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부활절 제3주 마음의 정화淨化 그리고 말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4-22 17:18
조회
766
부활절 제3주 (가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사도행전 | 행 2:14a, 36-41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 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 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 나 더하더라
응송 | 시 116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서신 | 벧전 1:17-23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 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 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 할 씨 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복음 | 눅 24:13-35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 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 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 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 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같이 하 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 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 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 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 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 묵상 | meditatio
① 눅 24:31, 32을 묵상하십시오. 제자들이 눈이 밝아진 순간, 그리고 마음에 뜨거움을 느낀 순간은 각각 어느 때였습니까?
② 행 2:36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를 십자가에 죽인 일에 대한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③ 벧전 1:22-23을 묵상하십시오. 진리를 순종함으로써 일어나는 일은 무엇이며,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무엇으로 말미암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오늘 성서일과는 우리에게 그런 마음의 상태를 정화하고 청결하게 해서, 말씀이 들려왔을 때, 세심하게 깨달아 한 걸음 더 성숙한 영적 상태로 진보하기를 독려합니다. 복음서의 말씀은 슬픔에 젖어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를 보여줍니다. 그들의 마음은 슬픔이 뒤덮어서 말씀이 호도된 상태에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들에게 살며시 다가가셔서 대화를 통해 마음을 정화해주시고(눅 24:32a) 구약성경의 말씀을 풀어주십니다. 그 순간을 회상하며 두 제자가 남긴 고백이 무엇입니까?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b)였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 베드로는 유대인들을 향해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행 2:36)고 전합니다. 중요한 것은 베드로가 전한 그 말씀에 마음 찔려하며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 2:37) 하고 되물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모습과 물음 속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의 태도를 봅니다. 서신서에서 베드로는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했다"(벧전 1:22)라며 칭찬합니다. 그들의 영혼이 깨끗해진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 즉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었습니다(벧전 1:23). 먼저 복음서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언급하는 두 번째 주제는 '세례'입니다. 세례는 회개의 외적 표현입니다. 회개가 방향전환이라고 한다면, 세례는 그 회개의 형식입니다. 그런데 이 회개와 세례는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음의 길에서 벗어나 생명의 길로 들어서는 파스카 여정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회개나 세례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핵심입니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행 2:38)라고 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가 생명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는 약식세례를 베풉니다만 원래는 세례 받는 사람의 몸 전체가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침례 형식이었습니다. 물에 들어간다는 것은 죽는다는 의미입니다. 자연인으로서의 우리가 일단 죽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자연인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원칙적으로 말하면 구원은 '죽음으로부터', 혹은 '죽음과 함께' 시작됩니다. 예전의 내가 여전히 살아있는 한 절대로 나에게서 구원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는 겁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예수님의 죽음과 하나가 됩니다. 세례를 통해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자연인으로서의 우리가 예수님과 더불어 죽었다는 뜻입니다. 세례는 물속에 들어갈 뿐 아니라 물에서 다시 나옵니다. 내가 들어간 물에서 다시 나온다는 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납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더불어 우리가 다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생명을 얻었다는 건 죽음의 원인인 죄의 지배로부터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베드로는 "세례를 받으라"고 한 뒤에, 바로 이어 "죄 사함을 받으라"고 말씀하는 겁니다.
베드로가 언급하는 세 번째 주제는 '성령'입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에서 베드로는 성령의 선물을 받으라고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주님은 선물로서 성령을 주신다는 겁니다. 성령과 예수님이 직결됩니다. 성령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의 이 설교에 근거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고, 이렇게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그는 이미 성령 받은 사람입니다. 세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래서 누구나 예외 없이 성령 받은 사람입니다. 내가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는 이런 것입니다. 내가 '예수와 연결된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내 입이 예수에게서 일어난 일을 말하고, 내 몸이 예수님이 걸어간 길을 따릅니다. 그 분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내가 살았고, 그 분의 영광이 내 영광이 된 것을 알았기에 존재론적으로 그 분과 같은 삶을 삽니다. 그것이 바로 앞에서 말씀드린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영적 여정으로서의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를 오르는 것이고, 하나님을 향한 이러한 영혼의 순례를 통해 정화, 조명, 합일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서신서에서 베드로는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던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이렇게 칭찬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영적 시선이 어두워 가까이 계신 주님조차 모르고 있지 않은가?
