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절 파라클레토스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사도행전 | 행 2:1-21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 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 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 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 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 도다 하고 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 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 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응송 | 시 104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서신 | 롬 8:22-27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 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 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 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복음 | 요 16:5-15
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 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 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 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 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 묵상 | Meditatio
① 행 2:2-4을 묵상하십시오. 성령께서 오셨을 때의 청각적이고(2절) 시각적인(3절) 현상은 무엇이며, 사람들의 반응(4절)은 어땠습니까?
② 요 16:13을 묵상하십시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 분은 우리를 어 디로 인도하십니까?
③ 롬 8:26, 27을 묵상하십시오.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기도 하실 때의 태도(26절), 그리고 방향(27절)은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파라클레토스 παρακλατος
오늘은 전 세계의 교회가 함께 지키는 성령강림주일이면서 동시에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제정한 청년주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시면서 시작된 지상에서의 삶은 구름 속으로 들려 올려져(행 1:9) 제자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심으로(눅 24:50-53; 눅 24:50-51) 끝이 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승천하시던 그 찰나에 의미심장한 한 마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눅 24:49). 이때부터 제자들은 새로운 이상을 가슴에 품게 되었는데, 그 새로운 이상(理想)이란 '아버지의 약속'이었고, '위로부터의 능력으로' 입혀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자신을 해치려는 자들의 살의(殺意)가 아직 기세등등하게 남아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주님께서 약속하신 위로부터 입혀지는 능력을 기다렸습니다(눅 4:53). 성령강림은 그때 그 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약속에 따라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진 성령강림은 예수님 부활의 가장 완성된 열매입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은 성령강림을 통해 절정의 완성을 이루며 완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우리들' 교회의 새로운 출발과 시작이 되었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제자들은 몸으로 예수님을 따라다니기는 했지만 그러나 십자가를 지기에는 너무 나약하고 타산적인 상태를 벗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그 자리에 강림하셨을 때, 그들은 그 나약함과 타산으로부터의 해방을 경험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읽는 우리도 저들과 마찬가지로 나약하고 타산적인 인간 본성을 가지고 이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함께하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비록 불과 바람 소리 등, 그 날과 같은 외적 표징들이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부드러운 성령의 은총이 우리 가운데 임하셔서 우리 모두를 나약함과 타산(打算)에서 해방시켜 참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시켜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성령강림의 올바르고 참된 뜻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제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오순절'이라는 유대인들의 절기입니다. 구약시대 유대인들의 유월절 즉 파스카 축제가 신약시대 예수님의 부활로 전승되었던 것처럼, 유월절 축제 후 50일째 되는 날(pentekostes) 즉 오순절은 신약시대 성령의 강림으로 이어졌습니다. 구약 시대의 전통에서 본디 오순절은 만물을 봉헌하는 농경의식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점차로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히브리들과 맺어주신 언약과 율법을 기념하는 날로 인식되다가 마침내 그날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이후의 교회들에게 있어서 오순절은 성령강림절로 인식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성령 강림의 장면은 과거 시내산에서 계약이 체결되던 당시를 떠오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 옛날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시며 이스라엘 백성들과 계약(契約)을 맺으시던 장면은 성경이 묘사하는 바에 의하면 장엄함과 위엄과 경이(驚異)로 가득하였습니다.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출 19:18). 이 장엄하고 경이로운 광경이 오순절을 맞이한 예루살렘에서 성령강림을 통해 재현된 것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 행 2:1-3
