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14주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 읽 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출 12:11-14
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12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14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응송 | 시편 149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시온의 주민은 그들의 왕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지어다
서신 | 로마서 13:11-14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복음 | 마 18:18-20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 묵상 | meditatio
1. 롬 13:11-14을 묵상하십시오. 자다가 깰 때,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 음을 아는 성도의 삶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2. 출 12:11을 묵상하십시오. 여호와의 유월절을 맞이하는 이스라엘의 자세는 어떠했습니까?
3. 마 18:18-20을 묵상하십시오. 시대의 표징을 아는 사람의 삶을 모 습은 어떻습니까?
■기 도|Oratio |5-10분
■ 묵상 나눔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현대인들은 시간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시간은 반드시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가는 것이라고 여기면서 시간을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계산해낼 수 있는 실체로 생각합니다. 하루는 24시 간, 일 년은 365일이라고 생각하고, 365일 간격으로 한 살씩 먹는다고 생 각합니다. 이런 시간 개념에 근거해서 인간의 평균 수명과 돌고래의 평균 수명을 비교하기도 합니다. 이런 시간 개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또 무조 건 옳은 것도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간 역시 상 대적입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른 비행물체를 타고 이동하면 시 간이 질적으로 다르게 흐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시간 여행도 가능하다 는 겁니다. 이것은 심오한 신학이나 고도의 물리학이나 철학공부를 통해서 만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삶을 조금만 진지하게 성찰해 보면 누구나 깨달 을 수 있는 사실입니다. 여기 인생을 바라보는 두 관점이 가능합니다.하나는 태어나서부터 차례대로 시간을 계산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삽니다. 십대, 이십대, 삼십대, 등등이 됩니다. 그때마다 할 일도 정해져 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때가 되면 죽습니다. 이런 삶에는 죽음이 분리되거나 소외되어 있습니다. 시간 계산에 의존된 생명에만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모든 순간을 죽음과의 일치로 여기는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십대의 때와 육십 대의 때가 동일합니다. 왜냐하면 각각의 때에 죽음이 개입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은 죽음을 생명의 완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동안의 모든 순간이 결국 완성의 시간입니다. 즉 매 순간이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입니다. 영이 충만한 시간입니다. 이렇게 우리 기독교인들은 단순히 연대기적인 시간에 묶이는 게 아니라 전혀 다른 시간 개념인 카이로스, 즉 하나님의 시간을 감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성서일과는 일제히 그런 삶을 우리 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여호와의 유월 절'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그 긴박한 때가 이르면, 그들이 각각 취해야 할 행동을 일러주십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이 시기를 알아야 한다"(롬 13:11)고 말씀하면서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다"(롬 13:12)고 선언합니다. 밤이 새어 낮이 가까우면 사람들은 그에 걸맞은 행동을 취해야 하는데, 낮에 걸맞은 행동이란 '어둠의 일' 즉 '방탕, 술 취함, 음란, 다툼, 시기'를 벗고, '빛의 갑옷'을 입는 것입니다.(롬 13:12) 그리고 그 '빛의 갑 옷'이란 사도 바울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롬 13:14)입니 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 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8:18)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은 내게 죄를 지은 형제를 권고해서 구원의 자리로 돌아오도록 할 때 '푼다'라고 하는데, 시대의 표징을 알아차린 사람 즉 때를 분간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서신서의 말 씀을 읽으면서, 사도 바울이 어떤 특별한 시간 개념 안으로 우리를 초대하 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 롬 13:11
여기에서 바울이 말하는 '시기'는 본문에서 두 가지로 설명됩니다. 하나 는 '자다가 깰 때'이고, 다른 하나는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워온 때'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구약으로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시간에 대한 개념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바울이 지금 언급한 '시기'는 그리스어로 '카이로스(καιρός)'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의 시간, 의미 충만한 시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의 시간을 가리킵니 다. 지금 바울은 우리 모두가 이 '카이로스' 안에 즉 '하나님의 구원 시간' 안에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바야흐로 육체적 쾌락에 도취되어 나태와 무지에 빠져버린 상태에서 깨어나 '하나님의 구원 시간'을 맞으라 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구원 시간'을 맞은 사람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는 것입니다.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 을 입자 | 롬 13:12
