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사순절 제2주 사순절의 영성, 떠남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창 12:1-4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 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응송 | 시 12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 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서신 | 롬 4:1-5
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 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 게 의로 여겨진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 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복음 | 요 3:1-17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 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 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 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 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 묵상 | meditatio
① 창 12:4을 묵상하십시오. 고형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난 아브람 이 궁극적으로 따라간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② 롬 4:1-3을 묵상하십시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행위가 아닌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③ 요 3:3, 16-17울 묵상하십시오.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한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사순절의 영성, 떠남
사순절 여정이 시작된 지 어느덧 열흘이 지났습니다. 24절기로는 경칩을 하루 앞둔 오늘이고 보면, 겨울잠 자던 개구리와 벌레들이 잠에서 깨듯 봄(Lenten) 이라는 어원에서 이름이 유래한 사순절(Lent) 역시 신앙의 겨울잠에서 깨어나 부활절을 준비하는 시기라는 점에서 24절기 생태력과 잘 어울리는 영적 계절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연 상태의 생명을 넘어 초자연적 생명을 지향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초자연적 생명은 인간 스스로는 완성할 수 없고, 인간 수준을 무한히 초월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완성될 수 있습니다. 무릇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로 존재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무한하시고 무조건적인 은혜가 인간의 영혼에 투입되면 그는 비로소 새 차원의 생명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토머스 머튼은 자신의 고백록인 '칠층산'에서 그 새 차원의 생명을 '광선이 수정에 투사되어 수정이 새로운 특질을 갖는 것'으로 설명합니다.자연 상태에 있는 인간의 영혼은 투명한 수정이 암흑 속에 있는 것과 같다. 광선이 투명한 속을 비출 때, 수정은 광선에 의해 변화되어 빛이 몰입한 것처럼 보이는 고차원의 본성이 되는 것이다. 자연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한, 어떤 의미로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 선행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 안에서 빛날 때 변화한다."
사순절은 바로 그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새 차원의 생명인 부활을 향해 순례하는 영적 계절이라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순례 길을 소중히 걸어가고 계십니까? 성 요한 크리소스톰에 따르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순례의 길로 소명을 받은 수행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순례를 위해 도시를 떠나 사막으로 들어가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일치로 나아갔는데, 토마스 머튼은 '침묵 속에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사막으로 떠나는 것은, 세상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새로운 세계로 인도되어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며 살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일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수도자들과 그들의 말을 소개한다는 것은 사실은 참 비현실적이고, 부담을 주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란 모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이며, '지상'에서 '천상의 법'을 따라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런 까닭에 교회는 전통적으로 사순절을 두어서 적어도 훈련과 수련의 절기인 이 시기만이라도 '보이는 세계'에 반응하며 살아온 우리 삶의 관성으로부터 단호하게 떠나도록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서일과에 그런 사람들이 나옵니다. 구약성경에는 길 떠나는 아브람의 이야기가 나오고, 복음서에는 구도자의 길을 나선 니고데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구약성경을 먼저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 창 12:1
이 아브람 서사(敍事)를 잘 이해하려면 그가 태어나고 자란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 바로 앞에 있는 창 11:31을 보면 그의 아버지 데라의 이동 경로가 소개됩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고고학적 탐사 기록에 의하면 아브람은 여기 언급된 '우르(Ur)'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우르'는 페르시아 서쪽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하류 사이에 소재해 있었는데, 당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한 도시 성읍이었습니다. 헬라어로 '강 사이의 땅'이란 의미인 고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는 우르와 하란을 포함한 전 지역이었는데, 오늘날 이라크와 이란의 남서부 지방에 해당합니다. 이곳은 '비옥한 초승달 지역'(Fertile Crescent)이라 불릴 만큼 토지가 비옥했기 때문에 주민들의 생활이 부유했었습니다. 당연히 아브람도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저자는 11장 말미에서 우리 시선을 끌만한 한 가지 사실을 언급합니다.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창 11:32). 창세기 저자는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의 죽음을 기점으로 (우주의 시작, 인류의 시작, 죄의 시작을 다룬) 창세기 1-11장까지의 '원역사'를 끝내고, 이어지는 12장에서 아브람의 떠남으로 시작되는 '족장사'의 출발지점'을 찾고 있습니다. 