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주현 후 마지막 주 그리스도 영광의 빛과 변화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왕하 2:1-11
1 여호와께서 회오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 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 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3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 시나이까 하니 이르되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4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 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 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매 5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 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 나이까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6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 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 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 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 7 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8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 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10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 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 놓고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응송 | 시 50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비추셨도다 우리 하나님 그 앞에는 삼키는 불이 있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서신 | 고후 4:3-6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 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 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복음 | 막 9:2-8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 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 더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 뿐이었더라
■ 묵상 | meditatio
① 막 9:7을 묵상하십시오. 그리스도께 임한 빛의 의미를 모른 채 두려 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② 왕하 2:9을 묵상하십시오.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의 능력이나 지혜나 명성이 아닌 무엇을 요구했습니까?
③ 고후 4:6을 묵상하십시오. 우리의 내면으로 비쳐 와, 우리를 새롭게 할 빛은 어떠한 빛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그리스도 영광의 빛과 변화
알렉산드리아의 대표적인 신학자였던 오리게네스(Origene)를 사람들은 '빛의 신학자'라고 부릅니다. 그는 인간 존재가 처음에 하나님과 원초적이고 사랑스러운 상태에 놓여 있었고, 그러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닮은 존재였다가, 불행하게도 죄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 닮음'을 상실한 것에 주목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하나님께서 완성하고 싶어 하시는 구원은 처음 창조 후 당신께서 보시기에 좋으셨던 모습 그대로 당신 자녀들이 '하나님 닮음'을 회복하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것인데, 오리게네스는 이러한 회복을 향한 여정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하면서 시작된 회심(回心)과, 그들이 광야에서 치열한 영적투쟁을 거쳐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간 순례의 여정에 비유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이렇게 '하나님 닮음을 회복해 가는 과정'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되돌아가는 여정'은 크고 강한 빛을 향해 나아가는 영적 노력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존 웨슬리의 영성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이집트의 성 마카리우스 역시 회심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거룩한 은총과 그 은총의 빛을 받아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변모(變貌)에 주목했습니다. 마카리우스 영성의 핵심은 변모와 갱신이라 할 수 있는데, 그에게 있어서 인간 존재의 변모와 갱신은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빛이 내면에 비쳐듦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 따르면 하나님의 은총이 선물로 임할 때, 그 은총의 빛을 받아 새롭게 변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인간의 역할이 전혀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때 사람은 믿음과 겸손으로 반응해야 하며, 계속적인 기도가 필수 요건이라는, 이른바 신인협력 사상은 마카리우스 영성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이 고후 3:7-4:6절 사이에서 말씀하는 '마음속에 비추인 그리스도의 얼굴의 빛을 보는 것'을 다가올 종말론적 변모의 미리 맛봄에 해당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높은 산에서의 그리스도의 변모와 연관되는데, 오늘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변모는 장차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이 내면에 비쳐듦으로 변모할 그리스도인의 변모와 갱신의 모본이라 하겠습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 막 9:2
마태와 마가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신 시점을 '엿새 후'(마 17:1)라고 기록한 반면, 누가는 '팔 일쯤'(눅 9:28)이라고 다소 부정확한 듯한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누가가 유대인 특유의 느슨한 표현법을 쓰고 있는 것 같지만, 전체적인 문맥에서 보면 오히려 누가가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이라고 표현함으로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오르신 목적을 보다 명료하게 전달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누가가 말하는 '이 말씀을 하신 후'라는 것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고 나서(마 16:13-28;막 8:29;눅 9:20) 예수님께서 장차 당신께서 당하실 고난과 죽음 그리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가 베드로가 거세게 반발한 것(막 8:31, 32)에 대해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막 8:33)라고 나무라신 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때의 베드로의 반발을 보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말씀을 그저 머리로만 인지하는 신앙이 실제 고난과 죽음에 직면했을 때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절감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을 오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산 위에서 베드로와 다른 두 제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임한 영광의 빛을 목격하게 됩니다.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 막 9:2b-3
