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19주 나의 법을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렘 31:27-34
2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 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28 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 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9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30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 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 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 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 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 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응송 | 시 119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서신 | 딤후 3:14-4:5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 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 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 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 며 네 직무를 다하라
복음 | 눅 18:1-8
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 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 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눅 18:1-8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의 비유로 미루어 볼 때 하나님께 서 약속하신 새 언약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② 렘 31:33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으로서의 당신의 말 씀을 어디에 두며, 어디에 기록하겠다고 말씀하십니까?
③ 딤후 3:14, 15을 묵상하십시오. 어려서부터 배우고 확신한 성경 말 씀에 대한 믿음은 궁극적으로 성도를 어디에 이르게 합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나의 법을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은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와 친밀함을 토대로 출발합니다. 신뢰와 친밀함은 우리 내면의 깊은 심연에서부터 하나님과 대화하고 싶은 열망이 우러나게 하는데, 하나님을 향한 친밀감이 강할수록 우리는 의식과 무의식을 막론하고 하나님과 더 자주 만나고 싶어 합니다. 엄률 시토회(트라피스트)의 수사이기도 했고, 성 베네닉토 수도회에서 영성생활을 지도하며 현대적 명상 기도법인 '향심기도(Centering Prayer)'를 창안하는 것에도 기여한바 있는 토마스 키팅(Thomas Keating)은 자신의 저서인 '하느님과의 친밀'에서 영적 여정에 있어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신뢰는 매우 중요해서, 어릴 때 하나님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지니면 이후의 영적 여정에 방해가 될 수 있다. 만일 하나님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분을 화난 아버지나 의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순경, 지독한 판사 등으로 생각한다면 영적 여정에 열성은커녕 흥미를 갖는 것조차 어려울 것이다."
혹시 현재 여러분이 기도생활에 장애를 느끼고 있다면 토마스 키팅의 이러한 분석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받은 신앙교육의 과정에서 우리내면에 뿌리내린 하나님 이미지가 혹시 화난 아버지상은 아니었는지, 혹은 의심쩍은 눈으로 내 죄를 들추어내는 순경이나, 판사 같은 이미지는 아니었는지,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을 향한 부정적 이미지는 나와 하나님 사이의 신뢰나 친밀감을 가로막아, 하나님의 말씀에 거리를 두고, 기도에도 장애를 느끼게 하는 심각한 요인일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도 그 부분을 느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당부하시면서 하나님 이미지를 불의한 재판관과 비교해 설명하십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 눅 18:1-5
이 비유는 누가복음에만 나옵니다. 대부분 그렇듯이 이 비유 역시 스토리는 압축되어 있고, 그 의미는 열려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신학자에 따라 이 비유에서 발굴하는 신학적 키워드 역시 매우 다양합니다. 어떤 신학자는 '끈기와 저항'이라고 하고, 어떤 신학자는 '정의와 구원'이라고 하고, 어떤 신학자는 '심판과 믿음'이라고 하고, 어떤 신학자는 '기도와 신뢰'라고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미 이 비유의 서두에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비유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비유에서 기도자가 낙심하면 안 되는 이유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눅 18:4) 비유 속 재판장과 달리 '부르짖는 자들의 원한을 속히 풀어 주시는'(눅 18:7, 8)하나님의 마음에서 찾아주십니다. 비유에는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재판장과 과부입니다. 이들은 같은 도시 안에서 살고 있었는데, 재판장은 하나님도 겁내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오만한 성품의 소유자였습니다. 반면에 과부는 억울한 일을 당한 한(恨)을 품고 사람을 무시하는 바로 그 재판장을 찾아가 바른 판결을 내려달라고 졸라댑니다. 이 과부의 태도에서의 포인트는 끈질김인데, 그녀의 끈질김은 오만한 재판장조차도 더 이상 모른 척 할 수 없게 했습니다. 과부의 끈질김이 재판장의 오만과 불의를 꺾어, 바른 판결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이렇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 눅 18:7-8a
이 말씀에서의 포인트는 '하물며 하나님께서'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오만한 재판장도 끝내는 과부의 청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는데, 하물며 사람을 사랑해 스스로를 희생하신 아버지께서 당신께서 택하신 자녀들이 밤낮 부르짖을 때, 그 청을 들어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는 누가복음 주해에서 '육화하신 말씀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서 사악한 자를 쫓아내실 수 있는 분에게 '원수를 갚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외아들이신 하나님의 말씀께서 사람이 되시어 이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우리를 짓누르던 이 세상 통치자들을 물리치시고, 우리를 건져내 당신 나라의 멍에를 씌우셨습니다. 끊임없이 기도하며 간청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청을 들으시고 소원을 이루어주실 테니까요."
