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부활절 제2주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4-15 22:59
조회
831
부활절 제2주 (가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사도행전 | 행 2:14a, 22-32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 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 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 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 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 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8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 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응송 | 시 16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서신 | 벧전 1:3-9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 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복음 | 요 20:19-31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 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 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 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 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 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 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 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 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요 20:27을 묵상하십시오.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하신 주님께서 그 다음에 요청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② 행 2:31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보다 천년을 앞서 살았던 다윗이 미리 보고 말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③ 벧전 1:8, 9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30여 년 후를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베드로가 칭찬한 것은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성聖 도마주일의 복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발현(發顯)하신 후(마 28:9-10;막 16:9-11;요 20:14-17),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막 16:12-13;눅 24:13-35), 그리고 열 한 제자와(눅 24:36;요 20:21-30) 일곱 제자에게 각각 부활하신 당신의 몸을 보여주셨습니다(요 21:1-23). 여드레의 간격을 두고 이루어진 이 발현을 통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라신 것은, 부활을 믿고 당신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는 것이었습니다(요 20:31). 안식 후 첫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셨을 때,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문을 굳게 잠가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잠긴 문을 통과해 들어오셔서 당신의 부활을 손과 옆구리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부활을 얼굴이 아닌 손과 옆구리로 강조해서 보여주신 것은 당신의 부활이 십자가에서 얻은 상처인 손과 옆구리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그 손과 옆구리를 보고 비로소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기쁨을 회복한 모습을 보신 주님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21a)라고 그들을 다독여주시고, 이어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b)라시며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있은 후 여드레가 지나도록 굳게 잠긴 문은 열리지 않았고, 여전히 제자들은 두려움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여드레가 지나도록 굳게 닫힌 제자들의 방어벽을 보면서, 주님의 부활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우리도 한편으로는 공감하게 됩니다. 심지어 도마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 20:25)라며 강한 의심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굳게 닫힌 문처럼, 그들의 굳게 닫힌 마음을 봅니다. 특별히 부활절 둘째 주일이자 성聖 도마주일인 오늘 복음은 도마가 드러냈던 그 의심에 초점을 맞추어 성찰하게 합니다. 하지만 요한이 이렇듯 도마를 비롯한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흔쾌히 믿지 못해 혼란스러워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들의 나약한 믿음을 문제 삼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그 의심과 혼란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부활의 증인으로 나서는지 보여주려는 데 있습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이 제자들의 의심과 두려움 극복의 전 과정을 보여준다면, 사도행전은 두려움을 극복한 베드로가 어느덧 부활의 증인이 되어 선지자로서의 다윗(행 2:30)이 '미리 보았던'(행 2:31)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예수님보다 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었음에도, 그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서신서의 말씀은 베드로가 한결 깊어지고 세련된 모습으로 예수님의 부활이 왜 그리스도인들의 산 소망인지(벧전 1:3), 그리스도인들이 왜 잠깐의 근심을 넘어 큰 기쁨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지(벧전 1:6),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떠할 것인지를 가르쳐줍니다(벧전 1:7). 복음서의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산 위에서 제자들 앞에서 당신 몸의 영광을 펼치셨을 때, 제자들은 그 영광의 눈부심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그분의 얼굴은 찬란히 빛났고, 그분의 옷은 눈처럼 하얗게 되었으며, 제자들은 그런 환시를 감당할 수 없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예수님은 그 방에 영광스런 모습이 아닌 수난 당하셨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에서 변모된 성전의 영광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성경말씀에 따라 십자가형에 처해진 뒤 죽으셨던 그 몸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이제 죽음은 육체에 아무런 힘도 행사할 수 없었습니다. 죽었던 당신의 몸이 부활하심으로써 죽음이 패배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힘이 능력을 떨치자 죽음의 횡포가 전복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의 그 마음이 전해져서 제자들은 정말 주님을 보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요 20:20). 주님은 제자들이 그 기쁨을 잃지 않도록 다시 한 번 그들에게 평안을 기원하시고(요 20:21), 당신의 숨을 불어넣어주시면서 "성령을 받으라"(요 20:22) 하십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도마는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동료들이 주님의 부활 소식을 전해주자, 그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 20:25)라고 말합니다. 이 한 마디 때문에 사람들은 도마의 성격 중에서 회의적인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평가합니다. 하지만 바라보는 견해에 따라 그의 발언은 긍정과 부정이 엇갈리게 해석되어 왔습니다. 오리게네스는 요한복음 단편에서 도마는 매우 꼼꼼하고 철두철미한 사람으로 보인다고 했고, 암모니우스는 요한복음 단편에서 도마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것은 믿었지만, 부활하신 것은 믿지 않았다고 해석했습니다. 페트루스의 크리솔로구스는 도마의 말에 대해 이렇게 성찰했습니다.