누가는 오순절에 일어난 성령강림의 장면을 시내산에서 여호와께서 강림하시던 장면과 일치시킴으로서 성령강림을 과거에 시내산에서 있었던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옛 언약을 계승하는, 새 언약의 공적 시작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과거 시내산에서 불 가운데서 강림하셔서 돌 판에 계명을 새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키게 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성령강림을 통해서는 '옛 계명'을 넘어 '당신 자신'이 사람들 '안에' 계시는 '새 언약'으로 발전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작은 사건이 아닙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계명을 주셔서 사람들이 '지각(知覺)'과 '의지(意志)'로서 당신을 따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나약함과 타산적인 본성을 넘어서지 못하자 당신께서 친히 사람 안으로 임재하심으로서 사람과 내밀하고 진정한 일치를 이루시고 열매 맺는 삶을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령강림절이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주는 파스카의 신비를 완결하시려고
우리를 독생 성자와 결합시키시어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하신 후
오늘 성령을 가득히 내려주셨으며,
성령은 새로 세워진 교회와 만민에게
천상의 지식을 넣어주시고,
서로 '다른 언어'로 '한 신앙'을 고백하게 하셨나이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성령이 말하게 하셨다'는 누가의 증언을 원문에 충실하게 재해석하면, 제자들이 '크고 분명하게' 말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즉 성령께서 임재하셨을 때, 그들이 한 말은 황홀경에 빠져 중얼거리는 뜻 모르는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뜻이 담긴 신탁발언(神託發言)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말을 들은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이어지는 말씀 보십시오.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 행 2:5-13
예루살렘의 키릴루스는 이 때의 상황을 '혼돈(混沌)'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에 의해 이루어진 이 혼돈은 구약시대 바벨탑에서 언어의 분열로 인해 벌어진 혼돈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바벨탑 사건 때 일어난 언어의 혼돈은 분열에 목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들은 교만했고 의도마다 불경했습니다. 하지만 성령에 의해 일어난 혼돈은 회복과 일치의 혼돈입니다. 인간의 교만으로 갈라진 언어를 성령께서 회복시켜주셨는데, 교회의 겸손함 위에 주어진 언어의 다양성은 은총의 다양한 선물을 경험하게 해주었습니다. 그중 가장 놀라우며 귀한 선물은 하나님 말씀을 각자 난 곳의 언어로 들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언어의 일치를 우리는 '조화(調和)'라고 부릅니다. 교회는 언어들이 모여 조화를 이룬 곳입니다. 바벨론의 언어는 사람들의 마음을 갈라지게 하지만, 오순절의 언어는 사람들의 마음을 일치되게 합니다. 성서적 언어는 사람을 하나님께로 이끌지만, 세속적 언어는 사람을 악마에게로 이끕니다. 겸손한 말은 사람의 마음을 천국으로 이끌지만, 교만한 말은 사람의 마음을 지옥으로 이끕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셔서, 우리의 언어를 오순절의 언어, 성서적 언어, 겸손한 언어로 조화를 이루도록 바꾸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성령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은 다릅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답답한 말씀을 하십니다.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 요 16:5, 6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다" 라는 주님 말씀은 요 13:16에서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고 묻던 베드로의 질문과, 요 14:5에서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라고 말한 도마의 질문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모순처럼 보이는 주님의 말씀은, 나의 목적지를 제자들이 묻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고, 당신이 아버지께로 돌아가시는 진정한 의미를 모른 채, 근심에만 빠져 있는 제자들의 무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만약 제자들이 예수님 말씀의 진의를 물었다면, 제자들은 근심이 아닌 영적으로 성숙된 반응을 먼저 보였을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의하면 제자들의 영적 체험은 주로 박해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요 16:2). 제자들의 선교는 거부당하고 박해받을 것이며(막 10:10), 박해는 주로 재판을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재판을 통한 박해의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파라클레토스(παρακλατος)' 즉 '보혜사'께서 제자들의 증언을 도울 것입니다(마 10:20; 막 13:11; 눅 21:21; 행 1:8). 실제 제자들은 유대 회당으로부터 박해를 받았고, 그 박해는 주로 재판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제자들은 재판정에 서서 자신들에 대해, 또 그리스도에 대해 변호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 말씀에 의하면 이러한 박해 때마다 '보혜사' 즉 '진리의 성령'께서 제자들을 대신해 제자들과 그리스도에 대해 변호해 주실 것입니다(요 15:25-26). 