② 말씀을 통해 마음이 뜨거워지고, 성찬을 통해 눈이 밝아졌는가?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사도행전 | 행 2:14a, 36-41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 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 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 나 더하더라
응송 | 시 116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서신 | 벧전 1:17-23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 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 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 할 씨 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복음 | 눅 24:13-35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 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 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 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 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같이 하 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 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 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 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 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 묵상 | meditatio
① 눅 24:31, 32을 묵상하십시오. 제자들이 눈이 밝아진 순간, 그리고 마음에 뜨거움을 느낀 순간은 각각 어느 때였습니까?
② 행 2:36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를 십자가에 죽인 일에 대한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③ 벧전 1:22-23을 묵상하십시오. 진리를 순종함으로써 일어나는 일은 무엇이며,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무엇으로 말미암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마음의 정화 淨化 그리고 말씀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의 단계를 말할 때, 산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motif) 중 하나가 사다리입니다. 7세기에 활동한 요한이라는 동방교회의 수도사는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영적 여정을 설명하기 위해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라는 책을 썼습니다.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영적 단계를 사다리를 밟고 오르는 것에 빗대어 설명한 것입니다. 그 책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를 '사다리의 요한' 또는 '요한 클리마쿠스(John Climacus)'라고 불렀습니다. '클리마쿠스(Climacus)'는 헬라어로 '사다리'라는 뜻입니다.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오리겐 등 초대교부들 역시 하나님께 나아가는 영적 여정을 단계로 설명했습니다. 오리겐(Orineses)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순례'라고 했고, 3세기에 이미 신비적 미학세계를 구축했던 플로티누스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 영혼을 정결케 하는 과정을 정화(purification), 조명(illumination), 합일(union)이라는 세 단계로서 설명했습니다. 정화의 단계에서 영혼을 정결케 한 인간을 향해, 조명의 단계에서 하나님의 빛이 영혼을 비춰주고, 합일의 단계는 하나님과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혹 그리스도인이 영적 여정에서, 성경을 읽고 그 성경 말씀에서 깨달음을 얻기를 원한다면 이 세 단계 중에서 정화(淨化 purification)를 먼저 이루어야 합니다. 마음의 정화가 없으면, 성경 읽기와 바른 묵상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의 정화를 주님은 마 5:8에서 '청결한 마음'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청결한 마음을 갖지 못하면 말씀을 들어도 마음의 오염이 말씀을 덮어버리기 때문에 말씀에서 깨달음을 추출해 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호도(糊塗)'라고 합니다. 호도는 밥상 위에 흘러넘친 밥물이 말라버린 상태입니다. 그렇듯 영혼이 정화되지 못하고 말라버린 상태이면 말씀을 읽거나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오늘 성서일과는 우리에게 그런 마음의 상태를 정화하고 청결하게 해서, 말씀이 들려왔을 때, 세심하게 깨달아 한 걸음 더 성숙한 영적 상태로 진보하기를 독려합니다. 복음서의 말씀은 슬픔에 젖어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를 보여줍니다. 그들의 마음은 슬픔이 뒤덮어서 말씀이 호도된 상태에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들에게 살며시 다가가셔서 대화를 통해 마음을 정화해주시고(눅 24:32a) 구약성경의 말씀을 풀어주십니다. 그 순간을 회상하며 두 제자가 남긴 고백이 무엇입니까?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b)였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 베드로는 유대인들을 향해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행 2:36)고 전합니다. 중요한 것은 베드로가 전한 그 말씀에 마음 찔려하며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 2:37) 하고 되물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모습과 물음 속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의 태도를 봅니다. 서신서에서 베드로는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했다"(벧전 1:22)라며 칭찬합니다. 그들의 영혼이 깨끗해진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 즉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었습니다(벧전 1:23). 먼저 복음서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 눅 24:13, 14
