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주현 후 제6주 빛의 열매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신 30:15-20
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6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 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17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18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 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 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응송 | 시 119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서신 | 고전 3:1-9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 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 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 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 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복음 | 마 5:17-37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21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 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과하라 그 고발하 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 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31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 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 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 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마 5:20을 묵상하십시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아야 한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② 고전 3:6, 7을 묵상하십시오. 바울파와 아볼로 파로 나뉜 고린도교 회 성도들에게 바울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③ 신 30:20을 묵상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이 살아가야 할 모습으로 무엇 무엇이 있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빛의 열매
오늘은 주현 후 여섯 째 주일입니다. 빛을 따라 길을 잘 걷고 계신지, 빛이신 주님의 은총이 내면에 비쳐들어 음울한 어두움이 거짓말처럼 쫓겨 가고, 빛이신 주님께서 나의 내면을 밝혀주셨듯이 나 또한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서 살아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으로 주님은 '착한 행실'을 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착한 행실이란 주현절 복음이 산상수훈을 통해 비쳐주는 바에 따르면, 내면의 가난을 이루는 것이고, 자신과 이웃을 위해 애통하는 것이고, 온유함으로 긍휼을 실현하는 것이며, 의(義)를 향한 갈망이 있어서 그 의를 위해 박해를 감수하는 것이고,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지난 주 구약성서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진정한 금식에 대해 말씀하면서, 그것은 부당하게 묶인 사슬을 풀어주고, 압제받는 사람을 자유롭게 놓아주고, 그들이 진 멍에를 부숴 버리는 것이며,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나눠 주고, 헐벗은 사람을 보면 입혀 주는 것(사 58:7-11)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서신서에서 바울 사도는 이러한 능력 즉 '세상의 빛'으로서 착한 행실을 하는 것은 '사람의 말과 지혜'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전 2:1)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되는 것이라(고전 2:4)며, 그래서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노라"(고전 2:2)고 결단을 드러냈습니다. 씨앗이 자기 능력으로 꽃을 틔우는 게 아니듯, 사람도 자기 능력으로 삶을 틔우는 게 아님을 바울은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능력이 씨앗에 임하실 때, 이미 씨앗 안에 있던 꽃이 싹을 틔우듯이,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를 성령께서 운행하실 때, 그 능력으로 인해 이미 내 안에 있던 예수님의 빛이 세상을 향해 비쳐지는 것입니다. 오늘 주현 후 여섯 번째 주일의 성서일과는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 보다 본질적이고 심층적인 차원의 말씀을 들려줍니다.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 마 5:17
우리가 이 말씀을 읽으면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마태가 여기서부터 7장 12절까지 처음과 끝에 '율법과 선지자'라는 단어를 배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 안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구속사 안에서 당신의 가르침과 위치를 구약성경과 연관시키기 위해 얼마나 애쓰셨나 하는 것입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율법과 선지자'에서 '율법'은 구약성경 전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축약된 의미로서 모세오경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선지자'는 구약성경의 역사서들 안에 등장하는 초기 선지자들과 이사야서 이후의 후기 선지자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를 통해서는 '약속'을, 그리고 당신의 오심과 활동을 통해서는 '성취'를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지대한 애정을 볼 수 있습니다.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 마 5:18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당신의 오심이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앞 절에서 하신 말씀을 보충해주는데, 더욱이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라는 표현은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예수님의 의지가 매우 확고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계속되는 말씀을 읽다 보면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이런 애정이 과연 진정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만큼 예수님께서 율법의 사안마다 조목조목 반박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말씀들입니다.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 마 5:21, 22a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 마 5:27, 28a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서도 주님은 계속 같은 논조로 구약의 말씀들마다 조목조목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며 당신의 주장을 펼쳐 가십니다.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단언하셨던 주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달리 말씀하실 수 있을까요? 이 의문을 해결할 수 있는 단서를 주님은 이미 앞에서 언급해 두셨습니다.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마 5:20
