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17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합 1:1-4; 2:1-4
1 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라 2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 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3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4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 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1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 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 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 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응송 | 시 37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서신 | 딤후 1:1-14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 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3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 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 이니 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 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 시 불 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 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 께 고난을 받으라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 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 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 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 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 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 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복음 | 눅 17:5-10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 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합 2:1, 2을 묵상하십시오. 성루에 올라 말씀을 기다리는 하박국에 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무엇입니까?
② 눅 17:6, 10을 묵상하십시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을 때 맺 히는 두 가지 열매는 무엇입니까?
③ 딤후 1:5을 묵상하십시오. 사도 바울을 기쁘게 한 믿음의 아들 디모 데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 기 도 | Oratio
■ 묵상 나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필로칼리아에서 성(聖) 시므온은 믿음에 관한 금언을 들려줍니다. 믿음은 개인적인 자유의지의 능력에 종속되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요 우리 본성의 특징이므로, 만일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믿음을 원한다면 그것은 즉시 우리 안에서 활동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우리 안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성 시므온에 따르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행동에 의해 확증되는 것' 입니다. 우리는 그 실례를 오늘 성서일과에서 봅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함으로(합 1:4) 남 유다에 만연해진 죄악을 보며 하나님께 탄원하던 중에, 마음이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과 달리 생명의 길을 '믿음에 대한 고백'에서 찾습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의 '거짓이 없는 믿음'(딤후 1:5)이, 먼저는 그의 외할머니 로이스에게 있다가, 후로는 그의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다가, 이제는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한다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을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딤후 1:7)이라고 정의합니다. 복음서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달라는 제자를 향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마음속 깊이 뿌리박고 있는 지독한 우상들을 뽑아버릴 수 있다는 것(눅 17:6), 그리고 그 믿음으로 인해 사람들은 결코 자기 주제를 넘어서지 않았을 것(눅 17:7-10)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믿음이란 단지 고백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우리 삶을 아름답게 이끌어주는 능력인 것입니다.
먼저 구약성경에서 예레미야 선지자와 거의 동시대 인물인 하박국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자신의 호소와 울부짖음에도 불구하고 들어주시지 않는다며 거칠게 항의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 합 1:2
그의 이 항의에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에 대한 분노가 서려 있습니다. 일찍이 다윗도 비슷한 어조로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시 10:1)라며 하나님께 항의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항의라기보다는 그 일에 책임이 있는 자들에 대한 분노와, 불의한 자들이 어찌해서 즉시 처벌받지 않는지에 대한 의아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박국이 눈으로 보는 현실은 처절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보는 바를 이렇게 고발합니다.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 합 1:3b-4
'겁탈과 강포'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힘 가진 자들의 부당한 억압을 시사(示唆)하는 것이라면 '변론과 분쟁'은 같은 민족 안에서 벌어지는 적의(敵意)와 알력과 다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당하고 불의한 일들이 해결되려면 하나님의 율법이 내면에 살아있어야 하는데, 율법이 '해이(解弛)'하다 보니 정의가 시행될 수 없었습니다. 율법이 해이했다는 것의 히브리어 표현은 '타푸그 גופת'로서 '냉각되다'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사람들의 마음에서 싸늘하게 식어 마비된 것을 뜻합니다. 훗날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날의 특징에 대해 "불법이 성하므로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2)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믿음이 식어 냉각되면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도 함께 냉각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의는 굽어지고, 사람은 고통을 받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분노한 것은 바로 그러한 지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박국 선지자를 보십시오. 현실에 분노해서 하나님께 고발한 후의 그의 태도에서 우리는 참 선지자의 자태를 봅니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 합 2:1
그는 분노했고 하나님께 항의했습니다. 거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의아함과 그의 질문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박국은 그 현실 문제를 결코 자기생각으로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치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듯이(시 130:6), 파수꾼이 밤이 맞도록 망대 위에 있듯이(사 21:8), 자신의 믿음의 성루에 서서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립니다. '기다리고'의 히브리어는 '차파 הפצ'입니다. '먼 곳을 응시하다', '관찰하다'란 뜻입니다. 그의 믿음이 결코 자기생각이 아닌 손꼽아 기다리는 말씀에 의존되어 있음을 우리는 이 한 장면에서 봅니다. 말씀에 의존된 신앙,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영적 태도인지는 요 1:1을 깊이 묵상해 보면 확연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표준 새 번역) 말씀이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이 우리를 창조하셨고, 말씀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마리아의 태(胎)에 성육신하시기 전에 그녀가 감격 속에서 고백한 것이 무엇입니까?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였습니다. 바로 이 믿음의 고백으로 인해 말씀은 그녀 안에서 육신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도록 말씀이 믿음을 창조하고, 믿음으로 말씀이 육화되는 이것이 신앙의 신비인 까닭에, 자기 믿음의 성루에 서서 '말씀'을 기다리겠다는 하박국의 자세는 새 창조와 구원을 고대하는 가장 모범적인 신앙의 자세인 것입니다. 그런 하박국에게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은 이랬습니다.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합 2:2-4
