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부활절 제7주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사도행전 | 행 1:6-14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 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 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 리라 하였느니라 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 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응송 | 시 68
하나님이여 위엄을 성소에서 나타내시나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나니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서신 | 벧전 4:12-14, 5:6-11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 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 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 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11 권능이 세세 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복음 | 요 17:1-11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 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 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 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 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 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 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 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 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 묵상 | meditatio
① 벧전 5:10을 묵상하십시오.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부르신 아버지께서 우리로 하여금 '잠깐 고난을 당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요 17:11을 묵상하십시오. 세상에 남겨질 제자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께 간구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③ 행 1:11을 묵상하십시오.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 리라" 이 말씀은 우리 시선을 어디에 두라는 말씀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부활절 일곱 번째 주일이자 예수 승천 주일입니다. 부활과 승천은 별개의 두 사건이 아닌 연속적인 하나의 사건인데, 성경 저자들이 부활과 승천을 분리해서 기록에 남긴 것은 과거의 우주관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우주가 세 층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 죽은 이들이 가는 땅속 죽음의 나라, 이렇게 세 층으로 된 우주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우주관을 가졌기에 사도신경의 고백에서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땅속 죽음의 나라에 내려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사람이 살아가는 나라에 모습을 보이시고, 성부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나라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주님의 승천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신앙적 진리는 무엇일까요? 미국 성공회의 100문 100답 중에 승천에 관한 부분이 실려 있습니다.승천이란 예수님이 창공이라는 공간으로 올라가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승천이란 더 이상 제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의 세계로 돌아가셨다는 의미입니다. 승천은 부활의 사건의 종결로서, 예수님이 본래 자신의 영광을 회복하신 '승귀(昇貴)'이고 '즉위(卽位)'입니다. 창조주로, 구원자로, 이제 마지막 심판자라는 본래의 자리로 복귀한 사건입니다. 이에 초대교회 신자들은 사도신경을 통해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계시다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시리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서의 주님의 기도는 당신 뿐 아니라 우리도 바로 그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가게 해달라는 간곡한 호소입니다. 주님은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요 17:9) 라시며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라고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의 것인 이 땅의 남겨진 양떼들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전되는 것 뿐 아니라, 한 몸인 교회를 이루어 성부와 성자 안에 있는 것, 그것보다 더 희망적인 현실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애당초 예수님의 탄생 즉 성육신 자체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려 하신' 열망의 행위였고, 그 열망이 죽음으로, 부활로, 그리고 승천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서신서의 말씀에서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을 일컬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벧전 5:10) 라고 소개합니다. 요약하면 그리스도인이란 그런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려는 사랑의 열망으로 인해,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 받아 하나의 교회를 이룬 사람들' 우리가 이 정체성에 걸맞게 '주님의 영광스러운 생명에 결합된 존재'로 살아갈 때, 참되고 영원한 행복은 우리 안에 깃드는 것입니다. 지난 주 서신서에서 사도 베드로는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벧전 3:15)에게 바로 이 현실(벧전 3:18-22)을 보여주라고 말씀한 바 있으며, 예수 승천주일은 바로 이 현실에 우리 시선을 두고, 땅에서 하늘의 소망으로 살도록 우리를 초청합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 그것은 '땅의 소망'을 놓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소망의 차원이 다른 만큼 발을 땅에 딛고 있지만 그러나 시선을 하늘에 두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찾고 모색하는 것입니다. 오늘 서신서에서 사도 베드로는 그러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 줍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 벧전 4:12, 13a
