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3주 하나님의 생명에 몰입沒入되는 삶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창 18:1-17
1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 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3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 대로 그리하라 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7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 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 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 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 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 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 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16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응송 | 시 116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내가 구 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 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서신 | 롬 5:1-8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 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 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 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복음 | 마 9:35-38
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 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창 18:2-8을 묵상하십시오. 낯선 이들을 보았을 때, 최선을 다해 그 들을 맞이하는 아브라함의 태도에서 무엇을 느낍니까?
② 마 9:37-38을 묵상하십시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 주님께 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③ 롬 5:6-8을 묵상하십시오. 우리가 연약할 때와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빛남으로
하나님의 생명에 몰입沒入되는 삶
인간 존재의 핵심에는 한 가지 진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존재성은 그 자체의 노력으로는 완성될 수가 없고,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완성되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인간이 거듭남과 더불어 영성생활을 통해 점진적으로 맺어가는 성화의 열매도 인간의 한계를 무한히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은총에 의해서만 완성될 수 있습니다. 토머스 머튼은 칠층산에서 그것을 광선이 수정에 투사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광선이 수정에 투사되면 수정은 새로운 특질을 갖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무한한 무조건적 사랑이 인간 영혼에 투입되면 그는 더욱 새로워진다. 그것이 성화 은총이라 불리는 생명이다. 자연 상태에 있는 인간의 영혼은 투명한 수정이 암흑 속에 있는 것과 같다. 광선이 그 속에서 빛날 때, 어떤 의미로 그것은 광선으로 변화되어 그 속에 있는 빛의 본성 속에 몰입된 것처럼 보이는 고차원의 본성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기 전에는 우리 모두 마치 수정이 암흑 속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혹 선행을 한다 할지라도 어떤 의미로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빛날 때만, 그리하여 하나님의 생명에 몰입될 때만, 우리는 비로소 완성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 구약의 말씀에서 우리는 길 떠나는 아브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시며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명령과 약속을 따라 길을 떠난 아브라함에 대해 훗날 사도 바울은, 그 떠남이 믿음에 의한 것이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롬 4:13-22). 이후로 아브라함의 삶은 마치 광선이 수정에 투사되듯,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내면에서 빛남으로서, 하나님 본성에 몰입된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구약성경에서 그가 부지(不知) 중에 여호와(창 18:1)와 천사들(히 13:2)을 대접하는 것이 바로 그중 한 모습입니다. 이때 그의 행동은 인격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행동이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아브라함을 보시고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창 18:17) 라시며 당신의 속마음을 가르쳐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행동이 자기 인격이 아닌, 하나님 사랑이 그 안에서 빛남으로서 드러난 결과라는 것은 훗날 예수님의 마음에서 그의 마음이 오버랩 되는 것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복음서의 말씀에서 마태는 병들고 약한 자들을 지켜보시던 주님의 심정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마 9:36). 무더위에 지친 나그네를 대하는 아브라함의 마음과, 병들거나 죄지은 이들을 대하시는 주님의 마음에서 사람을 대하는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그렇듯 우리 삶의 모습에서 주님의 빛이 드러날 때, 우리는 그것을 그리스도인 됨의 증거로 볼 수 있겠습니다. 구약의 말씀을 좀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 창 18:1-5
'날이 뜨거울 때에'란 원문 그대로 해석하면 '오정 즈음(םויה םחכ 케홈 하욤)'을 뜻합니다. 태양이 하늘 중앙에 치솟아 올라 가장 뜨거운 시간, 대개 고대근동 사람들은 이때 식사와 함께 휴식을 취하는데, 아브라함 역시 다른 이들처럼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장막 어귀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낯선 사람 셋이 자기 맞은편에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 13절, 그리고 19:1절에 따르면 이 중 한 분은 하나님이시고, 둘은 천사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보기에는 그저 정오의 태양에 지친 나그네들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이 낯선 나그네들에게 "자기를 좋게 보시면, 자기를 그냥 지나가지 마시고, 기분이 상쾌해진 다음에 길을 떠나시라"고 말합니다. 그는 나그네들이 발을 씻을 수 있도록 물을 길어오고, 그들이 쉴 수 있도록 나무 아래에 자리를 마련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행동을 보십시오.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 창 18:6-8
처음 본 사람들임에도 하인처럼 기민하게 행동하며 섬김에 지칠 줄 모르는 아브라함의 모습에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예형(例形)을 느낍니다.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이 한 마디는 그의 인격을 넘어 믿음의 경지를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교부 암브로시우스는 그의 이 말에 대해 '은총이 그의 안에서 이야기 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이 신성한 헌신이 일어난 곳은 다름 아닌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입니다. '마므레'는 라틴어로 '시력' 혹은 '식별력'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의 식별력은 나그네의 피로를 읽어내기도 했지만, 삼위일체 하나님 신비를 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환대 안에는 하나님과 사람을 귀히 여기는 따뜻함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읽다 보면 결국 하나님은 이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에게 당신의 비밀을 털어놓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려고 가시던 중입니다. 그런데 낯선 나그네마저 지극히 배려하는 아브라함을 보면서 이렇게 독백하십니다.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 창 18:17
