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 후 제1주 (가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사 42:1-9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 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응송 | 시 29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 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서신 | 행 10:34-43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36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37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 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 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42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복음 | 마 3:13-17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 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마 3:16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나타난 세 가지 현상은 무엇입니까?

② 사 42:2-4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의 영이 고난 받는 종에게 임했 을 때, 그가 이방에 베푼 정의의 내용은 어떤 것들입니까?

③ 행 10:38-39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을 부 어주셨을 때, 그가 두루 행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예수님 받으신 세례와 우리의 세례

지난 6일은 교회력에 있어서도, 24절기에 있어서도 모두 의미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교회력으로 주현절이었던 이 날이 24절기로는 스물세 번째 절기인 소한(小寒)이었습니다. 예부터 소한은 우리나라에선 1년 중 가장 추운 절기로 전해져 왔습니다. "소한 추위는 꿔다가도 한다"라는 속담은 추위를 이겨냄으로서 일상의 역경도 이겨낼 힘을 얻고자 했던 조상들의 슬기가 엿보이고, "대한(大寒)이 소한(小寒)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속담은 소한 추위가 대한보다 매서운 것을 은유한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소한은 양력으로 해가 바뀌고 처음 오는 절기인데, 주현절이 시작되는 1월6일 무렵 오기 때문에 왠지 신앙적으로 친근함이 가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부산에서는 눈 보기가 어렵지만, 소한에 내리는 눈은 보리농사의 풍년을 예고하는 눈이라고 합니다. '눈은 보리 이불이다' 라는 옛사람들의 말에서 우리 선조들이 소한의 눈을 얼마나 따뜻하게 느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헨리 나우웬이 주현절을 향해 '사랑과 마주치는 계절' 이라고 했던 말이 왠지 소한에 내리는 따뜻한 눈과 오버랩 되면서 차디찬 이 땅에 서서히 당신의 온기를 드러내시는 예수님과 마주치는 행복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주현(主顯)'이란 어원은 그리스어 '에피파니아(epifania, teofania)'를 번역한 말로 '스스로를 드러냄' 혹은 '나타남'이라는 뜻입니다. 고대에 어떤 '신(神)'이나 '신처럼 공경 받는 군주'가 백성들이 사는 곳으로 내려와서 자신을 드러낼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본래 동방교회 전통에서는 예수님 탄생일을 '주현(主顯)'이라 표현하며 1월6일이 오면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태어나신 강생의 신비를 기념했었습니다. 이때의 '주현'이란 '나타내 보여준다'는 뜻으로 예수님께서 온 인류에게 구세주로 나타나심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톰 시대인 AD 407년에 안디옥과 이집트에서 이 날을 기념했는데, 기념의 대상은 예수님 탄생만이 아닌 예수님의 세례도 포함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주현절기가 서방교회에 전해지면서 그 뜻이 변하게 됩니다. 이 날을 서방교회에서는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려고 베들레헴으로 찾아온 동방 박사들과, 이교 세상에 예수님께서 드러나신 것,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것과 갈릴리 가나의 첫 이적을 기념했습니다. 이렇게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주현절에 관한 이해에는 미세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양 교회 간 공통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후로 전통 안에 있는 교회들은 예수님의 나타나심을 기념하는 주현절을 통상 '주님의 세례일'로 칭하기도 합니다. 이 주님의 세례일은 최근의 전례개혁을 통해 더욱 그 의미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 기념일이 지니고 있는 깊은 성서적 의미, 특히 공관복음에서 예수님의 세례를 일치해서 강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마 3:13-17;막 1:4-11;눅 3:15-17;21-22). 따라서 3년 주기의 성서일과에서 '주님의 세례주일'은 각각 마태, 마가, 누가복음의 순서를 따라 돌아오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각 복음서의 저자들이 동일한 주제를 다루면서 보여주는 특성에 주목하며 말씀을 읽을 때, 각 복음서가 지닌 말씀의 신선함과 깊이를 더욱 음미할 수 있겠습니다.

둘째는,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와 우리의 세례 사이에 맺혀져 있는 관계성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의 세례로부터 이어진 우리의 세례로 인해 어두운 우리의 존재성이 하나님의 진실한 자녀로서 밝아질 수 있는 힘을 얻은 사실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중에서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은 세례의 의미를 이렇게 규정합니다.