여기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고난을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이라고 묘사합니다. 연단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페이라스몬(πειρασμόν)'인데, 성도의 믿음을 단련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시련(trial)'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 시험'은 '퓌로세이(πυρώσει)'로서 '타는 불'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타는 불'은 70인역(LXX)에서 소돔 성과 바벨론 성을 멸망시킬 때의 심판의 불이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순수한 금을 얻기 위해 제련(製鍊)한다는 의미로도 사용하기 때문에, 사도 베드로가 이 단어를 사용했을 때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향한 훈련과 단련을 목적으로 한 시련이 마치 소돔 성이나 바벨론 성을 심판할 때의 불만큼이나 맹렬하고 뜨거울 것임을 말씀하려는 것이겠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편지의 초반부터 이런 고난이 여러 형태로 찾아올 것임을 언급 했었습니다. 그의 언급들에 의하면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당한 고난은 일상에서 겪는 가난이나 죽음 같은 것이 아니라, 일종의 박해였습니다. 그 박해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하고 있던 의심과 적대감, 그리고 그에 따른 모욕과 가혹한 살인 등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박해는 로마 전역으로 번져 나갈 기미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급한 상황에, 우리가 베드로의 편지에서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베드로가 이 고난들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벧전 1:6에서는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고, 벧전 3:14에서는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말씀이 이어지는데, 오늘 말씀에서도 베드로는 고난이 주는 순기능과 유익에 대해 말씀합니다.먼저 베드로는 '불 시험'이 찾아올 때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은 헬라어 원문에서 '낯설어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인해 닥쳐오는 불 시험을 낯설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고난과 시련에 대해 이미 여러 차례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당신께서 모범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닥치는 불같은 시련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서, 그 고난을 통해 믿음과 인격이 단련되는 것은 물론 하나님께서 이겨낼 힘도 주실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벧전 4:13a)고 베드로는 당부합니다. 오늘 우리는 베드로전서가 기록되던 시대와는 상황이 많이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슬람교가 국교로 지정된 나라나, 북한이나 중국처럼 공식적인 선교가 금지되어 있는 나라 외에 기독교 신앙으로 인해 고난당하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베드로전서를 우리와는 별로 상관없는 것으로 대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고난의 영성은 오늘도 여전히 필요합니다. 오늘날에도 시대정신에 저항하는 사람은 여전히 의심과 적대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 감리회 내에서도 성장주의에 저항하고 개혁을 추구하는 목회자는 여전히 불이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고난 자체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낯설어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는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필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고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 벧전 5:6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겸손해야 할 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로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고 악인들을 심판하실 때 종종 사용되었던 표현입니다(출 3:19, 신 9:26, 렘 21:5).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고난 앞에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로 겸손히 자신을 낮추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때'가 찼을 때, 그를 다시 높이신다고 단언합니다. 베드로는 또 말씀합니다.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 벧전 5:7a
염려를 다 주께 맡기는 행동은 믿음의 행동이지만, 동시에 겸손의 행동이기도 합니다. 믿음의 사람이 자신의 염려를 주께 맡기듯이, 겸손의 사람이 자신의 염려를 주께 맡깁니다. 겸손하지 못하면 믿을 수도 없고, 믿지 못하면 맡길 수도 없습니다. 염려를 다 주께 맡기는 사람을 향해, 베드로는 말씀합니다.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 벧전 5:7b
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당신에게 맡기기를 원하실까요? 하나님은 사랑의 관계를 주도하실 뿐 아니라, 그 사랑의 관계가 당신 중심으로 형성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 나라' 사역에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올바르게 형성되려면 그 역사는 하나님 중심이어야만 합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기록이 아닙니다. 창세기의 많은 부분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어떻게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성경의 초점은 항상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내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있는지를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헨리 블랙가비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의 특성을 이렇게 밝힙니다.1. 하나님을 신뢰함.
2. 하나님과 하나님의 능력과 채워주심에 의존함.
3.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초점을 맞춤.
4. 하나님 앞에 겸손함.
5. 자기를 부인함.
6.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함.
7. 하나님의 관점에서 모든 환경을 바라봄.
