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하던 수도사중 한 명이 마을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영화에 소개됩니다. 먼저 수도사가 '이 마을을 떠날지 모른다'고 말하자 마을 사람들은 그의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왜 떠나야 하느냐고 묻는 마을 사람에게 수도사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새들은 가지를 떠날 때 이유를 말하지 않습니다." 이 말을 들은 주민은 되묻듯 말합니다. "우리가 새이며 당신들이 나뭇가지입니다." 수도사는 지금껏 자신들이 마치 새처럼 이 마을에 날아들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오랜 세월 주인으로 살았던 주민에게는 오히려 수도원과 수도사들이 자신들의 마을 어귀에 있는 느티나무와 같은 존재였다는 고백입니다. 결국 수도사들은 마을을 떠나지 않고 순교합니다. 마치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처럼 마을 사람들이 기댈 수 있도록 자신들을 희생시킨 것입니다. 이 영화는 우리들에게 교회의 존재 이유와 그리스도인의 존재 이유를 생각하게 합니다. 톨스토이는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누군가 고통을 받으면 다른 쪽도 고통을 받게 된다.
반면 한 쪽이 행복하면 그 행복이 다른 쪽에게도 옮겨진다.
모든 생명체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때,
그때 비로소 인생을 이해할 수 있다.
구약성경은 사울과 요나단의 주검 앞에서 애가(哀歌)를 부르는(삼하1:17) 다윗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삼하1:19)라고 애도하는 다윗의 이 애가를 그저 당연하게만 여길 수는 없습니다. 친구 요나단을 향한 그의 애통함은 당연한 것이지만, 요나단의 아버지인 사울 왕의 경우는 무척 다릅니다. 사울은 죽기 직전까지 자신을 죽이려 광분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울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다윗을 보며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다윗의 중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서신서의 말씀은 환난에 직면한 예루살렘교회를 도우려는 바울 사도의 사랑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바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음에도 '그리스도의 심정으로'(고후 8:9) 예루살렘교회를 돕자는 바울의 호소를 보며 우리는 그의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랑의 진실함(고후 8:8)을 보게 됩니다.
복음서의 말씀은 병든 어린 딸을 살리려 예수님을 찾아온 회당장 야이로를 대하는 예수님의 모습과 열 두해나 혈루증을 앓고 있던 한 여인을 대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셨을 뿐 아니라(막 5:24),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환대하시고 그녀의 믿음을 칭찬해주십니다(막 5:34).
우리는 이러한 성경의 인물들을 묵상하면서 참된 믿음이 보여주는 따뜻함에 감동합니다.
먼저 오늘 구약성경은 두 주검 앞에서 슬퍼하는 다윗을 보여줍니다. 사울 왕과 요나단이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한 후(삼상 31:2-4), 다윗이 두 죽음을 애도하며 슬픈 노래를 부르는 장면입니다.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 삼하 1:17
여기 요나단의 이름은 우리 기억 속에서 늘 다윗과 더불어 연상되는 이름입니다. 그와 다윗 사이에 수놓아진 우정은 모든 시대 우정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다윗이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을 이기고 사울 왕 앞에 서서 아버지의 이름을 말할 때, 그때 성경은 요나단의 마음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삼상 18:1). 타인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는 마음, 이 마음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기 이전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요나단의 고귀한 부분인 영혼이 다윗의 순전한 영혼과 굳게 결합된 상태로 타락 이전의 하나님과 사람의 상태와도 같고,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요나단이 그만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하고 맙니다(삼상 31:2-4). 사울을 피해 시글락에 머물고 있던 다윗에게 사울의 죽음뿐 아니라 요나단마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삼하 1:4).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하며 '키나(הניק)' 즉 슬픈 노래를 지어 부릅니다.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 삼하 1:19-20
이 슬픈 노래는 전형적인 '키나(הניק)' 운율을 사용하는데, 세 걸음 걷고 멈추었다가 다시 두 걸음 걷는 장례식 행렬에 맞춘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슬픈 노래에는 비단 친구만이 아닌 자신을 죽이려 광분하던 사울 왕을 향한 애도(哀悼)도 비통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는 사망한 사울과 요나단을 이스라엘의 영광이라 칭하며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라고 애도합니다. 뿐만 아니라 적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될 두 용사의 죽음이 그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하라고 당부합니다(삼하 1:20a). 두 용사의 죽음의 소식이 적군들에게 알려져서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기뻐해서도 안 되겠지만(삼하 1:20b), 무엇보다 그들의 죽음이 조롱거리가 되는 것도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애가는 사람만이 아닌 자연계를 향한 노래로도 이어집니다.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 삼하 1:21a
