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13주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 읽 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출 3:4-5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응송 | 시편 105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서신 | 로마서 12:9-11
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복음 | 마 16:21-27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 묵 상 | meditatio
1. 마 16:23을 묵상하십시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출 3:5을 묵상하십시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하셨지만, 정작 지금까지 모세가 그 땅에서 했던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3. 롬 1:9-11을 묵상하십시오. 이 말씀 안에서만 볼 때, '하나님의 일' 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입니까?
■ 기 도 |Oratio |5-10분
■ 묵상 나눔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때로 어렵게 느껴지는 것 중 하나가 선택과 결단 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직면한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 로 선택하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 문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가 잘 드러나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 복음서의 말씀에서는 베드로가 "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이시라고 완벽하고 또렷한 신앙고백을 함으로서 예수님께 칭찬을 들었습니다.(마 16:17) 그런 데 오늘 복음서의 말씀에서는 고난과 죽임을 당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시려는 예수님 앞을 가로막고 "그리 마시라"고 항변하다가 "사탄아 내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며 꾸지람을 듣는 모습 을보여줍니다.어째서베드로는같은길위에서,그것도거의동시라해 도될만큼짧은시간안에이렇게다른모습을보일수밖에없었던것일 까요?어쩌면베드로의이상반된모습은오늘우리모두에게내재된모습 이아닐까생각해봅니다.주님을향한우리의믿음의고백과,정작우리 가걷고싶어하는길에는원초적으로이런대립성이내재되어있다는사 실을 마태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리스도교 진리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과, 사람으로서의 예수님, 이렇 게서로상반되고대립된예수님의두모습은예수님안에내재된'신비' 그자체이신데,베드로는이신비를깨닫지못한까닭에어떤때는칭찬도 들었다가 또 어떤 때는 꾸중도 들었다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경험한 이 혼란은 복음서를 찬찬히 묵상해본 분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느껴보셨을 것입니다. 그 복음서 안으로 좀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 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 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 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 마 16:12, 22
"이 때로부터" 그러니까 지난 주 우리가 보았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 리스도로 고백한 시점부터 이야기는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 이 때로부터"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시면서 닥쳐올 그 상 황에 대비해 제자들을 준비시키려고 하십니다. 말씀의 구조 안에서 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있자마자 그 말씀에 대한 베드로의 반론이 뒤따르고 있 습니다. 예수님께서 다가올 당신의 수난에 대한 예고를 하시자, 베드로가 "주여 그리 마옵소서"라며 즉시 말리려 듭니다. 아마 이건 베드로의 마음 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수난의 그림자가 점점 짙어오는 상황에서 제자단 전체는 예수님께서 걸으시려는 그 길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을 것이고, 베드로는 그런 정서를 대변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 고 항변(抗辯)했다고 했는데, 원문에서 사용된 단어는 '에피티마오(ἐπιτιμά ο)'입니다. '책망하다', '꾸짖다' 그런 뜻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얼마나 강하게 반대했는지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주여 그리 마옵 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정말 완곡한 표현입니다. 베드로는 마치 자신이 이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의 안타까움과 완고함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무지, 이 모든 게 한순간에 어우러져서 충격적인 오만함을 연출해내고 있습니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주님을 향해 '그리스도'라고 고백했던 베드로가 지금은 마치 주님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알고 있다는 투로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 런데 예수님의 반응이 예민합니다.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 마 16:23
예수님이 베드로를 향해 사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탄이 하는 일이 뭡니까? 사람을 미혹해서 시험에 빠지게 하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 공생 애 초기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시험했던 게 사탄입니다. 예수님은 왜 베드 로에게 이렇게 심하게 말씀하신 걸까요? 정말 베드로가 일부러 예수님을 넘어지게 했다는 걸까요? 예수님을 위한다는 일이 오히려 예수님을 넘어 지게 하는 일이 되고 말았다는 겁니다. 우리도 가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 습니다. 정말 염려하고 위해서 한 일인데, 오히려 신앙적으로는 그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일 말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좀 더 심층적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21절에서 예수님께서 당신께서 걸어야 할 길로 열거하신 고난과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요체입니다. 베드로가 이걸 부정했기 때문 에, 어쩌면 그가 들은 심한 꾸중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그러면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볼까요? 만약 우리가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아 가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당신께서 당하실 죽음을 예언하십니다. 그러면 저나 여러분은 어떻게 했을까요? 흔들리지 말고 그 길을 가시라고 했을까 요? 우리는 이 성찰을 보다 치열하게 해 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반응이 그렇게 예민할 만큼 우리의 선택 역시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입니 다. 성경을 읽다 보면 예수님께서도 당신께 닥쳐오는 일에 대해 결정적으 로 알지는 못하셨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구절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비록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리스도이시지만 그러나 동시에 시대의 아 들이시기도했습니다.그시대의생각을완전히뛰어넘어서모든걸다아 시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예수님 스스로도 그걸 인정하셨습니다. 