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사순절 제1주 사순절, 부활을 기다리는 계절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창 9:8-17
8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10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 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 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 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응송 | 시 25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 리로다
서신 | 벧전 3:18-22
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 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 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 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 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 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22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 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복음 | 막 1:9-15
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 게 세례를 받으시고 10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 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 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 을 믿으라 하시더라
■ 묵상 | meditatio
① 창 9:16을 묵상하십시오. 구름 사이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② 벧전 3:20-21을 묵상하십시오. 베드로는 노아 때 범람했던 홍수의 의미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③ 막 1:13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후에 성령께서 그를 광야로 몰아내신 이유에는 어떤 목적이 담겨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사순절, 부활을 기다리는 계절
24절기로 우수(雨水)를 하루 앞둔 오늘, 교회의 시간은 사순절 첫째 주일을 지나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는 날씨도 한층 포근해졌고, 겨울잠을 자던 생태계를 깨우듯 봄비도 촉촉이 내렸습니다.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얼음이 녹으면 봄이 된다'는데, 그러고 보니 어느새 날이 꽤나 따뜻해졌고, 옷차림도 얇아지고 가벼워졌습니다, 정호승은 '꽃을 보려면'이라는 시에서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 고요히 눈이 녹이기를 기다려라 /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면서, 지난한 기다림의 끝에 보이고 만나지는 꽃씨 안에 숨겨진 생명을 노래했습니다. 그렇게 봄은 숨겨진 생명을 틔워내는 계절이고, 그 생명의 신비를 느끼며 경탄하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사순절도 그렇습니다. 사순 시기는 어둠속에서 생명을 틔워내는 부활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최완택 목사님이 민들레교회 이야기에 남기신 '기다리는 계절'이라는 글에 사순절의 의미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대림절이 예수의 성탄을 기다리는 계절이라면, 사순절은 예수의 부활을 기다리는 계절이다. 대림절의 기다림이 초조와 수치와 두려움을 무릅쓰고도 설레는 마음 달래며 희망 가운데 성탄을 기다리는 것이라면, 사순절의 기다림은 공포와 절망을 스스로 체험하면서 예수의 십자가 행진에 동참함으로써 기다리는 것이다. 대림절의 기다림은 걱정이 태산 같더라도, 진통을 겪게 되더라도, 그 날이 오면 그 진통의 절정에 으앙! 하고 한 아기가 태어나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난 기쁨에 그 진통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며 우리의 마음에 기쁨이 넘치는 그런 기다림이라면, 사순절의 기다림 역시 끝은 분명히 부활! 다시 태어날 기쁨임에 틀림없지만 그러기 위하여는 몸 전체로, 삶 전체로 예수의 십자가 길을 걸어야 하고, 예수의 십자가에 달려야 하고, 그렇다. 죽어야 한다. 반드시 죽어야 한다. 죽지 않고서야 어찌 부활할 수 있겠는가? 또 부활하지 않는다면 예수 믿는 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렇게 볼 때 예수 믿는 사람의 길(삶)이란 '어둠 속에 앉은 백성'이 대림절의 기다림을 통해 예수라는 큰 빛이 태어나는 성탄을 만나고 또한 절망과 공포의 이 세상에서 사순절의 기다림을 통해 예수 부활의 아침을 만나는 두 개의 큰 긴장 가운데 걸어가는 것이라 하겠다.
그렇습니다. 사순절은 공포와 절망을 스스로 체험하면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길을 걸으며 부활을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우리 내면은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도달하기 위해 참된 믿음과 거듭남과 성화의 전 과정을 치열하게 감내해 냅니다. 그 첫 번째 주일인 오늘 성서일과는 세례를 통과한 새로운 생명, 죽음을 통과한 부활, 시험을 통과한 승리 등의 테마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구약의 말씀인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맺어주신 언약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그들은 홍수 심판 이후에도 계속될 온 인류를 상징합니다. 즉 홍수의 물로 세례를 받은(벧전 3:21) 새로운 인류가 탄생되고, 하나님께서는 무지개 언약(창 9:13)을 통해, 이 새로운 인류에게 당신의 생명과 사랑이 영원할 것임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언약이 있게 된 배경이 되는 상황을 우리는 창 6:5, 6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 말씀은 심판 이전의 세상이 죄로 가득 차서 홍수보다도 더 무서운 상태였음을 보여줍니다. 어쩌다가 이런 세상이 되고 말았을까요? 창세기의 저자는 사람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고 증언합니다.