세례의 가장 깊은 의미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공동체에 접목됨으로써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생명 안에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로 인해 당연히 하나님께 위배되는 죄는 원죄이거나 본죄이거나 간에 모두 없어져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로운 생명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구원의 은총이 확실히 주어졌음을 표징으로써 드러내는 세례는 사도 바울이 롬 6:3-4절에서 말한 표징을 의식으로써 표현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더불어 우리가 죽음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받아들이고, 물에 잠기는 것으로써 죽음을 나타내고, 물속에서 나오는 것으로써 부활의 은총을 나타냈다. 여러 교부는 또한 믿는 자의 어머니인 교회가 성령의 힘에 의해 약동된 세례의 샘에서 새로운 아들들을 아버지를 위해 낳는다는 표징으로 보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신 것이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따라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오늘 구약성경과 서신서와 복음서의 말씀들은 일제히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를 집중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서로 간에 긴밀히 연결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사 42:1)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비둘기 같이 임하신 성령에 관한 예언인데, 성령이 임하심으로 그가 이방에 베푸신 정의는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드러났습니다(사 42:2-3). 서신서에서 베드로 역시 나사렛 예수를 소개하며, 그 분의 정의는 세례를 받고 성령과 능력이 기름 붓듯 임하심으로써 시작되었다고 증언합니다(행 10:37-38a). 그리고 그 분이 행하신 정의는 '선한 일'과 마귀에게 눌린 사람을 고치신 것'(행 10:38b), 그리고 뭇 사람들이 당신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 받게 한 것(행 10:43)이었습니다. 복음서에서 주님은 당신이 받으시려는 세례를 말리는 요한에게, 당신이 세례를 받으심으로 모든 의를 이루어야 함(마 3:15)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이루시려는 의는 구약성경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대로 당신의 온유함과 겸손함으로(사 42:1-3),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거기서 나오게 하는 것(사 42:7), 그리고 서신서에서 베드로가 증언한 대로 '선한 일'과 마귀에게 눌린 사람을 고치시는 것(행 10:38b), 그리고 뭇 사람들이 당신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 받게 하는 것(행 10:43)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 마 3:13-14

마태가 전하는 오늘 복음은 다른 두 공관복음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려 하자 요한이 말리는 장면이 다른 두 공관복음에는 없습니다. 또 마태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증언할 때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마 3:17)라며 3인칭을 쓰는 반면, 마가와 누가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막 1:11;눅 3:22)이라고 2인칭을 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마태가, 들려온 말씀을 소개하는 것에 있어 이때 세례 받으신 예수님만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아닌, 이후로 예수님을 따라 세례 받을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임을 강조하려는 의도였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는 마태의 고유한 고백이 엿보입니다. 즉 그가 고백하는 예수님은 높은 곳에 계시는 분이 아닌 스스로를 낮추시어 '죄 없으신 당신'과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하시는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바로 이어, 예수님께서 당신이 세례 받으시는 것을 만류하는 요한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소개합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 마 3:15a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義)'는 마태복음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인데(마 5:6, 10, 20:6: 1, 33;21:32 등), 하나님의 뜻에 대한 신선하고도 철저한 순종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당신께서 받으실 세례가 예시하듯이 모든 사람을 위한 죽음(사 53:11)에 순종하는 것이고, 온유함과 겸손함으로(사 42:1-3),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거기서 나오게 하는 것(사 42:7) 등입니다. 그런데 여기 주목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ἡμιν 헤민)'가 이와 같이 하여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나(ἐγώ 에고)'라고 하시지 않고 '우리'라고 복수의 형태로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의가 어느 한 사람만이 아닌 함께 이루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이때 요한의 반응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 마 3:15b

주님의 겸손하신 당부에 대한 요한의 반응은 허락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세례에 대한 허락만이 아닌, 세례와 함께 시작될 하나님의 의를 위한 예수님과 자신의 순종, 그리고 그로 인해 예수님과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에 대한 허락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죄인처럼 세례를 받으십니다. 그리고 이때 벌어진 광경을 마태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 마 3:16-17

예수님이 세례 받고 올라오실 때, 나타난 현상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하늘이 예수님을 향해 열렸습니다. 둘째는, 성령이 비둘기의 모습으로 임하셨습니다. 셋째는, 하늘에서 '소리(φωνή 음성)'가 들렸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세례가 단순한 종교의식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본질적인 사건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랜 전부터 전례적 교회들이 주현절에 불러 온 감사송은 예수님의 세례를 이렇게 찬미합니다.

