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주현 후 제4주 빛을 따름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미 6:1-8
1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는 일어나서 산을 향하여 변론하여 작은 산들이 네 목소리를 듣게 하라 하셨나니 2 너희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변론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변론하시며 이스라엘과 변론하실 것이라 3 이르시기를 내 백성아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슨 일로 너 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증언하라 4 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종 노릇 하는 집에서 속량하였 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네 앞에 보냈느니라 5 내 백성아 너는 모압 왕 발락이 꾀한 것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그 에게 대답한 것을 기억하며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기억하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공의롭게 행한 일을 알리라 하실 것이니라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 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 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응송 | 시 15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서신 | 고전 1:18-31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 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 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 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 보다 강하니라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 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 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 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복음 | 마 5:1-12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 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 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마 4:17과 마 5:3을 묵상하십시오. 마 5:3에서의 심령이 가난한 사 람은 마 4:17의 표현대로라면 어떤 사람입니까?
② 미 6:8을 묵상하십시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③ 고전 1:18을 묵상하십시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과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 각각 어떻게 다르게 여겨지는가?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빛을 따름
성탄절 이후의 성서일과를 통해 지난 주일까지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해 왔습니다. 빛이란 궁극적으로 구원, 생명, 행복, 기쁨 같은 하나님의 신비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멸망, 죽음, 불행, 고통 같은 음습한 어둠과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멸망과 죽음, 불행이나 고통 같은 악마적 어둠의 세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고, 우리를 그 빛 가운데로 불러내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빛으로 살아가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미가 선지자는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다"(미 6:8a)고 선언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이미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아 알고 있는 존재인데, 그것은 바로 '정의를 실천하는 일,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 그리고 '조심스레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미 6:8b 공동번역)입니다. 복음서에서 주님은 산상수훈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빛으로 살아가는 삶'이란 '심령이 가난한 것(마 5:3), 애통하는 것(마 5:4), 온유한 것(마 5:5)'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마 5:6)'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삶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그다지 매력 있는 삶이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산상수훈의 삶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내적 행복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고 단언합니다. 그리스도의 빛이 아름답게 비추인 십자가의 도가 멸망당할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생각으로 여겨지지만,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걸어가야 할 길은 분명합니다. 빛이신 주님을 따라나선 자들로서 빛의 삶을 힘써 살아가는 것입니다.지난 주 복음서의 말씀을 잠시만 되새겨보겠습니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는 모습(마 4:13)을 보도하면서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마 4:14) 라고 논평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빛이 비치리라"(사 9:2) 라고 오래 전에 예언했던 그 가버나움으로 예수님께서 가심으로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그가 예언한 바로 그 장소에서, 지금 막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보도입니다. 옛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인 해변마을 가버나움에는 아직도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을 할 때도, 어둠이 깊이 드리운 사망의 그늘진 땅'(사 9:2)이었던 그곳은, 마태가 복음서를 쓰고 있던 당시에도 여전히 '이방인 지역'(마 4:15)이었고 '사망의 그늘진 땅'(마 4:16)이었습니다. 바로 그곳으로 주님께서 오래 전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빛으로서 들어가신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그곳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 아직도 마음이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하나님 나라가 너희를 향해 '지금' 도래하고 있으니, 그 나라를 향해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많은 이들이 빛이신 주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이는 '그물을 버리고'(마 4:20) 주를 따랐고, 어떤 이는 '배와 아버지를 버리고'(마 4:22) 주를 따랐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병들고 약한 자들(마 4:23)과 귀신들린 자들(마 4:24) 등 수많은 무리(마 4:25)가 주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산 위에 앉히시고 보화와 같은 말씀을 전해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 마 5:1
