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17주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사람답게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출 16:2-15
2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 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 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 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5 여섯째 날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준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 의 갑절이 되리라 6 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 7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이기에 너희가 우리에게 대하여 원망하느냐 8 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 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 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9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함을 들으셨느니라 하라 10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 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13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 에 있더니 14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 이 있는지라 15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 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응송 | 시 105
너희는 그가 행하신 기적과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판단을 기억 할지어다
서신 | 빌 1:21-30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 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 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 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 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 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 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복음 | 마 20:1-16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 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 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 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 십 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 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 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 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리라
■ 묵상 | meditatio
① 출 16:4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만나를 비같이 내리신 최종적 인 목적은 무엇에 있었습니까?
② 마 20:11-14을 묵상하십시오. 아침부터 일한 사람들의 관점과 주인 의 관점은 어떻게 다릅니까?
③ 빌 1:29을 묵상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란 바울 의 설명에 따르면 어떠한 삶을 말합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사람답게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은 하나님 형상을 회복해 가는 여정이고, 하나님 형상을 회복하는 방법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모상(模像)대로 사람을 창조하셨기에(창 1:26).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 깨어진 우리 내면의 질서를 회복하는 길인데, 하나님은 그 길을 그리스도 안에 마련해 두셨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음으로써 하나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 여정이 바로 영성생활입니다. 또 영성생활은 인간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여정인 동시에,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구속 사역을 완성시키기 위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성생활은 그리스도인들을 궁극적으로 선교에로 이끌어 갑니다. 이러한 영적 여정을 주님께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두 계명으로 압축해주신 것입니다(마 22:37-40). 모든 신앙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영적 여정을 걸어 마침내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이르도록 부르심 즉 '소명(召命)'을 받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는 것이며, 그리스도께 소망을 둔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을 모방함으로서 참되고 온전한 사랑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성경에 기대어 기도하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이 바로 이러한 삶에 도달할 수 있는 첩경(捷徑)이기 때문입니다.사막 교부인 오리게네스에 따르면 사람은 첫 창조 때 하나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지만, 그러나 죄를 범한 이후 하나님 형상은 유보되어 있기에, 하나님을 닮으려는 진지한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 진지한 노력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성경말씀이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관상함으로써, 성경 안에 게시된 하나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서 실천하는 렉시도 디비나(Lectio Divina)의 4단계 영적 사다리 중 하나인 '관상(contemplatio)'은 '내적으로 하나님을 깊이 바라봄으로서' 하나님께 대한 직접적이고 완전한 인식을 얻는 노력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내적으로 주의 깊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현실적으로 도시에서 분주히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그 분주함 속에서도 따로 시간과 장소를 분리해 하나님을 바라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오늘 성서일과는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광야의 배고픔에 시달리는 히브리들에게 하늘로부터 양식을 비 같이 내려주시는데, 그 때 그들은 만나의 은총만 경험한 것이 아니라 만나를 내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복음서의 말씀은 해질 무렵 포도원에서 벌어지는 포도원 주인과 품꾼들 사이의 대화를 보여줍니다. 