마가는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변형되셨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가가 사용한 이 '변형'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수동태 직설법으로 '메타모르포데(μεταμορφώθη)'인데, '그가 변형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변형이 아닌, 육의 몸으로부터 영의 몸, 부활의 몸으로의 변모를 의미합니다. 즉 단순하고 표면적인 외형의 변화가 아닌 '본질적인 형상(모르페 μορφή)'의 변화(μετα)입니다. 이제 얼마 후면 수난과 죽임을 당하시게 되겠지만 그러나 부활하신 후의 몸이 얼마나 영광스러울지를 하나님께서는 산 위에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훗날 바울은 예수님의 이 변형에 대해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렀다"(고후 3:18) 라고 했고, 오늘 서신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다"(고후 4:6)고 감격스러워 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황홀하고 감격스러운 경험은 예수님의 변형과 광채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 막 9:4
이들이 어떤 인물입니까? 모세는 구약 율법의 상징이자 메시아의 원형(신 18:15)으로 이미 시내산에서 여호와의 영광을 체험한바(출 31:18) 있는 이스라엘의 최고 인물입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구약의 예언자의 대표자이고, 메시아의 선구자로 예언되었던 인물(말 4:4, 5)이고, 호렙산에서 여호와의 영광을 체험한 바 있습니다(왕상 19:8). 유다의 민중전승에 의하면 모세와 엘리야의 공통점은 모두 주검을 남기고 않고 하늘로 올리었다는 점입니다. 그런 인물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나눈 대화의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는 눅 9:31에 의하면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대화는 무척 중요한 대화였습니다. 오랫동안 이스라엘이 대망해 오던 메시아가 마침내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바로 이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고, 지금껏 율법과 예언으로만 말해지던 것들이 마침내 복음으로 완성되는 찰나였습니다. 그런데 이 감격스러운 찰나에 베드로의 반응을 보십시오.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 막 9:5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베드로가 아직 자기 안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처음에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었습니다. 그러나 따라 나선 것만으로 그의 내면이 완전하게 성화를 이룬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이기적인 자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그의 내면은 세속의 욕망으로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어떤 순간입니까?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다시 빛 가운데로 베드로를 초청하시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눈에 비친 예수님 옷의 광채는 그가 들어가야 할 복음의 빛으로 여겨지기보다는, 현실의 버거움을 피해 도피하고 싶은 도시의 조명으로 비치고 만 것입니다. 어찌 이게 베드로만의 모습이겠습니까? 베드로처럼 이기적인 마음의 지배를 받는 삶이 곧 우리 모습이지 않겠습니까? 혹자는 이것을 '정신적 망명'이라고 했습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내 생각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빛이 비추어 와도 깨닫지 못하고 내 영혼은 여전히 산 아래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변모는 높은 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예수님 변화주일을 기념하기 시작한 6세기말 경부터 이렇게 주님의 변모를 찬미했습니다.하나님이신 그리스도여, 주는 산에서 변모하시어 제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영광을 나타내셨도다. 테오토코스의 중재로서 우리 죄인들에게도 영원한 빛을 비추시는 이여, 주께 영화로다."
예수님 변화주일 '아뽈리띠끼온(Apolytikion)'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부지런히 훈련과 수련의 산을 올라야 합니다. 그리하여 죄인을 향해 비추시는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우리 내면의 어두움을 내쫓고,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런 사람입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변화를 열망하는 한 사람을 보여줍니다.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 왕하 2:1, 2
이 말씀은 오늘 복음서에 등장하는 엘리야가 승천할 때, 그와 엘리사의 사이에 있었던, 대화의 한 장면입니다. 엘리야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된 것을 알고 제자인 엘리사를 떼어놓으려 하는데, 엘리사는 마치 아이처럼 스승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엘리야가 길갈에서 '너는 여기 머물라' 해도 엘리사는 기를 쓰고 떨어지지 않겠다 하고, 엘리야가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신다' 하면 엘리사는 기를 쓰고 여리고까지 따라가고, 엘리야가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신다' 하면 엘리사는 끝내 요단까지 스승과 함께 갑니다. 이렇게 엘리사가 스승으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것은 스승과의 대화를 통해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싶기 때문이고, 한편으로는 스승의 승천에 대해 확실히 알고 또 목격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왕하 2:3, 5). 끝내 제자를 뿌리치지 못하고 요단강을 건넌 엘리야는 마지막으로 엘리사에게 묻습니다.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 왕하 2:9a
그때 엘리사가 스승에게 하는 말이 감동적입니다.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 왕하 2:9b
