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대림절 제2주 하나님을 보라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사 40:1-11
1 너희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 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 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 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 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 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 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응송 | 시 85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 에 머무르리이다
서신 | 벧후 3:8-15a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 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 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 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 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복음 | 막 1:1-8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 파하니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 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6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7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 묵상 | meditatio
① 사 40:6-8을 묵상하십시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는 말씀은 신자 들에게 궁극적으로 무엇을 요청하고 있습니까?
② 막 1:3-5을 묵상하십시오.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는 말씀에 대한 세례 요한의 화답은 무엇이었습니까?
③ 벧후 3:11b-12a을 묵상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땅한 자세는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하나님을 보라
대림절 초에 두 번째 불을 밝혔습니다. 대림절 초를 바라보며 우리 마음 중심의 복음의 빛도 한층 밝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일생 동안 여러 감정 속에서 살아갑니다. 기쁨과 평안, 즐거움과 행복의 감정뿐 아니라, 슬픔과 우울, 괴로움과 불행의 어두운 감정도 끌어안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심지어 자녀로까지 삼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기쁨과 행복과 평안보다 괴로움과 불행과 우울 속에 살아갑니다. 때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는 사도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자기 마음을 괴롭히는 어두운 감정들을 숨기고 밝은 면만 보이며 살아가는 우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결국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한 채, 무기력과 불안과 우울감 속에서 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사람에게 받는 위로라는 것이 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는 위로가 진정한 것이 될 수 있으려면 그 위로가 말씀으로부터 나온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말씀을 통해 깨달을 때 위로가 시작됩니다. 그 사실을 우리는 오늘 구약의 말씀인 이사야서를 읽으면서 더 깊이 절감하게 되는데, 이사야서는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단락인 1장-39장은 기원전 8세기의 선지자인 제1 이사야의 사역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이 예언의 주된 내용을 이룹니다. 둘째 단락인 40장-55장은 기원전 5세기 제2 이사야의 사역으로, 바벨론 포로민들에게 전해진 유다와 예루살렘의 회복이 예언의 주된 내용을 이루고, 셋째 단락인 56장-66장은 포로기 이후 제 3이사야의 사역으로,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에게 회개에의 결단을 촉구하는 것이 예언의 내용입니다. 그 중에서 오늘 말씀인 사 40:1-11절은 둘째 단락인 이사야 40장-55장의 서론에 해당한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바로 앞에 있는 이사야 39장은 유다왕실이 포로로 끌려갈 것을 예언하면서 끝이 나는데, 39장과 40장의 사이에는 많은 세월의 격차가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 이후 요시아의 개혁이 있었고, 계속된 반역의 역사 끝에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패망하고, 다시 세월이 흘러 어느덧 포로 귀환이 임박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 포로 귀환 전후의 상황을 다룬 신탁입니다. 이때 제2 이사야의 예언은 네 단락으로 이루어지는데, 첫째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1-2절)이고, 둘째는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3-5절), 셋째는 "여호와의 말씀을 외치라"(6-8절), 넷째는 "너희 하나님을 보라"(9-11절)입니다. 다윗과 솔로몬 왕조가 무너진 지 이미 오래고, 성전은 짓밟히고 파괴된 상태로 방치되었으며, 백성은 바벨론의 식민통치를 받고 있던 이 때, 제2 이사야 선지자가가 들려주는 하나님 말씀은 그들에게 솜이불 같은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너희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 사 40:1-2a
그런데 사실 이 위로가 쉽지 않았습니다. 현재 바벨론에서 유배중인 유대인 포로들과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고향의 유대인들에게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희망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현실은 '희망 없음'이었습니다. '위로'라는 것이 단지 수사적인 선포로만 멈추지 않고, 포로생활에 피폐한 마음을 만져주는 것이어야 하는데, 아직 그들의 마음에 닿도록 위로될 마땅한 현실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현실은 가까운데, 하나님 말씀이 너무 멀리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믿지만, 현실은 너무 달라서 받아들이기 힘든 순간이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갈등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당신 백성을 위로하라고, 마음에 닿도록 말씀을 외치라고 사명을 주십니다. 그가 전해야 할 말씀의 내용은 이랬습니다.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 사 40:2b