'마음'은 히브리어로 '레브(בל)'인데, 히브리적 사고에서 이 '마음'은 갖가지 감정이 자리 잡고 있는 장소이자, 생각과 이해와 의지가 모여 있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이집트의 성 마카리오스에게 있어서 '마음'은 '육체의 중심이자 지성의 자리'이며 '하나님의 은총을 맛보는 장소'였고 , 토마스 머튼은 시 64:6에 있는 '깊은 마음(deep heart)'을 설명하면서 프랑스의 동양학자인 '루이 마시뇽'의 글을 인용해 '동정지점(le point vierge)'이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 '동정지점'으로서의 '깊은 마음'은 '최종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마음의 은밀한 중심'이고, '잠재적 인격, 깊은 의식, 비밀의 독방'이며, 하나님 홀로 활동하시는 곳이며,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곳이고, 인간 영혼 깊이에 숨어있는 지성소였습니다.
그런데 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면 과연 그 사회가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멸망시키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판단하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대홍수로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맙니다. 물은 천하의 높은 산을 다 잠기게 했고,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을 다 죽인 채로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습니다(창 7:19-24). 그런데 이 '대홍수와 노아의 방주' 이야기의 끝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보다 더욱 깊고 크신 하나님의 자비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오늘 구약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 창 9:8-11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는 언약(言約)을 노아와 맺어주십니다. 이 '언약'은 인간의 육적인 연약성 때문에 주어진 가장 엄숙하고 구속력 있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창세기 저자는 이 약속의 체결을 보여줌으로서 하나님이 '약속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려 한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약속의 증표로 무지개를 보여주셨습니다.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 창 9:12-15
하나님께서 당신의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시는데, 그 무지개가 구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면,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생물 사이에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다시는 물이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않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무지개를 뜻하는 히브리어 '케쉐트(תשׁק)'는 무지개(rainbow)라는 의미도 있지만 활(bow)이라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그래서 '케쉐트(תשׁק)'를 '활'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인류와 싸우지 않기 위해서 활을 구름 사이에 걸어두신 것이라고도 합니다. 즉 당신의 무기인 활을 구름 사이에 두셔서 당신과 사람들 모두가 볼 수 있게 함으로써 언약의 증표를 삼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지개'로 해석하는 것이 문맥으로 볼 때 훨씬 자연스럽다고 대개의 주석가들은 주장합니다. 무지개는 태양의 반대쪽에 강수(降水)가 있을 경우 그 물방울에 비친 태양 광선이 물방울 안에서 반사하거나 굴절되어 나타나는 현상인데, 구름 사이에서 무지개가 아름답게 비칠 때, 사람들이 홍수의 두려움을 잊게 하기 위해 무지개 약속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맺어주신 이 무지개 약속에서 그 어떤 조건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이 약속이 이해가 가십니까? 노아시대 대홍수는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일어난 '심판'으로서의 홍수입니다. 그렇다면 노아와 맺으신 약속에는 인간이 악을 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바로 앞에 있는 창 8:20-22에 보면, 홍수가 끝난 뒤에 노아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장면이 소개되는데, 노아의 제사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속으로 이렇게 다짐하십니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 8:21) 자세히 보면, 8장에서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 하신 이 약속이, 9장에서 '홍수를 일으키지 않겠다' 하신 약속으로 일관되게 연결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타락해서 본질이 악해져 버린 인간이, 심판을 받는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타락'과 '악(惡)'은 이제는 바뀔 수 없는 인간의 속성이자 본질이 되어버렸습니다. 만약 인간이 악하다는 이유로 심판을 계속한다면 더 이상 인류는 지구에서 존속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악과는 상관없이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은총입니다.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일 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겠다는 표현을 하나님은 무지개로서 보여주신 것입니다.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으신 언약의 두 번째 특징은 언약의 대상이 노아나 노아 가족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 더 나아가서 모든 생명이라는 사실입니다. 9절과 10절 다시 보십시오.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오는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하나님의 언약은 사람만이 아닙니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언약의 대상입니다. 공중의 새와 들의 꽃도 언약의 대상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중의 새와 들의 꽃을 보라"고 하신 것은 저들 안에 스며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 자행되는 생태계에 대한 인간의 폭력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폭력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만이 아닌,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시고 언약의 대상으로 삼아주셨습니다. 따라서 노아로 인해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 그리고 모든 동물이 보존되었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로 인해 이웃과 형제들, 그리고 우리와 더불어 창조된 모든 생명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이 지켜지고 창조질서가 보존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서신서를 읽어보면, 사도 베드로가 구약시대의 노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함께 소개하며 다소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 벧전 3:18a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셨음에도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속죄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이 불의한 자는 예수님 시대에 갑자기 생겨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역사를 되돌려보면 이미 노아시대 때에도 마치 같은 무대 위에 각각의 배역을 맡은 배우처럼 존재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베드로의 증언 보십시오.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 벧전 3:18b-20
