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사순절 제2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창 17:1-7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 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 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응송 | 시 22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 리로다
서신 | 롬 4:13-25
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 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 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 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복음 | 막 8:31-38
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 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 에게 가르치시되 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 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 리요 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 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 람을 부끄러워하리라
■ 묵상 | meditatio
① 창 17:1-7을 묵상하십시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신 말 씀에서 '완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② 롬 4:13을 묵상하십시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의 '무엇'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③ 막 8:34을 묵상하십시오.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마침내 도달하도록 하는 '완전'은 궁극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사순 시기는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부활절이 목적지인 영적(靈的) 여행입니다. 이 시기 동안 우리의 내면은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도달하기 위해 참된 믿음과 거듭남과 성화의 전 과정을 치열하게 감내해 냅니다. 웨슬리는 자신의 설교 '성서적 구원의 길'에서 칭의(稱義 justification)로부터 시작되어 성화로 이어지는 구원의 과정에 대해 설명했습니다.우리가 칭의를 얻는 바로 그 시점부터 우리의 성화가 시작된다. 우리는 칭의를 얻는 그 순간에 성령에 의해 위로부터 다시 새롭게 탄생(신생)한다. 칭의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적 변화이며, 성화는 실제적인 변화이다. 의롭다 여김을 받는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내적으로 새로워지며,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속에 부어져 모든 인류에 대한 사랑을 생산하며, 동시에 세속에 대한 애착과 악한 성품과 모든 죄악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 변화된다.
이렇게 칭의로부터 신생(거듭남)으로, 또 성화로 이어지는 구원의 과정을 설명한 후에 웨슬리는, 점진적인 성화와 동시에 순간적인 성화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칭의를 얻는 순간, 우리 영혼에 하나님의 모든 덕이 뿌려지며 그때부터 우리는 점진적으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은혜 안에서 성장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온전히 성화될 때까지는 모든 죄의 씨가 우리 안에 남아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점진적인 성화와 동시에 순간적인 성화를 사모하고 기대해야 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지만, 우리의 영과 혼이 온전히 성화될 때까지는 모든 죄의 씨가 우리 안에 남아있기 때문에, 성화를 향한 노력이 치열하게 지속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오늘 성서일과의 말씀들은 웨슬리 설교의 단적인 예(例)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먼저 구약성경에서, 아브람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고 당부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완전은 히브리어로 '타밈(םימח)'인데, 흠이 없는 깨끗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처럼 완전할 수 없음을 감안할 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말씀은 '완전을 지향하는 노력'을 멈추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람은 어떤 부분의 완전을 위해 애를 써야 했던 것인지가 오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는 관전 포인트가 되겠습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 때의 하나님의 말씀을 염두(念頭)에 둔 듯이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롬 4:13) 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 뿐 아니라 믿음의 후손인 우리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의 완전함이라는 것인데, 아브라함의 믿음이 완전하지 못했을 때, 그로 인해 하나님의 뜻이 하염없이 지체되었음을 잊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믿음의 불완전함이 하나님의 뜻을 지체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 사례는 오늘 복음서의 베드로에게서도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장차 예루살렘에서 당하게 될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즉각 반발했습니다(막 8:31-32). 그 반발은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는 목적을 믿음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그런 베드로를 예수님은 '사탄'이라고 꾸짖으시며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3-34) 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구약 성경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 창 17:1a
구십구 세 노인이 된 아브람에게 어느 날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아브람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이 방문이 매우 당혹스러운 방문일 수 있었습니다. 하늘의 뭇별처럼 자손을 주시겠다(참 15:4, 5)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방법으로 이스마엘을 낳은 후에 13년 동안이나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에 대화가 끊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당시의 아브람의 행동은 전혀 이해 못할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때 아브람은 길 위의 사람이었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하신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창 12:4) 길을 떠난 후 그는 줄곧 나그네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하란에서 가나안으로(창 12:1-9), 가나안에서 애굽으로(창 12:10-20), 애굽에서 네겝으로(창 13:1-13), 네겝에서 헤브론으로(창 13:14-18) 그는 고단할 만큼 이동하며 살았습니다. 윤동주는 '또 다른 고향'에서, 고향을 떠나서 살아오는 동안 자아가 분열되어 갈등을 일으켰던 경험에 대해 고백합니다.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風化作用)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첫째 말씀은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창 17:1b)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굳이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아브람이 하갈을 취해 이스마엘을 낳은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신뢰하지 못해 일어난 신앙의 참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엘 샤다이(ידשׁ לא)',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동안 비탄에 젖어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이름으로 찾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엘 샤다이', '전능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벧엘의 야곱을 찾아가서 위로해 주셨고(창 35:11), 미디안의 모세를 찾아가 확신을 주셨으며(출 6:3), 고통 중에 있는 욥에게도 찾아가셨습니다(욥 40:2).
두 번째 말씀은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c)였습니다. '비난받을 것이 없을 만큼 흠 없고 깨끗한 존재'가 되라는 것인데, 그러나 이것은 에덴동안의 타락 이후로는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완전'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아브람이 믿음으로 온전히 설 때, 그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이 말씀은 나를 믿음의 길로 불러내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며,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지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영적 완전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참된 성취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순수하고, 흠 없는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는 성취입니다.
