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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 후 제4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1-27 11:53
조회
295
주현 후 제4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신 18:15-20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16 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1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19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 을 받을 것이요 20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 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응송 | 시 111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서신 | 고전 8:1-13
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주시느니라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 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 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 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 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 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 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 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복음 | 막 1:21-28
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 가가르치시매 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 오는지라 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 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 묵상 | meditatio
① 신 18:15, 18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일 으켜 당신의 말씀을 그 입에 두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막 1:22, 27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의 가르침이 항상 권위가 있었 던 이유를 마가는 어디에서 찾고 있습니까?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
③ 고전 8:6을 묵상하십시오. 만물은 누구로부터 났으며 누구로부터 말 미암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먼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있던 출애굽 2세대들에게, 그들 형제 중에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실 것을 예고하시면서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신 18:15) 라고 당부하십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구약시대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 하고 외칠 때, 오늘 신명기의 말씀을 떠올렸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의 입으로 전하게 하신 이 예언은 궁극적으로,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로고스이신 예수 그리스도'(요 1:14)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서에서도 보듯이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말씀으로 가르치실 때,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막 1:27)라며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신명기가 전해주는 구약의 말씀과 마가가 전하는 복음서의 말씀은 잘 연결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조금 더 심층적으로 보겠습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예수님의 말씀이 불편하게 느껴져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② 예수님 말씀의 권위를 알아, 그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신 18:15-20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16 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1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19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 을 받을 것이요 20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 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응송 | 시 111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서신 | 고전 8:1-13
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주시느니라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 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 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 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 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 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 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 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복음 | 막 1:21-28
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 가가르치시매 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 오는지라 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 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 묵상 | meditatio
① 신 18:15, 18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일 으켜 당신의 말씀을 그 입에 두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막 1:22, 27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의 가르침이 항상 권위가 있었 던 이유를 마가는 어디에서 찾고 있습니까?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
③ 고전 8:6을 묵상하십시오. 만물은 누구로부터 났으며 누구로부터 말 미암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기독교인들이 가장 애정을 가지고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가 '로고스'라는 단어입니다. 대개의 기독교인들이 이 단어에 애정을 느끼는 이유는 로고스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문학적 측면에서의 로고스(logos)는 '이성'이라는 의미로 더 많이 이해되고 있고, '감정', '연민'을 뜻하는 '파토스(pathos)'와 상대적 개념으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이 로고스라는 단어가 그리스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기원 전 8세기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Odysseia)'와 헤시오도스의 작품 '신통기(Theogony)'에서입니다. 그 때는 이 단어가 '이성'이라는 의미가 아닌 '유혹적인 언어', '미숙한 젊은이의 언어', 혹은 '은폐된 언어'라는 의미로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신화의 시대에서 철학의 시대로 넘어가던 기원 전 6세기경,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에 의해 새로운 차원을 맞이하는데, 헤라클레이토스는 로고스를 합리적 언어 내지 논리적 추론을 의미하는 단어로 상승시켰고, 심지어 신의 언어이자 진리라고도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플라톤은 이 단어를 이어받아 철학자들의 언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단어인데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전혀 달라지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로고스를 하나님의 언어 즉 '말씀'으로 이해하고, 말씀을 신앙의 푯대로 삼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시고, 말씀을 통해 당신의 생각을 전달하시는데,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고, 신약시대에는 말씀에 육신을 입혀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기에, 육신으로 오신 로고스이신 예수님은 그 말씀에 권위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성서일과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즉 '로고스의 하나님'과 만나게 해줍니다.