하나님께서는 하박국에게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새기라고 하십니다. '묵시(ןוזח 하존)'는 히브리어로 '환상', '이상'으로 번역되는데, 하나님의 계시인 말씀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마치 모세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말씀을 판에 새겨서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고 하십니다(합 2:2).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바쁨에 겨워 달려가는 중에라도 말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만이, 말씀이 성취되는 과정에서, 말씀이 완성시킨 믿음으로 살아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합 2:4). 같은 이유로 헨리 나우웬도 '영성수업'에서 '말씀을 경청하는 태도'에 대해 강조합니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傾聽)하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있고 창조력 있는 말씀에 마음을 연 사람의 중심 태도입니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마음이 교만해 하나님의 말씀을 내면에 담지 못합니다. 그 교만한 마음을 뿌리째 뽑아버리지 않으면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만에 제 마음을 내어준 채 스스로에게 정직하지 못한지 모릅니다. 오늘 복음서에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사도들이 주님께 이렇게 구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눅 17:5). 그런데 그들을 향한 주님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 눅 17:6
어쩌면 예수님의 이 대답으로 인해 사도들은 더 의기소침해졌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자신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 믿음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 믿음 위에, 믿음을 더해 달라'고 요청한 것인데, 예수님께서 '너희에게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도 없다'는 취지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어져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숨겨진 의미를 성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성찰할 것은 겨자씨 한 알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믿음의 가치는 '질(質)'과 '순수성'에 달려있습니다. 겨자씨는 그 크기나 수량 때문이 아니라, 그 내면에 농축되어 있는 강인한 생명력 때문에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려는 말씀은 너희의 믿음은 겨자씨 같이 강인한 생명력이 있는 믿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겨자씨 같이 생명력 있는 믿음'이 과연 내 안에 있는지 우리는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말씀이 내 안에 있는지' 그 여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신 말씀이 내 안에 계셔서 나를 새로이 창조하실 뿐만 아니라 말씀이 나를 견고한 믿음과 구원으로 이끌고 계시는 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말씀이 마리아의 태에 성육신하셨듯이, 말씀에 내 존재 안에도 성육신 하셔서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는 삶'을 살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만약 말씀이 내 안에 계셔서 나를 새로이 창조하시고,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는 영적 상태에 내가 있다면, 뽕나무 뿌리는 쉽게 뽑혀질 것입니다.
다음 성찰할 것은 예수님 말씀하신 뽕나무 뿌리가 의미하는 바입니다. 지나온 몇 주 동안 우리가 보아 온 복음서의 맥락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나,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들려주신 것에는, 자신에게 속지 말고 너희 내면에 뽕나무뿌리처럼 깊숙이 자리 잡은 교만과 탐욕 그리고 이기적인 자아를 보라는 의미로 읽을 수도 있겠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너희 마음속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는 그 지독한 우상들을 뽑아버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자기 안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그 지독한 우상들이 뿌리째 뽑혀나갈 때,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품에 안기듯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듯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있다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오늘 서신서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딤후 1:2)라며 디모데를 향한 사랑을 살갑게 표현합니다. 비록 육체로 낳은 아들은 아니지만, 믿음 안에서 낳은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며 바울은 그의 '거짓이 없는 믿음'(딤후 1:5)을 칭찬합니다. 그는 진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바나바가 떠난 후에 사도 바울이 선교의 동역자로 발굴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대의 눈물을 기억하면서, 그대를 보기를 원합니다. 그대를 만나봄으로 나는 기쁨이 충만해지고 싶습니다. 나는 그대 속에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을 기억합니다. | 딤후 1:4, 5 표준 새 번역
바울이 디모데에게서 본 '거짓 없는 믿음'이란 헬라어 문자적으로 '위선적이거나 겉치레 없는 믿음'(아뉘포크리투 ὰνυποκίτου)을 의미합니다. 이 믿음은 율법에 매여 있거나 위선적인 믿음이 아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청결해진 양심(딤후 1:3)에 이른 믿음을 의미합니다. 당시 거짓교사들에게 미혹되어 순수함을 잃고 위선적인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디모데의 믿음은 순수하고 진실했던 것을 칭찬하는 것입니다. 그의 이런 믿음은 먼저는 그의 외할머니 로이스에게 있다가, 후로는 그의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던 것이었는데, 이제는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 일 듯하게 하기 원한다"(딤후 1:6)고 말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 딤후 1:7b-9
우리 안에 간직된 말씀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열매 맺었다면, 그 믿음에 성령께서 오셔서 현존하실 때, 우리는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 열매는 아름답고 진실할 것입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 열매에 감동해서 우리에게 칭찬과 감사를 표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강력한 유혹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때 우리는 나를 자랑하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힙니다. 이러한 유혹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우리는 다시 말씀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고, 말씀을 통해 자신을 꾸짖어야 할 것입니다.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는 '유혹을 거스른 싸움에서 그리스도인의 길'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구속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마련해 주셨고, 우리가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게 하셨다(눅 10:19)며, 우리는 성경에서 시작하여 그들에게 대응한다." 고 가르쳐줍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말씀으로 인해 우리 믿음이 겨자 한 알처럼 성장해 가는 벅찬 과정입니다. 이 믿음의 여정을 끝내고 하나님 앞에 서서 오늘 복음서에 등장하는 종처럼(눅 17:10), "보잘 것 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라며 겸손할 수 있는 진실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말씀의 빈곤으로 인하여 자기중심적 종교인이 되어있지 않은가?
② 내 안에 있는 말씀으로 인해 진실한 믿음으로 성장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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