하나님, 당신은 그리스도의 세례를 통하여 요단강물을 신비롭게 하시어 성별하시고, 하늘로부터 말씀을 들려주심으로써, 당신의 말씀이 사람들 가운데 살아계심을 믿게 하셨으며, 성령을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 보내심으로써 당신의 종 그리스도에게 기름을 바르시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성자를 보내셨음을 알게 하셨나이다." 이 주현절 감사송은 주님 세례의 신비에 관해 매우 중요한 세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요단강에 들어가심으로써 요단강물이 거룩한 물로 성별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소리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선포하고 있다는 것이고, 셋째는 능력을 주시는 성령의 활동으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성별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가장 심층적인 신앙의 신비를 봅니다. 이후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우리(ἡμιν)'를 이루어 '하나님의 의'를 성취해 가실 모습을 오늘 구약성경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고난 받는 종의 노래'로 예언합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 사 42:1-4

여기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소개하는 고난 받는 종의 성품은 어떠합니까? 그는 무례하게 아무 곳에서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부러진 갈대라 해서 무자비하게 꺾어버리지 않는 온유한 인품을 지니셨고, 이미 꺼져가고 있는 쇠(衰)한 등불조차 섣불리 꺼버리지 않으시는 사려 깊은 분이십니다. 그의 정의는 항상 진실에 기초하고 있으며, 당신의 정의가 마음처럼 실현되지 않는다고 쇠하거나 낙담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혹여 우리 마음에 교만이 똬리를 틀고 있다가 기회만 닿으면 뱀처럼 고개를 들려고 한다면, 우리는 온유하고 사려 깊으신, 그러면서도 마음이 강직하신 주님을 떠올려야 합니다. 세례 받으시고, 성령이 내려앉으신 주님 모습은 이렇게 아름다웠습니다. 오늘 서신서에서 사도 베드로는 세례 받으신 후 주님의 모습을 보다 구체적으로 소개해줍니다.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 행 10:37-38

성령께서 베드로를 고넬료의 집에 보내셨을 때, 그때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온 유대에 당신의 말씀을 전하셨는데, 예수님께서 전하신 말씀이 힘을 얻고, 마귀에게 눌린 사람이 고침을 받은 것은 스스로 요한을 찾아가 세례를 받으신 겸손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온전한 순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고비 때마다 의식적으로 낮은 길을 찾으신 예수님, 태어나실 때도 냄새나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압제자의 칼날을 피해 애굽에까지 도망하였었고, 천대받는 땅 나사렛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고, 죄인들 틈에 말없이 끼어 세례를 받으신 주님께 하나님께서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주셨을 때, 그때부터 주님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쳐 주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확신에 찬 이야기는 오늘 세례 받은 신앙인으로서의 우리 모습을 성찰하게 만들어줍니다. 스스로를 높게 여겨 교만을 떠는 자에게는 결코 하늘 문이 열리지도 않을 뿐 아니라 성령이 그에게 임하시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붙드시는 종, 하나님께서 마음에 기뻐하는 사람은 함부로 소리를 지르거나 무례하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상한 갈대처럼 상처 입은 사람을 보면 돌보고, 꺼져가는 심지처럼 나약한 사람을 보면 곁에 서서 북돋아 주는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성도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 사 42:1

오늘 주현절 후 첫째 주일의 성서일과는 바로 그 모본으로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받으신 세례가 인간 실존에 운명처럼 드리운 어두움을 끝내고 하나님 자녀로의 질적인 변화를 맞게 하셨듯이, 예수님을 뒤이어 세례 받은 우리에게도 성령이 임하시고 하나님 말씀이 들려와 하나님 자녀로서 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요한 웨슬리에 의하면 세례란 '그리스도의 표를 지니는 것'입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시대와 장소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표시(marked)'하셨습니다. 옛 언약 아래서는 할례를 통해 택하신 백성을 표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받게 하심으로 그를 당신 백성으로 표시하셨습니다(창 17:11). 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들에게도 할례를 받게 하셔서, 그들을 당신 백성으로 표시하셨습니다(창 17:13;출 12:48;수 5:3 등). 그리고 예수님과 예수님 이후로는 세례를 통해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표'를 지니게 하시고 당신 자녀로 표시하셨습니다. 그 표는 예수님과 내가 타자(他者)가 아닌 '우리(ἡμιν)'로서 살아야 함을 확인시켜주는 표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를 영광스럽게 물려받은 우리 모두에게도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어느덧 우리의 인품이 예수님을 꼭 빼어 닮고,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의에 순명함으로써 우리 세상에 드리운 어둠이 걷히고 생명이 봄처럼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소한(小寒)에 내리는 눈이 보리의 이불이 되어주듯이, 주현절에 임하시는 성령은 연약한 우리를 덮어주십니다. 그 은총 안에서 우리 믿음이 싹을 틔우고 튼실한 믿음의 열매를 맺어 매일매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듣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세례의 은총을 잊고 무례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 않은가?

② 세례 받은 성도로서 겸손히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