먼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있던 출애굽 2세대들에게, 그들 형제 중에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실 것을 예고하시면서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신 18:15) 라고 당부하십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구약시대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 하고 외칠 때, 오늘 신명기의 말씀을 떠올렸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의 입으로 전하게 하신 이 예언은 궁극적으로,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로고스이신 예수 그리스도'(요 1:14)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서에서도 보듯이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말씀으로 가르치실 때,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막 1:27)라며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신명기가 전해주는 구약의 말씀과 마가가 전하는 복음서의 말씀은 잘 연결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조금 더 심층적으로 보겠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 신 18:15
이제 곧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될 출애굽 2세대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친히 함께해 오신 이스라엘의 역사와 말씀과 율법을 새겨줘야 할 필요를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통해 말씀을 대언하게 하시고, 그것을 기록해 놓은 책이 바로 신명기입니다. 신명기에는 모두 네 종류의 지도자가 등장합니다. 재판장(16:18-20), 왕(17:15-20), 제사장(18:1-5), 선지자(18:15-20) 등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이 네 지도자 중에 선지자 제도에 관한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모세 사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들이 일어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감당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 신 18:18b-19
이스라엘을 이끄는 최종 권위는 오직 하나님께서 모세의 입에 담아두시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하게 하실 토라에 있었습니다. 토라 즉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의 입으로 선포되고, 백성들은 그 말씀을 듣고, 말씀에 순종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 사회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말씀이 우리가 죄의 길, 사망의 길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온전함에 참여할 수 있는 내적 능력을 길러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실 것에 대한 예언은 일차적으로는 선지자 제도에 관한 약속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마치 모세가 이스라엘의 선지자요(신 34:10), 제사장이요(출 24:6-8), 왕이었던 것처럼(신 33:5), 온 인류의 유일한 대제사장이시며(히 5:5-10), 영원한 왕이시고(마 27:11), 참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혈통 중에서 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신약시대 초기의 정신적 불안정과 무질서를 생각해볼 때, 당시 이러한 선지자에 대한 기다림이 얼마나 간절했을 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선지자로 사명을 받은 것도 이스라엘의 그러한 기다림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 라고 외치는 요한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 신명기에서의 모세의 예언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광야로 요한을 찾아가 "네가 그 선지자냐"(요 1:21)라며 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예언이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음을 우리는 제자들과 사도들의 증언을 통해 봅니다. 요 1:45절에서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고 증언하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표적을 목격한 이들은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요 6:14)라고 고백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데반은 순교 직전에 예수님을 '약속된 메시아'(행 7:37, 38)라고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모세가 예언한 바로 그 선지자이신 예수님께서 공생애 중에 하신 일이 무엇이었는지 볼 필요가 있습니다.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 막 1:21, 22
마가는 자신의 복음서 안에서 예수께서 "가르치셨다"는 사실을 매우 강조합니다. 마가복음 안에는 '가르치다'는 동사 '디다스코(διδάσω)'가 17회 나오고, 예수님을 선생으로 표현한 '디다스칼로스(διδάσκλος)'도 11회나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가는 '가르치는 분'으로서의 예수님 사역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모세를 통해 전승된 토라와 예언서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회당은 토라를 교육하는 곳이었고, 회당 예배에서는 토라와 예언서의 낭독과 설교가 행해졌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회당에서 행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이, 당시 율법학자인 서기관들과 달리 권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전혀 직제(職制)를 받지 않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서기관들과 달리 권위로 가득 차 있는 것에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마틴 루터는 본문의 '권위'라는 단어를 독일어 '볼마스트(Vollmacht)'로 번역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힘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 말씀의 권위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권위였을까요? 마가복음의 첫 장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 1:1)는 선언과 함께 시작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이 곧 복음의 시작이라는 선언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생애가 끝나는 순간에도 같은 고백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셨을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찢어져 둘이 되는 것을 보고 예수를 향해 서 있던 백부장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막 15:39). 결국 마가복음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신앙고백을 처음과 마지막에 배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복음서를 기록한 마가의 의도는 분명해 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이 복음의 시작이자 끝임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마다 드러났던 그 권위의 출처가 어디인지도 분명해졌습니다. 그것은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기에, 육신으로 오신 로고스이신 예수님은 그 말씀에 권위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로고스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말의 표준으로 삼은 사람들입니다. 즉 로고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언어생활의 기초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아하고 교양 있는 언어생활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배인 언어생활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어의 차원이기보다는 지향의 차원이고, 표현의 차원이기보다는 영성(靈性)의 차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권위는 비단 말씀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회당에 있던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과정에서도 예수님의 권위가 여지없이 드러납니다.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 막 1:23