우선 우리가 이들에게 위로가 선포되던 시점(時點)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노역의 때가 끝났고" 라는 말씀은 이들에게 위로가 선포되던 시점이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른 후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전하시는 위로는 결코 값싼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백성들이 죄악을 범했을 때, 사랑을 이유로 그 죄를 간과해주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 죄악' 즉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으로(הוהי דימ 미야드 예호와)' 벌을 갑절로 받게 하셨습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충분히 벌 준 다음에 안아주고 마음에 닿도록 위로하며 교훈을 주듯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벌을 주신 후, 다시 위로하시고 교훈을 주시는 것입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사 40:3a)가 전해온 그 교훈의 내용은 이랬습니다.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 사 40:3b-5
바벨론에서 팔레스티나로 귀환하는 길은 사막과 골짜기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험한 길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사막과 골짜기를 통과할 길을 닦으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정작 닦아야 할 '길'은 실제 도로를 닦는 토목공사가 아니라 내면의 공사 즉 마음의 길을 닦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라는 말씀, 그리고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라는 말씀이 그런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실제 당시 유대인들은 오랜 기간의 우상숭배와 그로 인한 유배생활을 감내하는 동안 하나님을 향한 마음들이 마치 사막처럼 마르고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닦아 '주님 오실 길'을 내고, 뿐만 아니라 그 길을 닦고 닦아 평탄케 해야만, 비로소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소통이 활짝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도 이 길이 잘 닦여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대로가 평탄하게 닦여있어서 하나님께서 언제든 나에게 오실 수 있어야 합니다. 헨리 블랙가비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에서, 하나님은 사람들을 당신과의 사랑의 관계로 이끄시기 위해 당신을 계시하신다며 이렇게 말합니다.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한 우리의 목표를 성취하는 것을 도와주시려고 주위에서 기다리시지 않습니다. 당신의 목표를 우리를 통해 성취하려고 오십니다. 또한 그분은 당신의 방법을 취하십니다. 하나님은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사 55: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방법으로 일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방법으로 일하시길 원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방법으로 당신의 목표를 이루려고 우리에게 오실 때,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들이 우리 안에서 차질 없이 진행되게 하려면, 나의 내면에 '하나님의 대로'가 닦여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우리 신앙도 성숙해질 뿐 아니라 우리를 통해 일하시려는 하나님의 일도 사람이 아닌 당신 뜻대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수신한 선지자는 제2 이사야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제1 이사야와 다른 사람이고, 오늘 말씀인 이사야 40장에서 처음 등장하는 선지자입니다. 그런 그로서 아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당혹스러워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처절하게 되묻습니다.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 사 40:6a
선지자의 영적 상황이란 것이 때때로 이렇습니다. 외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외칠 말씀을 모릅니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들려왔습니다.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 사 40:6b-7
저는 이사야 선지자가 인생을 꿰뚫어보았다고 봅니다. 우리는 모두 잠시 이 세상에 왔다가 갈 사람들입니다.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예외가 없습니다. 너나없이 우리는 다 풀이며 꽃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 생명이라는 게 기껏해야 한철 피었다가 지는 것입니다. 이런 삶의 유한성을 자각하고 현재를 살아야 하는데, 그걸 깨닫지 못해 삶이 자꾸만 비루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오늘 말씀에서 풀꽃 같은 내 존재와 전혀 다른 영원한 힘이 있다고 소개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 사 40:8
그래서 이사야는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며 물러섰다가 말씀을 붙들고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이렇게 외칩니다.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 사 40:9
이 외침에서의 포인트는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입니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이 위축되어 있습니다. 그들을 위축시키는 존재는 바로 바벨론 사람들입니다. 피지배자라는 신분이 그렇습니다. 항상 자신을 패배자로 인식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저들은 강하게만 느껴집니다. 바벨로니아 제국의 위용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고, 바벨로니아 사람들은 두려울 만큼 강직하고 용맹했습니다. 따라서 바벨론의 서슬 앞에서 몸을 낮추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나라를 떠나는 것도 주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사람들의 시선을 당신께 두도록 하십니다. 시선을 하나님께 두고 다시 보면 '풀꽃 같은 연약함'이란 게 비단 자신들만 처해있는 현실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저 바벨론 제국의 권력자들 역시 곧 시들고 말 풀이나 꽃 같은 존재들이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그 사실을 외침으로써 탈 바벨론 앞에서 주저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득하게 하십니다. 더 나아가 인간이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피조물인 우리의 실존(實存)을 넘어서며, 동시에 그 실존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참으로 위로 받기 위해서는, 또 참으로 힘을 내기 위해서는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보는 현실'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멜랑콜리아'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리스어 '멜라스(μέλας)'와 '콜레(χολη)'의 합성어로 '검은 담즙'을 의미합니다. 이 멜랑콜리아를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검은 담즙이 지나치게 분비되어 발생하는 현상으로 진단했고, 이 체액이 영혼에 우울증을 일으킨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멜랑콜리아의 기질을 가진 사람을 '멜랑콜리커(Melancholiker)' 혹은 '멜랑콜리언(Melancholian)'이라고 부르는데, 김선종 목사님(정읍중앙교회)은 자신의 글에서 구약시대의 대표적인 멜랑콜리커로 엘리야, 요나, 욥 등을 꼽았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지만 아합과 이세벨에게 박해를 당할 때, 차라리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애원합니다(왕상 19:4). 