8.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 벧전 5:8, 9
헬라어로 '근신하라'는 말씀은 '마음의 중심을 잡으라(넾사태 Νήψατε)'는 의미이고, '깨어라'는 '잠에서 깨어 영적 경각심을 갖고 있으라(그레고레사태 γρηγορήσατε)' 는 의미입니다. 우는 사자가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이 때, 우리 역시 마음의 중심을 굳게 잡고, 깨어 있어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 시선이 하늘을 우러르고(look up to) 있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시선을 하늘에 두고 마음의 중심을 굳게 잡을 때, 그 삶의 결과를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 벧전 5:10
우리는 오늘 복음서에서,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께 시선을 고정하고(요 17:1a), 아버지의 때에 온 마음을 고정할 뿐 아니라(요 17:1b), 아버지께서 하라고 주신 일을 마음에 품고 사셨던(요 17:4) 성자 예수님의 고백을 봅니다.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 요 17:4, 5
장 바니에는 '시보다 아름다운 예수 전'에서, 예수의 삶을 '고통과 초라함 속으로 내려가신 예수' 라고 표현하며 그 분의 생애를 이렇게 그렸습니다.때가 되매 예수는 더욱 더 나약함의 옷을 입고, 고통과 초라함의 밑바닥으로 내려가셨다. 예루살렘에서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 줄 알면서도 예수는 어디로 숨거나 갈릴리로 피하지 않으셨다. 온유하면서 죄 없는 그분은 악의 세력에 스스로 포박당하시고, 험상궂은 병사들이 끄는 대로 끌려가셨다. 그분이 당신 나라에 오셨지만 당신 백성은 자기들이 기대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그 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드럽게 용서하는 사랑, 어린아이처럼 되라는 조용한 권면, 나약하게만 보이는 비폭력, 꼴찌 자리를 차지하라는 가르침은 단단한 시멘트 벙커와도 같은 권력체제에 의하여 난폭하게 밀쳐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 서로 마주하는 양극이 있다. 사랑과 부드러움과 진실을 호소하는 순결한 어린아이가 이쪽에 있고, 분노, 거짓, 교만, 편견, 증오, 어둠,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가 옳다는 확신으로 무장된 체제에 갇혀 있으면서 돌처럼 굳어진 가슴의 어른들이 겁에 질린 모습으로 저쪽에 있다. 예수는 사람들 가슴속에 있는 어둠, 죄, 악을 드러내신다. 사람들로서는 견딜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분을 비난하고, 그분에게 고함을 지르고, 자기네 악을 감추면서 오히려 그것들을 그분에게 뒤집어씌운다. 그렇게 그분을 자기네 악을 대신하여 죽는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라는 예수님의 기도는 바로 이 일을 이루셨다는 고백입니다. 주님은 당신께 다가온 시련으로 인해 잠깐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순일하게 하고, 마침내 아버지께서 하라고 주신 일을 감당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인 된 우리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 요 17:9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 요 17:11
그리하여 주님은 당신에 이어 우리들도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을 이루도록 아버지 앞에 세우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요? 바로 이 질문이 예수님의 승천을 바라보던 제자들이 처절하게 가졌던 질문이었습니다. 그 때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 행 1:6
우리는 승천을 앞두신 예수님을 향한 제자들의 질문을 보면서 참으로 질긴 인간의 자기중심성을 봅니다. 그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를 '이스라엘의 정치적 해방'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것은 그들의 이해라기보다는 고집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겠습니다. 제자들의 고집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매우 단호했지만, 동시에 희망적이었습니다.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행 1:7, 8
여기에서 '때와 기한'이란 '인간의 시간'으로서의 짧은 시간 즉 '크로노스(χρόνους)'와 '하나님의 시간'으로서의 긴 시간 '카이로스(καιρούς)'를 가리킵니다. 인간의 시간은 짧고 제한적이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길고 영원합니다. 짧고 제한적인 인간의 시간도 하나님의 권한이고, 길고 영원한 하나님의 시간도 아버지의 권한이니, 너희가 알바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마음을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마지막 당부하신 말씀' 얼마나 중요한 말씀입니까? 그 마지막 당부는 다름 아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기를 구하고, 성령의 권능으로 증인의 삶을 살라는 것'이었습니다(행 1:8). 이 말씀을 마치시고 주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올리어 가시는데,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행 1:9). 그 때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말씀 합니다.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 행 1:11
따라서 제자들의 시선은 항상 깨어서 하늘 위를 향하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승천주일이 되면 교회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전능하신 하나님, 성자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우리의 성장이 촉진되며, 또한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이 올라가신 그곳으로 우리의 희망도 따르오니,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기쁨에 용약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드리게 하소서.(S. 치프리아니/오영민 옮김 「말씀과 전례」 성바오로출판사 1985, 329쪽)
우리도 이 기도를 드리며, 승천하신 그리스도께 시선을 두고, 우리 희망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은 감당키 어렵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며, 성령의 권능으로 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을 오늘도 내일도 신실하게 걸어가시기를 소망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우리 영적 시선이 막연하게 흐트러져있지 않은가?
② 예수 그리스도께만 시선을 두고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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