왜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가르침의 장소로 산을 선택하셨을까요? 여기서 산은 가르치신 '장소'로 이해하기보다는 '산이 의미하는바'를 음미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성경에서 산은 거룩함을 나타내는 은유적 표현으로 즐겨 쓰였는데,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거룩하게 되어가는 과정'을 산에 오르는 것에서 찾았습니다. 그 단적인 예가 오늘 응송입니다.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 시 15:1-3
여기 시인에 따르면 '주의 성산'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시인은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시 24:5) 라고 선포합니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은 '여호와의 산' 즉 '그의 거룩한 곳'에 서기를 꺼려했습니다. 그러기에 산을 오르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산 아래의 것들', '땅의 것들'입니다. 거룩한 산에 올라야만 보이는 정직함과 공의와 진실을 보지 못하니, 산 아래 그늘진 곳에서 그저 진실대신 거짓을 늘어놓으며, 선 대신 악을 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들을 산 위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빛으로 살아가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주십니다.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 마 5:3a
같은 교훈을 누가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눅 6:20)라고 기록했습니다. 마태는 당시 산 아래 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영적 관점에서 '심령의 가난'으로 본 것이고, 누가는 산 아래 사람들이 처해있던 상황을 사회적 관점에서의 '가난'으로 본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마태와 누가 각각의 편집 활동은 서로의 의미를 왜곡하거나 경감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서로의 메시지를 보완해 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영적 의미이든 사회적 의미이든 마태와 누가가 공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난'을 복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우리의 기대와 맞지 않습니다. 어떻게 가난을 복이라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가난이 복인 이유를 곧바로 이어서 설명해 주십니다.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 마 5:3b
지난 주 복음서에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오늘 복음서와 나란히 놓아 보면, 그 의미가 더 분명하게 다가옵니다.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 마 4:17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 마 5:3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마 5:4a
여기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애통'은 자기의 큰 허물을 본 회개의 애통이고, 우리 사회의 아픔에 공감하는 애통입니다. 그는 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마음은 자신과 사회를 향해 열려 있으며, 자기 내면의 어둠과, 사회의 구조적 아픔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수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윤동주처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그런 사람이 진정으로 애통을 아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을 향해 말씀하십니다.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마 5:4b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위로는, 우리가 쏟은 눈물의 양과 정확하게 비례할 것입니다. 주님은 또 말씀하십니다.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 마 5:5
심령의 가난함과 애통함이 하나님 앞에서 갖는 자세라면, 온유함은 하나님, 자신, 그리고 이웃과 관계된 자세입니다. 심령의 가난함과 애통함이 위로받을 때, 바로 그 은혜로부터 온유함이 나옵니다. 이 온유함이 자신과 관련될 때는 인내와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타납니다. 반면에 온유함이 다른 사람과 관련될 때는, 부드러운 태도와 친절한 태도로 나타납니다. 타인에 대해 무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있어서 타인의 본성 안에 두신 생각이나 감정이나 거기서 비롯된 말과 행동을 무례하게 통제하려 들지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납하고 조율해서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에 부합되게 쓰이도록 돕습니다. 뿐만 아니라 온유한 사람은 악(惡)한 것을 분별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단호한 태도를 취합니다. 나의 마음에 있는 악한 감정도 주님 앞에 내려놓고, 내 뜻대로 마시고, 당신 뜻대로 행동하게 해달라고 주님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에게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마 5:5)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주님은 또 말씀하십니다.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 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란, 다름 아닌 나와 이웃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와 조국 위에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자입니다. 백범 일지에 보면 어느 날 홍구 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던 윤봉길이 김구 선생을 찾아옵니다.제가 채소바구니를 등 뒤에 메고 날마다 홍구 방면으로 다니는 것은 큰 뜻을 품고 천신만고 끝에 상해에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중일전쟁도 중국에서 굴욕적으로 정전협정이 성립되는 형세인즉,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마땅히 죽을 자리를 구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께는 동경 사건과 같은 경륜이 계실 줄 믿습니다. 저를 믿으시고 지도하여 주시면 은혜는 죽어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김구 선생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뜻을 품으면 마침내 일을 이룬다(有志者 事竟成)고 했으니 안심하시오. 내가 요사이 연구하는 바가 있으나 마땅한 사람을 구하지 못해 번민하던 참이었소. ... 지금 신문을 보니 왜놈이 전쟁에 이긴 위세를 업고, 4월 29일에 홍구 공원에서 이른바 천황의 천장절(天長節) 경축식을 성대하게 거행하며 군사적 위세를 크게 과시할 모양이오. 그러니 군은 일생의 대 목적을 이날에 달성해 봄이 어떠하오?