불경한 손이 입힌 상처를 왜 충실한 제자의 손이 다시 헤집는 것일까요? 부정한 군사가 창으로 찌른 옆구리를 왜 충실한 추종자의 손이 다시 열려고 할까요? 박해자의 분노가 가한 고통을 왜 종의 잔인한 호기심이 다시 가하려 할까요? 왜 제자가, 그분께서 주님이심을 그분의 아픔으로, 그분께서 하나님이심을 그분의 고통으로, 그분께서 천상의 의사이심을 그분의 상처로 입증하고자 이다지 열심일까요? 도마여, 그 상처들이 다른 것들과 함께 사라졌더라면 어쨌겠는가? 호기심이 그대의 믿음에 어떤 위험을 가져왔겠는가?
하지만 냉소적으로 보이는 물음 끝에 그는 이런 긍정적인 해석을 남깁니다.
형제 여러분, 앞으로는 어떤 불경한 자 조차도 주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의심하지 못하도록 도마의 헌신이 이런 일을 필요로 했습니다. 도마는 반신반의(半信半疑) 하는 자기의 마음과 더불어 믿지 못하는 모든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장차 다른 민족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르칠 사람이었으므로 이 성실한 탐구자는 부활을 믿어야 할 근거를 제공할 방법을 치밀하게 검토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어떤 해석이 그때 도마의 속마음이었을까요? 도마 자신과 주님만이 그의 속마음을 알 뿐입니다. 진실이 어떠하든 주님은 여드레가 지나도록 제자들이 있는 곳에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아마도 그 여드레 동안 도마는 다른 제자들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진위에 대해서 뜨거운 토론을 거듭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도마와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였을 때, 이번에도 여전히 문들은 굳게 닫혔는데, 주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서서 이렇게 인사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26) 그리고 도마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4월16일입니다. 세월호가 침몰해 304명이 목숨을 잃은 지 어느덧 9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세월호 참사 9주기를 앞두고 사고 해역을 다시 찾은 유족들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두려운 바다지만 외면할 수 없어 다시 찾았다"고 눈시울을 붉히는 것을 보며 그들이 보냈을 잔인한 9년을 헤아려보았습니다. 이태원에서 가족을 잃은 부모와 형제들은 그들보다 더 가까운 죽음에 대한 기억과 슬픔을 가슴에 안고 있을 것입니다. 이 잔인한 시간은 우리 모두를 '아이온(aeon)' 즉 하나님의 시간 안으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시간 안으로 들어가서 부활의 밝은 현실 안에서 슬픔의 기억들을 이겨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당신 손과 옆구리의 깊은 상처를 만져보게 하심으로, 죽음 너머의 밝고 황홀한 부활을 감촉하게 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눈앞에서 목격한 부활이, 도마의 손끝에서 감촉되던 부활이, 우리의 가슴에 체감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탄성하고 고백하며, 황홀한 부활의 시간 속을 걸어가기를 소망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보이는 것, 만져지는 것만을 믿으며 땅의 삶을 살고 있지 않는가?