실제 제자들이 재판정에서 자신들과 그리스도에 대해 변호할 때, '보혜사' 즉 '파라클레토스'께서는 제자들이 상황을 견디도록 격려해 주셨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변증을 통해 더 적극적으로 선교가 지속되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 선교하는 공동체이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세상과 마주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의 진의를 몰랐던 까닭에 '지금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간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승천을 두고 하신 예수님 말씀의 진의를 모른 채, 그저 예수님 부재(不在)에 대한 근심으로만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근심'이라고 번역된 이 단어가 헬라어로는 '뤼페(λύπη)'인데 문자적 의미로 볼 때 '근심'보다는 '슬픔'에 더 가깝습니다. 실제 새 번역 성경에서는 "도리어 내가 한 말 때문에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 찼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오히려 주님 말씀의 진의를 깨닫고 예수님 부재의 상황에서부터 시작될 성령의 역할을 기대했어야 했습니다. 주님은 지금 그 말씀을 하시려는 것입니다.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 요 16:7, 8
요한복음의 중요한 문학적 동기 중 하나는 종교 혹은 세속권력과 예수님의 대결입니다. 그것이 가장 극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이 빌라도 법정에서의 심문 장면이었습니다(막 15:1-15; 눅 23:13-25). 표면적으로는 종교 혹은 세속의 권력자들이 주도하는 법정에 예수님께서 피고로 서계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좀 더 깊은 영적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오히려 세상이 그리스도의 법정에서 피고로 재판을 받습니다. 파라클레토스 즉 보혜사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기막힌 반전을 그리스도인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 요 16:12, 13
여기서 예수님은 재판 용어로서의 파라클레토스께서 이끄시는 반전 속으로 제자들을 초대해 들이십니다. 그들도 예수님처럼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될 것인데, 그리스도께서 파라클레토스를 통해 재판 상황 안으로 오셔서 제자들이 받는 재판에서 적극적으로 변호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과 제자들이 박해와 고난의 상황에서 파라클레토스를 통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마치 포도나무와 가지가 하나이듯, 목자와 양이 하나이듯 파라클레토스께서 고난과 박해의 현장에서 주님과 제자들, 그리고 제자들 공동체가 하나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때 파라클레토스께서 주님과 제자, 제자와 제자들을 하나 되게 하는 모티브(motive)는 '진리(眞理)'입니다. 진리로 하나가 될 때만 그 공동체가 참일 수 있습니다. 진리로 하나 되지 않는 공동체는 이익집단일 뿐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재 하셔서 우리를 진리로 하나 되게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 롬 8:22-25
여기서 바울은 피조물이 고통 가운데 탄식하는 상황을 직시하며, 그러한 피조물과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도들을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라고 말합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란 '그리스도의 부활'인데,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완성하실 구원을 바라고 소망하는 존재가 곧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다리는 자세에 대해 바울은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 8:25) 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구원을 바라고 소망하며 참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바울은 확신에 차서 고백합니다.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 롬 8:26, 27
때때로 우리는 고난과 고통 속에서 무엇을 따라,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 모른 채 표류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파라클레토스께서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하나님의 뜻대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강림절은 이 파라클레토스께서 우리 존재 안으로 들어오신 날입니다. 그 분은 역동적인 모습으로, 초월적 에너지로 오셨고, 지금도 우리 안에서 역동하는 하나님의 숨결이십니다. 이 파라클레토스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랑은 바로 아버지와 아들의 하염없는 사랑입니다. 농부이신 성부 하나님과 포도나무이신 성자 예수님의 사랑이 파라클레토스의 일하심을 통해 우리 안에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상 진리(眞理)가 있어서 파라클레토스는 진리의 영으로도 불리십니다. 이 파라클레토스 즉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곁에서 위로와 격려를 주시고, 분열을 하나 됨으로, 슬픔을 미래에의 확신으로 바꾸어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시는데, '진리로' 하나 되게 하시는 그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Exercitatio
① 주님과 소통의 부재 속에 내 길을 가고 있지 않은가?
②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읽으며 살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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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마지막 주(종려주일) 경청이 순종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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