우리가 계속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은, 지금 우리는 '빛이신 주님'께로부터 '세상의 빛으로 사는 삶'에 대한 말씀을 듣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율법은 소중하고 선지자의 말씀도 소중하지만, 따라서 일점일획도 없어지면 안 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여섯 가지 예를 들어가며 율법의 조항마다 조목조목 반박하신 것은 사실은 반박이라기보다는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테제(These)'와 '안티테제(AntiThese)'로 이루어진 변증법적 율법의 완성이라 하겠습니다. 즉 이미 존재성에서 '세상의 빛'인 너희는 율법의 조항이나 지키려 급급해하는 삶을 넘어 적극적으로 세상을 밝히는 빛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빛인 그리스도인들이 넘어서야 할 상대로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제시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으로서 그 의(義)에 있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개 우리에게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새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대 많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올곧으며 존경받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톰은 마태복음 강해에서 예수님께서 옛 율법을 말씀하시면서 이들을 언급한 것 자체가 칭찬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소중히 여겼고, 율법을 철저히 지켜왔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빛은 율법보다 위대하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의 빛'인 너희는 의에 있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몇 가지 예증을 보시겠습니다.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 마 5:21
이 말씀은 맨 처음 율법이 전해질 때, 구전으로 전승되었고, 그래서 옛 사람들은 율법을 귀로 들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주님은 옛 사람들이 들었던 율법 중에서 살인하지 말라는 조항을 새롭게 해석하십니다.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 마 5:22
여기서 주님은 살인의 기준을 새롭게 제정하심으로써 율법을 완성하십니다.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 만으로는 율법을 지켰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형제자매에게 성내는 사람, 그들을 향해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은 모두가 잠재적 살인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살인의 동기가 되는 노(怒)를 다스리지 않는 한 우리의 살인행위는 계속된다고 보신 것입니다. 실제 분노가 우리에게 미치는 악영향은 생각보다 지대하고 심각합니다. 노함으로 우리는 분별을 상실하거나 영적 지식을 성취할 수 없게 됩니다. 노여움에 휩싸여있는 동안 우리의 이성과 지성은 마비되고, 감성은 사나와지며, 참되고 거룩한 빛을 관상하는 것에도 둔감해집니다. 일찍이 지혜자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전 7:9). 우리가 우매해서 항상 품에 노(怒)를 품고 산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래서 사도 야고보 역시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 1:20) 라며 노(怒)를 경계했습니다. 성 요한 카시아누스는 사람 뿐 아니라 동물이나 무생물을 향해서도 성내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며 이렇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내가 사막에서 살 때 골풀들이 너무 두껍거나 얇아서, 나무를 빨리 베려는데 벨 수 없어서, 또는 불을 빨리 붙여야 하는데 붙지 않아서 화를 냈던 일이 기억납니다. 이처럼 나의 노염의 대상에 모든 것이 포함되었는데, 심지어 무생물을 향해서도 화를 내곤 했습니다. 하지만 만일 주님의 복 받기를 원한다면, 표면적으로 노염을 표현하는 것을 삼갈 뿐 아니라 생각으로 노여워하는 것도 삼가야 합니다.
주님도 그것을 아셨기에 이렇게 처방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 마 5:23, 24
AD 96년에 기록된 12사도의 교훈집, 디다케(Didache) 14장 2절에 따르면 "이웃과 불화한 사람은 누구나 다시 화해하기까지는 성만찬의 참여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당시 성찬에 참여하는 그리스도들이 드리는 예물은 빵과 포도주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성도들은 성만찬에 쓰는 빵과 포도주를 제단에 드리기 전에 반드시 불화한 이웃과 먼저 화해해야만 했습니다. 혹 누군가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을 해서 마음에 걸려있는 분, 계시지 않습니까? 그것은 빛의 자녀로서 어울리지 않는 것이니 예물 드리기 전에 화해하시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 마 5:27, 28
아퀼레이아의 크로마티우스는 '분노가 살인의 어미이듯이, 음욕은 불륜의 어미'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성 요한 크리소스톰은 음욕 자체를 간음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산에 혼자 앉아있더라도 음욕은 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금하신 것은 자기 음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타인을 도구로 삼는 태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내 욕구 충족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빛의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 마 5:33-36
이 말씀에서도 구약의 가치관과 예수님의 가치관이 부딪칩니다. 구약성경에서는 헛맹세만을 금하는 것에 비해 예수님은 맹세 자체를 금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라시며 맹세의 진실을 입증하기 위해 '하늘, 땅, 예루살렘, 네 머리' 등을 동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늘은 하나님의 옥좌(玉座)이고, 땅은 하나님께서 발을 놓으시는 발판이고, 예루살렘은 큰 임금 즉 하나님의 도성(都城)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머리'로도 맹세하지 말라는 것은 사람이 스스로 머리의 한 터럭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맹세를 금하신 것은 유대인들이 흔히 범해 온 습관적이고 위선적이고 진실하지 못한 맹세를 단호하게 거부하신 것이고, 진실을 촉진시키기 위해 마련된 맹세라는 제도가 영리한 거짓과 궤변을 늘어놓는 도구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은 진실하지 못한 맹세 제도를 아예 폐기처분해 버리신 것입니다.실제로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 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분명히 언급되지 않은 맹세는 덜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하늘과 땅, 예루살렘 등으로 하는 맹세를 남발하곤 했습니다. 심지어 23:16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 자들에게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라며 분개하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참 믿음의 사람에게는 맹세가 필요치 않습니다. 믿음은 우리를 예수님을 닮게 하기 때문입니다. 속이려는 마음 자체가 없을 때는, 말하고 듣는 것이 단순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믿음의 단순함 안에서 사는 사람은 맹세의식 자체가 필요치 않습니다. 믿음으로 인해 빛이 비쳐온 사람은, 밝음 속에서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말은 간결하고 단순할수록 참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처방은 단순명료한 언어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만 하여라 그 이상의 말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 마 5:37 공동번역
우리는 어떻게 이 말씀에 순종해서 빛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빛을 향해 돌아선 존재인 우리는, 빛을 품고 사는 존재인 우리는, 세상의 빛인 우리는 이미 우리 존재 안에 말씀이 있기에 그 말씀의 빛에서 우리 언어가 우러나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대구성서아카데미의 정용섭 목사님은 이러한 이치를 '존재론적 능력'이라고 표현하면서 '씨앗에 이미 꽃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보는 게 바로 존재론적 관점'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마 7:15-18), 우리 존재에 이미 그리스도의 빛이 있다면 당연히 우리는 빛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 창조의 빛이 씨앗에 임하실 때, 씨앗 안에 있던 꽃이 망울을 틔우듯이,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 사이를 성령께서 운행하실 때, 그 능력으로 인해 이미 내 안에 있던 예수님의 빛이 세상을 향해 발하여지는 것입니다. 그 상태가 바로 산상수훈이 말씀하는 행복의 영역입니다. 가난한 심령에 한껏 빛을 품은 사람이 바로 이 행복을 싹틔우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신자들이 예수님을 믿음의 대상으로 객관화시켜 놓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 안에 빛으로 계신데, 우리는 주님을 '예배당 안에' 모셔놓고 자꾸 경배만 하고 있습니다. 서신서에 안타까운 말씀이 있습니다.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 고전 3:1