②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시간(aeon)과 천상의 삶을 살아가는가?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사도행전 | 행 2:14a, 22-32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 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 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 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 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 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8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 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응송 | 시 16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서신 | 벧전 1:3-9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 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복음 | 요 20:19-31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 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 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 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 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 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 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 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 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요 20:27을 묵상하십시오.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하신 주님께서 그 다음에 요청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② 행 2:31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보다 천년을 앞서 살았던 다윗이 미리 보고 말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③ 벧전 1:8, 9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30여 년 후를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베드로가 칭찬한 것은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성聖 도마주일의 복음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발현(發顯)하신 후(마 28:9-10;막 16:9-11;요 20:14-17),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막 16:12-13;눅 24:13-35), 그리고 열 한 제자와(눅 24:36;요 20:21-30) 일곱 제자에게 각각 부활하신 당신의 몸을 보여주셨습니다(요 21:1-23). 여드레의 간격을 두고 이루어진 이 발현을 통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라신 것은, 부활을 믿고 당신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는 것이었습니다(요 20:31). 안식 후 첫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셨을 때,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문을 굳게 잠가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잠긴 문을 통과해 들어오셔서 당신의 부활을 손과 옆구리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부활을 얼굴이 아닌 손과 옆구리로 강조해서 보여주신 것은 당신의 부활이 십자가에서 얻은 상처인 손과 옆구리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그 손과 옆구리를 보고 비로소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기쁨을 회복한 모습을 보신 주님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21a)라고 그들을 다독여주시고, 이어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b)라시며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있은 후 여드레가 지나도록 굳게 잠긴 문은 열리지 않았고, 여전히 제자들은 두려움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여드레가 지나도록 굳게 닫힌 제자들의 방어벽을 보면서, 주님의 부활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우리도 한편으로는 공감하게 됩니다. 심지어 도마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 20:25)라며 강한 의심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굳게 닫힌 문처럼, 그들의 굳게 닫힌 마음을 봅니다. 특별히 부활절 둘째 주일이자 성聖 도마주일인 오늘 복음은 도마가 드러냈던 그 의심에 초점을 맞추어 성찰하게 합니다. 하지만 요한이 이렇듯 도마를 비롯한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흔쾌히 믿지 못해 혼란스러워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들의 나약한 믿음을 문제 삼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그 의심과 혼란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부활의 증인으로 나서는지 보여주려는 데 있습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이 제자들의 의심과 두려움 극복의 전 과정을 보여준다면, 사도행전은 두려움을 극복한 베드로가 어느덧 부활의 증인이 되어 선지자로서의 다윗(행 2:30)이 '미리 보았던'(행 2:31)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예수님보다 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었음에도, 그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서신서의 말씀은 베드로가 한결 깊어지고 세련된 모습으로 예수님의 부활이 왜 그리스도인들의 산 소망인지(벧전 1:3), 그리스도인들이 왜 잠깐의 근심을 넘어 큰 기쁨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지(벧전 1:6),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떠할 것인지를 가르쳐줍니다(벧전 1:7). 복음서의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 요 20:19-20
이 한 장면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두 모습을 봅니다. 굳게 잠긴 문을 통과해서 들어오신 것에서는 주님이 본성적으로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고, 손과 옆구리의 못 자국을 보여주신 것에서는 당신이 전에 제자들과 함께 살았던 바로 그 분이심을 보여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라신 것은 '몸의 부활'에 대한 제자들의 믿음의 기초를 확고히 놓는 것이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성인은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산 위에서 변모하셨을 때의(마 17:1-9;막 9:2-13) 찬란히 빛나던 그 모습으로 나타나시지 않은 것에 대해 이렇게 해석했습니다.그리스도께서 산 위에서 제자들 앞에서 당신 몸의 영광을 펼치셨을 때, 제자들은 그 영광의 눈부심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그분의 얼굴은 찬란히 빛났고, 그분의 옷은 눈처럼 하얗게 되었으며, 제자들은 그런 환시를 감당할 수 없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예수님은 그 방에 영광스런 모습이 아닌 수난 당하셨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에서 변모된 성전의 영광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성경말씀에 따라 십자가형에 처해진 뒤 죽으셨던 그 몸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이제 죽음은 육체에 아무런 힘도 행사할 수 없었습니다. 죽었던 당신의 몸이 부활하심으로써 죽음이 패배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힘이 능력을 떨치자 죽음의 횡포가 전복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의 그 마음이 전해져서 제자들은 정말 주님을 보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요 20:20). 주님은 제자들이 그 기쁨을 잃지 않도록 다시 한 번 그들에게 평안을 기원하시고(요 20:21), 당신의 숨을 불어넣어주시면서 "성령을 받으라"(요 20:22) 하십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도마는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동료들이 주님의 부활 소식을 전해주자, 그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 20:25)라고 말합니다. 이 한 마디 때문에 사람들은 도마의 성격 중에서 회의적인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평가합니다. 하지만 바라보는 견해에 따라 그의 발언은 긍정과 부정이 엇갈리게 해석되어 왔습니다. 오리게네스는 요한복음 단편에서 도마는 매우 꼼꼼하고 철두철미한 사람으로 보인다고 했고, 암모니우스는 요한복음 단편에서 도마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것은 믿었지만, 부활하신 것은 믿지 않았다고 해석했습니다. 페트루스의 크리솔로구스는 도마의 말에 대해 이렇게 성찰했습니다.
