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4주 지체를 의의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 읽 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창 22:1-14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 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이르시되네아들네사랑하는독자이삭을데리고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 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4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 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 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 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응송 | 시 13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서신 | 롬 6:12-23
12 그러므로너희는죄가너희죽을몸을지배하지못하게하여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 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 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 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 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복음 | 마 10:40-42
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 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묵 상 | meditatio
1. 창 22:3을 묵상하십시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아브라함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2. 롬 6:19-20을 묵상하십시오. 바울은 우리 지체를 '무엇'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고 합니까?
3. 마 10:42을 묵상하십시오. 우리 지체를 의의 종으로 내주는 것 가운 데 하나를 주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기 도|Oratio |5-10분
■ 묵상 나눔
지체를 의의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십시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보면 그가 쓴 '간(肝)'이라는 시가 소개됩니다.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사스 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肝)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는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
1947년 12월28일 시인 정지용은 윤동주의 시를 소개하는 서문에서 "나 는 이 붓을 들어 시인 윤동주의 유고(遺稿)에 분향하노라"며 노자의 오천 언(五千言)을 예로 들어 이렇게 시를 해석했습니다. "노자(老子) 오천언(五 千言)에 '허기심(虛基心) 실기복(實基腹) 약기지(弱基志) 강기골(强基骨)'이 라는 구(句)가 있다. 청년 윤동주는 의지가 약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서 정시에 우수한 것이겠고, 그러나 뼈가 강하였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일적 (日賊)에게 살을 내던지고 뼈를 차지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가 예로 든 ' 노자의 오천언(五千言)'이란 노자의 실용주의 3장을 말하는 것인데, 인터 넷에서 그 해석을 찾아봤더니 뜻이 이랬습니다. '虛其心(허기심)'은 '마음은 비운다'는 뜻이고, '實其腹(실기복)'은 '배를 튼튼하게 한다'는 뜻이고, '弱 其志(약기지)'는 '뜻은 약하게 한다'는 뜻이고 '强其骨(강기골)'은 '뼈는 튼 튼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시인 정지용은 윤동주의 이 시에서 " 본디 의지가 약했던 윤동주가 일본에게 자신의 '약한 의지' 즉 '살'을 내던 지고, 대신 '뼈' 즉 '나라'를 차지한 것이 아니었던가"라며 무시무시한 고독 에서 죽은 그를 애통해 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내던지고, 무엇을 차지하며 살아가는 것일까요? 우리는 지난 주 말씀에서 아브라함과 하 갈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육의 목표를 내던져 영의 목표를 차지했고, 하갈은 영의 눈이 뜨였을 때 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 울은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 6:11)라고 말씀했습니다. 바울의 이 말씀 역시 나약한 육신의 의지를 내던지고, 영에 속한 삶을 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주 말씀에서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아버린 것은 잘한 일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육의 목적을 가지고 붙들고 있던 그 손을 놓았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처음에 언약하신 대로 아브라함과 자 녀들을 이끌어 가셨습니다. 그 첫 증거가 바로 하갈에게 보여주신 그 샘이 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다시 한 번 포기 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 창 22:1, 2
이 말씀을 어떻게 보십니까? 처음에 이스마엘을 내보내라는 말씀은 그 래도 순종해야 할 것 같았었습니다. 어차피 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자 식도 아니었고, 자기 마음대로 낳은 불순종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그러 나 그렇다고 이스마엘을 버리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창세 기 저자는 그 때의 아브라함의 심경에 대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창 21:11)라고 소개했었습니다. 어찌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그래도 자기 아들 인데 말이지요. 그런데 이번에 하나님께서 포기하라고 말씀하시는 이삭은 더더욱 포기할 수 없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웃음이고, 하나 님이 약속하신 바로 그 아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신년 축제의 첫날에 이삭 의 탄생 이야기를 읽습니다. 신년 축제에 그들이 이삭의 탄생 이야기를 읽 는 이유는 새해에 하나님께서 웃음을 주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그가 웃다'라는 뜻입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얻은 아들', '아브라함을 웃 게끔 하는 아들' 그가 이삭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그것도 번제로 바치 라고 하십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라는 표현은 지금의 하 나님의 요구가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데 본문에서 이상한 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창세기 저자도 굉장히 담담하게 이후로 전개되 는 상황을 전달해 줍니다.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 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 창 22:3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마치 익숙한 일상인 것처럼 나귀 에 안장을 지우고 이삭과 함께 떠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도, 아내 사라를 향해서도, 그리고 자기 아들 이삭을 향해서도, 그는 아무 말을 하지 않습 니다. 그리고 그 침묵으로 인해 우리는 더더욱 아브라함의 심정을 헤아려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 창 22:4
사흘 길을 침묵으로 걷던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봅 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자기 아들을 죽여야 하는 곳입니다. 마침내 아 브라함은 종들을 산 아래에 머물게 하고, 번제에 쓸 나무를 아들 이삭에게 짊어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함께 걸어갑니다. 그리고 이 때, 이들 간에 침묵이 깨어집니다. 아들 이삭이 "내 아버지여"(창 22:7a) 하고 부르자, 아버지가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하고 대답합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창 22:7b) 하고 아들이 묻자, 아버지 아브라함은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8) 라고 대답합니다. 아브라함은 정말 그렇게 알고 믿었을까요? 자기가 낳은 아들 이스마엘을 버리고 그가 지금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아브라함이, 다시 이삭을 죽이기 위해 모리아 산을 오르며 하는 이 대화는 어쩌면 엽기적이기조차 합니다. 그런데 이후 로 벌어지는 장면을 따라가 보면 결국 이 일은 아브라함의 말대로 되어 집니다. 하나님은 숫양 한 마리를 준비해 놓으셨고, 아브라함은 그 양을 잡아 번제를 드립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곳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붙 였습니다.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 창 22:14
