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11주 긍휼을 입은 성도가 사는 법
■ 읽 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창 28:16-19a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응송 | 시편 139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서신 | 로마서 8:12-17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복음 | 마 13:24-30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 묵 상 | meditatio
1.창 45:5-8을 묵상하십시오. 창44:30-34에서 형 유다의 변화를 보 고 감동한 요셉은 형들 앞에서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합니까?
2. 마 15:26-28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께 모욕을 당한 여인의 반응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인의 무엇을 칭찬하셨습니까?
3. 롬 11:30-31을 묵상하십시오. "너희(이방인)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그 들(유대인)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 기 도 |Oratio |5-10분
■ 묵상 나눔
긍휼을 입은 성도가 사는 법
성직자이자 작가인 '안셀름 그륀 (Anselm Grun)'은 '삶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수도자가 자기 수련을 통해 하나님께 도달했는 지 여부는 남을 심판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보면 안다. 자기 수련을 한 뒤에도 여전히 남을 심판한다면 엄격하게 금식을 하고 심한 노동을 한다 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의 자기 수련은 단지 그가 다른 사람보다 높 이 오를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을 뿐이다." 그러면서 안셀름 그륀은 사막 교부들의 금언 중에서 포이멘 교부가 요셉 교부에게 청한 물음을 소 개합니다. "어떻게 해야 수도자가 되는지 말해 주십시오." 요셉 교부가 대 답했다. "자신에게 머물게. 자기 자신의 진리와 대면하게. 그리고 아무도 심판하지 말게." 우리는 오늘 성서일과를 통해서 '심판의 무의미함'과 거기 비견되는 '용서가 주는 유익'을 읽을 수 있는데, 결국 오늘 말씀을 통해 우 리가 깨닫는 건, 용서는 나의 인격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성경은 자기들이 버린 동생 요셉을 만난 형들의 두려워하 는 모습과 자기를 버린 형들이 찾아왔을 때,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며 "하 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창 45:5),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 고"(창 45:7)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다고 말하는 요셉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형들의 두려워하는 모습이 태초의 사람을 닮았다면, 요셉의 위로는 하나님의 자비를 꼭 빼어 닮았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요셉을 닮았을까? 요셉의 형들을 닮았을까? 복 음서는 예수님 앞에 선 가나안 여인의 처절한 모습과, 그 이방 여인에게 베푸시는 주님의 자비가 교차됩니다. 태생적으로 이방인인 까닭에 주어진 모욕조차 딸을 위해 감당하며 믿음을 잃지 않은 여인을 주님은 칭찬하며 그녀를 격려해 주십니다.(마 15:27, 28) 우리 역시 이방인임에도 주님은 우리 믿음만 보시고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서신서에서 바울은 순종하지 않 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자비를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이 순종하 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롬 11:30) 바울의 이 말씀은 롬5:20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라고 말씀한 것과 궤를 같이하 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가 순종하지 못할 때', '죄가 더한 거기에' 가장 크게 넘쳐났습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은 창세기 후반부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형들에 의해 폭력을 당하 고낯선나라이집트에까지팔려온요셉과형들의극적인화해가바로여 기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먼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화해의 첫 단추가 회개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이 형들에 대한 원망을 풀 고,과거에형들이자기에게자행했던폭력을용서할수있었던것은형 유다의 변화된 모습을 그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바로 앞에 있는 창 44:30, 31을 보십시오."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그리고 33절 과 34절입니다.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 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그 아 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 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동생 베냐민이 은잔을 훔친 죄로 노예로 끌려갈 위기에 처했을 때, 유 다가 동생을 위해 눈물겨운 탄원을 올리는 장면입니다. "저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을 것이라며, 내가 저 아이를 대신해 남겠다"는 것입니다. 유다의 이 진심어린 탄원은 마침내 동 생 요셉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유다가 정말 자기의 미래를 걸고 동생 베 냐민을 지키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에 자기를 팔아넘기던 무정한 형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형제들이 처음 애굽에 온 그 때부터 요셉에게 는 극도의 자제가 필요했었습니다. 동생 베냐민을 보고 마음이 복받쳤을 때도 그는 안방으로 들어가 울고 나왔을 뿐이고(창 43:30), 만약 요셉에 이어 베냐민마저 잃고 말았을 때, 아버지 야곱이 감당해야 할 슬픔을 염려 하며 형들이 괴로워할 때도(창 44:27-29) 요셉은 자기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다가 베냐민을 대신하여 애굽에 포로로 남겠다고 말 할 때, 그는 사람들을 물러가게 한 후 형들 앞에서 큰 소리로 웁니다. 