마가는 '더러운 귀신'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더러운 영(靈, pneuma)'이라고 해야 합니다. 본디 이 '더러운 영'의 아비인 사탄은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총애하셨던 천사장으로서 '아침의 아들 계명성'(사 14:12)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는 본디 거룩하고 완전하였으며, 지혜롭고 아름다운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자신의 지위와 위치가 하나님의 은총이었음을 망각한 사탄은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을 시기하고 질투하기 시작했고, 하나님을 넘어서려는 망상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사야서에 그의 이런 독백이 소개됩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자와 같아지리라"(사 14:13, 14). 사탄의 이 망상어린 독백을 읽으면서 우리는 마음 한 켠 섬뜩함을 느낍니다. 부패된 그의 본성은 가장 신성하고 고결했던 만큼 오히려 추하고 더러워졌으며 악질적이 되었습니다. 그가 하는 짓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일이었고 자신에게 부여된 능력을 악용하여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고, 사람을 죽음으로 끌어들이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 사탄의 일에 쓰임 받는 존재가 바로 오늘 복음서에 언급된 '더러운 영'입니다. 그들은 먼저 사람의 내적 기능인 상상과 관념, 감성과 지성에 개입해 강력한 영향을 끼칩니다. 그 결과로 사람들은 의심과 분노에 사로잡히고, 성냄과 미움의 감정에 사로잡혀서 점차 파멸로 치닫고 맙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서의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은 어쩌면 한 개인이 아닌, 당시 대부분 사람들의 실상일 수도 있고, 오늘날 우리 모두의 실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우리의 실상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내면으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예수님 앞에서 나의 내면을 감추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입니다. 그런데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은 큰 소리로 주님께 이렇게 외칩니다.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 막 1:24
더러운 영은 주님의 권위 있는 말씀 앞에서 불편한 심기를 적나라하게 노출시킵니다.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이 말을 공동번역 성경은 "어찌하여 우리를 간섭하시려는 것입니까?"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은 어떤 방향으로든지 그 영이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관심하던지, 말씀에 대해 이를 갈던지, 아니면 말씀에 찔려 변화 되던지 입니다. 만약 우리가 더러운 영의 지배를 받고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불편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러운 영처럼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막 1:24)라고 반응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 막 1:25 입 다물고 이 사람에게서 나가거라 | 막 1:25 공동번역
주님께서 더러운 영에게 입을 다물게 하시는 것은,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진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주님을 안다'고 말하고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고백하면서도 그러나 주님께 자신을 내어드리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멸하러 왔다'고 불평하고, '우리를 간섭하려 한다'며 불편해 합니다. 그에게 주님은 그저 자기 왕국을 파괴하는 적으로 느껴질 뿐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는 그의 말은 '그래서 난 당신이 불편하다'는 우회적인 표현일 뿐입니다. 마침내 더러운 귀신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괴성과 함께 뛰쳐나옵니다(막 1:16). 그리고 사람들은 놀라고 감동해서 이렇게 말합니다.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 막 1:27
실로 예수님의 말씀은 진부하고 장황했던 당시의 랍비들과는 판이하게 새롭고 신선한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여기에서 그들이 말한 '새 교훈'은 단지 '시간상의 새로움'이 아니라, '질적인 새로움'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질적으로 새로운 주님의 권위 있는 새 교훈이 매일매일 새롭게 내 심장을 두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자세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의 권위를 알기는 알지만, 그 권위와 새로움이 불편한 내가 아닌,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만이 내 입에 늘 있게 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의 권위에 대한 순종과 실천 없이 내 욕망에 겨워 하나님을 찾으려 할 때, 주님은 더러운 영에게 그러셨듯이 우리에게도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꾸짖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 고전 8:6
이 말씀을 통해 느껴지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완전한 일치입니다. 그리고 그 일치는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막 1:24). 이렇게 말하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예수님과 상관없이 살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판단에 겨워 사는 사람이고, 자기 판단으로 세상 전체를 규정하며 그 안에서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 로고스이신 예수님과의 참된 관계 속에서 예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은 모두 성부 하나님과의 일치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 14:10).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이 모두 아버지이신 하나님과의 친숙한 교제에서 나온 것이듯, 우리의 말과 행동 역시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내면화시키는 영적생활에서 나오는 것이기를 바랍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 지니라!" 로고스이신 주님과 참된 교제를 일구시고, 로고스이신 주님의 말씀으로 매일 매 순간 새로이 다듬어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예수님의 말씀이 불편하게 느껴져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② 예수님 말씀의 권위를 알아, 그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첨부파일 : 주현-후-제4주-너희는-그의-말을-들을지니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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