낮과 밤은 많은 차이가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입은 의상에 차이가 생깁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 단순하게 옷이나 갈아입자고 말씀하는 것은 아닙니다. 라틴 성경은 '벗고'라는 단어를 '거절하고(abiciamus)'라고 번역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로서 거절해야 할 삶이 있 고, 살아가야 할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절해야 할 삶은 어떤 것 이겠습니까? '어둠의 일'을 거절해야 합니다. 그 어둠의 일이 무엇인지는 바울의 당부 속에서 잘 드러납니다.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 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 롬 13:13
방탕,술취함,음란,호색,다툼과시기바울에따르면이런것들이 어둠의 일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우리가 정 상적인 나라에 살고 있나?" 라는 의심을 갖기도 했습니다. 또래의 친구를 피투성이로만들어놓고피냄새가좋다는아이들이한주내내세상을 들끓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악몽이 아니라면 분명히 현실인데, 도대체 왜 이런 악몽 같은 일들이 우리나라에 현실로 벌어지는 것일까요? 우리가 무언가에 도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에 도취되면 이웃이 보이지 않습니다. 히브리 성서에서 어리석은 자 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나발'은 호사한 연회에 도취되어서, 복수를 위해 다윗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등장하는 부자 는 호화로운 삶에 도취해서 굶고 있는 거지 나사로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둠의 근원은 자신의 쾌락에만 도취되어 있는 것과 남을 소 중히 여기지 않는 마음입니다.이철수 화백은 '밥 한 그릇의 행복 물 한 그릇의 기쁨'이라는 자신의 판 화집에서, 비탈진 언덕에 있는 자그마한 집과 바람에 휘청거리는 나무를 그린 후 거기에 이런 글을 적어놓았습니다. "세상은 갈수록 험해집니다. 그 안에 살면서 덜 망가지고 상처받지 않는 건 제 몫입니다. 상처받은 짐승이 되고 나면 남에게도 상처를 입히기 십상이지요. 매일 듣게 되는 유괴, 납 치살해, 갈취, 강도, 가정 폭력, 사기, 뇌물수수, 협박, 공갈... 그런 일에 서부터, 소비중독과 성매매와 폭음, 폭식에 이르기까지, 상처받은 사람이 저지르는 일은 다양하기도 합니다." 이철수 화백의 진단대로라면 유괴, 납 치살해, 갈취, 가정 폭력, 사기 등 범죄 뿐 아니라, 소비중독에 빠지거나, 성매매에 빠지거나, 폭음, 폭식 등등 정상적이지 않은 행동들의 원인에는 반드시 '상처'가 있다는 겁니다. "상처받은 짐승이 되고 나면 남에게도 상처 를 입히기 십상"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저는 이 말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 상처받은 아이들 배후에는 상처를 준 어른이 있다." 어른들이 만들어낸 제 도와 문화에 상처받은 아이들이 상처투성이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어른들 은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자기들 잘못은 안 보고 개탄만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개탄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북아프리카에서 수사학 교수로 이름을 날리던 아우구스티누스가 큰 꿈 을 품고 로마에 갔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의 학생들은 어찌나 약아빠졌던 지, 월사금을 안 주려고 신의를 배신하는가 하면 돈과 향락에 깊이 빠져 살기도 했습니다. 깊이 실망하고 있던 아우구스티누스가 우연한 기회에 밀 라노로 자리를 옮기게 되는데, 그곳에서 그는 평생의 스승인 암브로시우스 를 만납니다. 이 때 아우구스티누스는 아직 예수를 영접하기 전이었습니 다. 암브로시우스는 철없는 천재 아우구스티누스를 환대해주었고, 그의 ' 존재'를 기뻐해주었습니다. 자기를 사랑으로 받아들여주는 큰 마음과 만나 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마음에도 봄이 찾아왔습니다. 그런 변화는 암브로시우스가 지식을 가르쳐주는 유능한 스승이어서가 아니라 친절한 사람이 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암브로시우스는 예 수를 가리키는 이정표였습니다. 그런 스승이 있었기 때문에 아우구스티누 스는어둠의일을벗고빛의갑옷을입을수있었습니다.우리중누가예 수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될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 라 | 롬 13:14
자기만을 향한 도취를 거두어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 그가 예수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다는 것은 우선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 나의 속사람이 예수 마음으로 교체되는 것입니다. 즉 존재 전체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은 유대인들의 명절중 하나인 유월절의 기원에 대한 말씀입니다.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이 달을 너희에 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 출12:1, 2
여기 '달의 시작'이라든지 '해의 첫 달'이라는 표현을 보면서 우리는 여 호와의 유월절이 이스라엘에게 얼마나 중요한 날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날은 '이스라엘의 해방절'이기 때문에 앞으로 반복되어 찾아올 매해의 첫 달을 유월절로 지켜냄으로써 나머지 모든 달을 하나님의 구원시간 안 에서 살아가라는 간곡한 당부가 이 말씀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유 월절은 '지나갔다(pass over)'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로는 '파스카(Pascha)' 로 '넘어갔다'는 뜻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하기 전날 이집트의 모든 맏이들 이 죽임을 당하던 밤에,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은 죽음의 사자들 이 넘어간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 긴박했던 순간으로 돌아가 보 면 당시 모든 유대인들은 한 해의 첫 달인 니산 월 열흘에 어린 양을 취 해야 했습니다. 아직 양을 죽이지는 않고 취하고만 있다가(출 12:3) 4일 뒤인 열 나흗날 저녁때 양을 잡습니다.(출 12:6) 그리고 그 양의 피를 집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데(출 12:7), 그 이유는 죽음의 재앙을 피하기 위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의 사자들이 무사히 지나가고 이스 라엘은 출애굽을 단행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날을 기념하기 위해 모세에게 이렇게 명령하십니다.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 킬지니라 | 출 12:14