오 늘 구약의 말씀은 바로 그 장면입니다.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 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 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 창 45:1, 2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습이 변화된 유다 같기를 바랍니다. 유다처럼 우리의 회개에 진정성이 있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 다. 그런데 무엇보다 형제들이 이렇게 극적인 화해에 이를 수 있었던 건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에 대한 요셉의 신앙적인 해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 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 창 45:4, 5
우리인생에서중요한것은내가겪은어떤일보다그일을어떻게해 석하느냐 입니다. 해석하려면 관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관점은 단편적인 지식이아니라전체를바라볼수있는혜안이있을때올바를수있습니 다. 요셉은 형들 앞에서 어떤 인간적인 섭섭함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오 히려 "형들이 나를 상인들에게 팔아넘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숨을 살리시려고 나를 형들보다 앞서 보내신 것"(창 45:5) 이었다며 지금까지 있었던 비극적인 가족사가 사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고 해석해 줍 니다.그리고비로소형들도두려움을풀고동생요셉에게다가갈수있었 습니다. 8절에서의 그의 고백도 보십시오.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 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 창 45:8
우리가 요셉을 보면서 감동하는 것은,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자기 상황을 해석할 수 있었던 그의 '믿음의 안 목'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인격으로 형들을 용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비극적인 자기 가족사 속에 깃든 하나님의 섭리를 먼저 보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진정한 강자였습니다. 마하트마 간디가 그런 말을 했습 니다. "약한 자는 용서하지 못한다. 용서는 강한 자에게 부여된 특성이다." 사실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에도 그러나 나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을 용서한 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용서의 뒷맛이 마치 체념처럼 여겨지기 때 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우리의 용서는 언제나 강함의 표 현이지 체념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채고, 하나님의 마 음이내마음이될때,바로거기에서부터우리의강인함과여유가시작되 는것입니다.우리는오늘복음서에나오는한여인에게서바로그런여유 와강인함을볼수있습니다.예수님께서두로와시돈지방,지금으로말 하면 레바논 베이루트 지역으로 가셨을 때의 일입니다. 이곳은 이방인 지 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벌어진 일을 보십시오.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 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예수 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 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 마 15:22, 23
마태는 그녀를 가나안 여자라고 밝힙니다. 이방인 여자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 사람들을 극도로 싫어했는데, 그럼에도 이 여자가 유대인 인 예수님께 왔다는 건 정말 다급하고 절실한 부탁이 있어서일 것입니다. 그녀의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렸습니다. 이런 딸을 키우는 어미의 심정을 아십니까?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께 와서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 히 여기소서"라며 울부짖듯이 소리를 지릅니다. 그런데 이후의 상황을 보 십시오. 예수님은 아무런 대꾸를 안 하십니다. 게다가 제자들은 "그 여자 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라며 잔인하게 나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사뭇 냉정하게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 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노라"(마 15:24)고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여인이 "주여 저를 도우소서" 라며 물러설 기세를 보이지 않자 "자녀의 떡 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마15:26) 라며 한층 더 모욕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여인의 반응을 보십시오.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 다 | 마 15:27
여러분은 이 여인이 특별하게 인격적이어서 이 수모를 잘 견디고 있 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여인은 이방인으로서가 아니 라 엄마로서 예수님 앞에 서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정말 이 여인 이 슬기로웠다는 것은 예수님 말씀에 악의가 없음을 안 것입니다. 그런 면 에서 그녀는 믿음의 여인이었고, 예수님도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십니다.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 마 15:28