그는 엘리야의 수중에 있는 그 어떤 지식도 능력도 명성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령을 구했습니다. 더욱이 그의 말을 자세히 보십시오. "성령을 주옵소서" 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왕하 2:9b) 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선지자로서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랬기 때문에 지금 그에게 절실한 것은 요단강을 마른 땅같이 걸을 수 있는 능력도, 스승과 함께 승천하는 능력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성령께서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자기에게 있으시기를 원했습니다. 그것만이 자신이 선지자의 사역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인 것을 그가 마침내 깨달은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보아야 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예수님의 옷이 광채가 나고 매우 희어진 현상에만 황홀해 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정작 그들이 봐야 했던 것은 그 황홀한 광채가 어디에서 비쳐온 것이며. 그 광채가 예수님의 옷에서 빛나게 하신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예수님만이 바로 그 광채 속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장차 당신이 당하실 죽음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습니다.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 왕하 2:7
우리는 이 장면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시던 장면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 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임했듯이 지금도 하늘로부터 소리가 임합니다. 그런데 그 때는 예수님을 향해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막 1:11)라고만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 지금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향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시는 걸까요? 산 아래서 세속의 열망을 키워온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얼굴의 빛을 참으로 보는 길이 주님 말씀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주님의 제자입니까? 주님 말씀을 경청하는 사람입니다. 주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베드로는 다시 한 번 제자 됨의 자리로 초청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하시는 말씀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을 읽으면서 거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한낱 지식이나 정보의 차원으로 끌어내리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책을 읽는 우리의 습관이 그렇게 몰고 갑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서에서 보듯이 하나님은 '말씀'으로 다가오셔서 우리를 만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나의 내면에 빛으로 오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하나님 말씀으로 나의 내면을 밝히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거룩한 산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벧후 1:18)고 고백한 후에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벧후 1:19) 간곡하게 당부했습니다. 우리교회에서 시행하는 '렉시오 디비나'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또 '깊이' 만나도록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렉시오 디비나는 기도이고, 하나님과 나와의 만남이며, 하나님과 나와의 대화입니다. 우리가 훌륭한 분을 만날 때, 그 분 말씀을 귀 담아 듣는 것이 마땅한 도리인 것처럼, 하물며 하나님과 만날 때 더욱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인들이 당신을 죽이려는 것에 대해 한 마디로 정리하셨습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요 8:37)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 고후 4:3, 4
예수님의 옷과 얼굴에서 광채가 난 것은 그 분이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여전히 우리 마음이 혼미하다면, 그것은 우리 안에 말씀이 있을 곳이 없어 복음이 가려지고 말았거나, 이 세상 신이 우리 마음을 혼미하게 해서 그리스도의 빛이 내 안에 비쳐들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씀합니다.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 고후 4:6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처럼 우리의 마음에도 이미 비추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이 빛을 향해 돌아선 사람이고, 이 빛을 받아들여 빛 안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하나님을 친밀하게 바라보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번 주부터 사순절기가 시작됩니다. 사순절의 산을 오르게 될 우리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빛나던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그 빛이 환하고 따뜻하게 빛나기를 소망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말씀이 내 안에 있을 곳이 없어 어둠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② 우리에게 오신 말씀을 경청하며 나의 내면이 밝아오고 있는가?
번호 | 다운로드 | 제목 | Language | 작성일 |
412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6주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
KOR | 2024.11.17 |
411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5주 나를 넘어 하나님께로
|
KOR | 2024.11.10 |
410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4주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
KOR | 2024.11.02 |
409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3주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
KOR | 2024.10.26 |
408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2주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
|
KOR | 2024.10.19 |
407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1주 하나님만이 오직 최선이시다
|
KOR | 2024.10.12 |
406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0주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
KOR | 2024.10.05 |
405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8주 땅의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
|
KOR | 2024.09.21 |
404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7주 내 언어의 원천(源泉) 마음
|
KOR | 2024.09.14 |
403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6주 복 있는 눈, 복 있는 귀
|
KOR | 2024.09.07 |
402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5주 장로들의 전통과 하나님 말씀
|
KOR | 2024.09.01 |
401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4주 제2의 본성을 쇄신하라
|
KOR | 2024.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