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14주 전환기를 건너는 지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출 3:1-15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 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 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 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 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 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 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 여 얼굴을 가리매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 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 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 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 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 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 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응송 | 시 105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서신 | 롬 12:9-21
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 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 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복음 | 마 16:21-28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 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 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 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 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마 16:23을 묵상하십시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 러가라"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출 3:11을 묵상하십시오. 부르심을 받은 모세가 하나님께 한 대답에 서 모세의 어떤 내적 상태를 느낄 수 있습니까?
③ 롬 1:9-11을 묵상하십시오. 이 말씀 안에서만 볼 때, '하나님의 일' 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전환기를 건너는 지혜
1951년 1월18일 전란(戰亂)의 아픔 속에서 동래여관 2층에 세 들어 설립된 해운대교회는 지난 73년 동안 12명의 목회자와 신자들의 지고한 헌신 속에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 과정에서 해운대교회는 외형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세월만큼 변화를 겪었습니다. 전세로 시작되어 설립된 예배당은 2년 후인 1953년 3월 15일, 동래구 중동 1380번지에 339평 대지를 구입해 천막교회를 세우고, 이듬해인 1954년 3월15일, 당시 미 군목이었던 매코니의 도움으로 28평의 아담한 목조 예배당을 건축하게 됩니다. 그리고 11년 후인 1965년 12월 27일부터 1969년 4월 6일까지 동래구 우동 592번지에 두 번째 예배당을 건축한 해운대교회는, 1993년 2월 24일 교회 대지의 일부가 도로공사로 수용되어 매각되면서 세 번째 건축을 하게 되고, 1998년 9월 13일 새 성전 입당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교회는 해운대구 달맞이길 117번 길을 매입해 건축물 구조변경과 인테리어 공사를 마치고 이사를 앞두고 있으며, 네 번째 성전 건축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른바 우리교회는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많은 전환기를 봅니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땅으로 떠나는 아브람의 전환기(창 12:1), 400년 동안 종살이하던 애굽 땅을 떠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향해 떠나는 아브라함 후손들의 전환기(출 12:37-42), 천직이었던 고기잡이 생활을 청산하고 예수님을 따라 그물을 버려두고(마 4:20),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마 4:22) 순례길 떠나는 제자들의 전환기, 당대 최고의 율법학자로서의 명성을 버리고 사도로서 새 길을 떠나는 사울(바울)의 전환기(행 9:1-22) 등 성경은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겪은 전환기들을 소개해 줍니다. 이 전환기들은 73년의 역사 속에서 네 번째 전환기를 맞는 우리교회에 많은 교훈들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오늘 성서일과의 말씀들 역시 각각 삶의 전환기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구약성경은 40년간의 미디안 생활 끝에 자신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명 앞에 선 모세의 모습을 보여주고(출 3:1-14), 복음서는 예루살렘 가는 여정 중에 주님의 수난 예고를 들은 베드로와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때 베드로와 제자들은 '사람의 길'(마 16:23)에서 떠나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는 온전한 따름에로의 소명을 받게 됩니다(마 16:24). 복음서의 말씀 안으로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 마 16:21-23
이 말씀은 지난 주 말씀에 비추어 뚜렷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지난 주 복음서에서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이시라고 고백함으로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 라며 예수님께 기분 좋은 칭찬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칭찬에 따르면, 이 때의 베드로는 이성이나 지성을 넘어,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분별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의 베드로는 고난과 죽임을 당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시려는 예수님 앞을 가로막고 '그리 마시라'고 항변하다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마 16:23) 라며 호되게 꾸지람을 듣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태는 왜 베드로의 이런 대립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는 것일까요? 주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의 고백과, 정작 우리가 걷고 싶어 하는 길에는 원초적으로 이런 대립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마태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그의 믿음은 분명 옳았고, 그로 인해 천국의 열쇠까지 부여 받은 베드로였지만, 그러나 그의 이성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이었다면, '사람의 일'이란, 25절과 26절의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고, '온 천하를 얻고자 하는 집착'입니다. 이 집착은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 어느 누가 목숨과 온 천하를 거부하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을,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 돈과 권력을 얻는 것에 쏟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 '사람의 일'을 이루기 위한 항변을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내 뒤로 물러가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결코 앞세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 마 16:24, 25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한 조건으로서, 자기의 이기적 욕망과 생각과 주장, 그리고 부패한 옛 자아를 철저하게 굴복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십자가'라는 것은 범죄자가 자기가 처형당할 십자가를 자기가 지고 사형장까지 걸어갈 때 쓰는 표현입니다. 유다의 대반란 때, 수많은 십자가 형틀을 목격했던 제자들(행 5:37)은, 죽음의 짐인 이 십자가를 메라는 참 의미가 뭔지를 뼈 속 깊이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와 똑같이 제자들은, 각자 져야 할 십자가를 가장 가치 있는 일로 받아들여서, 감격과 감사로 끝까지 지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성도들은 이 말씀을 곧이곧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면 즉시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받은 다음, 배교하지 않는 한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순교가 최고의 신앙이요 영성이었습니다. 