그 대화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명료하게 드러나는데, 품꾼들의 능력이나 일한 시간이나 일의 양이 아니라 오로지 주인의 선한 뜻을 따라 품삯이 주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일상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뜻을 헤아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영적 태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서신서에 보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 1:27). 세속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생활하지 말고, '내적으로 하나님을 주의 깊게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뜻이겠습니다. 구약의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오늘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탈출한 후 미디안 광야로 나오는데, 그 과정이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애굽의 바로(파라오 Pharaoh) 왕에게 열 가지 재앙이 내리는가 하면, 모세가 지팡이를 홍해 위로 내밀자 바다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무사히 바다를 건너고 맹렬히 추격하던 애굽 군인들은 수장됩니다. 이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흥분하고 사기가 북돋아졌을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출애굽의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서서히 일상의 문제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식수는 물론이고 일상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부족했습니다. 그들이 어제까지 살아온 애굽의 삶과 모든 것이 달랐습니다. 고대 이집트는 나일강 유역의 넓은 경작지들이 있어서 농산물을 지중해 유역의 나라들에 팔아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비록 소수민족이긴 했지만 일상적인 생활에서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를 따라 광야생활을 시작하고 보니 양식, 물, 잠자리 등 일상 전체가 막막했습니다. 마침내 사람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이렇게 원망합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 출 16:3
그들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체면마저 잊은 채 불평을 입에 달고 있었습니다. 이때 모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광야를 횡단해야만 했습니다. 그 광야는 신 광야, 수르 광야였는데, 미디안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습니다. 전체적으로 시나이 반도라고 하는 이 광야를 횡단하는 일은 그 누구도 녹록치 않았습니다. 건강한 젊은 남자들도 걷기 힘든 길을 노인과 여자와 아이들이 함께 걷습니다. 광야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부족들도 그들에게 위협이 되었겠지만, 낮의 태양열과 밤의 추위도 그들에게는 결코 만만치 않은 위협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출발부터 서로 원망하다가는 가나안은 고사하고 광야에서 다 죽고말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과 고대 이스라엘의 모습이 사실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 출 16:4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라'고 하십니다. 무엇을 보라시는 겁니까?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시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 주목해서 보아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양식을 '비같이' 내리시는데, 백성들은 '일용할 만큼만' 거두라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의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사방에 '쌓인' 만나를 허겁지겁 욕심껏 거두지 않고, '일용할 만큼만' 거두는 것에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자기 욕망을 절제하는 훈련이기도 하고, 시선을 하늘로 향하게 하는 훈련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는 어떨까요?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만을 구하며 매일매일 하늘을 바라보는 기도인지, 아니면 쌓을 곳이 없도록 더 쌓아지기를 구하며 그것의 성취여부에 따라 불평과 감사가 교차되는 기도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야 하겠습니다. 이야기를 계속 따라가 보겠습니다.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 출 16:13-15
아침에 보니까 진 둘레에 이슬이 맺혀 있었는데, 그 이슬이 마르고 나니까 지면 가득 작고 둥근 서리 같은 게 보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게 무엇인지 몰라 서로가 "이게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시는 양식이다" 만나는 원래 가나안 지역의 사투리인 '만'이라는 단어에서 왔습니다. '만'이라는 단어의 뜻은 '무엇'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무엇이냐?" 하고 물었던, 그 물음이 그대로 만나의 이름이 된 겁니다. 만나는 요즘에도 시나이 반도 내륙 지방에서 발견되는데, 그곳 사람들은 지금도 그걸 '만'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렇게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의 은총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을 한결같이 아침마다 내려주시는 만나를 거두며 만나에 담긴 하나님의 은총을 가슴 가득 느꼈더라면 그들의 광야생활은 하루하루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그러나 그들은 만나와 메추라기는 보면서도, 그것을 내리시는 하나님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끝이 없는 불평과 원망들로 점철됩니다.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들은 그만 시험에 불합격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두 명을 제외하고 광야에서 다 죽고 맙니다. 어리석어서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서에서도 우리는 불평이 가득한 밤을 맞이하고 있는 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 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 마 20:8-12
해 저문 일터에서 주인이 품삯을 나누어주는데, 품삯을 나누어주는 기준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대개는 먼저 와서 일한 사람부터 품삯을 주는데, 주인은 맨 나중 온 사람부터 품삯을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품삯을 보니까, 주인은 늦게 온 품꾼들에게 매우 후하게 품삯을 주는 겁니다. 그냥 후한 것이 아니라 맨 나중에 온 사람들과 아침 일찍부터 포도원에 와서 일한 사람들에게 똑같은 일당을 계산해서 주는 겁니다. 당연히 아침부터 일했던 사람들이 주인을 향해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막판에 와서 겨우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저 사람들을 온종일 뙤약볕 아래 수고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느냐는 겁니다. 그런데 주인의 반응이 뜻밖이었습니다. 그는 매우 단호하게 이렇게 말합니다.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 마 20:13-15
