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부활절 제2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7-07-28 18:24
조회
1520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 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행 2:14a, 22-32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22이스라엘사람들아이말을들으라너희도아는바와같이하나님 께서나사렛예수로큰권능과기사와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23그가하나님께서정하신뜻과미리아신대로내준바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27이는내영혼을음부에버리지아니하시며주의거룩한자로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8 주께서생명의길을내게보이셨으니주앞에서내게기쁨이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29형제들아내가조상다윗에대하여담대히말할수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그는선지자라하나님이이미맹세하사그자손중에서한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미리본고로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응송 | 시 16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서신 | 벧전 1:3-9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믿음의확실함은불로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복음 | 요 20:19-31
19 이날곧안식후첫날저녁때에제자들이유대인들을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말씀을하시고손과옆구리를보이시니제자들이주를보고기 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 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말씀을하시고그들을향하사숨을내쉬며이르시되성령을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 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 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내손을그옆구리에넣어보지않고는믿지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지나서제자들이다시집안에있을때에도마도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 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이르시되네손가락을이리내밀어내손을보고네손 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이르시되너는나를본고로믿느냐보지못하고믿는자 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심을 믿게 하려함 이요 또 너희로믿고그이름을힘입어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묵 상 | meditatio
1. 요 20:27을 묵상하십시오.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하신 주님께서 그 다음에 요청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2. 벧전 1:8, 9을 묵상하십시오.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베드로가 칭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3. 행 2:25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보다 천년을 앞서 살았던 다윗은 어 디에 희망과 기쁨을 두고 살았습니까?
■ 기 도|Oratio |5-10분
■ 묵상 나눔
우리는 서로 충돌하는 두 사실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죽 어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을 실제로 다시 만났다는 제자들의 경험이고, 다 른하나는죽은사람은다시살아날수없다는자연과학적사실입니다.이 두 사실은 서로를 배격합니다. 어느 한쪽이 부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 면이런딜레마를그냥놓아둔채과연기독교신앙이성립될수있을까 요?성립되지않는다고보았기때문에도마는"내가그의손의못자국을 보며내손가락을그못자국에넣으며내손을그옆구리에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나 정답은 '성립 된 다'입니다.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자연과학적 사실이 분명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셨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기독교 신앙은오히려더힘있게출발합니다.그러면그이후의상황은어떻게 진행이 되었을까요? 도마가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팔일이지난어느날도마를비롯한열한명의제자들이어떤집에모였습 니다.팔일전도마가없을때도문이닫혀있었던것처럼,이번에도역시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주 님은 팔일 전과 마찬가지로 제자들에게 평화를 인사를 하신 뒤에 도마에 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관 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 천 | Praxio
1. 봐야만 믿을 수 있는 시선이 오히려 유혹임을 아는가?
2.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시간(aeon)을 살고 있는가?
■ 읽 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행 2:14a, 22-32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22이스라엘사람들아이말을들으라너희도아는바와같이하나님 께서나사렛예수로큰권능과기사와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23그가하나님께서정하신뜻과미리아신대로내준바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27이는내영혼을음부에버리지아니하시며주의거룩한자로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8 주께서생명의길을내게보이셨으니주앞에서내게기쁨이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29형제들아내가조상다윗에대하여담대히말할수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그는선지자라하나님이이미맹세하사그자손중에서한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미리본고로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응송 | 시 16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서신 | 벧전 1:3-9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믿음의확실함은불로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복음 | 요 20:19-31
19 이날곧안식후첫날저녁때에제자들이유대인들을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말씀을하시고손과옆구리를보이시니제자들이주를보고기 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 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말씀을하시고그들을향하사숨을내쉬며이르시되성령을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 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 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내손을그옆구리에넣어보지않고는믿지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지나서제자들이다시집안에있을때에도마도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 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이르시되네손가락을이리내밀어내손을보고네손 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이르시되너는나를본고로믿느냐보지못하고믿는자 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심을 믿게 하려함 이요 또 너희로믿고그이름을힘입어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묵 상 | meditatio
1. 요 20:27을 묵상하십시오.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하신 주님께서 그 다음에 요청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2. 벧전 1:8, 9을 묵상하십시오.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베드로가 칭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3. 행 2:25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보다 천년을 앞서 살았던 다윗은 어 디에 희망과 기쁨을 두고 살았습니까?