여기서 '그 날'이란 '안식 후 첫 날'(눅 24:1)을 가리키고, '그들 중 둘'이란 여자들이 예수님 부활소식을 전하던 때, 열한 사도와 함께 있었던 '다른 모든 이'(눅 24:9) 중 두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의 이름은 글로바(눅 24:18)이고, 다른 한 사람의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서는 그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을 향해 걸어가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들의 여행길에 동행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 끝에 가서 그들이 도착한 곳은 엠마오가 아니라 예루살렘이 됩니다. 그들은 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왔을 까요? 그 사연을 알기 위해 자세히 읽어보겠습니다. 그들은 엠마오를 향해 걸어가면서 자기들이 예루살렘에서 겪은 일들을 하나하나 복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살며시 그들 곁에 다가가 함께 걸으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누가는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를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눅 24:16)라고 말하고,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고 주님께서 물으실 때는, 그들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섰다"(눅 24:17)고 말합니다. 정리하면, 슬픈 감정이 그들의 눈을 가리어서 예수님마저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겁니다.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 눅 24:21
글로바의 이 실망이 배인 말에서 그들 슬픔의 내용이 무엇인지가 드러납니다. 그들이 이렇게 실망스러워하는 것은 주님의 죽음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죽음으로 인해 자신들의 바람이 좌절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로마의 압제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켜줄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죽음이 그들의 꿈을 모조리 물거품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예수님 부활의 소식을 듣지 못한 것도 아닙니다.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 눅 24:22, 23
그들은 부활의 소식을 들었고 놀라워도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마음에 슬픔을 가득 품고 예수님조차 알아보지 못한 채 길을 걷고 있었던 건, 자기들 바람이 무너져버린 실망이 마음을 덮으니 말씀마저 호도된 상태에 빠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게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이들에게 내려주시는 처방입니다. 주님은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눅 24:25)이라고 먼저는 그들을 책망하시면서도, 그러나 한 편으로는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눅 24:26)라시면서 모세의 율법서와 예언서들을 비롯해 구약성경 전체에 기록된, 당신이 당하실 고난에 관한 기사를 설명해 주십니다. 제자들은 당장에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묵으시려 들어가신 집에서, 함께 음식을 나누시며 빵을 들어 축사하시고 떼어 주실 때, 그제야 눈이 밝아져 예수님인 줄 알아보는데, 예수님은 이미 그들에게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들이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 눅 24:32
1865년-1949년까지 부산지역에서 활동했고, 1903년 원산 대부흥운동의 주축이기도 했던 로버트 하디(Robert A. Hardie) 선교사가 남긴 성경에 대한 감동적인 고백이 있습니다.성경은 채색 류리창에 빗초이는 태양의 광선과 갓흐니
빗치 우리에게 빗초일 때에
류리 빛을 좃차 보이는 고로
그 잇는 채색 외에는 빛을 볼 수 업나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 행 2:36
지금 베드로 앞에서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베드로의 표현 그대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입니다. 물론 이들 중에는 직접 살해에 가담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직간접으로 살해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그저 유대인으로서 책임감을 느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베드로의 말씀을 들을 때, 그들의 영적상태가 어떠했냐는 겁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베드로의 말을 들은 후 그들이 보인 반응을 이렇게 소개합니다.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 행 2:37
베드로는 아무런 토도 달지 않은 채, 단지 그들이 저질렀던 무도한 행위를 상기시켜주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필사적으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고 부르짖습니다. 이런 반응이 바로 마음의 정화를 이룬, 즉 청결한 마음상태를 이룬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들이 보인 이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을 읽다보면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이 보인 상반된 반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행 7:54),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행 7:57, 58). 똑같이 마음에 찔림을 받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를 갈며 더 큰 폭력을 저지르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아파하면서 회개의 길을 묻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이 두 모습 중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여기서 베드로의 말을 듣고 마음 아파하던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준 처방을 마음에 담고 겸손히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 행 2:38