베드로에 따르면 육체로는 죽음을 당하셨지만 영으로 살리심을 받은 예수께서 영(靈)으로, 옥에 갇혀 있는 영들에게 가셔서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노아가 방주를 짓는 동안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려 주셨지만 끝내 순종하지 않았던 자들입니다. 그렇듯 우리 모두는 역사의 한 때를 각각의 배역을 소화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처럼 노아처럼 영적 삶을 살아가던지, 불의하고 순종하지 않는 자처럼 육적인 삶을 살아가던지 입니다. 노아는 무려 120년이나 묵묵히 방주를 만듦으로서 동시대 사람들에게, 장차 올 심판을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가 방주를 만드는 120년 동안 순종치 않는 자들을 위해 오래 참으심으로서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창 6:3, 롬 2:4, 벧후 3:9). 놀라운 사실은 방주에 들어가 구원을 얻은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방주에 들어감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겨우 여덟 사람뿐이었는데, 그들은 노아 부부와 세 아들 부부였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끝내 회개하지 않았고, 방주에 들어갈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에 따르면 노아의 120년은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방주를 마련해 자기 가족을 구한 기간이었습니다(히 11:7). '경외(敬畏)'란 '거룩한 두려움'을 의미합니다. 성경의 표현을 빌자면 '두렵고 떨림'입니다. 노아에게 있어 하나님의 말씀은 '두렵고 떨리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120년을 하루같이 그 경외감 속에서 방주를 만드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방주를 만들었을 때, 심판의 홍수가 땅을 뒤덮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노아의 경외감과,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방주를 만든 실천이 자신과 가족을 구원의 길로 이끈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때의 홍수에 대해 매우 의미 있는 고백을 합니다.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 벧전 3:21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도록 회개하지 않은 자들에게 40일간 쏟아져 내린 비와 홍수는 심판의 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경외감으로 말씀을 받아들여 방주를 만들었던 노아와 그의 가족들에게 홍수는 세례의 물이었습니다. 그들은 홍수를 지나며 죄가 깨끗이 씻겼고, 마침내 무지개 언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서에 보면 노아의 시대에 노아를 통해 당대의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게 하셨던 성령(聖靈)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어 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 막 1:12, 13
예수님을 광야로 보내,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 당하게 하신 성령님은 사도 베드로의 증언에 따르면, 전에 노아가 방주를 준비할 동안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전파하며 회개를 요구하셨던 바로 그 분이셨습니다(벧전 3:19, 20). 성령님은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 경고와 함께 회개를 촉구하기도 하시지만, 때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광야로 이끌어 영적순례를 통해 자라게 하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기 시작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칭찬하신 날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창 6:9-15). 그리고 예수님께서 광야로 내몰리신 것도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하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막 1:11) 하신 성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신 그 날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외롭고 힘들고 벅찬 40일 혹은 40년의 훈련기간을 겪었다는 사실이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이미 우리에게 시작된 40일 간의 사순절 여정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사랑스러운 자녀들에게 주어진 가슴 벅찬 영적 순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세례의 물을 통해 낡은 인간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태어났지만 아직도 육체는 연약한 본성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사순 시기는 인간의 본성 안에 내재된 이 연약성을 깨닫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도와주는 시기입니다. 물론 우리들 가운데는 아직 마음으로 사순절을 맞을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 분들도 있겠습니다. 사순절이 지향하고 있는 회개라든지 절제와 순종 등등 대하기 버거운 영적 과제들이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고행(苦行)의 종교가 아닙니다. 오히려 복된 소식이 들려오는 기쁨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사순절 순례와 함께 맞이한 우수가 봄기운이 돋아나는 절기이고, 겨울잠 자던 온갖 벌레들이 땅속에서 기지개를 켜며 생명운동을 시작하는 절기이듯이, 사순절 역시 겨울잠에서 깨어 기지개 켜며 활기차게 생명운동을 시작하는 절기입니다. 사순절은 하나님 말씀에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사순절은 하나님의 약속을 부여잡는 시간입니다. 사순절은 하나님과 시선을 맞추는 시간이고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을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부디 주님과 함께하는 사십일의 여정을 통해 부활절 아침이 행복으로 열리기를 소망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영적 긴장감 없이 신앙의 겨울잠을 자고 있지 않은가?
② 경외감 가득 말씀을 경청하며 부활을 향해 나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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