순교는 곧 그리스도의 거룩한 죽음에 동참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그분의 영광스러운 부활에 참여하게 될 가장 값진 희생 제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앞 다투어 순교의 대열에 동참했고 거룩하고 위엄 있게 죽어갔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박해시대가 가고, AD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밀라노 칙령을 반포함으로써 그리스도교를 공인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의 박해(迫害)도 없었고, 순교를 통해 그리스도를 따를 상황도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성도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그들은 순교의 영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리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순교' 즉 '삶의 방식을 통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사막으로 나가 수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의 땅인 사막에서 자신과 싸우는 삶을 통해서 자아(ego)를 죽여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고, 그 분의 부활의 기쁨에 참여하고자 했습니다. 이 사막의 영성 시대에 기라성과 같은 사막 교부들은 새로운 순교 방식인 '삶을 통한 순교'를 가르쳤습니다. 그것이 바로 수덕생활이었고, 수덕생활은 청빈과 정결과 순명을 통한 복음적 삶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수덕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일치에 이르는 영성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서의 말씀을 마음 깊이 담아야 합니다. 여기 기막힌 역설이 있습니다. '사람의 일'은 지혜로운 듯 보이지만 그러나 자기 목숨을 잃는 길이고, '하나님의 일'은 미련한 듯 보이지만 그러나 목숨을 찾는 일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의 목숨을 걱정하는 베드로에게 그렇게 무자비하게 사탄이라며 다그치신 것입니다.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 마 16:26
'사람의 일'을 따르다 제 목숨을 잃고 만다면 온 천하를 얻은들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따르다 목숨을 얻는다면 비록 온 천하를 얻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보다 더 행복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은 또 말씀하십니다.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 마 16:27
그리스도인이란 바로 이 긴박감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부름 받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오늘 구약성경의 말씀에서, 인생의 한 때 이 긴박감을 잃고 살아가다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모세를 봅니다.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 출 3:4, 5
40세 때 살인을 저지르고 미디안 광야에 도망 와서 어느덧 80세가 된 모세를 어느 날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시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사실 모세에게 이 땅은 거룩한 땅이 아닙니다. 매일 양떼를 이끌고 오가던 평범한 광야이고, 도망쳐 와서 숨어 지내는 유배지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고, 모세에게 소명이 임하는 자리이다 보니, 평범한 광야도 거룩한 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 출 3:7-10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학대당하는 사람들을 '보고' 계셨고, 하나님의 귀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계셨습니다. 오늘 날, 교회의 시선과 귀가 어디를 향해 열려있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반응이 부정적입니다.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 출 3:11
살인자로 전락되어 미디안 광야에서 살아온 모세를 볼 때, 자신감을 상실한 모습일 수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여전히 '자기'를 붙들고 놓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지나간 40년의 도피생활은 이렇게 모세를 철저하게 '하나님과 분리된 존재'로 추락시켜 놓고 알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몸에 하나님의 숨결이 임하시면, 우리 몸은 거룩한 성소(聖所)가 되지만, 우리 몸에 하나님의 숨결이 끊어지면, 우리는 살았으나 죽은 존재가 됩니다. 창 2:7을 떠올려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신학자 그레고리우스는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해서 설교했습니다.하나님 말씀은 새롭게 창조된 땅의 한 부분을 취하시고, 그 불멸의 두 손으로 우리의 모습을 빚으셔서 생명을 공급하셨다. 그 분이 불어넣으신 영은 보이지 않는 신성의 방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땅이라는 특질 안에서 지상의 생명과 하나로 묶여 있지만 동시에 신성의 한 조각이기 때문에 다가올 생명에 대한 염원을 품는다.
그러니까 창세기의 이 한 장면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사람에게는 '땅이라는 특질'과 '하나님의 숨'이 함께 있어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 따라 창조된 사람은 하나님의 영과 결합됨으로서만, 참 인간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레고리우스는 이렇게 설교합니다.
네가 믿는 것처럼, 네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숨이요 신적 신분이라면, 내가 너를 믿을 수 있도록 모든 불의를 내던져라. 어떻게 너는 하늘의 영과 결합되어 있으면서도 적들의 설득에 그토록 동요하는고? 그러한 원군(援軍)에도 불구하고 네가 땅으로 기운다면, 아뿔사, 네 죄악은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지금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영과 결합되어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존재 자체로 사랑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의 충만이고, 선(善)의 충만이며, 본질이 하나님과 동화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폴 틸리히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의미를 동물과 구별되는 '이성적 구조'에서 찾았습니다. 동물과 다른 인간의 탁월성, 그것은 인간 존재를 지배하는 정신이나 영, 지성이나 이성을 통한 결정 능력에서 나타나는데, 더욱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영과 결합된 존재로서 모든 판단과 실천의 기준이 하나님을 닮아야 할 것이고, 삶 전체를 통해 하나님의 일이 실천되어야 할 것입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 롬 12:9-11
우리가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일이 많지만, 우선 오늘 서신서 안에서만 보면, 그것은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는 것입니다. 형제들과 사랑하고 우애하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부지런하며,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삶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호흡하며 서 있는 이 땅의 모든 곳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소(聖所)임을 알아서 어느 곳에서나 영과 진리로 예배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동시에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의 모든 곳이 '하나님의 일'에 부름 받은 소명의 장소임을 깨달아서, 형제를 사랑하고 우애(友愛)하며,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고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주를 섬겨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이고, 하나님의 숨이 깃든 신성의 한 조각이기에 마땅히 더더욱 그러해야 하겠습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땅의 욕망에 겨워 '사람의 일'에 집착해 살아오지 않았는가?
② 참다운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실천하며 살고자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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