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사순절 제5주 생명을 살리시는 예수 그리스도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겔 37:1-14
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 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 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 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 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 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 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 라 하셨다 하라 7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 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 셨다 하라 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 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11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 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 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12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13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14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 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 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응송 | 시 130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서신 | 롬 8:6-11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 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 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 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 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복음 | 요 11:1-44
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 에 사는 나사로라 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 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 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 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 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 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 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 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 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 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 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 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 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요 11:24을 묵상하십시오.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아나이다"라는 고백에서 드러나는 마르다의 부활관은 무엇입니까?
② 겔 37:5을 묵상하십시오. 이미 죽은지 오래되어 생명이 없는 뼈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③ 롬 8:6-9을 묵상하십시오. '육신의 생각'이 사망인 이유는 무엇이고, '영의 생각'이 생명과 평안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생명을 살리시는 예수 그리스도
지난 몇 주간 동안 우리가 묵상해온 성경말씀 중에서 요한복음의 몇몇 이야기를 되짚어 본다면, 거기서 우리는 점진적으로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순절 셋째 주 복음에서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비쳐진 예수님은 행복에의 갈망을 궁극적으로 해갈해주시는 '샘물'이셨고, 사순절 넷째 주 복음에서 맹인을 치유하시고 그와 대화를 나누며 스스로 드러나신 예수님은 우리 존재의 어둠을 밝혀주시는 '빛'이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사순절 다섯째 주 복음서에서 무덤 속의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예수님은 '생명'을 소유하고 계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고백됩니다. 따라서 사순절 동안 우리에게 주어지는 복음과 그 복음서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샘물과 빛과 생명의 원천이신 주님께로 나아가는 각각의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그들의 안내를 받아 샘물이시며, 빛이시고, 생명이신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샘물과 빛과 생명은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핵심 상징들인데, 그 정점에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생명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듯 우리도 죽음에 대한 선천적인 두려움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문제에 있어서만은 각자의 지식과 지위를 초월해 두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냉철하거나 다혈질적인 사람, 자기중심적이고 도도한 사람, 그 누구도 이 두려움을 떨치지 못합니다. 그 두려움 속에서 시편 작가는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시 36:9) 그런데 마치 이 기도에 응답하듯이 사순절의 복음은 생명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내 생명의 빛을 보도록 점진적으로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오늘 복음서는 죽음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나사로가 병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주님께서는 병든 사람을 보러가기를 미루십니다(요 11:6). 이 사실에 대해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생명께서 안 계신 곳에서 죽음이 질병을 이용해 행세할 여지를 허용하신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성 요한 그리소스톰은 요한복음 강해에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아끼시는 이들에게도 겪어야 할 자기 몫의 고통과 죽음은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질병이나 죽음을 끔찍하게 여기거나 불쾌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살아있는 모든 사람이 겪게 되는 자기 몫의 병과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의 예수님의 말씀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 요 11:4
주님의 이 말씀은 자칫 나사로의 죽음이 하나님과 당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로 오해될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은 후 그 죽음이 가져올 좋은 결과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나사로의 병과 죽음은 자연스러운 원인으로 발생했지만, 예수님께서 그 고통과 슬픔 끝에 부활이 있게 하심으로써 나사로가 도달한 궁극적인 행복 안에 당신 영광을 마련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도착하셔서 무덤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자, 마리아가 발끈해서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요 11:39) 하며 대꾸했을 때도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 11:40)라고 하신 말씀에서 '죽음을 딛고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예수님 메시지의 일관성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영광이란, 모든 사람에게 운명처럼 주어진 생의 밑바닥 중의 밑바닥인 죽음으로부터 부활을 통한 생명을 싹틔워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요 11:25, 26
놀랍지 않습니까? 삶의 밑바닥에서 갈증에 시달리던 수가성의 여인에게는 "내가 주는 물은 네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요 4:14)이라고 말씀하셨던 주님께서, 태어나서 한 번도 빛을 본 적이 없는 맹인에게는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라"시며 빛을 회복시켜 주셨던(요 9:5-7) 주님께서, 지금 죽음 앞에서 절망하고 있는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선언해 주십니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로서의 주님, '세상의 빛'으로서의 주님,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희망이십니다. 중요한 건 오늘 우리가 매일 매 순간 예수님을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로, 내 존재의 빛으로, 부활 생명으로 경험하고 있느냐는 겁니다. 이 물음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요 11:23) 하셨을 때, 마르다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요 11:24). 마르다의 이 대답은 분명 믿음을 담고 있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모호함이 드러납니다. 믿음 안에 체념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마지막 날 부활 때' 살아날 것은 내가 믿을 수 있겠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 26)고 물으셨을 때도, 그녀는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 11:27)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 역시 믿음의 고백인 듯하지만, 사실은 예수님의 물음을 동문서답으로 피해간 것입니다. 어쩌면 마르다의 이 모습은 오늘 믿음의 모호함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것은 이 믿음의 모호함이 오늘 우리들만의 문제가 아닌, 구약시대부터 있어온 현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기라성 같은 구약 시대 선지자들에게서도 이 믿음의 모호함은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오늘 복음서가 나사로의 무덤을 보여주듯, 구약 성경은 죽음의 골짜기를 보여줍니다.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 겔 37:1, 2