■ 기 도|Oratio |5-10분
■ 묵상 나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17세기 이탈리아의 화가인 '카라바조'가 그린 '의심하는 도마 '라는 그림이 있습니 다. 그림의 배경은 어둡습니다. 화면 한 복판에는 네 사람 의 등장인물이 한 덩어리인양 모여 있 습니다. 그들의 얼굴 위를 비추고 있는 빛은 제자들의 심리 적 긴장감을 고스란히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네 사람의 시선은 한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옷자락을 걷어 올린 채 옆구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가로로 벌어 진 창날의 상처가 깊습니다. 예수님은 도마의 손목을 붙들고 상처를 만져 보도록 이끌어주십니다. 주님의 손등에는 못 자국이 선명합니다. 도마가 손가락으로 예수님의 상흔을 헤집는 동안 다른 제자들은 시선으로 그 상 처를 더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도마의 손목을 잡아 당신의 상처를 만져보게 하셨을까요? 도마의 의심을 책망하기 위해서였을까요? 그가 참 믿음을 갖도록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온통 죽음의그늘에삼키어버린제자들이빨리회복해야할것은부활에의확 신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의 부활 사건을 건성으로 대하는 기독교인 들이 적지 않습니다. 부활을 그저 소문 정도로만 여기는 겁니다. 뭐 그럴 수 있겠다 싶습니다. 사실 지금 우리는 세상에서 먹고 사는 일을 감당하는 데만도 정신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리고 타인과의 경쟁에 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온갖 귀찮은 일도 마다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 가는 현장이 그렇다 보니 예수님의 부활을 가깝게 느낄 수가 없습니다. 마 치 우리의 영혼이 조류(潮流)가 사나운 바다 속에 가라앉은 것과 같은 상 황입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부활이라는 말씀을 들으면, "그래서 어떻다 는 건데?" 하고 반응하게 됩니다. 그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어쩌면 도마도 그랬을지 모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 그는 그 자 리에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동료들이 주님의 부활 소식을 전할 때, 그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 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 20:25)라고 말 합니다. 예수가 죽은 것이 누가 봐도 기정사실인 상황에서 자칫 제자들이 예수에대한미련을버리지못한채부활에대한기대와환상을만들어서 스스로 그 안에 갇혀 세상에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그에게 있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죽음이란 게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이미 끝나버린 상태를 말하는 것 아닙니까? 어쩌면 그러한 사실에서 우리 그리 스도인들이 가장 딜레마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우리는 서로 충돌하는 두 사실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죽 어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을 실제로 다시 만났다는 제자들의 경험이고, 다 른하나는죽은사람은다시살아날수없다는자연과학적사실입니다.이 두 사실은 서로를 배격합니다. 어느 한쪽이 부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 면이런딜레마를그냥놓아둔채과연기독교신앙이성립될수있을까 요?성립되지않는다고보았기때문에도마는"내가그의손의못자국을 보며내손가락을그못자국에넣으며내손을그옆구리에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나 정답은 '성립 된 다'입니다.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자연과학적 사실이 분명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셨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기독교 신앙은오히려더힘있게출발합니다.그러면그이후의상황은어떻게 진행이 되었을까요? 도마가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팔일이지난어느날도마를비롯한열한명의제자들이어떤집에모였습 니다.팔일전도마가없을때도문이닫혀있었던것처럼,이번에도역시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주 님은 팔일 전과 마찬가지로 제자들에게 평화를 인사를 하신 뒤에 도마에 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 요 20:27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에 대한 이야기는 요 20:20, 25, 27절 이렇게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 요한복음 기자가 이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는 부활하신 모습으로 나타난 그 존재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이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논란은 기독교 역사에서 계속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계 속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 활을 역사적인 사건으로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실제가 아니라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제자들이 그 분의 말씀을 생생하게 기억한 것을 가 리킨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에 대한 신앙이 제자들의 마음에 다시 살아 난 것이지, 예수님이 살아난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나 요한을 비롯한 초기기독교는 그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못 자국이 있는 손과 창 자국이 있는 옆구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부활을 역사적 사건으로 믿 는 것이나, 예수님의 생전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나, 모두 부활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 지금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제자로 성실하게 살면 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그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예수님의 정신을 본받는 것 에 있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 그분 자체를 믿습니다. 예수님 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 그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이 사 실이 흔들린다면 기독교 신앙 자체가 흔들립니다. 그래서 사도들과 초기 기독교는, 부활하신 그 분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신 바로 그 예수 그리스 도라고 줄기차게 주장했습니다. 도마가 정말 예수님의 상처에 손을 대보았 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하지만 도마의 고백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 요 20:28
사실 이 고백은 도마 한 사람의 고백이라기보다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 동체 모두의 고백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 고백을 간단히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당시 도미티안들은 이 고백을 오로지 황제(皇帝)에게만 적용하 고 있었습니다. '도미누스 에트 데우스 노스테르 (dominus et deus noster)' 즉 '로마 황제는 우리들의 주(主)이시며 신(神)'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도마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자 이 고백은 초기 기독교 전체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이 고백은 '예수 님만 나의 주'라는 뜻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한 분 밖에는 나의 주(主)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제부터 '나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은 황제가 아닌 예 수그리스도라는뜻입니다.그들은목숨을걸고이고백을외쳤고,그어 떤 불이익이 있더라도 이 고백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주 (主)는 누구입니까? 자본도 권력도 아닌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방법으로 기쁨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애초부터 우리에게 없었습니 다. 죽음에 삼키어 기쁨을 상실한 제자들, 두려움에 삼키어 평화를 잃은 제자들이 다시 기쁨을 회복하고 평화를 얻을 수 있었던 건 부활하신 주님 을 만나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면서 부터였 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우리 눈길을 끄는 건 그 기막힌 고백을 한 도마에 게 예수님께서 마치 책망하는 듯한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 요 20:29