다윗의 이 노래에는 군주가 살해당한 땅에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않음으로서, 사람의 죄는 자연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라는 그의 노래는 "땅이 메말라 박토(薄土)가 됨으로서" 사울 왕과 요나단의 죽음으로 인해 함께 단죄 받을 것에 대한 묘사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이 슬픔과 애가를 보며, 그의 마음이 사람 뿐 아니라 자연과도 긴밀하게 통합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았다 하시던 다윗의 '중심'이 바로 이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다윗은 또 이렇게 '키나'를 부릅니다.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바 됨이니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아니함 같이 됨이로다 | 삼하 1:21b
이 애가(哀歌) 역시 다윗의 비통한 마음을 그의 눈이 머무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지금 다윗의 시선은 길보아 산 곳곳에 흩어져 있는 사울 왕과 요나단의 흔적들을 뒤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땅에 버려져 뒹구는 두 용사의 녹슨 방패를 바라보며 사랑했던 만큼 슬퍼하는 다윗의 마음이 그의 애가를 통해 신음처럼 터져 나옵니다. 옛날에는 적의 무기가 미끄러져 빗나가도록 방패에 기름을 바르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사 21:5). 그런데 버려져 있는 사울의 방패를 보니 기름칠이 다 벗겨져 있습니다. 사울은 전사하고, 그의 방패는 피 묻은 채 나뒹구는 장면에서 다윗이 슬퍼하는 것은 비단 그의 죽음만이 아닙니다. 그도 한 때는 여호와의 영광이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영광마저 빼앗기고, 길가 풀섶에 버려져 뒹구는 그 흔적이 다윗에게는 가슴 아픈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성경은 온통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이런 심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에 담긴 병든 어린 딸을 살리려 예수님을 찾아온 회당장 야이로를 대하는 예수님의 모습과, 열 두해나 혈루증을 앓던 한 여인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런 마음은 오늘 복음서 앞뒤에 배치되어 있는 사건에서 드러나는 뭇사람들의 마음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것이었습니다.먼저 오늘 복음서 앞에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동편 거라사 지역에서 군대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주신 이야기가 나옵니다(막 5:1-20).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남자는 귀신 떼에 짓눌려 짐승처럼 울부짖던 사람이었습니다(막 5:3-5). 예수님께서는 이 한 사람을 고쳐주시기 위해 2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를 희생시키셨습니다. 그런데 마을사람들은 이 불쌍한 남자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게 된 것을 기뻐하기보다는 돼지 떼를 손실한 것에 마음이 불편해져서 예수님께 떠나달라고 요구합니다(막 5:17). 우리는 이 하나의 장면에서 예수님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이 참 많이 다름을 보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복음서 뒤에는 고향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인간적으로만 생각하고(막 6:2-4)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고향 사람들 역시 예수님의 마음과 참 많이 다름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정작 이 장면에서 예수님께서 놀라시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과 달라서가 아니고, 그들의 마음에 믿음이 없어서였습니다(막 6:5, 6). 이렇게 오늘 복음서 앞뒤에 배치되어 있는 이야기들을 통해 마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예수님과 다른 우리의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인격의 문제가 아닌 믿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두 이야기 틈새에 끼어있는 오늘 말씀 역시 믿음과 관련한 이야기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오늘 말씀의 신학적, 신앙적 의미는 삽입식 문학형태 즉 첫 번째 기적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서(막 5:21-24), 바로 두 번째 기적 이야기를 삽입한 뒤(막 5:25-34), 다시 첫 번째 기적 이야기를 완결시키는(막 5:35-43) 문학형태를 통해 드러납니다.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아래 엎드리어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이에 그와 함께 가실 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 막 5:21-24