이때 윤봉길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가슴에 한 점 번민이 없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준비해 주십시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 버릴 날을 4월29일로 정하고, 이제 비로소 '마음 편안해졌다'고 하는 이 마음이 바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 마 5:7a
긍휼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따라서 긍휼은 하나님께 속한 마음입니다(시 62:12). 긍휼은 용서하는 마음이고, 이해하는 마음이고, 수용하는 마음입니다. 주님은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향해,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마 5:7b)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주님은 또 말씀하십니다.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 마 5:8a
마음처럼 중요한 곳이 없습니다. 마카리우스는 자신의 강화집에서 '심장(마음) 속에는 측량할 수 없는 깊이가 있다'고 했고, 토마스 머튼은 '방관의 죄에 대한 추론'에서, 프랑스의 동양학자인 루이 마시뇽의 글을 인용해, 마음을 '동정지점(virgin point)'이라고 표현했는데, 마시뇽에 따르면 '동정지점'이란 '은밀한 중심'이며 '잠재적 인격'이고 '깊은 의식'이자 '순결한 동정녀'이고 '마음의 근저'이며 '모든 인간 영혼의 깊이에 숨어있는 지성소'였습니다. 그래서 이 '마음의 청결은' 사실은 인간의 전 존재의 청결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마음이 하나님으로 가득 찬 사람입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볼 것"(마 5:8b)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주님은 또 말씀하십니다.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마 5:9a
'화평케 하는 자'는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과의 거룩한 일치에 이른 사람입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을 향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마 5:9b)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또 말씀하십니다.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 마 5:10a
존 웨슬리에 따르면 '의를 위해 박해받는 자'는 '성령으로 났으며'(갈 4:29),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딤후 3:12),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들'(요 15:19)입니다. 즉 이들은 마음이 겸손하고 온유하며, 하나님을 위해 애통해 하고, 그분처럼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기회가 닿는 대로 선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왜 박해를 당합니까? 대답은 분명합니다. '의' 때문입니다. 의롭기 때문에, 성령을 따라 난 자들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기 때문에,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적합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향해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b)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구약성경에서 미가 선지자는 말씀합니다.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 미 6:8
우리는 이미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보여준 그대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오직 정의를 행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우리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삶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나의 내면을 일깨워 의롭게 살고자 할 때, 때로는 그러한 삶이 사회적 통념에서 매우 미련하게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서신서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고전 1:18a)이라고 인정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회적 통념으로 인해 의기소침하고, 선한 일을 하다가도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반전 어린 말씀으로 우리를 격려합니다. 십자가의 도(道), 즉 십자가의 이치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고전 1:18a)이지만, 구원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고전 1:18b)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설명에 따르면 지혜에는 '이 세상의 지혜'(고전 1:20)가 있고, '하나님의 지혜'(고전 1:21)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사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바로 '빛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빛을 따라 살아야 하는 명백한 이유를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 고전 1:30, 31
여기 바울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의 정체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우리의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구원이 되셨습니다. 따라서 '빛을 따라 사는 삶'은 철저하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성령은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삶의 여정 속에, 아름답고 다양한 은사를 주셔서 빛의 열매가 나타나게 하십니다. 오늘 복음서를 기준으로 보면, 가난한 마음, 애통하는 마음, 온유한 마음이 되는 것이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는 것이고,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그리고 의를 위하여 박해 받은 자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땅히 우리가 이루어야 할 모습이고, 마땅히 살아내야 할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내 마음이 세속의 복을 탐하느라 어두워져 있지 않은가?
②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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