마지막 때와 관련한 말씀을 하시면서 마 24:36절에서 하신 말씀이 그겁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 지만 아시느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를 기억 합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 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우리는 성경 곳곳에 혈흔처럼 묻어있는 예수님의 이 처절한 심정들을 간 과하면 안 됩니다.예수님이 처음 하나님 나라 운동을 시작하신 갈릴리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상당히 거리가 먼 곳입니다. 처음 갈릴리에서의 예수님은 자유롭 게 회당에 출입하면서 제자들을 부르고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회당 출입이 거부되었습니다. 회당 책임자들이 예수님의 가 르침을 정통 유대교와 배치된다고 판단한 겁니다. 이게 권력의 속성입니 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이 종교권력과 맞닥뜨릴 것인지, 아니면 갈릴리로 돌아가서 제자들이나 가르칠 것인지,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시기로 결단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데, 그 길 위에서 장차 당신께서 당하실 고난과 죽음에 대해 세 번에 걸쳐 예고 하십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도 그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에 가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당신의 운명을 당신이 원하는 그 방향이 아니 라,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방향에 맞추셨다는 의미입니다. 당신이 원하셨던 방향은 어디입니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책망하면서 말씀하셨던 그대로 '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한' 즉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하는 방향이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원하신 방향은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 한' 방향입니다. 그건 '타인의 목숨을 먼저 구원하는 일'과 관련됩니다. 우 리는 여기에서 예수님의 선택과 베드로의 선택 사이의 차이를 느낍니다. 결국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만 생각했다는 이유로 예수님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꾸중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 니다. 내 뒤로 가라는 것은 제자의 본문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스승보다 앞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겸손히 주님을 '뒤에서 따르는' 자리에 설 때, 우 리는 비로소 '사람의 일'을 피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어서 하신 말씀 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 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 마 16:24, 25
여기 기막힌 역설이 있습니다. '사람의 일'은 지혜로운 듯 보이지만 그 러나 자기 목숨을 잃는 길이고, '하나님의 일'은 미련한 듯 보이지만 그러 나 목숨을 찾는 일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의 목숨을 걱정하는 베드로에게 그렇게 무자비하게 사탄이라며 다그치신 것입니다.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 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마 16:26
'사람의 일'을 따르다 제 목숨을 잃고 만다면 온 천하를 얻은들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따르다 목숨을 얻는다면 비록 온 천하를 얻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보다 더 행복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은 또 말씀하십니다.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 한 대로 갚으리라 | 마 16:27
그리스도인이란 바로 이 긴박감 안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초대교회 성 도들은 항상 이 긴박감 안에서 살았습니다. "주님 오늘 오십니까?" 하고물으며 종말적 긴장감 안에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 의삶이었습니다.그랬기에그들은단한순간도그리스도인아닌날이없 었습니다. 구약의 말씀을 보십시오.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 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 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 출 3:4, 5
40세에미디안광야에들어와어느덧 80세노인이된모세를어느날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시는 말씀이 인 상적입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사실 모세에게 이 땅은 거룩한 땅이 아닙니다. 매일 양떼를 이끌고 오고가던 그 저 평범한 광야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고, 모세 에게 소명이 임하는 자리이다 보니, 평범한 광야도 거룩한 곳이 되었습니 다. 물론 주님이 나를 찾아오셨다고 다 거룩한 곳이 되는 건 아닙니다. 예 수님을 만난 후 오히려 근심하며 돌아간 부자청년에게는 예수님을 만났던 그 자리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 '사람의 일'을 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따르기로 결단한 사람에게만, 내가 하나님을 만난 그 곳이 의미가 있는 것이고, 평범했던 땅도 거룩한 땅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도 지금 이 곳이 거룩한 땅이 된 분이 있는가 하면, 주일 날 의미 없이 오고가는 건물에 지나지 않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오늘 이 후로 '하나님의 일'을 따르기로 결단한 분에게 오늘 이 예배 시간은 거룩 하게 구별된 시간이 됩니다. 그러나 오늘 이후로 어제나 지금이나 일반이 신 분에게는 이 시간이 아무 의미 없이 무료한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 러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 은 말씀합니다.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 고 주를 섬기라 | 롬 12:9-11
우리가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일'이 많지만, 우선 오늘 서신서의 말씀 안에서만 보면, 그것은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는 것입니다. 형제들과 사 랑하고 우애하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부지런하며,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 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삶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일'입니 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든 곳이 '하나님의 일'에 부 름 받은 거룩한 땅인 줄 알아서, 내가 살아가는 모든 자리에서 자기를 부 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일'에 순종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 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관 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 천 | Praxio
1. 자기욕망에 겨워 '사람의 일'에 집착해 살아오지 않았는가?
2.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일'을 실천하며 살고자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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