여기 '신령한 자'는 누구입니까? 가난한 심령에 깃든 예수님의 빛으로 인해 빛의 열매인 행복을 맺어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육신에 속한 자'는 누구입니까? 표면적으로는 신앙인이지만 정작 마음은 주님과 먼 종교인입니다. 신앙의 감격도, 빛을 품은 행복도 없다보니 잡다한 생각의 차이와 종교적 가치관에 매여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분쟁을 빚을 때가 많습니다.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그들에게 말할 수 없다는 말씀은 그의 내면에 빛이 없다 보니 예수님 말씀마저 이질적으로 느껴져서 말씀을 해도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 고전 3:3, 4
여기 육신에 속한 자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들 가운데는 시기와 분쟁이 난무합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말씀합니다.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 고전 3:5-7
내 안의 빛은, 나를 자라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한분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을 때만 우리 안에서 빛의 열매가 자랄 수 있습니다. 구약의 말씀을 보십시오.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 신 30:20
신명기 저자는 우리에게 신앙인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를 언급합니다. 사랑하고, 청종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여기 무슨 강압이나 억지가 없습니다. 사랑하고, 청종하고, 의지하는 것, 이것은 연인들이 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속삭임을 청종하며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당신의 빛을 두셨습니다. 밝고 환한 이 빛으로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이 광대한 우주 안에서 우리는 작은 존재이지만,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이 행복으로 살아갈 때,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우리에게 임재하셔서 이 빛이 세상에 더 밝아지게 하실 것입니다. 그보다 더 밝은 행복은 없습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육신에 속한 종교인으로 살고 있지 않은가?
② 성령의 임재 안에서 빛의 삶을 살고 있는가?
번호 | 다운로드 | 제목 | Language | 작성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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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6주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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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1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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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5주 나를 넘어 하나님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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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1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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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4주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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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1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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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3주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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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1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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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2주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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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1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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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1주 하나님만이 오직 최선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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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1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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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0주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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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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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8주 땅의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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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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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7주 내 언어의 원천(源泉)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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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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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6주 복 있는 눈, 복 있는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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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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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5주 장로들의 전통과 하나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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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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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4주 제2의 본성을 쇄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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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