이 주해에서 볼 수 있듯이 주님께서 비유를 들려주신 목적은 간명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다가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유 끝에 주님께서 가슴 아픈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 눅 18:8b
이 말씀은 막연한 염려가 아닙니다. 사람을 너무 잘 아시는 염려입니다. 훗날 사도 바울 역시 같은 염려로 예견한 바 있습니다.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 4:1, 2). 마지막 때에 순결하고 흠 없는 믿음에서 떨어져나가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을 염려해, 양심이 마비되어 거짓을 일삼는 사람들의 가르침에 속지 말 것을 당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짓에 속아서 믿음을 잃으면, 마음이 낙심해 기도마저 잃게 됩니다. 기도를 시작하는 것도 믿음이지만, 낙심(落心)하지 않고 끝까지 기도하는 것도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기 위한 신앙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것은 육화하신 말씀을 마음에 모셔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말씀만이 우리의 믿음을 지켜주고, 어떠한 상황에도 낙심하지 않도록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 사실을 우리는 오늘 구약성경에서 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 렘 31:31
구약성경에서 '새 언약'에 관한 말씀은 여기에만 유일하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새로운 언약을 맺어야 하는 이유는 첫 언약이 파기되었기 때문입니다. 첫 언약은 출애굽 때 맺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히브리들을 애굽에서 탈출시키시며 그들과 한 가지 언약을 맺으십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 6). 구약성경의 출발은 바로 이 약속을 기초로 합니다. 그런데 이 히브리들이 이스라엘을 건설하고 가나안땅에 들어가 살면서 마음이 변합니다. 그들은 말씀과 언약을 지키며 하나님의 소유로서 제사장 나라의 거룩한 백성이 되려하기 보다는, 가나안의 토착 종교인 바알이 약속한 풍요와 안정에 더 마음 솔깃해 합니다. 주님은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복을 약속하시는데(시 84:12), 그들은 탐심에 마음을 내어주고 우상을 섬김으로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거절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체결한 언약의 파기(破棄)였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신데, 그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를 지켜주실 수 없었습니다. 결국 예루살렘은 패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예레미야의 영적 통찰 즉 예레미야가 바라본 역사해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과의 약속을 파기한 대가로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을 위해 새 약속을 마련하셨다는 것입니다. 선지자의 역할이란 그런 것입니다. 사람들이 망하는 길로 몰려갈 때, 그 길이 아니라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이 선지자라면, 끝내 돌아서지 않고 멸망의 길에 들어서 버렸을 때, 그 절망스러운 자리에서 함께 절망해 버리지 않고 다시 새롭게 희망을 말하는 사람, 선지자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 언약을 맺어주셨다며 이렇게 예언합니다.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 렘 31:33
우리가 이 말씀에서 주목하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법' 즉 '토라(הרות)'를 그들 '속'에 두고 '마음'에 기록하시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첫 언약인 시내산 언약에서는 언약의 말씀이 어디에 기록되어 전해졌습니까? 돌 판에 새겨져서 전해졌습니다(출 31:18;신 4:13;5:22;10:1-4). 그리고 훗날 모세는 죽음을 앞두고 율법을 책(신 31:26)에 써서 언약궤 곁에 둘 것을 지시합니다. 그런데 돌 판은 깨뜨려질 수 있고(출 32:19), 책은 분실되거나(왕하 22:8), 소각될 수 있었습니다(황하 36:23). 그러나 하나님의 법이 '마음'에 기록되면, 그 말씀은 깨뜨려지거나 분실되거나 소각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마음에 기록하시겠다고 하신 것에는 그보다 훨씬 깊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마음'이 사람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심층적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전통에 있어서 '마음'이란 말은 모든 신체적, 정서적, 지성적, 의지적 그리고 도덕적 에너지의 원천을 의미합니다. 마음에서 의식적인 감정이나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마음이 이성과 지각과 이해의 중심이 되기도 합니다. 마음은 우리의 인격을 결정하며, 하나님께서 거처하시는 성전일 뿐 아니라, 사탄이 둥지를 튼 거점이 되기도 합니다. 