여러분은 이 주인의 말이 공감이 되십니까? 주인의 이 마음을 이해하거나 공감하려면 시간을 되돌려 아침나절로 가봐야 합니다. 포도원 주인도 아침 일찍부터 장터에 나가 하루 한 데나리온의 일당을 약속하고 품꾼들을 고용합니다. 그런데 아침 9시경에 나가보니 그 때까지도 일을 찾지 못한 품꾼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그들도 고용해서 자기 포도원으로 들여보냅니다. 그리고 12시에도 3시에도 5시에도 장터에 나가보니 여전히 일감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그들에게 물어봅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마 20:6). 이내 가슴 아픈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마 20:7). 틀림없이 어딘가 결핍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고용해주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포도원 주인을 보십시오.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마 20:7). 우리 상식으로 이런 사람은 일을 시키면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 상식이 아닌 '복음'으로 보면 다릅니다. 복음의 관점에서 이 말씀을 성찰해 보면 하나님은 차별 없이 어느 누구에게나 평등한 은총을 내려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오후 5시까지 일을 찾지 못한 결함이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하나님의 은총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대개 '노력한 만큼 보상 받는 사회'를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정당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가 가지는 상식적인 정당함마저 넘어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이 가장 따뜻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려주신 만나와 메추라기였습니다. 그 만나를 먹었던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광야에서 끊임없이 모세와 아론을 향해 불평을 쉬지 않던 못난 사람들이었습니다(출 16:2, 3). 그러나 하나님은 놀랍게도 그들과 모세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시지 않았습니다. 모세에게도 똑같이 일용할 만큼의 만나를 거두게 하시고 원망을 일삼던 자들에게도 똑같이 일용할 만큼의 만나를 거두게 하십니다(출 16:4). 하나님의 상식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상식은 우리에게 은혜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복음서의 결론에서 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이와 같이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 | 마 20:16 공동번역
그리스도인이란 이 말씀에 아멘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실 우리 상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첫째는 첫째여야 하고, 꼴찌는 꼴찌여야 합니다. 그 상식이 뒤바뀌면 정의로운 사회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상식은 분명 우리 상식과 다르며, 천국은 우리 상식이 아닌 하나님의 상식 위에 세워지는 나라임을 주님은 오늘 비유를 통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고,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우리 모두는 원망이나 일삼던 광야의 이스라엘 같은 사람들이고, 저녁 무렵 가까스로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고 주님의 은총 때문에 삯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것도 주님의 은혜이고, 우리가 구원 받는 것도 주님의 은총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내가 모세라도 된 듯이 행동하고, 아침부터 포도밭에 나와 수고한 내 능력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나의 그 어떤 지혜도 헌신도 감히 주님께 내어놓을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총만이 있을 뿐입니다. 서신서에서 바울은 말씀합니다.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 빌 1:27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울은 말씀합니다.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 빌 1:29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은혜임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거기서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것까지도 은혜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을 알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곧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은 하나님 형상을 회복해 가는 여정이고, 하나님 형상을 회복하는 방법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라고 서론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당신 모상(模像)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상실한 당신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는 그 길을 그리스도 안에 마련해 두셨고,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를 통해 소망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닮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그리스도인이 사는 법을 성경 말씀을 통하여 배우고, 실천을 통해 꽃피워야 함을 여러 경로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현재도 여전히 불평을 입에 달고 광야 길을 걸었던 저들과 같고, 자신의 지나간 헌신을 내세워 차별하고 불평하는 품꾼들 같은 지도 모릅니다. 영성생활은 인간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여정인 동시에,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구속 사역을 완성시키기 위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우리 상식이 주님과 같아질 때만 공동체가 거룩해지고, 우리 상식이 주님과 같아질 때만 선교가 가능해집니다. 지금 우리는 조정의 시기를 거치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두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상식에 순종하는 길과, 내 상식을 고집하며 불평하는 길입니다. 어느 길을 걸어가시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사람다운 생활을 하십시오 | 빌 1:27 공동번역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사람다운 삶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이르도록 '소명'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 소명을 감당할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을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일상에서 하나님을 보지 못한 채 불평을 일삼고 있지 않은가?
② 사소한 일상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느끼며 감사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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