세 번째 말씀은 '언약(베리트)'이었습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창 17:2). 이 언약은 여기에서 처음이 아닙니다. 이미 여러 차례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이 언약을 체결해 주셨지만, 다시 한 번 후손에 관한 언약을 체결해 주신 것입니다. 이때 비로소 아브람이 여호와 앞에 엎드리고(창 17:3),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주십니다.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 창 17:4, 5
하나님께서 이렇게 아브람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신 것에는 그가 99세에 새 출발을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데, 그 새 출발은 정체성의 변화와 함께 찾아왔습니다. 아브람은 '존귀한 아버지'라는 의미이고, 아브라함은 '여러 민족의 아버지'란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새 정체성에 담아주신 것은 이제부터는 자신만 존귀한 존재가 아닌, 미래에 태어날 후손 전체를 존귀하게 하는 존재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약속의 자녀가 태어나고, 그 자녀를 통해 후손이 불어나 떡이 아닌 말씀으로 사는 나라를 세울 비전을 이름에 담아주신 것인데, 하나님의 이 언약은 1년 후, 그의 믿음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의해 성취되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해지면, 하나님은 당신의 전능하심으로 이루십니다. 오늘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이 바로 그 사실을 언급합니다.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 롬 4:13
이 말씀은 오늘 구약성경에 대한 바울의 해석입니다. 바울이 보기에 하나님의 언약은 모세의 율법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서도 바울은 이때의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드높이 평가합니다. 그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롬 4:18)라고 설명하는가 하면,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면서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했다"(롬 4:19)고 설명해 줍니다. 그간의 아브라함의 삶의 궤적을 생각하면 바울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너무 과하게 포장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서 바울이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지 않고, 믿음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당부하신 것이나, 로마서에서 바울이 아브라함에 대해 강조하고 싶어 하는 것에는 믿음이라는 공통의 주제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견고함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고(롬 4:20), 믿음만이 약속하신 언약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에(롬 4:21), 하나님은 믿음을 그의 의로움으로 여겨주셨다는 것입니다(롬 4:22).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 말씀입니다.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 롬 4:23-24
'믿음의 완전함'은 아브라함에게만 요청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롬 4:24) 여기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후로 복음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 모두를 포함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중요한 믿음이 언약에 관한 믿음이었다면, 우리에게 중요한 믿음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 롬 4:25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같은 분이신데, 중요한 사실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 믿음도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완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믿기 힘들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도 믿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우리를 의롭게 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서에 안타까운 장면이 있습니다.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 막 8:31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으로부터 이어지는 이 말씀은 복음서 전체 흐름의 결정적 전환점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을 두고 항간에 떠돌던 세례 요한, 선지자, 엘리야 등등의 소문과 달리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막 9:29) 라고 베드로는 정확한 고백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고백이 항상 정확한 이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지금껏 수면 위로 올라온 적 없던 결정적 비밀들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고난당하는 여호와의 종처럼(사 55:3-5, 10), 혹은 건축자가 내버린 돌처럼(시 118:22) 그리스도이신 당신께서 당하실 고난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당신의 고난에 대한 가르침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까지 두 번 더 반복되고(막 9:30-32, 10:32-34) 갈수록 그 의미와 무게가 더해집니다. 그러자 제자들의 반응도 격해지기 시작했습니다.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 막 8:32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건 맞지만, 그러나 베드로가 고백한 그리스도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그리스도가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애타게 기다려 온 '다윗의 자손'으로서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키고 하나님 나라를 세울 정치적 구원자였습니다. 아직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중인데 베드로가 예수님 앞을 거칠게 막아서서 항변하기 시작합니다. "항변하매"는 그리스어로 '에프티마오(ἐπιτιμάω)'인데 '책망하다, 꾸짖다, 비난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 보십시오.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 막 8:33
예수님은 베드로 한 사람만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시선은 제자들 전체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만 꾸짖음을 들으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 전체가 꾸짖음을 들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말과 태도에서 당신을 유혹하는 사탄을 보셨는데, 그 유혹은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참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우리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토록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존 웨슬리께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영혼이 육체에 머무는 동안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완전은 무지와 실수, 그리고 수많은 다른 결함들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판단으로부터 잘못된 말과 행동이 불가피하게 나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잘못된 감정도 같은 원천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백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은 이런 것입니다. 주여, 저는 모든 순간마다 당신의 죽음과 공로가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육체에 머무는 동안 우리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러셨듯이 베드로에게 그러셨듯이 우리를 향해서도 오래 기다려 주십니다. 우리가 무지를 넘어, 연약함을 넘어, 실수를 넘어 이 세상의 시험이나 유혹을 넘어 당신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고 순종할 때까지 기다려주십니다. 다행히 우리는 이 무지와 연약함과 실수와 시험과 유혹을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 시험과 유혹을 당하시고 이기시는 방법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히 2:18, 4:15).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그가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그때그때 불완전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무지나 실수 혹은 연약함과 유혹이 완전히 없는 '완벽'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완벽하지 못한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성령의 돌봄과 도움 안에서 꾸준하게 자라가는 사람이고,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순종하려 애쓰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꾸짖으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 막 8:34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그런 믿음이 갖추어지기까지 우리는 자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자아와의 싸움을 이겨내고 '완전에 이르는 믿음'을 갖추기를 기다려주고 계십니다. 나의 내면과 정직하게 대면해서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믿음을 조율하고 우리 믿음이 회복되고 자라서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도달하는 그런 사순절 순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하나님의 뜻과 일치를 못 이룬 나만의 만족에 겨워 있지 않은가?
② 나의 믿음은 자기 부인과 십자가라는 '완전'을 향해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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