여기서 마가는 딸의 생명을 위해 예수님을 찾아온 야이로라는 사람의 신분을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그는 회당장이었습니다. 당시 회당의 조직은 회당장, 핫잔(Hazzan), 랍비, 그리고 평신도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회당의 우두머리인 회당장은 예배 순서를 총괄하고, 재판을 관할하던 장로출신의 지도자였습니다(눅 8:41; 행 18:8, 17). 그런데 그렇게 사회적 지위가 높은 회당장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엎드릴 때는 그만큼 절박했다는 의미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께서도 서둘러 회당장의 집으로 함께 가십니다. 그런데 회당장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의외의 상황이 벌어집니다.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 막 5:25-28
회당장 야이로의 딸 이야기와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이 여인의 이야기는 12라는 숫자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야이로의 딸은 열두 살이었고(막 5:42), 여인은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았습니다(막 5:25).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대목에서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이 두 사람이 처한 각각의 절박한 상황에서 그들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당시 야이로는 지위와 권세가 높은 사람이었고, 반면 여인은 오랜 질병으로 인해 가족에게조차 버림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통념으로 보았을 때, 예수님께서는 권세 있는 회당장의 집으로 서둘러 가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보여준 믿음도 소중한 믿음이고, 12해 혈루증 앓던 여인이 보여준 믿음도 예수님께는 똑같이 소중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 있어서는 야이로와 이 여인 사이에 그 어떤 차별도 있으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는 야이로의 딸의 목숨이 소중한 만큼, 불쌍한 이 여인이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것도 똑같이 소중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여인을 향합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눅 5:30)라고 물어주십니다.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막 5:31) 라며 급한 마음에 짜증을 드러내는 제자들의 모습과 대조됩니다. 그 순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 막 5:34
얼마나 따뜻한 말씀입니까? 우리 모두의 희망은 오직 예수님의 이 따뜻하신 마음과 말씀에 있습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 고후 8:9
바울이 왜 이 말씀을 하는 것일까요? 부요하신 예수님께서 너희를 위해 가난해지심으로 너희를 부요하게 하셨듯이 너희 또한 가난한 이들을 대함에 있어서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당시 팔레스티나 지방에 큰 가뭄이 몰아닥쳤었는데 특히 예루살렘교회가 그 직격탄을 맞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서 예루살렘교회를 도와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사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바울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개척하고 떠난 갈라디아교회에 예루살렘교회의 대표자들이 찾아와서 바울이 전한 복음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갈 1:7).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예루살렘교회를 도와줄 것을 호소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바울이 이 말을 언급하기에 앞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라고 말한 것을 보았습니다. 바울의 사람을 대하는 마음의 시작은 오로지 예수님이었고, 믿음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이것이 바울이 사람을 대하는 마음의 첫 자리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바로 이러한 믿음과 마음입니다. 장바니에는 '시보다 아름다운 예수전'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그분은 거절당하고 버림받고
하던 일이 좌절되는 고통을 견딜 수 없어,
힘을 달라고 부르짖으셨다.
쓸쓸하고 초라한 모습의 예수가
사랑을 호소하면서
그 사랑에 자기 무릎을 꿇리고 있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Exercitatio
① 하나님과 분열된 까닭에 이웃과도 분열되어 있지 않은가?
② 예수님 마음으로 이웃과 형제들과 일치를 이루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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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6주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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