불경한 손이 입힌 상처를 왜 충실한 제자의 손이 다시 헤집는 것일까요? 부정한 군사가 창으로 찌른 옆구리를 왜 충실한 추종자의 손이 다시 열려고 할까요? 박해자의 분노가 가한 고통을 왜 종의 잔인한 호기심이 다시 가하려 할까요? 왜 제자가, 그분께서 주님이심을 그분의 아픔으로, 그분께서 하나님이심을 그분의 고통으로, 그분께서 천상의 의사이심을 그분의 상처로 입증하고자 이다지 열심일까요? 도마여, 그 상처들이 다른 것들과 함께 사라졌더라면 어쨌겠는가? 호기심이 그대의 믿음에 어떤 위험을 가져왔겠는가?
하지만 냉소적으로 보이는 물음 끝에 그는 이런 긍정적인 해석을 남깁니다.
형제 여러분, 앞으로는 어떤 불경한 자 조차도 주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의심하지 못하도록 도마의 헌신이 이런 일을 필요로 했습니다. 도마는 반신반의(半信半疑) 하는 자기의 마음과 더불어 믿지 못하는 모든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장차 다른 민족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르칠 사람이었으므로 이 성실한 탐구자는 부활을 믿어야 할 근거를 제공할 방법을 치밀하게 검토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어떤 해석이 그때 도마의 속마음이었을까요? 도마 자신과 주님만이 그의 속마음을 알 뿐입니다. 진실이 어떠하든 주님은 여드레가 지나도록 제자들이 있는 곳에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아마도 그 여드레 동안 도마는 다른 제자들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진위에 대해서 뜨거운 토론을 거듭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도마와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였을 때, 이번에도 여전히 문들은 굳게 닫혔는데, 주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서서 이렇게 인사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26) 그리고 도마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 요 20:27
예수님께서 도마의 손목을 이끌어 당신의 상처를 만져보게 하신 것은 아마도 도마의 믿음을 돕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이때 정말 도마가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순간 우리는 도마의 놀라운 고백을 듣습니다.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 요 20:28
그의 이 고백과 함께 의심과 혼란과 두려움의 시간들은 다 지나고 부활의 밝고 황홀한 빛이 제자들을 감쌉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부활의 증인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고(행 2:32a),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라고(행 2:32b)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우리는 이때 주님께서 도마에게 하셨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은 도마에게 하신 말씀이기도 하지만, 이후로 주님을 '보지 못하고 믿어야 할' 우리들을 향해 하신 말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 요 20:29
그렇습니다. 우리는 도마처럼 "당신을 만져보고서 믿겠습니다."라고 조를 수 없는, 보지 못하고 믿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도마보다 조금도 불행하지 않은 것은 주님께서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다"고 말씀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도마와 함께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베드로는 오늘 사도행전에서 다윗이 '미리 본'(행 2:31)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설명합니다.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 행 2:28-31
시 16:8-11은 메시아에 대한 대표적인 예언 중 하나인데, 그 중에서도 부활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습니다. 다윗은 신정(神政) 왕국을 실현했지만, 그러나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선지자였습니다. 그가 선지자의 직위를 가지고 예언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베드로가 그를 선지자라고 소개하는 것은, 여호와의 영이 그를 통하여 말씀하셨고, 말씀이 그의 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삼하 23:2). 그는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장차 자신의 가문에 태어날 메시아를 미리 보았습니다.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행 2:31) 이 구절은 다윗의 예언에 대한 베드로의 해석입니다. 시 16:10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예언했었습니다.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바로 이 예언을 베드로는, 다윗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미리 본 고로' 예언한 것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사실 이 부분은 베드로의 해석이 꼭 맞는다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다윗 자신의 영혼이 스올에 버림받지 않고, 주께서 거룩한 자신을 멸망시키지 않을 것임을 고백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문맥상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예언하고 있다고 보는 것도 틀리지 않다고 학자들은 부연합니다. 베드로와 바울 역시 다윗의 이 고백을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예언과 성취의 증거로 인용하였습니다(행 2:31;13-35). 무엇보다 베드로는 다윗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미리 보았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그는 예수님보다 천 년을 앞서 살았음에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전하면서 베드로는 어쩌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신 저녁을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셔도 쉬 믿지 못하고 두려움을 떨치지 못했던 자신들, 그래서 예수님께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꾸중 섞인 말씀을 들었던 자신들을 회상하며, 저 옛날 천 년이나 앞서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미리 보고 찬미했던 다윗은 얼마나 위대한 신앙인이었던가를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는 다윗의 이 고백과 찬미를 그대로 적용해, 그의 고백대로 이루어진 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이라고,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라고(행 2:32) 말씀합니다. 서신서에서의 베드로는 한결 깊어지고 세련된 모습입니다. 그는 박해와 환난 중에도 믿음을 끝까지 지켜내고 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편지를 쓰며 이렇게 말합니다.