이토록 사람을 귀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사람을 살리는 길'을 말해주는 것이 옳다고 하나님께서는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빛날 때, 그리하여 하나님의 생명에 몰입될 때, 그 때 비로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내가 하려는 것을 ○○○에게 숨기겠느냐"(창 18:17) 라시며 우리를 통해 생명을 살리는 거룩한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 마 9:36
이 말씀 바로 앞의 상황을 보면 중풍병자, 혈루증 앓는 여인, 맹인 등이 등장합니다. 그들 각각의 사연마다 하나같이 주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가장 주님의 마음에 맺힌 것은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통 가운데 방치되어있는 현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60년 전 쯤에 로마군이 팔레스티나를 점령했습니다. 로마는 식민지 정책에 따라 자기 영달을 꾀하는 자들을 골라 점령지의 통치자로 세우고, 그들에게 특권을 줘서 황제의 충직한 노예가 되게 했습니다. 그들 중 하나가 헤롯 왕가(王家)였습니다. 사악하고 탐욕스런 헤롯은 로마와 결탁해서 자기 권력을 유지하며 백성을 수탈했습니다. 헤롯과 그의 군대와 왕실에 가까운 자들은 로마에 협력해 돈을 벌었고, 갖가지 혜택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종교 권력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 곁에는 토라에 능통한 율법학자들과 서기관들이 포진해서 보필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산헤드린 의회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산헤드린은 정부와 사법부의 최고의결기구였고, 신학 토론의 장(場)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최고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지만, 그 대가로 로마 점령군에게 조종을 당했습니다. 유대인들 가운데는 일종의 경건주의 그룹인 바리새파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리새' 즉 '바리사이(Pharisee)'란 이름에는 '구별된 사람들', '거룩한 사람들'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들은 대개 평민들과 장인(丈人)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율법을 지키는 것이, 자기들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율법을 사랑하고 지키는 신실하고 순수한 신앙인들도 있었지만, 율법을 정해진 틀로 형식화해서 율법을 통해 자신들을 차별화하며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 그들의 정치적인 맞은편에는 보수적인 제사장들과 부유한 지주들로 구성된 사두개파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재산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로마와 결탁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는 정치적으로는 적이었지만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경멸하는 것에 있어서는 은연중 결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 끼여 있는 이들을 주님은 '목자 없는 양'이라며 마음아파 하신 것입니다. 장 바니에는 그들을 바라보시던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하던 끝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예수 가슴속의 연민(compassion)은 빛과 진리가 없는 나약함이 아니다. 그의 연민은 진정한 사랑과 거대한 힘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예수의 연민은 약자들을 괴롭히고, 사람들을 멸시하고, 그들이 사랑 안에서 존중받는 것을 방해하는 온갖 거짓과 위선과 편견의 악에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의 이 마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연민을 마음에 품고, 거짓과 위선과 편견에 맞서서 당당하게 하나님의 진실을 선언하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강단이 있는 삶의 모습은 결코 나의 인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서 빛남으로서, 하나님의 본성에 몰입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사랑과 만나 누리게 된 그 기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중해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는 곳마다 박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는 돌에 맞을 위기를 넘겼고, 발을 쓰지 못하는 지체 장애인을 고쳐주었던 루스드라에서는 군중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을 뻔했습니다. 빌립보에서는 감옥에 갇혔고, 아테네에서는 조롱을 당했습니다. 고린도에서는 재판정에 끌려가고 테러의 위협을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오늘 서신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 롬 5:3a
환난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익과 아무 관계없는 일에 몸을 바쳐본 사람은 그로 인한 환난이 왜 즐거움이 될 수 있는지를 압니다. 죄로 죽은 사람을 살리는 복음사역에 매진하고,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살리는 일에 힘 쏟는 일은 내 이익에도 아무 유익이 없을 뿐 아니라 때로 그로 인한 고난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사역에 나서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롬 5:3b-4
여기서 말하는 인내는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굳게 서서 강하게 밀고 나가는 저력(底力)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인내의 뿌리는 사랑에 맞닿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또 말씀합니다.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롬 5:5-8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죽음에서 살아난 존재들입니다. 우리 생명 살리자고 하나님께서는 저 오랜 옛날, 고대 세계에 살던 아브라함을 자기 고향, 아비 집을 버리고 떠나게 하셨고, 심지어 당신 아들마저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우리가 강해서도, 죄가 없어서도 아닙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그 연약함 때문에 죄를 범하고, 그래서 하나님과 원수 된 삶을 살기도 했었지만, 그러나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여 돌이켰을 때,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이 사랑이 지금도 우리를 붙잡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사랑으로 다른 형제들을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만만치 않습니다. 나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지 않으면 사실 그 일을 감당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성 프란체스코'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프란체스코에게 위로부터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프란체스코야!"