그러면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서 정말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셨던 것 일까요?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의 미래는 오직 이삭 에게 달려있었습니다.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땅의 티끌처럼 늘어나게 해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도 이삭이 없어지면 의미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결 국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쳤다는 것은 자기 미래를 포기했다는 뜻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기의 미래인 이스마엘을 포기했던 아브라 함이,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자기의 미래를 포기합니다. 그러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이 포기를 과연 진심으로 공감하고 있는 것일까요? 어쩌면 이 이야기가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크게 마음 두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그렇다면오늘이말씀은저와여러분에게과연어떤의미가있 는것일까요?그런데그질문에앞서우리가먼저생각해야할것은아브 라함과 이삭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표상하는 건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님의 마음이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셔서 아브라함이 걸어갔던 그 길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걸으실 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보여준 사흘간의 담담한 행동으로 인해 우리가 아브라함의 속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했듯이, 예수님께서 당하신 사흘간의 고난이 성경에 하도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속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도 감정이 있 으십니다. 그래서 기뻐도 하시고, 때로는 슬퍼도 하십니다. 그런 하나님께 서 당신의 슬픔을 누르시고 당신의 외아들을 십자가에서 죽이셨습니다. 아 브라함에게 외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요구하셨던 하나님은 훗날 자기 자신 에게 그 요구를 하시고, 스스로 요구를 실행에 옮기셨습니다. 그 희생자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분이 모리아에서 죽으셨습니다. 칼을 이삭의 목 에 꽂으려는 결정적인 순간에 아브라함의 동작을 멈추게 하셨던 하나님께 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마 27:46) 하고 울부짖던" 당신의 외아들은 침묵 속에 내버려 두셨습니다. 이삭은 하 나님의 은총으로 살아났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침묵으로 죽으셨습니다. 그 죽음이 우리의 미래가 된 것입니다. 그것이 궁극적인 의미에서 우리 모 두를 위한 '여호와 이레'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윤동주의 시를 조금 더 따라가 보겠습니다. 윤동주는 독수리에게 "와서 뜯어 먹어라"며 자기 간을 허락합니다.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이것이 독수리에게 자기 간을 내주는 이유인데, 정지용의 해석에 따르면 "본디 의지가 약했던 윤동주가 일본에게 자신의 '약한 의지' 즉 '살'을 내던지고, 대신 '뼈' 즉 '나라'를 차 지한 것"이었다는 겁니다. 그런 윤동주였기에 마침내 이런 시를 남깁니다.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십자가 -
그래서 그는 괴로운 사나이였지만 그 영혼은 예수처럼 행복했습니다. 우리 는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서신서에서 바울 사도는 말씀합니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 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너희가 죄의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 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 롬 6:19, 20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참 따뜻함이 깃든 인간 이해입니다. 바울은 우리 연약함을 이해해 줍니다. 그럼에도 당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과거 엔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의(義) 의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는 것입니다. 아비로서 아브라함의 단 한 번의 순종과 이삭을 대신해 죽은 숫양의 희생이 장차 이스라엘 미래가 되어주었듯이, 우리 죽음을 대신해 죽으신 예수님의 희생이 우리 모두의 미래를 열어주었듯이, 저도 여러분도 우리 몸을 의(義)의 종으로 내어줌으 로서 이웃의 미래를 열어주는 거룩함에 이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살과 피를 마주 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대신해 죽으신 예수님의 살과 피가 우리 모두의 생명이 되어주었듯이, 행복한 예수 그리 스도를 내 안에 모시고, 그 분의 살과 피로 세상을 향해 흘려지는 우리 모 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관 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것입니다.
■ 실 천 | Praxio
1. 자신의 육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며 살고 있지 않은가?
2. 자신을 의(義)의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고 있는가?
번호 | 다운로드 | 제목 | Language | 작성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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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6주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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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1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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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5주 나를 넘어 하나님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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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4주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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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3주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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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2주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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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1주 하나님만이 오직 최선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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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1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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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0주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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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8주 땅의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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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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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7주 내 언어의 원천(源泉)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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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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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6주 복 있는 눈, 복 있는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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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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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5주 장로들의 전통과 하나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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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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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4주 제2의 본성을 쇄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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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