여러분은 주님께 무엇을 칭찬받고 싶으십니까? 여러분의 인격을 칭찬 받고 싶으십니까? 여러분의 행위를 칭찬받고 싶으십니까? 가장 먼저 믿음 을 칭찬받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에서 인격도 행위도 나오는 것입니다. 사 실은 이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바울 당시 로마교회에도 이런 신학적 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로마교회 신자들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혼합으로 이 루어졌는데, 처음에는 유대인 기독교인의 수가 더 많다가 클라우디오 추방 령 이후로 이방인 기독교인의 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전혀 다른 배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같은 로마교회에 다니면서 도곳곳에서입장차이를보일수밖에없었습니다.이런배경을놓고로마 서를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바울의 생각은 어땠을까요? 바울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점에서 유 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로마서에서 강조하고 있습니 다.유대인들은율법을통해서죄를짓고,이방인들은율법없이죄를짓 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절대화하던 당시 유대인들 에게바울의이런주장은불편할수밖에없었습니다.일반유대인뿐아니 라 유대인 기독교인들도 바울의 이런 주장을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바울 은 롬 10:21절에서 이런 유대인들의 율법주의를 가리켜 '순종하지 아니하 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이라고 책망했습니다. 바울의 고민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자기 동족 이스라엘 사람들이 왜 불 순종에 떨어졌느냐가 바울의 고민이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쓰던 당시 의 로마에서도 황제들이 골치 아파할 정도로 유대인들은 문제를 많이 일 으켰습니다. 바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오늘 서신서의 말씀에서 전합니다.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 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 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 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 롬 11:1, 2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 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롬 11:30, 31
바울의 이 말씀은 역설적입니다. 그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해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스라엘의 불순종'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거부'를 가리키는데, 이스 라엘이 복음을 거부함으로 인해 복음이 이방인을 향하게 되었다는 말씀입 니다. 그렇듯이 이제 하나님은, 과거에 불순종 했던 이방인을 긍휼히 여 기셨던 그 긍휼로 현재 불순종하고 있는 이스라엘도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는 것입니다. 같은 논리로 오늘 우리를 보십시오. 흡사 요셉 앞에 부끄럽 게 서 있는 형들처럼 부끄럽고 초라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혹은 모진 모 욕을 견디며 예수님 앞에 서 있는 가나안 여인 같은 모습일 때가 있지 않 습니까? 우리는 이 자화상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거짓 자아를 버 리고 변화와 쇄신의 참 자아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토록 부끄럽고 초라하며 모욕을 당하는 우리를 영광스럽고 당당하며 행복하게 하는 힘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입니다. 먼저는 그 긍휼과 자비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다음은 그 긍휼과 자비로 형제를 대하는 것입 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그의 처음은 노예였습니다. 감옥에 갇히기도 했 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 안에서 다시 보면 그의 인생에 초라했던적은한번도없었습니다.그는노예였을적에도하나님의긍휼속 에있었고,감옥에갇혀있을때도하나님의긍휼속에있었고,심지어총 리였을 때도 하나님의 긍휼 속에 있었습니다. 그토록 하나님의 긍휼을 체 험한 사람이기에 그는 비극적인 가족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었고,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로 가족들을 초청해 들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긍휼을 조금만 더 확대하면 요셉의 형 들도 그 은총 가운데 서게 됩니다. 유다가 '동생을 버렸던' 과거의 잘못을 회개하고 변화되어 '동생을 지키는' 사람이 되었을 때, 어느덧 하나님의 긍 휼은 그를 향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긍휼은 무시를 당하면서도 그러나 그 믿음이 빛났던 이방인 여인에게도 어김없이 베풀어졌습니다. 그 녀는 모진 모욕을 당하면서도 주님의 속마음을 헤아리는 현명함으로 주님 께 칭찬을 얻고 딸을 치유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긍휼과 자비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 즉 복음을 거 부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자비는 어김없이 임했습니다. "하나 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롬 11:1) 하신 말씀처럼 이방인들이 받은 하나님의 자비를 보고 회개하여 복음을 믿은 자들도 하 나님의 자비를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이 긍휼과 자비를 우리는 신비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그 깊은 사랑을 오늘 서신서의 말씀 바로 다음 구절인 롬 11:33에서 이렇게 찬미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 할 것이로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황홀하게 노래하며 주님의 자비를 형 제들과 나눌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관 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 천 | Praxio
1. 하나님의 긍휼함 아닌 자신의 노력으로 형제를 대하지 않는가?
2.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한 자로서 형제에게 긍휼을 쌓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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