사막의 교부 중 한 분인 마카리우스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영적훈련을 하는 사람의 주요 과제는 자신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막의 교부들의 가장 깊은 통찰은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마음을 통해 열려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을 돌판이나 책이 아닌 '마음'에 기록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마음속에 간직된 여호와의 말씀이 죄를 막아주고 순종의 길로 이끈다는 확신은 구약성경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신 11:18;시 40:8;시 119:11), 한 예로 시 119:11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그렇게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었기에 오늘 응송에서 시인은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시 119:97)라고 노래하며, 말씀을 읊조림이 자신을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며(시 119:98) 스승보다 노인보다 명철하게 했다(시 119:99)고 고백합니다. 주의 말씀을 '마음의 서고(書庫)'에 간직하시고, 종일 작은 소리로 그 말씀을 읊조리며, 주님을 사랑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그 어디에도 호소할 곳 없던 과부의 심정이 되어 주님의 다시 오심을 대망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이러한 영적 긴장감은 오늘 우리에게 똑같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이 영적 긴장감이 우리의 내면에 유지되려면 마음 안에서 말씀이 계속 읊조려져야 합니다. 다시 구약의 말씀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에 따르면 새 언약의 담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 렘 31:34b
그러나 이 새 언약은 성취되지 못했습니다. 포로 귀환 후 이스라엘의 현실은 새로운 언약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들은 그만 믿음을 상실했습니다. 믿음의 상실은 희망의 상실로 이어졌고, 희망의 상실은 기도의 상실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은 예수님 시대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과부의 비유를 말씀하신 겁니다. 예수님 비유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 눅 18:8a
어떤 사람에게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종일 작은 소리로 그것을 읊조리는 사람, 그 말씀을 부여잡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결국 예레미야가 예언했던 하나님의 새 언약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말씀을 부여잡고 읊조리는 사람, 말씀을 부여잡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이 언약을 이루실 것입니다. 오늘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당부합니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 딤후 3:14
헬라어로 '배우고(ἔμαθες 에마데스)'는 말씀을 이해하고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확신하고(ἐπιστώθης 에피스토데스)'는 말씀을 깨달아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거하라'μένη 메네)'는 말씀으로 말미암은 믿음 안에서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마음에 기록된 말씀의 바른 뜻을 이해하고 깨달아서 믿음을 갖게 된 상태를 끝까지 유지하고, 끝까지 믿음 안에 머물러 있는 성도를 향해 사도 바울은 단언합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 딤후 3:15
참된 지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그 지혜는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마음에 간직한 말씀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힘주어 말씀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 딤후 3:16, 17
여기서 바울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감동'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데오프뉴스토스(θεὁπνευστος)'인데, '하나님의 숨결'이란 뜻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숨결로 인해 '생령(生靈)'이 된 것 같이(창 2:7), 성경도 하나님의 숨결로 인해 '살아있는 말씀'이라는 의미입니다. 살아있기에 성경 말씀은 우리 안에서 때로는 교훈하시고, 때로는 꾸짖으시고, 때로는 교육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고, '선한 일을 행할 능력도 갖추게' 하십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우리 내면에서 형성되는 과정인데,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숙은 그렇게 형성된 하나님과의 친밀함 안에서 무르익어갑니다. 말씀의 사람이 되어,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하고, 말씀에 힘입어 우리의 믿음이 온전해지며, 예수님 마음의 일부가 아닌 예수님 전체를 닮아가는 그리하여 인자가 오실 때 믿음을 칭찬받는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말씀 안에서 구원의 지혜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지 않는가?
② 말씀을 내 마음에 간직하고 종일 읊조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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