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 벧전 1:8, 9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쓸 때의 수신자들은, 구약시대 인물인 다윗과 반대로 예수님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후 30여년이 지난 AD 60년경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을 본 적이 없음에도 믿음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베드로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라며 칭찬하는 겁니다. 실제로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한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거듭남과 산 소망을 잃지 않고 있었고(벧전 1:3), 시험 가운데서 살면서도 기쁨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벧전 1:6). 베드로는 그러한 믿음의 확실함은 금보다 더 귀하다며, 그 믿음이 가져다 줄 황홀한 결과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날에 칭찬과 영광과 영예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벧전 1:7 공동번역), "여러분의 믿음이 결국 영혼을 구원한 것입니다."(벧전 1:9 공동번역) 우리 역시 예수님을 보지 못한 시대를 살고 공간적으로도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이나 사도 베드로의 말씀대로라면, 보지 못하고 믿는 믿음이기 때문에 그 믿음이 더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마치 부활하신 주님께서 굳게 닫힌 문을 거침없이 통과하셔서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듯이, 오늘 우리도 우리의 현세적인 삶 속으로 거침없이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때로 우리는 제자들보다 더 우리 자신을 굳게 닫고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에 쌓여서 살아갑니다. 그런 내 현실 안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들어오셔서 나와 더불어 현존하시는 것이 지금 내 존재 안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매일 벌어지는 일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아이온(aeon)'이라고 합니다. 내 삶 속에 들어와 있는 하나님의 시간, 즉 '지금', '여기'에서 경험하는 하나님, 그 가슴 벅찬 영적 차원이 바로 '아이온(aeon)'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바로 이런 영적인 새로운 생명의 차원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그 세계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되다"고 주님께서는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보다 천 년 이전에 살았던 다윗의 믿음이나, 예수님 이후의 시대를 살았던 성도들의 믿음이나, 예수님보다 이천년 뒤를 살아가는 우리의 믿음이나, 각각의 현세 속에서 하나님의 시간을 살며 '보지 않고도 믿는 그 믿음 때문에' 동일한 행복을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오늘은 4월16일입니다. 세월호가 침몰해 304명이 목숨을 잃은 지 어느덧 9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세월호 참사 9주기를 앞두고 사고 해역을 다시 찾은 유족들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두려운 바다지만 외면할 수 없어 다시 찾았다"고 눈시울을 붉히는 것을 보며 그들이 보냈을 잔인한 9년을 헤아려보았습니다. 이태원에서 가족을 잃은 부모와 형제들은 그들보다 더 가까운 죽음에 대한 기억과 슬픔을 가슴에 안고 있을 것입니다. 이 잔인한 시간은 우리 모두를 '아이온(aeon)' 즉 하나님의 시간 안으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시간 안으로 들어가서 부활의 밝은 현실 안에서 슬픔의 기억들을 이겨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당신 손과 옆구리의 깊은 상처를 만져보게 하심으로, 죽음 너머의 밝고 황홀한 부활을 감촉하게 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눈앞에서 목격한 부활이, 도마의 손끝에서 감촉되던 부활이, 우리의 가슴에 체감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탄성하고 고백하며, 황홀한 부활의 시간 속을 걸어가기를 소망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보이는 것, 만져지는 것만을 믿으며 땅의 삶을 살고 있지 않는가?
②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시간(aeon)과 천상의 삶을 살아가는가?
전체 0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하세요.
번호 | 다운로드 | 제목 | Language | 작성일 |
412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6주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
KOR | 2024.11.17 |
411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5주 나를 넘어 하나님께로
|
KOR | 2024.11.10 |
410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4주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
KOR | 2024.11.02 |
409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3주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
KOR | 2024.10.26 |
408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2주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
|
KOR | 2024.10.19 |
407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1주 하나님만이 오직 최선이시다
|
KOR | 2024.10.12 |
406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0주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
KOR | 2024.10.05 |
405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8주 땅의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
|
KOR | 2024.09.21 |
404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7주 내 언어의 원천(源泉) 마음
|
KOR | 2024.09.14 |
403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6주 복 있는 눈, 복 있는 귀
|
KOR | 2024.09.07 |
402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5주 장로들의 전통과 하나님 말씀
|
KOR | 2024.09.01 |
401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4주 제2의 본성을 쇄신하라
|
KOR | 2024.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