요나 역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지만 자신의 뜻과 다른 하나님의 뜻에 저항하다가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욘 4:3, 8)라며 우울해합니다. 반면에 욥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여기고, "산다는 것이 이렇게 괴로우니"(욥 10:1 표준 새 번역)라며 괴로워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욥 1:1, 8;2:3)라는 칭찬을 들은 사람임에도,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벌을 받는다는 자신의 신앙관이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은 것이 우울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세 사람 모두 '하나님을 보는 현실' 안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우울증을 위로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엘리야는 세미한 음성으로 찾아오신(왕상 19:12) 하나님을 만나고서야 비로소 힘을 내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합니다. 욥 역시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길고 긴 대화를 나누어주신 끝에(욥 38:1-41:34),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라며 길었던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납니다. 오늘 이사야는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을 보라", "우리에게 오시는 하나님을 보라"고 그는 선포합니다. 이 선포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기에 우리 역시 가볍게 듣지 말아야 합니다. 교부들에게 있어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영적 인식'을 의미했습니다. 그들은 영적 인식을 심화시키며 궁극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앎을 지향했습니다. 우리 역시 영적 인식을 심화시켜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라보아 아는 현실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말씀합니다.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 사 40:10, 11
우리는 이 말씀에서 강하신 하나님도 보지만,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신 하나님도 봅니다. 대림절은 강한 자로 임하시는 하나님, 어머니 품처럼 따뜻하신 하나님을 기다리며 길을 닦는 절기입니다. 그러면 길을 닦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오늘 복음서에서 마가는 복음의 시작을 위해 길을 닦는 세례 요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 막 1:1, 2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의(막 1:3a) 세례 요한이 오늘 구약성경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선포한 말씀대로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기 위해'(막 1:3b) 등장합니다. 요한은 세 가지 방법으로 주의 길을 준비했습니다. 첫째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막 1:4).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외침이었습니다. 둘째는,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 '삶으로서'였습니다(막 1:6). 그는 편안한 삶, 안정된 거주지, 입을 즐겁게 하는 음식보다 주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것을 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셋째는, 자기가 행하던 물로 베푸는 세례보다, 주님께서 베푸시는 성령세례를 더 중요하게 받아들이도록 힘쓰는 것이었습니다(막 1:8). 복음의 시작이 예수 그리스도시라면, 복음을 맞이하는 자세는 회개하는 것이고, 복음의 완성은 성령 세례를 통해서입니다. 우리 역시 마음을 다해 온전하게 회개하고, 물세례에 만족하지 않고 성령세례를 받으며, 성령께서 맺게 하시는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곧 내면의 길을 닦는 우리 자세이겠습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베드로는 길을 닦는 성도로서 우리 자세가 어떠해야 할지를 이렇게 일러줍니다.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 벧후 3:11b-12a
거룩함은 세상과 구별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고, 경건함은 주님을 닮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는 성도만이 거룩하고 경건한 모습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는 다들 조금씩 지친 채 살아갑니다. 만물의 피곤함을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피곤해 보입니다. 위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위로할 힘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선지자의 입을 통해 말씀해 주십니다.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 사 40:9
회개하는 시선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거룩하고 경건한 성도만이 하나님을 봅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늘의 위로로 마음이 평화로운 날들이 지속되기를 기도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시선이 밖을 배회하며 허황된 기대로 채워가고 있지 않은가?
② 마음과 시선이 하나님을 향하는 영적 인식을 이루고 있는가?
번호 | 다운로드 | 제목 | Language | 작성일 |
433 | 다운로드 |
New 부활주일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
KOR | 2025.04.19 |
432 | 다운로드 |
사순절 마지막 주(종려주일) 경청이 순종을 낳는다
|
KOR | 2025.04.12 |
431 | 다운로드 |
사순절 제5주 유다의 욕망과 마리아의 헌신
|
KOR | 2025.04.05 |
430 | 다운로드 |
사순절 제4주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 가니라
|
KOR | 2025.04.01 |
429 | 다운로드 |
사순절 제3주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
KOR | 2025.03.22 |
428 | 다운로드 |
사순절 제1주 유혹이 나을 찾아올 때
|
KOR | 2025.03.08 |
427 | 다운로드 |
주현 후 마지막 주 하나님의 빛으로 이루는 파스카
|
KOR | 2025.03.01 |
426 | 다운로드 |
주현 후 제7주 상한 감정에 직면할 때
|
KOR | 2025.02.22 |
425 | 다운로드 |
주현 후 제6주 마음을 가꾸는 사람
|
KOR | 2025.02.15 |
424 | 다운로드 |
주현 후 제5주 하나님과 마주친 사람들
|
KOR | 2025.02.15 |
423 | 다운로드 |
주현 후 제4주 영적 어른
|
KOR | 2025.02.01 |
422 | 다운로드 |
주현 후 제3주 말씀, 내 존재의 고향
|
KOR | 2025.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