마치 애초부터 생명이 없었던 것처럼 말라버린 이 뼈들은 바벨론에 끌려가 돌아올 희망을 다 잃어버린 히브리인들의 처지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톰이 '인간에게 예외 없는 폭군'이라고 명명한 죽음들과, 그로 인한 뼈들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저 주검들마다에는 어떤 사연들이 담겨있는지, 사후(死後)에 인간은 도대체 어디로 갈 것인지, 관 뚜껑이 닫히는 순간 어떤 상황이 인간을 기다리는지, 이러한 질문들 속에서 죽음은 어둠의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알렉스 슈메만은 죽음 안에 깃들인 어둠의 신비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강압적인 죽음의 주변에는 이상한 침묵의 음모가 있다. 사람들은 죽음을 감추기 위해 시신을 단장(丹粧)한다." 그런데 이 죽음의 골짜기에 선지자를 세우고 하나님은 전혀 결이 다른 질문을 던지십니다.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 겔 37:3a
에스겔이 뭐라고 대답합니까?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겔 37:3b) 주님의 질문 앞에서 마르다가 그랬듯이 하나님의 질문 앞에서 에스겔 선지자도 애매한 대답으로 얼버무립니다. 이미 죽어 뼈가 드러나 버린 그곳에서 선지자조차도 섣불리 희망을 예단하지 못하는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절망의 밑바닥에서 희망을 갖기란 그렇게 어렵고도 모호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십니다.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겔 37:12-14
이때 에스겔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죽은 이들에게 생명을 돌려주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창조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12절과 13절에서도 두 번 씩이나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겠다"시며, "그 때 너희는 내가 여호와임을 알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죽음이 기승을 부리는' 세상에서 '죽음이 가족을 갈라놓는' 이 슬픈 세상에서 생명의 샘물을 마시며, 영혼을 빛으로 채우고, 부활이 실제로 내 희망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우리는 그 물음을 풀 수 있는 키워드를 오늘 서신서의 사도 바울의 말씀에서 봅니다.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 롬 8:6
그러면 여기서 육신의 생각은 무엇이고, 영의 생각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 전체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율법주의와의 신학적인 논쟁을 이어가는데, 율법으로는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바울이 일관되게 주장해 온 신학입니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요, 율법학자 중에 율법학자인 바울이었음에도, 율법이 자신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인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율법을 완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습니다. 이게 그가 처한 영적인 딜레마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새롭게 발견합니다. 그것은 율법 너머의 길이었습니다.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고 스스로 만족해하는 '자기 의(義)' 너머에 있는 길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하신 길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은총의 길이며, 복음의 길이었습니다. 이제 바울에게 주어진 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일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뿐이었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과 하나 되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씀합니다.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 롬 8:9
이 문장에서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이 동시에 언급됩니다. 이것은 똑같이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셔야만 우리는 육신이 아닌 영에 속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또 이어서 말씀합니다.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 롬 8:10
바울이 깨달은 새로운 길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영' 즉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영(靈)' 만이 생명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살아 있다는 것',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분명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심장이 뛰고, 뇌가 활동합니다. 그러나 곧 죽는다는 사실도 분명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절대적으로 시간에 예속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외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 사람은 생명을 시간에 예속되어 있는 생물학적인 목숨만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죽고 사는 목숨 너머에 하나님께 속한 진짜 생명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점이 바로 부활입니다. 부활은 '율법의 완성'이고, '의의 완성'이고, '생명의 완성'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침내 이렇게 말씀합니다.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 롬 8:11
우리 기독교인들이 소망하는 생명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받으신 예수님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막연한 전능자, 창조주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이시고, 예수님 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당신 안에서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5세기에 디오니시가 그린 '하데스에 내려가신 그리스도' 라는 제목의 성화(이콘 Icon)가 있습니다. 이 성화에서 그리스도는 지옥에 나타나시지만, 지옥의 포로로서가 아닌 정복자로서, 그리고 그 안에 갇힌 이들의 구원자로서 나타납니다. 그리스도는 승리의 십자가를 들고 지옥문을 깨뜨리시고, 발밑에 십자가형으로 포개진 지옥문 조각을 밟고 계시며 죽음의 심연(深淵)에 다리를 두고 서 계십니다. 주님은 오른 손을 뻗쳐 아담을 무덤에서 끌어내시고, 왼손으로는 하와를 무덤에서 끌어내십니다. 예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손목을 잡고 지옥에서 건져 올리시는 것은, 부활이 우리 스스로 이룰 수 없고, 오직 주님의 은총으로만 가능함을 보여줍니다. 전통 안에 있는 교회들은 부활절이 가까우면 성무 조과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구세주여, 당신은 하데스에까지 내려주시어
전능자로서 그 자물쇠를 부수시고,
창조자로서 당신 자신과 함께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어,
죽음의 가시를 꺾으시고 저주에서 아담을 구원하셨나이다.
주여, 우리들은 간절히 원하나이다. 우리를 구원하소서."
장긍선 「이콘-신비의 미」(기쁜소식 1993) 189-191쪽
지옥의 자물쇠를 부수시고 죽음의 심연에서 우리를 끌어올리시는 주님, 생명의 샘물이요 생명의 빛이신 그리스도께 우리도 그렇게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부활절이 생명의 노래 가득하고 여러분의 내면이 온통 예수 생명으로 꽃피어지는 진정한 파스카의 날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부활을 미래적 사건으로만 이해하고 현실을 절망하고 있지 않은가?
② 예수를 살리신 분이 지금 나에게 주시는 참 생명으로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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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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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8주 땅의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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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21 |
404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7주 내 언어의 원천(源泉)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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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14 |
403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6주 복 있는 눈, 복 있는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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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07 |
402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5주 장로들의 전통과 하나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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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01 |
401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4주 제2의 본성을 쇄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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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