베드로는 여기서, 세 가지 중요한 주제를 언급합니다. 첫째는 회개입니다. 회개는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겁니다. 그것은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의 방향 전환입니다. 그런 근본적인 전환이 없으면 회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바로 그 사실에 주목합니다. 그러면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전환은 어떻게 일어날까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이것을 뚫어보고 거기에 자기 운명을 맡기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줄기차게 예수님의 수난을 증언하는 것이고, 마음에 더디 믿은 까닭에 실의에 빠져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예수님도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면서 모세의 율법서와 예언서들을 비롯해 성경 전체에 있는 당신의 수난과 영광에 관한 기사들을 들려주셨던 것이고, 그 때 그들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한 것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방향 전환' 그것이 회개의 본질이라는 사실, 그리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돌아서는 회개'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놓여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으시기 바랍니다.베드로가 언급하는 두 번째 주제는 '세례'입니다. 세례는 회개의 외적 표현입니다. 회개가 방향전환이라고 한다면, 세례는 그 회개의 형식입니다. 그런데 이 회개와 세례는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음의 길에서 벗어나 생명의 길로 들어서는 파스카 여정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회개나 세례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핵심입니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행 2:38)라고 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가 생명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는 약식세례를 베풉니다만 원래는 세례 받는 사람의 몸 전체가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침례 형식이었습니다. 물에 들어간다는 것은 죽는다는 의미입니다. 자연인으로서의 우리가 일단 죽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자연인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원칙적으로 말하면 구원은 '죽음으로부터', 혹은 '죽음과 함께' 시작됩니다. 예전의 내가 여전히 살아있는 한 절대로 나에게서 구원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는 겁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예수님의 죽음과 하나가 됩니다. 세례를 통해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자연인으로서의 우리가 예수님과 더불어 죽었다는 뜻입니다. 세례는 물속에 들어갈 뿐 아니라 물에서 다시 나옵니다. 내가 들어간 물에서 다시 나온다는 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납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더불어 우리가 다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생명을 얻었다는 건 죽음의 원인인 죄의 지배로부터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베드로는 "세례를 받으라"고 한 뒤에, 바로 이어 "죄 사함을 받으라"고 말씀하는 겁니다.
베드로가 언급하는 세 번째 주제는 '성령'입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에서 베드로는 성령의 선물을 받으라고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주님은 선물로서 성령을 주신다는 겁니다. 성령과 예수님이 직결됩니다. 성령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의 이 설교에 근거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고, 이렇게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그는 이미 성령 받은 사람입니다. 세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래서 누구나 예외 없이 성령 받은 사람입니다. 내가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는 이런 것입니다. 내가 '예수와 연결된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내 입이 예수에게서 일어난 일을 말하고, 내 몸이 예수님이 걸어간 길을 따릅니다. 그 분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내가 살았고, 그 분의 영광이 내 영광이 된 것을 알았기에 존재론적으로 그 분과 같은 삶을 삽니다. 그것이 바로 앞에서 말씀드린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영적 여정으로서의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를 오르는 것이고, 하나님을 향한 이러한 영혼의 순례를 통해 정화, 조명, 합일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서신서에서 베드로는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던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이렇게 칭찬합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 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 벧전 1:22, 23
베드로의 이 말씀은 우리가 정화, 조명, 합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에너지원이 무엇인지를 말해줍니다. 그것은 썩지 아니할 씨인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고,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영혼을 깨끗이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영적 상태는 어떻습니까?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까닭에, 주님의 뜻에서 벗어난 바람들로 내 영혼을 채운 까닭에, 호도된 영혼으로 슬픈 빛을 띤 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하나님이 다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믿고, 우리 가슴도 두 제자처럼 뜨거워지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나의 죽음을 경험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나의 부활을 경험하는, 진정한 세례가 우리 모두에게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고 따르게 하는 성령의 도우심이 늘 우리와 함께 하셔서 실의와 슬픔이 아닌, 희망과 기쁨의 삶을 우리 모두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영적 시선이 어두워 가까이 계신 주님조차 모르고 있지 않은가?
② 말씀을 통해 마음이 뜨거워지고, 성찬을 통해 눈이 밝아졌는가?
첨부파일 : 부활절-제3주-마음의-정화淨化-그리고-말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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