그러나 사실 이 말씀은 도마를 향한 책망이라기보다는 '보지 못하고 믿 는' 사람들을 향한 격려의 말씀입니다. 실제 그날 같은 자리에 있었던 베 드로는 주님의 이 말씀을 가슴에 담아두었다가, 훗날 박해와 환난 가운데 서도 믿음을 끝까지 지켜내고 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향해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 을 받음이라 | 벧 1:8, 9
요한복음은 1세기 어간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당시 상황을 머릿속에 곰 곰이 그려보십시오. 한 세대를 30-40년으로 잡았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 와 부활 이후 1세기이면 최소한 2-3 세대가 흘러갔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요한복음을 읽고 있는 사람들은 2세대 혹은 3세대 전에 살았던 선조 들이 기록한 말씀을 읽고 있는 겁니다. 부활을 목격한 사람에게 '직접 듣 는 것'과 몇 세대를 건너 '전해 듣는 건' 다릅니다. 상황이 그러하다보니 전해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활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믿는 사람들이 있었고, 내 눈으로 부활을 보지 못했으니 믿기 어렵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두 종류의 사람들이 1세기 전에 기록된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과 도마의 대화 부분을 읽는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 그 때 사람들은 비로소 자 기 믿음의 실체를 바로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은 어떤 걸까요? 본고로 믿는 믿음일까요? 보지 못하나 믿고 기뻐하는 믿음일까요? 중요한 것은 '보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그 때 비로소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행동이 보입니다. 그런 사람이 복된 사 람입니다. 베드로가 오늘 서신서의 말씀을 기록할 때 역시 예수님을 본 사 람이 거의 없던 AD 60년경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믿음을 지키고 있는 사 람들을 보며, 베드로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하 면서 그들을 칭찬하는 겁니다. 실제로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보 지 못한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거듭남과 산 소망을 잃지 않고 있었고(벧 전 1:3), 시험 가운데서 살면서도 기쁨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벧전 1:6) 베드로는 그들이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 았다고 선언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을 보지 못한 시대에 공간 적으로도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이나 사도 베드로의 말씀대로라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 믿음이 더 칭찬을 받는 겁니다. 마치 부활하신 주님께서 굳게 닫힌 문을 거침없이 통과하셔 서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듯이, 오늘 우리도 우리의 현세적인 삶 속으로 거침없이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 금 내 현실 가운데 현존하시는 것은 우리도 예수님의 현실 안으로 즉 예 수님의 영적 차원 안으로 지금 여기에서 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 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이것을 '아이온(aeon)'이라고 합니다. '현세 속에 들어와 있는 하나님의 시간' 즉 '지금', '여기'에서 경험하는 하 나님, 그 영적 차원이 바로 '아이온(aeon)'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바로 이런 영적인 새로운 차원의 생명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눈 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그 세계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 은 복되다"고 주님은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사도행전 의 말씀은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을 증언합니다.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 행 2:25
다윗이 어느 시대 사람입니까? 예수님보다 천년을 앞서 살았던 사람입 니다. 그런 다윗이 시 16:8에서 한 고백을 지금 베드로가 상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다윗은 장차 자신의 가문에 태어날 메시아를 미리 보았습니다. "뵈었음이여" 이 말씀은 헬라어로 "내가 미리 보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가 천년 후를 미리 본 것,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 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본 것은 끔찍한 장면이 아니었습니 다. 예수님은 죽으시는 순간까지 자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계셨는 데, 그 때 하나님은 예수님이 요동치 않도록 그의 오른편에 계시더라는 것 입니다. 장차 천년 후에 이루어질 그 광경을 바라보던 다윗은 마침내 이렇 게 고백합니다.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 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 시 16:9, 10
그리고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그 말씀을 받아 그대로 옮겨놓았습니다.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 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 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 행 2:26-28
예수님보다 천년 앞서 살았던 다윗의 고백이나,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 아갔던 누가의 고백이나, 예수님보다 이천년 뒤에 사는 우리의 고백이나, 각각의 현세 속에서 하나님의 시간을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동일한 기 쁨을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3년여 동안 우리 모두는 참 잔인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제자들에게 가져다주었 을 바로 그 참혹한 심경 가운데 우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잔인하고 참 혹한 현실은 우리를 '아이온(aeon)' 즉 하나님의 시간 안으로 초청하고 있 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시간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지금 우리는 24절기 생태력으로 곡우(穀雨)의 한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 때 쯤이면 봄비가 잘 내리고 백곡이 윤택해집니다. 이 곡우 절기에 은혜의 단비로 오셔서 온 피조세계를 부활로 채우시는 주님의 은 총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 고백하며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살기를 소망 하는 여러분에게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관 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 천 | Praxio
1. 봐야만 믿을 수 있는 시선이 오히려 유혹임을 아는가?
2.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시간(aeon)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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