즉 여기서부터 '하나님 구속사'의 서막이 열리는 것인데, 이 사실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하나님의 구속사는 아브람이 나고 자란 고향 우르를 '떠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당시 우르는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상거래 과정에서 우상이 유입되는 통로이기도 했습니다. 우상 제조자와 우상 숭배자가 즐비하던 그곳에서 아브람의 아버지는 열렬한 우상 숭배자였고(수 24:2), 따라서 아브람 역시 우상의 영향 하에서 자랐습니다. 그 낡은 관습으로부터 떠나야만 새 역사가 시작될 수 있었기에, 아버지 데라의 죽음을 기점으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떠남'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창세기 1장에서부터 지난하게 이어진 죄의 역사와 관성으로부터 떠나라는 것이었고, 오래 된, 익숙한, 편안함에 길들여진 낡은 땅에서 떠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떠남은 여정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 역시 떠남에서부터 하나님의 구원사를 이해하고 믿고 받아들였습니다. 시내산 기슭의 수도원에서 40년간 은수사로 지낸 '요한 클리마쿠스(John Climacus)'는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에서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을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는데, 그중 첫 단계가 '세상과 결별의 단계'입니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옛 본성인 불신앙과 육신의 정념들을 피하고 멸시하며 떨쳐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적인 염려와 이기심에서 떠나야 하고, 말씀에 순종한 후 찾아오는 허영심에서도 떠나야 합니다. 서방교회 전통의 존 번연(John Bunyan) 역시 '천로역정'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집과 이웃에서 떠남으로부터 기독교도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러한 '떠남'은 자신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고민과 결단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이 과정에서 그리스도인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은 다시 옛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회귀본능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삶이 낯설어서이기도 하고, 옛 삶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때 롯의 아내를 떠올려야 합니다. 과거로 돌아가면 맛을 잃은 소금기둥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요한 클리마쿠스는 '떠남'을 이룬 사람에게 그 다음 단계로서 '수덕생활의 단계'를 소개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덕(德)으로서 순종과 참회, 죽음에 대한 기억 그리고 애통을 통해 옛 성품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단순과 겸손과 분별의 덕을 이루게 됩니다. 그런 다음에는 '완덕의 단계'로 나아가는데,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의 진정한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진정한 일치는 그리스도인들을 헤지키아(hesychia) 즉 고요와 적정(寂靜)에로 이끌고, 하나님과 인간의 대화인 기도에로 이끌고, 마침내 믿음, 소망, 사랑을 이루게 합니다. 여기까지 도달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떠나라 명령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명령만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에 따른 약속 즉 언약(言約)도 주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 창 12:2, 3
이 말씀은 성서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브람이 가나안에 도착한 다음에도 하나님은 다시 그에게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 12:7)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이 약속을 믿고 자신의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납니다.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 창 12:4, 5
창세기 저자는 아브람이 '말씀'을 따라 떠났다고 증언해줍니다. 어느덧 칠십오 세가 된 적지 않은 나이에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사람들' 그리고 '아버지 데라의 무덤'을 떠나는 아브람을 보십시오. 그는 현실적인 익숙함과 편안함을 내려놓고, 낯선 미래를 향해 '말씀을 따라' 떠납니다. 그 떠남으로 인해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고, 그 떠남으로 인해 '순종의 표상'이 됩니다. 그리고 그 떠남으로 인해 훗날의 히브리들에게 그는 출애굽의 표상이 되기도 합니다. 말씀을 따라 떠나는 출애굽,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따라가야 할 영적 표상입니다. 우리를 주저앉히는 익숙함과 편안함, 그로 인한 나태함, 이런 것들로부터 자꾸만 떠날 때 우리 영이 맑아집니다. 바로 그 참다운 인간상을 지금 우리가 '말씀을 따라 떠난' 아브람에게서 보는데, 오늘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아브람의 이 떠남에 대해 그것은 '믿음의 결과'였다고 소개해 줍니다.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람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람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바 되었느니라 | 롬 4:1-3
창세기 저자가 아브람을 '말씀을 따라간 사람'으로 보았다면, 사도 바울은 아브람을 '믿음을 따라간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믿음에 의해', '말씀을 따라' 길 떠나는 아브람의 서사는 우리로 하여금 참되고 진정한 신앙을 성찰하게 합니다. 믿음이 성숙되어 가는 그리스도인 여정에서 매 순간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이 떠남입니다. 떠남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지고, 떠남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은 현실이 됩니다. 오늘 복음서에서도 우리는 길을 찾아 나선 '니고데모'라는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어느 밤중에 그가 예수님을 찾아갑니다.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 요 3:1, 2