이스라엘이 이 유월절 의식을 여호와의 명령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거 기서구원을경험했기때문입니다.유월절그날,도살당한어린양의피 로 인해 죽음의 재앙이 이스라엘을 피해갔을 뿐 아니라, 자신들을 억압하 던 이집트가 초토화되었습니다. 이후로 그들은 해마다 유월절 식탁을 나누 며 자기 조상들을 해방하신 하나님을 찬미하고, 동시에 지금도 자기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날로 삼은 것입니다.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 것으로 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불사르라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 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 출 12:8-11
고대 근동에서 희생제물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남는 음식을 소비하 는 의미 그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신의 뜻에 대한 감사의 표현인 동시에 신과의 일체감을 유지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가올 신의 은총에 대한 기대의 표현이었습니다. 따라서 "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는 말씀에는 그들의 기대가 그날 밤 안에 이루어 진다는 의미와 더불어, 지난 400여 년간 중단되어 왔던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회복되는 것에 대한 기대와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의미가 더 강하 게 들어있는 것이었습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 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는 말씀도 그러고 보면 기대가 한껏 배인 말씀입니 다. 물론 이 말씀은 출애굽 당시의 긴박성을 느끼도록 해 주는 말씀입니 다. 언제 출애굽이 감행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기 다리라는 말씀입니다. 지난 430년간 기다려왔던 출애굽이 정작 목전에 왔 을 때는 이렇게 긴박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이 말씀을 깊이 묵 상해 보면, 당시의 긴박성만으로 유월절을 기억할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시간 안에서 기대와 설렘 가득한 유월절을 지내라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 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 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 마18:18-20
'매다', '풀다' 라는 것은 유대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단어들입니다. 주로 내게 죄를 지은 형제를 권고해서 그가 죄로부터 돌이켜 구원의 자리로 돌 아올 수 있도록 할 때 '푼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사랑의 행위는 어떤 사 람이 합니까? 시대의 표징을 알아차린 사람입니다. 밤이 새어 낮이 가까 웠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시간이 가까웠음을 알기에 다툼이나 시기나 원망에 매여 있을 수 없습니다. 그는 죄와 사망에 매여 있는자를찾아다니며그를풀어구원의자리로이끄는일에매진합니다.그 런데안타까운것은그런성도가많지않다는것입니다.두사람혹은두 세 사람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기도하고,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다고 하십니다. 그러고 보면 교회는 사람들의 수 (數)로그가치가규정되는곳이아닙니다.단두세사람이라도오직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살고, 밤의 일을 버리고 한낮의 밝음 속에 살고, 시대의 표징을 알아차리고 형제를 권고해, 그가 죄에서 돌이켜 구원의 자 리로 돌아오도록 할 때, 교회는 비로소 존재할 가치가 생기는 것입니다. 오늘이 중요합니다. 오늘을 카이로스 안에서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로 새 옷을 입고, 오늘 하나님의 구원시간 안에서 살며, 오늘 형 제들과 더불어 매일 매일을 파스카의 날로 채워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관 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 천 | Praxio
1. 하루하루 시간을 어둠의 일로 흘려보내고 있지 않은가?
2.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빛의 열매를 맺어가고 있는가?
번호 | 다운로드 | 제목 | Language | 작성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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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6주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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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5주 나를 넘어 하나님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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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4주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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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3주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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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1주 하나님만이 오직 최선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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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0주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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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8주 땅의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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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6주 복 있는 눈, 복 있는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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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5주 장로들의 전통과 하나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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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4주 제2의 본성을 쇄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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