"네, 주님, 저 여기 있습니다. 명령하시옵소서."
"프란체스코야, 너는 네가 태어난 곳이며, 모든 사람이 너를 알고 있는 아시시로 갈 수 있겠느냐? 그곳 너의 아버지 집 앞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노래하고, 춤추고, 손뼉을 칠 수 있겠느냐?" 프란체스코는 덜덜 떨면서 듣고 있었지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위로부터 목소리가, 이번에는 더 가깝게 귓속에서 들렸다. "너는 그 프란체스코를 짓밟아버릴 수 있겠느냐? 그에게 망신을 줄 수 있겠느냐? 그 프란체스코가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을 막고 있다. 그를 죽여라. 아이들이 따라다니며 돌을 던질 것이다. 젊은 여인들은 창가에서 내다보며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 ...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왜 말이 없느냐?" 프란체스코는 나는 못해, 나는 못해. 혼자 말을 했지만, 자기 생각을 입 밖으로 내기가 부끄러웠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주님, 제가 광장 한가운데서 춤을 추며 당신 이름을 불러야 한다면, 저를 다른 도시로 보내주실 수는 없습니까?" 하지만 그 목소리는 준엄하고 노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 된다. 아시시다." 프란체스코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입술을 대고 있던 땅을 쳤다.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저의 영혼과 저의 몸이 준비할 시간을 주십시오. 사흘만 시간을 주십시오." 그러자 목소리가 호통을 쳤다. "안 돼. 지금 당장이다."
"주님, 왜 그리 서두르십니까? 왜 그렇게 저에게 벌을 주려 하시나이까?" 하나님의 목소리가 말했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는 프란체스코의 마음으로부터 들려왔다. 갑자기 모든 괴로움이 그의 가슴을 떠나고 어떤 힘이 느껴졌다. 그것은 프란체스코 자신의 힘이 아니라 전능의 힘이었다. 그는 일어섰다. 그의 얼굴이 빛나기 시작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김영신 옮김 「성 프란체스코」(열린책들 2008)
106-107쪽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생명이 벼랑에 몰린 형제와 이웃을 대하는 나의 자세는 어떠한가?
② 나의 인격 아닌 믿음의 열매로 형제와 이웃을 돌보고 사랑하는가?
번호 | 다운로드 | 제목 | Language | 작성일 |
412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6주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
KOR | 2024.11.17 |
411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5주 나를 넘어 하나님께로
|
KOR | 2024.11.10 |
410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4주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
KOR | 2024.11.02 |
409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3주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
KOR | 2024.10.26 |
408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2주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
|
KOR | 2024.10.19 |
407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1주 하나님만이 오직 최선이시다
|
KOR | 2024.10.12 |
406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0주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
KOR | 2024.10.05 |
405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8주 땅의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
|
KOR | 2024.09.21 |
404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7주 내 언어의 원천(源泉) 마음
|
KOR | 2024.09.14 |
403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6주 복 있는 눈, 복 있는 귀
|
KOR | 2024.09.07 |
402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5주 장로들의 전통과 하나님 말씀
|
KOR | 2024.09.01 |
401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4주 제2의 본성을 쇄신하라
|
KOR | 2024.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