요한이 소개해주는 니고데모는 누가 보아도 훌륭합니다. 그는 존경받는 율법선생이었고 산헤드린 의원이었습니다. 그는 반듯한 삶을 살아왔고, 율법은 그의 삶을 반듯함으로 이끌어 준 훌륭한 스승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그의 인사말로 미루어 볼 때, 가나 혼인잔치 집에서 예수님의 첫 이적을 보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는 거기 있었던 '많은 사람'(요 2:23) 가운데 하나였고,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이적을 보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 아니면 저 표적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그저 '랍비'로 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낮이 아닌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에서 그는 아직 '복음의 빛 밖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가 자신의 세계를 떠나 예수께로 온 것은 정말 잘한 일입니다. 그가 끝까지 자기 세계를 고수하고 있었다면, 그는 사람에게 존경받는 스승일 수는 있어도, 거듭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참된 구원을 받는 은총을 누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예수님과 대화를 나눌 때, 마음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그의 정신세계를 전례 없는 격랑으로 몰고 갔습니다.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요 3:3
니고데모의 인사말에 대한 어떤 화답도 없이 예수님은 그에게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거듭남이라는 화두(話頭)를 던져주십니다. 그가 충격 속에서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요 3:4) 하고 묻자 예수님은 거듭남에 대해 설명해 주신 후, 이번에는 "너는 이스라엘의 이름난 선생이면서 이런 것들을 모르느냐?"(요 3:10 공동번역) 라고 핀잔하듯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진리를 찾아 자신의 세계를 떠나 예수님께 온 니고데모에게 그런 사족(蛇足)은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신영복 선생은 '담론(談論)'에서 공부를 '구도(求道)'라고 소개하며, 구도에는 반드시 고행이 전제되는데, 그 고행의 총화가 공부라고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스승인 니고데모는 구도의 떠남 속에서 참 스승인 예수님을 만나 진짜 공부를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보십시오.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 요 3:5-8
니고데모는 성경을 수없이 읽고 가르쳐왔지만 그러나 '거듭남'이라든지 '성령으로 난 사람'이라는 표현은 전혀 생소하고 낯선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의 믿음은 율법에 근거한 믿음이었고, 지성에 의해 정리된 관념(觀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관념적 믿음은 하나의 경향으로 여기고 말기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면에서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조건으로서 '율법적인 행함'을 물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인한 거듭남' 즉 '존재'로 답변하십니다. 얼마나 다른 가르침입니까? 자신의 세계에서 떠나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거듭나고 변화된 니고데모의 모습을 요한은, 그가 예수를 죽이려는 무리들 속에서 예수님을 옹호하는 장면에서(요 7:51), 그리고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몰약에 침향 섞은 것을 준비한 장면에서(요 19:39) 보여줍니다. 그의 떠남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제는 우리가 떠날 차례입니다. 신영복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먼 여행이 남아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삶의 현장을 뜻합니다. 공부는 인식과 성찰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며, 가슴에서 끝나는 여행이 아니라,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신영복 「담론」(돌베개 2015) 20쪽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의 떠남과 니고데모의 떠남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떠남은 자신의 세계에서 하나님 나라를 향한 떠남이었고, 그들의 떠남은 머리의 인식을 넘어 가슴의 뜨거움이 되었고, 가슴에서 끝나지 않고 발까지 이어졌습니다. 말씀을 따라 떠난 아브라함의 발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을 오르는 모습에서 절정을 이루고(창 22:1-14), 니고데모의 떠남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슴으로 받아들여 제자가 되고, 예수를 죽이려는 권력자들의 잔인한 공세 속에서 '아니오'를 외친 예수의 변호인이 된 것, 그리고 조용히 예수의 장례를 준비하는 절제된 모습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사순절은 떠나는 절기입니다. 우리도 이들처럼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나'를 기억하며 오래 된, 익숙한, 편안함에 길들여진 낡은 자아(自我)를 떠나 머리를 넘어 가슴을 넘어 발까지 회심하는 2023년 사순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여전히 자신의 완고하고 낡은 신앙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는가?
② 말씀을 따라 성령 안에서 참 믿음을 향한 '떠남'을 이루었는가?
번호 | 다운로드 | 제목 | Language | 작성일 |
412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6주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
KOR | 2024.11.17 |
411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5주 나를 넘어 하나님께로
|
KOR | 2024.11.10 |
410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4주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
KOR | 2024.11.02 |
409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3주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
KOR | 2024.10.26 |
408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2주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
|
KOR | 2024.10.19 |
407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1주 하나님만이 오직 최선이시다
|
KOR | 2024.10.12 |
406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0주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
KOR | 2024.10.05 |
405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8주 땅의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
|
KOR | 2024.09.21 |
404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7주 내 언어의 원천(源泉) 마음
|
KOR | 2024.09.14 |
403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6주 복 있는 눈, 복 있는 귀
|
KOR | 2024.09.07 |
402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5주 장로들의 전통과 하나님 말씀
|
KOR | 2024.09.01 |
401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4주 제2의 본성을 쇄신하라
|
KOR | 2024.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